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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도박 - 유럽을 뒤흔든 세계 최초 금융 스캔들
클로드 쿠에니 지음, 두행숙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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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당연히 화폐는 종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주화였던 화폐를 종이로 만드는 것이 혁명이란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계속된 전쟁으로 금속이 많이 부족했던 태양왕 루이 14세의 시대에 스코틀랜드 인인 수학자 존 로는 신용을 바탕으로 하는 종이 화폐를 제안한다. 하지만 그의 아이디어는 처음부터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돈은 당연히 주화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그의 아이디어는 단순히 도박사의 말버릇일 뿐이라고 치부했던 것이다. 그러나 혁명, 변화, 진화... 이름은 다를지라도 이런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 루이 14세가 죽고 나서 섭정을 하게 된 오를레앙 공작은 파산한 프랑스를 구하기 위해서 의회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그의 이론을 현실화하게 된다.
천재를 천재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광기? 집착? 드러나는 천재성? 끊임없이 타오르는 연구열? 내가 생각하건대 존 로는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조국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종이 화폐론을 들고서 프랑스에서 자신의 이상을, 아이디어를 펼쳐 보이고 싶어 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굳이 프랑스가 아니여도 자신의 아이디어를 펼쳐보일 수 있는 기회는 많았을 텐데 말이다. 그런 집착이 그를 파멸로 몰아넣은 것은 아닐까.
그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려고 고군분투했을 때, 그의 반대파 세력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당신의 의견은 절대 왕정을 무너뜨릴 거요.... 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존 로가 재정총감이 되고 예고된 버블이 일어난 다음에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종이 화폐를 사용하여 무역회사를 설립해서 주식을 파는 일로 사람들에게 유동 자산을, 일자리를, 먹을거리를 제공했던 존 로는 나약하기만 했던 오를레앙 공작이 몰래 찍은 지폐 때문에 폭동이 일어났다. 돈은 많은데 실제로 사고 팔 수 있는 재화는 부족해서 물가 상승이 갑자기 일어난 것!!! 그러나 이 모든 일을 야기한 오를레앙 공작은 이 사태의 죄를 존 로에게만 물어 그를 추방시켜 버렸다. 그것도 사랑하는 아내와 딸은 두고서.
자신의 이론을 현실화하지 않더라도 자신은 사는 데 지장없었지만 오로지 죽어가는 프랑스를 구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던 존 로에게 이것은 너무나 가혹했다. 프랑스에서는 미시시피 무역회사를 설립하고 나서 숨겨놓은 주화가 있을 거라며 조사를 하는 사람이 800명으로 늘어나서 그의 아내와 딸이 감금 상태에서 풀어날 가능성이 보이지 않자, 결석으로 조금씩 죽어가고 있던 그는 베네치아로 망명한 후에 자신이 죽어야 모든 일이 끝난다는 것을 알고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자신이 모아두었던 그림을 보여주며 기꺼이 죽음을 맞이했다.
불꽃같이 살다가 죽은 존 로는 그 이상과 열정으로 인해 파멸을 맞이했다. 이름난 대가들 중에는 분명 평범하게 살았다면 행복했을 수 있었지만 그 뛰어난 천재성 덕분에 행복하지 못했던 것을 보면 존 로는 프랑스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시키기 전까지는 네 가족이 행복한 한 때를 보낼 수 있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한 일일까. 승승장구했을 때 경제를 더 활성화시킨다는 일념 아래 재정총감까지 욕심냈던 그를 보며 사람이 언제 멈춰야 하는지를 알지 못한다는 것은 얼마나 비극적인지를 생각했다. 그를 사랑하며 그를 지지하고 언제나 그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었던 아내의 말을 듣지 않고 파멸로 향했던 존 로는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하지 않았을까.
역사에서는 ‘만약’ 이란 말은 통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정말로 만약 존 로의 아이디어가 잘 이루어지고 미국에서 좋은 물건을 들여올 수 있었다면, 그로 인해 프랑스의 경제가 영국처럼 탄탄해졌다면, 프랑스 혁명이란 피비린내나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오를레앙 공작은 조그맣게 타오르던 프랑스의 경제를 꺼버리고 구둣발로 짓이겨버린 셈이었다. 사실은 존 로의 아이디어가 프랑스의 운명을 바르게 이끌어줄 마지막 동아줄이었던 것이다. 그 기회를 던져버린 지배계층이 나중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