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디지 않아도 괜찮아 - 나를 움직인 한마디 두 번째 이야기
박원순.장영희.신희섭.김주하 외 지음 / 샘터사 / 2008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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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장본에다가 독특한 소재의 종이 재질로 된 책이라 처음 본 순간부터 내 눈을 사로잡아버렸다. 책을 고를 땐 내용도 좋아야 하지만 디자인도 꼼꼼히 따지는 나인지라 잘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ㅋㅋ 특히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드러나는 아기자기한 일러스트가 너무나 예뻐서 혹시 다이어리 아닌가~! 하고 다시금 처음부터 펴고 읽곤 했을 정도이다. 김성신 씨가 일러스트를 맡았고, 이경진 씨가 디자인을 했다는 것까지 확인했을 정도니 더 말을 해봐야 무얼 하랴.


이 책은 유명인들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던 한 마디씩을 소개해준 것을 엮은 책인데 모든 이야기가 다 좋았지만 특별히 내 마음을 울렸던 사연이 몇 개 있었다. <문학의 숲을 거닐다>,<내 생애 단 한번>을 펴냈고 번역가이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활약하고 계시는 서강대 영문과 장영희 교수님의 이야기가 그 중 하나이다. 그녀는 어릴 시절 목발 때문에 대문 앞에 앉아 골목길에서 노는 아이들을 바라만 봐야 했었다고 한다. 그때 아이들은 항상 자신을 배려해서 어떻게 해서든 놀이에 끼워주려고 했기에 자신은 소외감이나 박탈감을 느낀 적이 없었다고 하셨다. 그런데 어느 날 지나가는 깨엿장수가 지나가다가 미소지으며 교수님에게 깨엿을 두 개 건네주시더라는 것이다. 순간 그 아저씨와 눈이 맞추치자 한 마다를 하셨단다. 괜찮아. 그 말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 몰라도 교수님은 그때부터 이 세상은 그런대로 살 만한 곳이라고 마음을 정했다는 것이다. 타인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까지 바뀌다니. 그 한 순간 모든 것이 결정난 것이다.


‘그만하면 참 잘했다’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 ‘너라면 뭐든지 다 눈감아 주겠다’는 용서의 말,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네 편이니 넌 절대 외롭지 않다’는 격려의 말, ‘지금은 아파도 슬퍼하지 말라’는 나눔의 말 그리고 마음으로 일으켜 주는 부축의 말, 괜찮아. - p. 17


나도 역시 학원에서 아이를 가르칠 때마다 새삼 느끼는 것은 말의 힘이다. 한 마디의 말이 아이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그 중 최고의 말은 바로 칭찬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던가.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나 느린 아이나 까부는 아이이더라도 칭찬 한 마디에 달라지는 모습을 보면 칭찬 안하고는 못 배긴다. 인정해주는 말, 이해해주는 말, 받아들여주는 말....말은 바르게만 쓰면 다른 어떤 것보다도 훌륭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


또 하나의 사연은 내 눈시울을 붉어지게 했다. <우리 시대 스테디셀러의 계보>, <베스트셀러 이렇게 만들어졌다 01>를 펴낸 출판 칼럼니스트, 한미화 씨의 사연인데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평소 아버지와 많이 닮은 그녀는 철없던 시절 아버지의 사소한 말 한 마디에 상처받고 아파하며 죽고 싶었을 정도로 아버지와의 관계가 안 좋았다. 그런 그녀에게 다독여주지는 못할망정 “네 아버지가 돈 버느라 얼마나 고생하는 줄 아느냐. 아버지 고마운 줄 알아야 한다”면서 설교하시는 엄마까지 원망스러웠단다. 그러다가 삼십 대 중후반에 한 집안을 책임져야하는 어른이 되면서부터 앞으로 10년은 뼈빠지게 고생해야할 것을 생각하니 아버지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단다. 말단 경찰 공무원으로 한평생을 일한 아버지가 무슨 생각으로 사셨는지를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버지의 모진 잔소리가 사실은 ‘아버지처럼 살지 말라’는 아버지 식 표현이었으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고.


나에게도 항상 우리를 노심초사 바라보시는 아버지가 계시는데 어떤 때는 극성맞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잔소리가 심하시다. 대학생 때는 그런 아버지가 궁상맞아 보이고 짜증났었는데 이제 6년차 직장인이 되었고 사람을 상대하는 것만큼 힘든 일은 없다는 것과 직장의 선배들이 무능력하게 하루하루를 보낸 것은 아니라는 진리를 어렴풋이 깨달았을 무렵, 아버지가 생각났다. 한평생을 한 직장에서 한결같이 일하시고 이제는 퇴직하신 우리 아버지가 무능력하고 궁상맞았던 것이 아니라 사실은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하루에도 몇 번씩 때려치고 싶었을 때 혼신의 힘을 다해 참아오신 존경스런 분이라는 것을, 우리 형제들 때문에 그 모든 것을 감수하셨다는 것을, 이제는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상사와 부딪칠 때 가장 도움이 되었던 분이 바로 아버지였다. 평소 공통된 관심사를 가지고 있던 엄마와는 항상 사이가 좋았지만 아버지와는 서로 만나면 장난만 치고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지 못했었다. 그런데 직장생활에서 오랫동안 근무하셨던 아버지에게 학원에서의 어려움을 토로할 때는 멀게만 느껴졌던 아버지가 참 가깝게 느껴졌다. 인생의 선배로서 직장생활의 어려움을 잘 아시고 다독여주셨기에 힘든 시기를 덜 힘들게 견뎌낼 수 있었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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