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필름이 남아 있을 때 - <스트로보> 개정판
심포 유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이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처음 드는 생각은 “재미있다” 였다. 나는 소설의 여운이 오래 남으면 마음이 불편해지기 때문에(특히, 슬픈 사랑이야기) 그다지 소설을 읽지 않았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여운이 잔잔하게 남아서 언제 어느때고 그 여운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 그리웠다. 이 책은 그러한 그리움을 충분히 만족시켜 주었다. 사랑이야기도 그런 여운을 줄 수 있겠지만 이렇게 한 사내가 자신의 삶과 일을 반성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아내는 이야기가, 사람이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더 남져주었던 것 같다.

이 책은 프로사진기사인 기타카와의 인생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녔던 다섯 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 50세(영정), 42세(암실), 37세(스트로보), 31세(한 순간), 22세(졸업사진)의 이야기가 거꾸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의 이야기들이 별개의 이야기같다가도 마지막엔 하나로 연관되는 독특한 방식으로 되어있어 현재의 모습이 모두 과거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했다.

모든 장에서 자기의 인생이 결국 현재 옆에 있는 “아내”와 연관된다는 것을 깨달은 기타카와는 첫 장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내에게 자시의 영정사진을 부탁한다. 사진은 단순히 겉모습만을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의 흔적까지도 담아내는 것이기 때문일까.

“늘 여자 문제로 기미코의 속을 썩여 왔다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내 영정사진을 찍어줄 사람은 역시 지금 카메라를 들고 있는 이 여자밖에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또한 모든 장에는 미스터리가 하나씩 존재한다. 주인공 기타카와가 그것을 찾아가며 고민해가는 과정 속에서 사람들의 행동에 숨겨진 심리를 파악하는 모습도 흥미롭다. 그 당시에는 이기적으로 편협하게만 보였던 행동들이 사실은 자기에게 배려한 행동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삶의 진실로 받아들인다. 그런 기타카와의 추리를 따라가며 이야기의 전모를 찾아보다보니 그의 인생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젊었을 때 기타카와는 조금은 오만했지만 자신의 꿈에 도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거는 열정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던 것이 점차 명성을 얻기 시작하면서 잔재주를 부려 돈이 되는 일만 하며 현실에 안주하기 시작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자조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하는 과정은 비단 기타카와 뿐만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비슷하리라 본다. 젊을 적에는 성공하기 위해서 열정적으로 살지만 어느 정도 지위에 오르면 그 열정이 소진되어버린 것 같이. 내 나이가 아직 어느 정도의 지위에 오를 시기가 아니기 때문에 정확히 안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런 생각이 드는 건 나에게도 가끔씩은 정체기가 찾아오기 때문은 아닐런지.

기타카와의 인생 여정을 되돌아보면서 나는 아주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인생에서는 잊지 말아야할 무언가가 있다는 걸. 죽을 때까지 포기하지 말아야할 무언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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