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중에 있는 네아 마크리라는 작은 마을에서는 노인들이 카페 앞 테이블에 앉아 모닝커피를 작은 컵으로 따라 마시면서, 내가 달려 지나가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석연치 않은 역사의 한 장면을 목격하고 있는 것처럼.
- P100

마라톤 마을의 아침 카페에서 나는 마음이 내키는 대로 찬 암스텔 비어를 마신다. 맥주는 물론 맛있다. 그러나 현실의 맥주는 달리면서 절실하게 상상했던 맥주만큼 맛있지는 않다. 제정신을 잃은 인간이 품는 환상만큼 아름다운 것은 현실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 P103

완주하고 나서 조금 지나면, 고통스러웠던 일이나 한심한 생각을 했던 일 따위는 깨끗이 잊어버리고, 다음에는 좀 더 잘 달려야지하고 결의를 굳게 다진다. 아무리 경험이 쌓이고 나이가 들어도,
결국은 똑같은 일의 반복인 것이다.
그렇지, 어떤 종류의 프로세스는 아무리 애를 써도 변경하는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 프로세스와 어느 모로나 공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가정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집요한 반복에 의해 자신을 변형시키고(혹은 일그러뜨려서), 그 프로세스를 자신의 인격의 일부로서 수용할 수밖에 없다.
- P107

장편소설을 쓴다고 하는 작업은 근본적으로는 육체노동이라고 나는 인식하고 있다. 글을 쓴다는 것 자체는 두뇌 노동이다.
그러나 한 권의 정리된 책을 완성하는 일은 오히려 육체노동에가깝다. 물론 책을 쓰기 위해서 뭔가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거나빨리 달리거나 높이 뛰거나 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세상의 많은사람들은 겉모습만 보고 작가의 작업을 조용한 지적 서재 노동으로 간주하는 것 같다. 커피 잔을 들어 올릴 정도의 힘만 있으면 소설 같은 건 쓸 수 있는 게 아닌가, 하고, 그러나 실제로 해보면 소설을 쓴다는 것이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바로알 수 있다.  - P123

아무튼 여기까지 쉬지 않고 계속 달려온 것은 잘한 일이라고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을 나 스스로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 다음 나 자신의 내부에서 나올 소설이어떤 것이 될지 기다리는 그것이 낙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한계를 끌어안은 한 사람의 작가로서, 모순투성이의 불분명한 인생의 길을 더듬어가면서 그래도 아직 그러한 마음을 품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역시 하나의 성취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다소 과장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기적‘ 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그리고 만약 매일 달리는 것이 그 같은 성취를 조금이라도 보조해주었다고 한다면, 나는 달리는 것에 대해 깊이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 P127

미국의 병원에 가면, 우선 간호사에 의한 예비 진단과 같은 절차가 있어서 맥박을 재는데 언제나 "아, 당신은러너군요" 라는 말을 듣는다. 장거리 주자는 오랜 기간에 걸쳐 모두 비슷한 맥박 수로 되어가는 모양이다. 거리를 달리고 있는 사람이 아마추어냐 프로냐 하는 것은 바로 구별할 수 있다. 헉헉,
하면서 짧은 숨을 가쁘게 쉬고 있는 것은 초보자이고, 조용히 규칙적으로 호흡하는 것은 베테랑이다. 그들의 심장은 천천히, 생각에 잠기면서 시간을 새겨 나간다. 우리는 거리에서 서로 스치면서 서로의 호흡의 리듬을 들으며, 서로의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된다. 마치 작가들이 서로 상대의 어법을 교감하는 것처럼.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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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스 2 동서문화사 세계문학전집 38
제임스 조이스 지음, 김성숙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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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고통스럽던 난해한 읽기의 여정을 거쳐 이 소설의 피날레라 할 수 있는 ‘페넬로페‘를 남겨두고 며칠 다른 책들로 방황했다. 조금 진부한 핑계일 수 있지만 마리온을 향해 가기전 블룸처럼 나름의 시간이 내게도 필요했다. 그런식의 공을 들여서일까 ‘페넬로페‘는 여성의 시각과 감각을 추구한만큼 읽기도 수월했고 흥미로웠다.그녀의 관점에서 블룸에 대해 알게되어 그에 대해서도 좀 더 이해할만한 기회가 된다.

조이스의 율리시스가 난해하기로 악명이 높아서일듯한데, 소설에 등장하는 실제의 장소나 거리,상징물들,그리고 조이스의 여러 사진들이 담겨있어 도움이 되었다. 후반 조이스의 생애와 문학에 대해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 것도 상당히 공부가 됐다.

조이스에 관련된 앙드레 지드와 사뮈엘 베케트 그리고 움베르토 에코의 글도 뒤이어 담겨있어 읽어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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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10-13 16: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일랜드에 가서 저 지폐를 보고 싶습니다.. ㅜㅜ
제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아일랜드 가서 작가들 발자취를 따라가보는 건데. 에잇. 코로나.

청아 2020-10-13 16: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두요.ㅋㅋ 최근 읽는 책들 때문에 가보고 싶은 곳만 계속 늘어나네요.

scott 2022-12-16 2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서 책 이런 사진 삽화 풍부하게 들어 있고 가격도 착해서
좋은 것 같습니다 ^^

청아 2022-12-16 23:13   좋아요 1 | URL
스콧님 덕분에 다시 읽어보네요>.<
네! 삽화 마음에 쏙 들었어요ㅎㅎ
 

제임스 조이스 생애와 문학

조이스는 <인형의 집>, 〈브랜드〉, 〈헤더 가브렐〉 등을 쓴 입센에 심취하여 그의 작품을 원어로 읽기 위해 노르웨이어를 공부했을 정도였다.  - P1203

아일랜드 사람은 ‘타고 갈 전차를 착각하는 바람에 북쪽으로 가버린 스위스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을 처음 주장한 것은 조이스와 같은 세대의 에스파냐 사람, 살바도르 데 마다리 아가이로호이다.  - P1204

마다리아가이로호의 지적 가운데 정말 중요한 것은 아일랜드 사람과 에스파냐 사람의 기본적인 공통점이다. 그것은 ‘부조리와 친근감‘이다. 문학 세계에서 이 감각의 대표자는 에스파냐에서는 《돈키호테》의 세르반테스, 아일랜드에서는 《걸리버 여행기》의 스위프트, 《피네건의 밤샘》의 조이스, 《고도를 기다리며》의 베케트일 것이다.  - P1204

아이리시 불(Irish bull ) - P1205

오스카 와일드나 버나드 쇼를 비롯해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는 대부분,사람의 허를 찌르는 데 명수였다. - P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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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온은 학식도 윤리관도 모자라나 대지 그 자체처럼 침대에 누워 있다. - P1130

이 에피소드는 구두점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오히려 이 자체가 하나의 큰 마침표이다. - P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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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리님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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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리 2020-10-12 15: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런 여백 넓은 책이 좋더라고요. 특별히 여백을 넓게 한 것같은 책들은 더!

청아 2020-10-12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배려가 느껴지죠. 거기에 대한 의무감에 뭔가 써야 될것 같고!

몰리 2020-10-12 17:32   좋아요 1 | URL
맞아요. 빡빡하게 채우면서 공부해야 할 거 같은!

쿼크 2020-10-12 2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식이 없는 페이지를 찍어 올리시다니 반칙이세요.
이 책의 호감도만 올라갈 수 있습니다. ^^


청아 2020-10-13 0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그런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