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도

이제 습관이 되었어요

가닥가닥 온몸의 혈관으로 

타들어오는 불면의 밤도

나를 다 먹어치울 순 없어요 ...휠체어 댄스, 한강


이틀간을 지옥 속에 보냈다. 감정이 망상으로 이어져 불구덩이에 던져진 것을 알기에 그렇게 나를 던진 것이 

다름 아닌 나라는 사실을 알기에 빠져나올 수 있었다. 다행히도. 어떤 몰두는 나를 살게 하고. 어떤 몰두는 나를 죽으라고 몰아세운다. 그래서 사람들은 생각을 하고 살라고 하면서도 생각을 줄이라고 상반된 주장을 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어지러웠다. 멀미 비슷한 느낌이었다. 구토가 나올 것도 같았다. 실제로 역해지며 쓴 물이 올라 오기도 했다. 에픽하이의 노래를 듣다가 '사랑을 하는 건지. 이별을 하려고 만나는 건지.' 가사가 귀에 꽂힌다. 정신을 차리려고 움직였다. 신기하게도 (늘 반복되는 신기함이지만) 쳇 바퀴가 반대 방향으로 회전한다. 



하지만 곧

너도 알게 되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하는 일뿐이란 걸

저 번쩍이는 거대한 흐름과

시간과

成長,

집요하게 사라지고

새로 태어나는 것들 앞에

우리가 함께 있었다는 걸


효에게.2002.겨울, 한강



그럴 때가 있었다. 물건을 다루다가 마음대로 되지 않아 성을 내던 내 모습을 낯설게 바라볼 때가.

나마저 당황스러운 모습을 안쓰럽게 또는 창피하게 마주할 때면 생의 괴이함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문득 짐작이 되곤 했다. 그런 순간들의 마음이란 역시 천국보다는 지옥에 가깝다. 분명히. 신앙 깊은 이모는 나에게 말했다. 마치 천국을 보고 온 사람처럼. 환희에 감싸여 발그레한 얼굴을 하고선. 그곳에는 금은보화가 넘쳐 나고 온갖 좋은 것들이 넘쳐 나고 아픈 사람도 없고 가난한 사람도 없고...그 옆에서 어린 나답게 맞장구를 쳐 주었지만 한편, 그러고 있는 게 힘들었고. 내게 말하고 있는 이모도 사는 게 힘겨워서 그러겠거니 했다. 무엇이, 무엇 때문이었을까. 더는 생각하지 않고 접어두었다. 하지만 그 일은 기억에 오래 남았다. 왜일까.


천국을 갈구하는 마음은 지옥을 경험한 불안에서 오는 걸까. 그 무엇도 아닌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 걸까? 그 무엇도 아닌 공간에서나 천국과 지옥을 상상할 수 있는 걸까?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괜찮아,한강



불안을 낮추는 응급처치는 나에서 벗어나 타인을 염려하는 거 라던 뇌과학자의 말을 떠올린다. 그러고 보면 "괜찮아?" 하며 너의 안부를 묻는 나는 분명 불안하지 않은 순간 속에 있었다. 공원을 달리며 땀을 흘리는 나도, 1년 4개월 만에 뜬 슈퍼문을 바라보던 나도, 노래를 흥얼거리던 나도, 영화를 보며 이야기에 몰입한 나도,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있던 나도. 당신에게 안겨 당신의 체취를 느끼던 나도. 그런 '나'들은 불안하지 않았다. 



내가 가장 처절하게 인생과 육박전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내가 헐떡이며 클린치한 것은 허깨비였다 허깨비도 구슬땀을 흘렸다 내 눈두덩에, 뱃가죽에 푸른 멍을 들였다 그러나 이제 처음 인생의 한 소맷자락과 잠시 악수 했을 때, 그 악력만으로 내 손뼈는 바스러졌다  ....그때, 한강



토요일 지하철을 타고 계획된 일정을 처리하려고 여기서 저기로. 저기서 다시 그곳으로 이동하며 한강의 시집을 다 읽었다. '문장들의 밀도로 충전한다'는 말이 그저 좋다.  허기져 급히 점심으로 배를 채우고 광화문에 잠시 들렀다가 시간이 되어 당신을 만나러 가는 동안에도 시집을 읽고 있었다. 종이컵 두 개에 소주 한 병이 다정하게 가득 찬다는 당신의 추억을 되살렸다. 이게 물인지 술인지. 당신의 기억 속인지. 다만 천국인지. 가늠할 수 없어 좋았다. 지옥은 갔다. 잠시뿐이라도. 그렇다고 이곳이 천국일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내가 생각하는 천국은 금과 보석이 넘쳐나는 곳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지옥에 당신이 있다면 내게 그게 지옥일 수 없듯이.








   









Fools rush in where angels fear to tread
And so I come to you, my love
My heart above my head

Though I see the danger there
If there's a chance for me
Then I don't care

Fools rush in where wise men never go
But wise men never fall in love
So how are they to know?
When we met, I felt my life begin
So open up your heart and let
This fool rush in


어리석은 사람들은 천사들이 두려워하는 곳으로 달려들지
그래서 나도 당신에게 갑니다, 내 사랑
내 머리보다 내 마음이 앞서지요
위험을 보고 있어도
내게 기회가 있다면
신경 쓰지 않아요

어리석은 사람들은 현명한 사람들이 가지 않는 곳으로 갑니다
하지만 현명한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지 않죠
그들이 어떻게 알겠어요?
우리가 만났을 때, 내 삶이 시작되는 걸 느꼈어요
그러니 마음을 열고
이 어리석은 사람이 다가가게 해주세요



이 노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사랑을 겁 없이 받아들이는 모습을 그린 곡이죠. 위험과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감정과 사랑에 충실한 사람이 진짜 사랑을 경험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어요.-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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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4-10-20 17: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즘 구하기 힘들다는 한강작가님시집을 읽으셨군요~!! 문장들의 밀도라는 말이 궁금합니다~!! 저도 이 시집 읽어보고 싶은데, 좀 잠잠해지면 읽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생각은 하되, 너무 깊이 하지 않는게 좋은거 같아요~!!

전 <희랍어 시간>이 제 취향이었습니다~!!

청아 2024-10-20 17:42   좋아요 3 | URL
배송 기다리지 않고 있었는데 다행히 생각보다 빨리 와서 기뻤습니다.
저도 나중에 읽으려다가 지금 표지들이 마음에 드는데 리커버 되면
아쉬울 것 같아 미리 사두었어요.

맞아요. 그래서 명상을 다시 시작했어요ㅎㅎ

<희랍어 시간>기대가 큽니다.

서곡 2024-10-20 18: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아 한강 작가님 매일 독서량도 대단하지만 운동량이 ㄷㄷㄷ 입니다 역시 대단하신 분!! 명상 잘 하시고 남은 시월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청아 2024-10-20 19:40   좋아요 3 | URL
그렇죠? 저도 놀랐어요. 역시 체력이 바탕이 되어 수많은 책들을 써냈구나 싶더군요.
서곡님도 남은 시월 활기차게 보내시길 바랍니다!ㅎㅎㅎ

페넬로페 2024-10-20 21: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뭘 하든지 기본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책 읽고 리뷰 하나 쓰기도 이렇게 미루는 제가 생각할 게 많네요 ㅎㅎ
다시 천천히 한강 작가의 책을 읽어야 겠어요^^

청아 2024-10-20 23:17   좋아요 2 | URL
저는 의외였어요. 어쩌면 페페님 말씀처럼 기본이고 당연한건데도
한강 이니까 그저 앉아서 글만 쓰고 책 읽고 풀과 이슬만 섭취하실 거란 느낌?ㅎㅎ
우리나라 작가가 노벨 문학상 수상한 게 마냥 기뻐서 끌리는 책들을 몇 권 주문했는데
출간되었던 책이 꽤 많더군요^^

2024-10-21 1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0-21 15:5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