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서재에 들어왔다가 S님의 페이퍼를 보고 이 책을 주문했다. 예약 주문으로 설정된 걸 보며 '한강 열풍'을 실감한다. 그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 바로 전날. 나는 퇴근 후 페럴만과 단골집을 향해 차로 이동하고 있었다. 잠시 신호에 걸린 사이, 익숙한 건물이 눈앞에 들어왔다. 그 건물에는 여러 학원이 숨 막히게 밀집되어 있었고 갑갑해진 나는 "저 학원들 좀 봐요. 아이들이 불쌍해요. 이렇게 괴롭히니 우리나라에서는 앞으로도 노벨 문학상은 안 나올 거예요."라고 말했다. 어쩌다 다시 사교육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그런 말을 하고 있는 내가 잠시 우스웠지만 늘 하던 생각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페럴만에게서 톡이 왔다. 






124년의 노벨상 역사상 아시아 여성 작가의 수상은 처음이라니 더 놀랍다. 며칠 전 술자리에서 친구가 종이 교과서가 곧 사라질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술이 깬 뒤에 생각나 검색해 보니 AI교과서를 혁신이라며 교육부가 벌인 일이었다. 국회 청원에 반대 목소리가 나오자 잠시 뒤로 물러서는 듯 보였지만 결론은 바뀌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앞서 AI교과서를 도입했던 국가들은 부작용 때문에 오히려 종이 교과서로 돌아가고 있다는데 걱정이다. 이런 와중에 한강 덕분에 종이 책이 다시 사랑받는 것 같다. 이 열기가 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틀렸는데 기분이 좋다. 다음 노벨상 발표 전날에도 같은 말을 해볼까...





사랑에 빠지는 것은 귀신에 홀리는 일과 비슷하다는 것을 그 무렵 나는 처음으로 깨닫고 있었습니다. 새벽에 눈을 뜨기 전에 이미 당신의 얼굴은 내 눈꺼풀 안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눈꺼풀을 열면 당신은 천장으로, 옷장으로, 창유리로, 거리로, 먼 하늘로 순식간에 자리를 옮겨 어른거렸습니다. 어떤 죽은 사람의 혼령이라도 그토록 집요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 여름 밤 내 책상 옆의 작은 거울 속에는 땀을 뻘뻘 흘리며 어설픈 수화를 연습하는 내 상반신이 비쳐 있었지만, 거기 어른어른 겹쳐 있는 당신의 얼굴을 나는 매순간 알아보았습니다. (45쪽) -희랍어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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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4 14: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0-14 15: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24-10-14 15: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가 틀렸는데 기분이 좋다!
저도 노벨문학상 투표에 한강작가님 안 찍었는데 ㅋㅋ 틀렸지만 행복해요😆

청아 2024-10-14 15:52   좋아요 1 | URL
저 역시 다른 작가를 골랐어요! 뒤늦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ㅋㅋㅋ
고요한 축제의 분위기를 느낍니다🤭

페넬로페 2024-10-14 17: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전혀 한강 작가는 예측하지 못했어요.
나이로 봐서 아직 노벨상 받기 이르다고
생각했거든요.
글고 어떤 영화 대사에 한국 절대 노벨 문학상 못 받는다가 있더라고요 ㅎㅎ
희랍어 시간 넘 좋게 읽었는데
재독해야 겠어요
근데 기다려야 책을 받을 수 있으니
천천히 읽어야겠어요.
한국인의 냄비근성이 좀 식을때요 ㅎㅎ
청아님!
왜 페럴만이예요?
전에 이유를 쓰신적이 있다면 죄송요.
그래도 다시 가르쳐줘요~~

청아 2024-10-14 15:58   좋아요 1 | URL
그러게 말이에요! 예상 밖이기도 하고 관련 기사를 읽을 수록 놀라운 결과라는 생각이 거듭 들어요. 게다가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가 남편의 말에 설득된 이야기도 감동적이었어요. 이번 냄비근성은 좀더 길어지길 바랍니다ㅋㅋㅋㅋ
아 제가 페럴만이라는 수학자 다큐를 봤었는데요. 수학계의 오랜 난제였던 푸엥카레의 추측을 풀어낸 러시아 수학자예요.필즈상 수상을 거부하고 은둔한채 살고 있다고 알려진ㅋ 그뒤로 이 사람을 만났는데 진지한 이야길 나누다가 저에게 어렵다고 해서 나는 푸엥카레의 추측이고 오빤 페럴만이란 글을 썼어요ㅋㅋㅋ

새파랑 2024-10-15 13: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한강의 최고작은 <희랍어 시간>이었습니다~!! 한강 작품 읽으면서 이런 작가가 우리나라에 있다니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노벨문학상이라니 놀랍기만 합니다~!!

청아 2024-10-15 14:33   좋아요 1 | URL
새파랑님! 너무 반가워요!ㅎㅎ<희랍어 시간>의 내용이 더 궁금해집니다. 두 작품 정도만 읽어봤는데 그 외에도 여러 책이 있어 기회됨 하나하나 도전해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