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명의 폭도보다 더 두렵게 느껴졌던 파슨스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려본다. 그녀의 목소리는 어떤 형태였고, 그녀의 눈빛은 어떤 빛을 뿜어내고 있었을까. 기사와 시를 발표했다면 파슨스는 시도 썼다는 말인가. 평생을 강인함으로 무장해야만 했던 고단한 삶을 산 사람의 시란 어떤 것이었을까.
루시 파슨스 (Lucy Parsons)
미국 노동운동 연대기에서 때때로 이름이 등장하는 몇 안 되는 흑인 여성 중 한 명이다. 대개는 *헤이마켓(1886년 시카고 헤이마켓 광장에서 진행 중인 노동집회에 폭탄이 터지면서 사상자가 발생한 일을 말함) 의 순교자 앨버트 파슨스의 '헌신적인 아내'라는 단순화된 정체성으로 표현된다. 자신의 남편을 가장 호전적으로 옹호한 인물 중 하나였지만, 남편을 옹호하고 복수를 하고자 했던 충실한 아내이자 성난 유족에만 그치지 않았다. 파슨스는 60여 년에 걸쳐서 노동계급 전체를 저널리즘적인 방식으로,그리고 선동적으로 변호했다.
1877년에 사회주의 노동당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이후 수년간 이 아니키스트 조직의 신문인 <소셜리스트Socialist>에 기사와 시를 발표하면서 시카고여성노동자연합에서도 조직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게 된다. (...) 파슨스는 전국을 순회하면서 출중한 노동계 지도자이자 선도적인 아나키즘 지지자로 알려졌고, 명성이 높아지자 너무나도 빈번하게 탄압의 표적이 되었다.
"(모든 도시에서) 마지막 순간에 강당의 문이 그녀 앞에서 폐쇄되었고, 형사들이 회의실 구석마다 서 있었고, 경찰은 그녀를 쉬지 않고 감시했다." 심지어 남편이 처형당할 때마저도 루시 파슨스와 두 아이들은 시카고 경찰에게 체포당한 상태였다. 파슨스를 체포한 경찰 중 한 명은 "저 여자가 천 명의 폭도보다 더 두렵다"라고 논평했다.
루시 파슨스1886년 (위키피디아)
보스턴에 있는 서점 '루시 파슨스 센터'
출처 https://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996225.html
'디얼리 빌러비드(참으로 사랑하는)'라고 한 목사의 말(사실 목사가 한 말은 그게 다였다)을 전부 아기의 묘비에 새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중요한 한마디만을 새겨넣었다.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토니 모리슨. 빌러비드
현 체제에서 우리는 착취와 수탈의 새로운 얽힘, 그리고 정치적 주체화의 새로운 논리와 만난다. 종속적 피수탈 예속민과 자유로운 피착취 노동자를 확연히 가르던 과거의 분할 대신에 연속체가 등장한다. 한쪽 끝에서는 무방비 상태의 피수탈 주체의 무리가 증가하는 반면에, 다른 쪽 끝에서는 착취만 당하는 주체인 보호받는 시민-노동자 계층이 감소한다. 그리고 그 중간에는 새로운 등장인물, 즉 수탈과 착취를 동시에 당하는 시민-노동자가 자리한다. 형식적으로는 자유롭지만 너무도 취약한 상태인 이 새 등장인물은 더 이상 주변부 주민이나 인종적 소수집단에 한정되지 않는 표준적 존재가 된다. p.104
착취와 수탈의 방식도 진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