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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오브 도그
토머스 새비지 지음, 장성주 옮김 / 민음사 / 2021년 10월
평점 :
칼에 맞아 죽지 않게 이 목숨 건져 주시고, 저의 하나 뿐인 소중한 것, 개의 아가리에서 빼내 주소서. p.363
여기 몬태나 주에 잘난 인물이 하나 있다. 때는 금주법이 시행되던 서부의 시골 마을. 인근에서도 부유하기로는 최상위권에 드는 집안인 버뱅크의 대목장에는 순둥이 조지 버뱅크와 냉혈한인 형 필 버뱅크가 함께 살고 있다. 성격이 극과 극임에도, 게다가 방이 16개나 되는데도 40대 미혼남인 이 둘은 한 방에서 지낼 정도로 나름 우애가 좋은 편이다. 이 중에서 잘난 쪽은 찔러도 피한방울 안 나올 것 같은 형. 필 버뱅크다. 그는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동생 조지는 같은 대학에서 제적을 밥먹듯이 당했다. 이쯤이면 누구나 두 형제의 이미지가 그려질 것이다. 다정하지만 느리고 말 수가 없는 조지에 비해 필은 날카로운 언어로 상대에게 모욕을 주는 걸 즐긴다. 그는 한마디로 약자가 강자에게 당하는 걸 보면 약자의 무능을 탓하는 성격이다. 그럼에도 명석한 두뇌와 부유하지만 잘난척하지 않고 나름 털털한 이미지에 지역에서 존재감은 그의 재산을 능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지성과 서글서글함, 젠체하지 않는 소탈함, 공평무사함과 같은 것들에 관하여, 물론 그들은 필의 벤조 연주 실력과 명랑한 휘파람, 소년 같은 장난기, 그가 붉게 트고 흉터 투성이인 억센 손으로 만든 작품들 또한 기억했다. p.356
해마다 대목장의 소떼를 팔기위해 이동할때면 필과 조지를 필두로 고용된 카우보이들이 따라 나선다. 열차에 1000마리 가량의 소떼를 싣기위해 이동하는거다. 인근에 도착하면 기다리면서 연례행사처럼 만찬을 즐기고 술집도 들른다. 그러기를 수십년.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술도 거의 마시지 않고 자신의 카우보이들이 즐기는 걸 바라보는 냉혈한 필에게 이 지역에 온지 얼마 안된 눈치없는 의사가 그만 술에 취해 필에게 이러쿵 저러쿵 장광설을 풀어놓은 것이다. 술에 취한 걸 딱 질색하고 모르는 사람이 함부로 말 거는 것도 거슬려 하는 필은 사람들 앞에서 그의 셔츠를 찢고 걸레 뭉치처럼 벽에 던진다. 이런 일을 감당할 만한 배짱을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결국 가난했지만 선량했던 모욕당한 의사는 하루하루 마르고 말 수가 없어지더니 얼마후 목을 매어 자살한다. 그 끔찍한 상황을 그의 아들이 발견한다. 아들은 소란 스러웠던 술집의 '비극'도 목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참 오래된 말이지만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고 기이한 인연이 이어져 동생 조지와 죽은 의사의 아내가 눈이 맞아 부부가 된다. 그리고 버뱅크 목장으로 들어와 그녀의 아들도 이곳에서 함께 살게 된다. 의사가 자기 때문에 자살했다는 사실을 아는 필은 당연히 동생이 의사의 미망인과 결혼하는게 못마땅하다. 게다가 돈을 보고 그 여자가 들어왔다고 믿는다. 그래서 로즈를 로즈만 빼고 누구도 모르게 괴롭히고 경멸한다. 로즈는 시아주버님의 피말리는 시월드를 경험하며 하루하루 멘탈이 붕괴된다. 엄마가 괴로워하다 알콜에 빠지게 된 사실을 알게 된 아들 피터.
4살때부터 글을 읽었고 심심풀이로 아버지의 의학서적을 읽다 지금은 의사를 꿈꾸는 피터는 아버지의 유언이 된 말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걸림돌'을 치우게 된다. 어떻게 치우는 지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읽어보시기를!
자신의 감춰진 비밀 때문에 경멸당할 것을 두려워해 오히려 평생 타인들을 경멸하는 필, 그는 예리한 지성을 가졌지만 그에게 모욕당했던 의사의 아들은 더욱 뛰어났다. 복수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그리고 역시 사랑은 뜨겁게하고 복수는 차갑게 해야 한다. 이 작품은 베네딕트 컴버베치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져서 소설을 다 읽기도 전에 궁금해 먼저 보게됐다. 개인적인 생각에 역시 원작에 미치지는 못했다. 소설에서는 필만큼 의사의 아들 피터의 상황도 디테일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영화는 아마도 몸값 때문인지 필로 분한 컴버베치에 과몰입되어 있는 인상이다. 그러다 보니 맥락이란 스타킹에 구멍이 숭숭 나 있어 원작을 읽지 않은 사람들은 대체 그 구멍을 어떻게 매꿀지 내가 다 걱정이 된다 .(정작 나도 아들 피터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았구나. 스포가 될까바 그런거라고 우겨본다.)
그러나 필은 알았다. 뼛속 깊이 잘 알았다. 추방자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그래서 그는 세상을 혐오했다, 세상이 먼저 그를 혐오했으므로.p.348
놀랍게도 이 이야기는 작가 토머스 새비지의 자전적 삶을 옮겨놓았다. 물론 그가 영화처럼 실제로 복수를 감행한 것은 아니다. 그랬다면 그는 자칫 작가가 되지 못하고 감옥에 오래 있었을지 모른다.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복수를 소설로 감행하는 것도 나름 달콤한 방법인듯 싶다. 어떤 방법이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 창작의 공간이란 얼마나 광활한가! 새삼 소설의 기능에 감탄하며 여운을 곱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