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의 얼굴이 으레 그러하듯 이반 일리치의 얼굴은 살아 있을 때보다 한결 잘생겨보였고 무엇보다도 훨씬 더 의미심장해 보였다. 그의 얼굴은 마치 해야 할 일을 다 했고 또 제대로 했다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뿐만 아니라 그의 표정에는 산 자를 향한 모종의 비난과 경고까지 담겨 있었다. - P13
그가 숙연한 태도로 그들과 인사를 나눈 후, 고인이안치된 방으로 가려 할 때 계단 아래쪽에서 이반 일리치를섬뜩하도록 빼닮은 중학생 아들이 나타났다. 그 모습은 뽀뜨르 이바노비치가 기억하는 법률 학교 시절의 소년 이반일리치 그대로였다. 울어서 퉁퉁 부은 두 눈은 순수함을잃어버린, 열서너 살 된 남자아이들에게서 자주 볼 수 있는 그런 눈이었다. 뾰뜨르 이바노비치를 본 아이는 시무룩한 표정을 짓더니 창피한 듯 얼굴을 찌푸렸다. - P21
이반 일리치의 삶은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했으며, 그래서 대단히 끔찍한것이었다. - P23
이반일리치는 시쳇말로 〈le phénix de la famille(집안의 자랑거리)>였다. 그는 형처럼 지나치게 냉정하지도 계산적이지도 않았고 동생처럼 방만하지도 않았다. 이반 일리치는형과 동생의 중간쯤 되는, 똑똑하고, 활달하고, 유쾌하고, 예의 바른 인간이었다. - P24
그는 법률 학교 재학 시절에 본인이 생각해도 추악한 행동, 스스로를 혐오할 수밖에 없는 그런 행동을 저지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후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도 그런 행동을 저지르며,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자 생각을 바꿨다. 바람직한 행동이라 할 수는없겠지만 그냥 다 잊어버리고 더 이상 괴로운 기억을 되살리지 않기로 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맥락이 이어진다. 역시 톨스토이!) - P25
〈il faut que jeunesse se passe(젊음과 방탕은 통하는 법)〉라는 프랑스어 격언 - P27
공무를수행하며 느끼는 기쁨은 자존심이 충족되는 데서 오는 기쁨이었고 사교 활동을 하며 느끼는 기쁨은 허영심이 충족되는 데서 오는 기쁨이었다. - P48
갑자기 문제가 전혀 다른 각도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맹장? 신장?" 그는 혼잣말을 했다. "이건 맹장 문제도 아니고 신장 문제도 아니야. 이건 삶, 그리고…… 죽 죽음의 문제야. 그래, 삶이 바로 여기에 있었는데 자꾸만 도망가고 있어. 나는 그걸 붙잡아 둘 수가 없어. 그래, 뭣 하러나를 속여? 나만 빼고 모두들 내가 죽어 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 남은 시간이 몇 주냐, 며칠이냐, 그것만이 문제야.어쩌면 지금 당장일 수도 있어. - P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