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목로주점>은 신문에 연재되자마자 전례가 없는 거친 공격과 맹렬한 비난의 대상이 되었으며, 심지어 온갖 오명을 뒤집어쓰기에 이르렀다.  - P7

내가 그리고자 했던 것은 악취를 풍기는 우리 변두리에서살아가는 한 노동자 가족이 돌이킬 수 없이 전락해가는 과정이다. 알코올중독과 나태함은 가족의 해체와 온갖 추잡함, 바르고 정직한 감정들의 점진적 상실을 야기하며, 종국에는 수치와 죽음을 안겨주고만다. 이것이 바로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작금의 도덕론이다. - P8

아! 세간에 나도는 나에 관한 황당한 소문들이 내 동료들을 얼마나 즐겁게 해주었는지! 피를 좋아하는 야만적이고 난폭한 소설가가 사실은, 광범위하고 생생한 작품을 후세에 남길 수 있기만을 꿈꾸면서 서재에 얌전하게 틀어박혀 연구와 창작에 몰두하는 부끄럼 없는 삶을 살아가는평범한 시민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해 보일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나 자신에 관한 어떤 소문도 반박할 마음이 없다. 다만 시간의 힘과 대중의 양식을 믿으며 부단히 작업해나갈 뿐이다. 차곡차곡 쌓인근거 없는 헛소문의 무게를 떨쳐내고 마침내 나 자신을 당당히 드러낼 수 있을 때까지.

1877년 1월 1일, 파리에서
에밀 졸라 - P9

어느덧 그녀들 주위로 세탁장의 열기가 찾아들었다. 열한시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아낙네들의 절반 정도는 뚜껑을 딴 1리터짜리 포도주병을 발밑에 내려놓고 한쪽 다리를 물통 가장가리에 올려놓은 채 소시지를 넣은 빵으로 허기를 달랬다.  - P37

주석: 1850년 5월 31일 의회는 투표를 하려면 최소 3년간 한 선거구에 거주해야 한다는 선거법을 통과시켰다. 이 선거법은 일자리를 찾아 거처를 수시로 옮기는 수많은 노동자의 투표권을 앗아갔다
- P143

제르베즈는 마치 시골 마을에 온 듯한 느낌을 주는 그 집에 매혹되고 말았다. 붙어 있는 이웃도 없고 숙덕공론이나 구설수에 오를까봐 걱정할 일도 없는, 플라상의 성벽 뒤쪽의 조그만 시골길을 떠올리게 하는 평온함이 깃든 곳이었다. 또한운이 얼마나 좋은지 세탁소 작업대에서 다림질을 하면서 목을 조금만길게 빼면 자신의 집 창문을 볼 수도 있었다.
- P159

이제 민중은 부르주아의 이해(利害)를 위해 놀아나는 노리갯감 역할에는 진절머리가 나 있었다. 2월과 6월, 두 차례의 혁명"에서 뼈저린 교훈을 얻은때문이었다. 푸아소니에 가의 꼭대기에 이르자 구제는 고개를 돌려파리를 굽어보았다. 어쨌거나 지금 저 아래서 일어나는 일들은 옳지못한 것이었다. 민중은 언젠가는 팔짱을 낀 채 구경만 했던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쿠포는 그런 일에 목숨을 바친다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 P177

이번에는 필도르의 차례였다. 그는 시작하기 전에 제르베즈를 향해애정으로 가득한 자신감 넘치는 눈빛을 보냈다. 그는 결코 서두르지않았다. 모루와 거리를 둔 채 망치를 높은 곳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내리쳤다. 그의 몸짓은 정확했고 균형이 잡혀 있었으며 유연한 고전미를 느끼게 했다. 그의 두 손 안에서 피핀은 치마가 뒤집히도록 다리를높이 차 올리며 펄쩍펄쩍 뛰는 싸구려 댄스홀에서의 춤 따위는 추지않았다. 피편은 우아한 숙녀처럼 진중한 표정으로 정통 미뉴에트를추듯 박자를 맞춰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기를 반복했다. 피핀의 뒤축은 장중하게 박자를 맞추어 움직였다. 필도르는 벌겋게 달구어진볼트의 머리 한가운데를 세심히 연구한 예술적 기교로 내려친 다음,
박자를 맞춘 정확한 타격을 반복해 가하면서 모양을 만들어나갔다.
물론 필도르의 혈관 속에 흐르는 것은 브랜디가 아닌 피였다.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 - P271

인간의 육체가 쇠로 된 기계와 싸워 이길 수없음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고자 애쓸 때조차 그의 우울함은 커져만갔다. 물론 언젠가는 기계가 노동자들을 모두 죽이고 말 터였다. 그때문에 이미 그들의 하루 일당은 12프랑에서 9 프랑으로 떨어진 상황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었다. 어쨌거나 소시지를 만들듯 리벳과 볼트를 찍어내는 이 커다란 짐승들은 전혀 유쾌하지가 않았다. 구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삼 분 정도 기계를 응시했다. 그러면서 그가 눈살을 찌푸리자, 아름다운 황금빛 턱수염이위협적으로 곤두섰다. 그러다가 온화함과 체념의 기운이 그의 표정을검차 누그러뜨렸다.  - P277

제르베즈의 심장은 망치 소리의 리듬에 맞춰 경쾌하게 뛰었다. 안으로 들어설 무렵에는 연인을 만나러 가는 여인처럼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채아름다운 금발이 목덜미 위로 날아올랐다. 팔과 가슴을 모두 드러낸구제는 모루 위를 더 세게 두드리면서 그녀를 기다렸다. 제르베즈가들르는 날에는 더 멀리까지 망치 소리가 들리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올 것을 미리 짐작하고 있던 그는 황금빛 수염 아래로 말없이 활짝 웃어 보이면서 그녀를 맞이했다. - P305

그들의 사랑은 봄이 다 지날 때까지 대장간을 폭풍우 같은 요란함으로 흔들어놓았다. 그것은 시커먼 검댕이 묻은 골조가 삐걱거리는 작업장의 들썩거림과 벌겋게 타오르는 불꽃 가운데, 거인의 노고 속에서 꽃핀 순수한 사랑이었다.  - P306

쪽쪽 소리를 내며 거위 꽁무니를 마저 해치우던 클레망스는 음탕한 말을 속살거리는 보슈 때문에 의자에 앉은채 자지러지게 웃어젖혔다. 아! 맙소사! 언제 또 이렇게 푸지게 먹을수 있을까! 이럴 때 한번 거방지게 먹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어쩌다한 번씩 이런 기회가 왔을 때 목구멍까지 차오르도록 배를 가득 채우지 못한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 P344

여기 또 포도주 한 병이 장렬하게 전사했군! 병들의 묘지가 돼버린 가게 한구석에는 수명을 다한 포도주병과,
식탁에서 밀려 나간 음식 찌꺼기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뛰투아 부인이 물을 마시고 싶어 하자 쿠포는 분개하면서 직접 물병을 모두 치워버렸다. 품위 있는 사람들이 물을 마시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 P345

노아는 분명 함석공과 재단사, 그리고 대장장이를 위해 포도나무를 심었을 것이다. 포도주는 몸을 깨끗이 정화해주고, 노동의 노고를 달래주며, 아무런 의욕이 없는 이들에게 자극제가 되어주기도 한다.  - P346

아, 이 경을 칠 돼지 같은 놈!
아, 이 경을 칠 돼지 같은 놈!

이제 구트도르 가 전체가 합류해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 <이 경을칠 돼지 같은 놈>을 합창했다. 노래를 아는 시계 수리공과 식료품점의 청년들, 내장 가게 여주인 그리고 과일 가게 여주인은 목청 높여후렴을 불러젖히면서 장난삼아 서로 따귀를 때리기도 했다. 거리 전체가 술에 취한 듯 보였다. 쿠포네 가게에서 풍겨 나오는 잔치 음식의냄새만으로도 지나가던 사람들을 비틀거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 P369

쿠포 가족이 잔치의 후유증을 떨쳐내려는 듯 밤새도록 죽은 듯이 잠자는 사이, 열린 창문으로 몰래 들어온 이웃집 고양이가 예리한 이빨로 조심스럽게 거위의 뼈를 갉아 먹으며 결정적으로 거위를 끝장내고있었다.
- P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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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09-13 18: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이네요.
책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시리즈 같아서 서가에 모아두면 예쁘더라구요.
번역도 좋겠지요.
미미님, 좋은 하루 되세요.^^

청아 2021-09-13 18:40   좋아요 3 | URL
맞아요! 번역도 좋고 디자인도 예뻐서 최근에 문학동네 전집이 책장 자리를 점점 차지하고 있어요. 서니데이님도 좋은 하루 되세요😉

scott 2021-09-13 20: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이책 문동 세문집의 빛나는 희귀본 양장?(๑→ܫ←)

청아 2021-09-13 21:03   좋아요 2 | URL
2권은 아마 양장이 있을거예요! 그래서 저는 그냥 둘다 무선으로 구매했어요ㅎㅎ🤭

새파랑 2021-09-14 1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에밀 졸라와 에밀 아자르 책 두권을 동시에 읽는군요 역시👍

청아 2021-09-14 11:35   좋아요 2 | URL
앗! 그렇네요!! 생각도 못했어요ㅋㅋㅋㅋ😆

2021-09-14 1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9-14 1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