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대로 지옥을 짓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시인과 이야기꾼이다. 호메로스가 《오디세이아》에서 저승 여행 장면을 묘사한 뒤로, 신곡》을 쓴 단테도 《가르강튀아》를 쓴 라블레도, 숱한 이야기꾼들이 자기 마음대로 지옥을 만들고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을 지옥에 마구 집어넣었다
종교 지도자와 진지한 철학자가 보기에 못마땅했을 것이다.그래서 여러 종교와 도그마적인 철학에서 시인과 작가는 대접이 좋지 않다. 가톨릭의 교황청은 한때 ‘부도덕한 작품을 쓰는 작가‘들과 갈등을 빚었고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도 시인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철학자 플라톤은 시인 추방론을 논했다. - P41
"(세상의 끝을) 경험하고 싶은 욕망을 거부하지 마라. 그대들의 타고난 천성을 생각해보라. (우리는) 짐승처럼 살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덕성과 지식을 따르기 위함이었으니."
단테의 신곡<지옥편>제26곡에서 오디세우스의 말 - P55
희망이야말로 잔인하다는 관점에서 보면, 판도라의신화도 달리 보인다. 남자 사람들에게 화가 난 신들이 판도라에게 온갖 선물을 들려 인간 세상에 보냈다. 선물 가운데 "절대로 열지 말라"는 상자가 있었다. 아니, 그리스 원전을 보면상자가 아니라 항아리였다. 르네상스 시대의 지식인 에라스무스가 실수로 항아리를 상자라고 썼는데, 그의 글이 너무 유명해져서 그렇게 굳어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항아리는 상자든 열지 말라고 하면 어떻게 해서든 열고 싶은 법이다. 판도라는 뚜껑을 열었다. 그곳에서 인간 세상의 온갖 불행이 쏟아져 나왔다. 재앙과 노고와 병과 근심이 세상에 퍼져나갔다. 헤시오도스의 서사시 《일과 날》에 따르면 이렇다. "오직 희망만이 거기 남고 (…) 밖으로 날아가지 않았는데, 그러기 전에판도라가 뚜껑을 도로 닫아버렸기 때문이다. 제우스 신의 뜻이 그러했다." - P59
그렇다면 궁금하다. 의롭게 살았지만 그리스도교를믿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되나? 예수가 태어나기 전에 살았던 사람들은? 그리스도교가 존재하기 전에 살았는데 그리스도교를 믿지 않았다고 지옥에 가야 하다니 가혹하지 않나? 그럴싸한 질문이다. 소크라테스 역시 예수가 태어나기 몇백년 전에 살던 인물이다. 그리스도교를 믿던 옛날 사람들에 따르면, 이런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곳이 있다고 했다.
‘림보‘라는 구역이다. 지옥은 지옥이지만 착하고 위대한 사람들이 따로 모인 장소다(3장에서 자세히 다룬다). 소크라테스도 이곳에 있다고 했다. 《신곡》에 나오는 림보 장면은 근사하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들이 림보에 모여 산다.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도 이곳에 있다. 서양 고대와 중세의 명예의 전당‘이라 해도 빠지지 않는다. - P72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에서 존경받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를 스승으로 모셨고, 그리스 사람들이 좋아하던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를 암송했으며, 거지꼴을한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무례하게 굴어도 유쾌하게 받아넘겼다. 디오게네스는 위대한 철학자였지만 노숙을 했다. 큰 나무통에 들어가 살았다. 알렉산드로스는 디오게네스를 찾아가 물었다. "내가 임금인데 필요한 것이 뭐 없습니까?"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쿨하게 대답했다. "댁이 햇볕을 가리고 있으니 옆으로 비켜주시오." - P75
그런데 눈길을 끄는 우연이 있다. 《신곡》 〈지옥 편〉제32곡에는 한 얼음 구덩이에 갇혀 치고받는 형제가 나온다. 형제의 이름은 이탈리아식으로 ‘알레산드로와 나폴레오네다. 그리스식으로 알렉산드로스이고 프랑스식으로 나폴레옹이다. 둘 다 야심이 크고 밥 먹듯 전쟁을 일으키던 정복자였다.
물론 《신곡》에 나오는 알레산드로와 나폴레오네는 두 정복자와는 다른 사람이다. 단테가 프랑스의 장군 나폴레옹을알 리는 없다. 나폴레옹이 프랑스 황제가 된 것은 단테가 신곡을 쓰고 500년이나 지나서다. 주석을 보면 알레산드로와나폴레오네는 형제였다.
아버지의 유산을 놓고 정치적 파벌을 갈라 다투었고, 서로 죽게 했다. 단테는 이 두 사람을 형제를 죽인 죄로 얼음지옥에 가두었다. 동명이인이라고는 해도어쩐지 신기한 우연이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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