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를 알려면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야 해요. 작은 도시들을 찾아가세요. 구비오, 피엔차, 코르토나, 산지미냐노,
몬테리아노 같은 곳들요. 그리고 부디 이탈리아가 골동품과 미술품의 박물관이라는 한심한 관광객들의 생각은 버리세요. 이탈리아 사람들을 사랑하고 이해하세요. 그곳은 땅보다 사람들이 더 훌륭하니까요] - P8

생고타르 터널을 나오는 순간 눈앞에 불쑥 튀어나와 앞날을 예견시키는 아이롤로 종탑, 기차가 체네리 산 기슭을 올라갈 때 보이는 티치노 강과 마조레 호수의전망, 그런 뒤에는 루가노의 전망과 코모의 전망 ㅡ그때쯤이면 이미 사방으로 밀려드는 이탈리아 ㅡ어둡고 더러운길을 달리고 달려서 첫 기착지에 이르면, 전차의 소음과 아크등의 섬광 속에서 마침내 밀라노 대성당의 벽들을 보게 될것이다.
- P9

겨울 동안 그녀는 편지를 자주 보냈고, 게다가 친정어머니보다 헤리턴 부인이 더 자주 편지를 받았다. 그녀의 편지에는언제나 즐거움이 넘쳤다. 피렌체는 더없이 사랑스럽고, 나폴리는 꿈결 같지만 냄새가 안 좋다고 했다. 

로마에서는 그저가만히 앉아서 느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지만 필립은 그녀가 나아지고 있다고 단언했다. 특히 이른 봄에 그녀가 자신이추천한 소도시들을 다니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오자 그는 아주 기뻐했다. 이런 곳에서는, 그녀는 편지에 썼다. 정말로사물의 핵심에 다가가고 또 뻔한 길에서 벗어나는 것 같아요.

아침마다 고딕 양식 창문 밖을 내다보면, 중세가 사라졌다는게 믿어지지 않는답니다. 편지는 몬테리아노‘에서 왔고, 그멋진 소도시에 대한 나름대로 훌륭한 묘사로 맺어져 있었다.

*몬테리아노ㅡ이탈리아의 도시,산지미냐노를 모델로 한 가상도시 - P15

아무것도 모르는 여행객이 몬테리아노 역에 내리면, 시골한복판에 들어섰다는 사실에 당황하게 된다. 철로 주변에 집이 몇 채 있고, 평원과 언덕 기슭에는 더 많은 집들이 있지만,
도시라고 할 만한 기미는 중세 소도시건 무엇이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걸 찾으려면 (레뇨) 나무 토막 라는 적절한 이름이 붙은 마차를 타고 잘 닦인 도로를 8마일 가량 달려서 중세로 들어가야 한다. 베데커 책에 적힌 것처럼 빨리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불경한 일이기도 하다.

필립이 상식의 왕국을 떠난 것은 오후 세시였다. 여행에지친 그는 기차에 올라탄 뒤로는 내리 잠만 잤다. 하지만 동승한 승객들이 이탈리아인들다운 예지력을 발휘해서, 몬테리아노에 이르자 그를 깨워 내려 보냈다. 

그가 두 발을 승강장의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얹고, 떠나는 기차를 꿈속처럼아득하게 바라보는데, 그의 가방을 챙겨 온 듯한 짐꾼이 경비원과 술래잡기를 하며 선로를 따라 뛰어갔다. 슬프지만 그는 지금 이탈리아를 즐길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 P26

레뇨요금을 흥정하는 일 같은 건 전혀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마부는6리라를 불렀다. 필립은 8마일 거리라면 4리라를 넘을 리가없다는 걸 알았지만, 그냥 달라는 대로 주어서 마부를 기분나쁘게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 결례를 행하려는 순간 어디선가 요란스러운 외침이 들렸다. - P27

「그리고 미남인가요?」 그가 한층 냉소적인 말투로 물었다.
그녀는 망설이지 않았다. 「, 미남이에요. 이목구비가 모두 반듯해요. 체격도 좋고요. ㅡ영국 사람들이 보면 키가 좀작다고 하겠지만요.」
신체적 장점이라고는 키가 큰 것 하나뿐인 필립은 그녀가키를 별것 아닌 것처럼 말하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애벗 양도 그 남자가 마음에 드시나 보군요.」이번에도 그녀는 망설이지 않았다. 「지금껏 본 바로는 그래요.」그 순간 마차가 언덕배기 경작지들 사이의 작은 암갈색 숲에 들어섰다. 숲의 나무들은 키도 작고 아직 움도 트지 않았지만, 그 줄기들이 제비꽃 사태 위로 솟아오른 모습은 여름바다에 울끈불끈 서 있는 바위들처럼 인상적이었다. 영국에도 제비꽃이 있지만 그렇게 많지는 않다. 그리고 미술 작품에 등장하지도 않는다. 화가들에게 그만 한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 P30

길이 나무들 사이로 구불구불 오르는 동안, 몬테리아노가그들의 머리 위에서 왼쪽, 오른쪽, 다시 왼쪽으로 흔들렸고,
저무는 태양 속에 탑들이 천천히 빛나기 시작했다

몬테리아노가 가까워지자 성벽 위로 사람들의 머리가 검게 모여들었고 필립은 그걸 보고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짐작했다. 

외국인이 온다는 소식이 퍼질 것이고, 편안히 쉬고 있던거지들은 불구자의 행색을 갖출 것이고, 설화석고 기념품 판매상은 물건을 가지러 달려갈 것이고, 공식 안내원은 뾰족모자와 추천장 두 장... - P35

스파게티와 독한 포도주로 기운을 차린 시뇨르 카렐라가이야기를 시도했다. 그는 필립에게 공손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영국은 훌륭한 나라예요. 이탈리아 사람들은 영국도 영국인들도 사랑합니다.」국제 친교에 아무런 뜻이 없는 필립은 고개만 까딱해 보였다.
- P38

「이탈리아도, 상대가 약간 분개해서 말을 이었다. 훌륭한 나라입니다. 유명한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 예를 들자 .
면 가리발디, 단테가 있죠. 단테는 『지옥과 『연옥, 그리고『천국』을 썼는데, 그중 『지옥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리고견실한 교육을 받은 자의 차분한 말투로 『지옥의 첫 구절을읊었다.

Nel mezzo del cammin di nostra vita
Mi ritrovai per una selva oscura,
Che la diritta via era smarrita.
(우리가 걸어가는 인생길 한가운데
돌아보니 나는 어두운 숲에 있었네,
벗어날 길은 캄캄히 보이지 않았네.) - P38

지노의 숙부님은 사제세요 – 영국의 성직자와 같은 거죠.」필립은 이탈리아 사제직의 사회적 지위는 잘 알았다. 그래서 그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는데, 릴리아가 그 말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사촌 한 명은 로마에서 변호사로 일해요.」「어떤 종류의 변호사>를 말하는 거죠?」「필립하고 똑같은 변호사죠 - 다른 점이라면 그 사촌은일이 많아서 다른 데 돌아다닐 시간이 없다는 것뿐이에요.」이 말이 필립에게 입힌 상처를 필립은 드러낼 수 없었다.
- P41

「나도 알아. 하지만 아내가 늘 내 친구들을 보고 싶다고 그런단 말이야. 지금 당장 가자! 웨이터, 여기!」「내가 너희 집에 가서」
스피리디 오네가 소리쳤다. 「차를마신다면, 여기서는 내가 계산할게.」「그럴 수는 없지. 여기는 내 영역인데!」가벼운 실랑이가 오래도록 이어졌고 웨이터가 끼어들어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최종 승리는 지노에게 돌아갔다.
음료 값은 8.5펜스였지만 웨이터에게 반 펜스를 주어서 9펜스가 되었다. 한쪽에서는 감사 인사가 또 한쪽에서는 항변이퍼부어졌고, 서로에 대한 호의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둘은 팔짱을 끼고 거리를 우쭐우쭐 걸어가면서 레모네이드 빨대로 서로를 간질였다. - P64

남편과 많은 부분이 닮은 릴리아 또한 근심을 덜고 싶었고위로받고 싶었다. 그가 그녀에게 웃음을 터뜨린 그날, 그녀는 허겁지겁 종이와 펜을 가져다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지금껏 어떤 악행을 저질렀는지, 그녀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이런 불행은 무엇 때문에 발생하고 증폭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기나긴 글을 썼다. 

그녀는 분노로 이성이 거의 마비되었고 생각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그녀의 글은 숙련된 문장가도 부러워할 만한 장려함과 비애감이 넘쳤다. 글은일기 같은 형식으로 쓰였고, 마지막 대목에 이르러서야 그녀는 그 글을 읽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를 깨달았다.

<어마, 사랑하는 딸 어마, 너에게 이 편지를 보낸다. 그동안 나한테 딸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다시피 했구나. 이 편지를 읽으면 네가 슬퍼지겠지만, 너에게 모든 걸 알려 주고 싶다. 일찍 깨달아서 나쁜 건 없으니까. 사랑하는 딸아, 하늘이너를 축복하고 지켜 주기를, 하늘이 네 가련한 어미도 축복해 주기를>

다행히 편지가 도착했을 때 헤리턴 부인이 집에 있었다.
그녀는 편지를 집어 들고 방 안에 들어가서 개봉했다. 자칫했으면 어마의 평온한 어린 시절이 망가질 뻔한 순간이었다.
- P77

어쨌거나 그에게는 미적 감각과 유머 감각이라는 극히 바람직한 두 가지 능력이 있었다.
먼저 발달한 쪽은 미적 감각이었다. 그로 인해 그는 스무 살때 화려한 색상의 타이를 매고 감촉이 보드라운 모자를 썼으며, 저녁놀을 바라보다가 저녁 식사에 늦었고, 번존스에서프락시텔레스에 이르는 미술가들의 작품을 감상했다. 

스물두 살 때는 사촌 몇 명과 함께 이탈리아에 갔고, 거기서 올리브나무, 푸른 하늘, 프레스코 벽화, 시골 여관, 성자와 성녀,
농부, 모자이크, 조각상, 거지들을 하나의 미학으로 흡수했다. 그는 소스턴을 개조하거나 거부할 결심을 품은 예언자의풍모로 돌아왔다. 친구가 드문 그의 인생의 모든 에너지와열정이 미의 옹호에 바쳐졌다.
- P81

약간의 실망과 약간의 피로함, 그리고 훼손되지 않은 미적기준 속에서 그는 이전 같은 평온한 생활을 재개했으며, 그후로는 그의 두 번째 능력인 유머 감각이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세계를 개혁할 수 없어도 어쨌건 세계를 비웃을 수는있었고, 그런 방법으로 적어도 지적 우월성 정도는 확보할 수있었다. 그는 웃음이 건강한 도덕성의 표지라는 글을 읽고 그말을 믿었다.  - P81

우리가 가진 허영은 자신을 변화 불가능한 사람으로 여기기때문에, 우리가 변화했다는 걸 ㅡ그게 좋은 방향의 변화라할지라도 ㅡ쉽게 인정하지 못한다.
- P131

「저거 혹시 오페라 광고문 아니에요?」 애벗 양이 말했다.
필립은 코안경을 걸쳤다.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거장도니체티 작품, 독특한 공연, 오늘 저녁..」

「오페라 공연이 있다는 말이에요? 여기에서요?「그럼요. 여기 사람들은 인생을 사는 법을 아니까요.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형편없는 게 낫다고 생각하죠. 바로 그래서 여기 그렇게 훌륭한 게 많은 겁니다. 

오늘밤의 공연이아무리 형편없어도 그건 살아 있을 거예요. 이탈리아 사람들은 음악을 조용히 사랑하는 법을 몰라요. 비루한 독일인들이나 그렇게 하죠. 
여기서는 관객들도 같이 공연에 참여해요.
때로는 참여하는 이상이 되기도 하고요.」 - P131

그는 노래를 멈추고 소리쳤다. 페르페타는 어디 있지?」그리고 등을 돌린 채 시가에 불을 붙였다. 애벗 양에게 한말은 아니었다. 그가 애벗 양이 있다는 것도 알 리 없었다. 계단 꼭대기와 두 개의 열린 문을 통해 바라다보이는 그의 모습은 아득하고도 의미심장해 보였다. 무대 위의 배우처럼 친밀하면서 동시에 다가갈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가 햄릿이라도 된 것처럼, 그녀는 그를 부를 수가 없었다.
- P147

그러자 그가 뛰어와서 무슨 일로 그녀가 놀랐는지, 어떻게들어왔는지, 왜 지금껏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는지를 물었다. 그는 그녀를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포도주를 가져다주었지만 그녀는 사양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에요?」 그가 되물었다. 왜 놀란 거죠?」그도 놀랐고 검게 그은 피부 위로 땀이 배어 나왔다. 다른사람이 자기를 보고 있었다는 건 가벼운 일이 아니다. 혼자있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기이한 은밀함을 내뿜기 때문이다.
- P148

그렇게 두 젊은이는 서로에 대한 진정한 애정을 품고 헤어졌다. 때로 언어의 장벽은 축복의 장벽이 되어서 좋은 것들만 소통시키기 때문이다. 또는 ㅡ덜 냉소적으로 말해 보자면ㅡ우리의 옹졸함이나 악덕으로 물들지 않은 새로운 언어와 함께 있을 때 우리는 좀 더 나은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 P177

어쨌거나 필립은 이탈리아어를 말하는 삶이 좀 더 우아했다.
이탈리아어의 문장들은 우리에게서 행복과 친절을 이끌어낸다. 해리엇의 영어는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것은 한 단어 한 단어가 석탄 덩어리처럼 단단하고 분명하고 투박했다.
- P177

남자는 기이한 한숨을 쉬면서 웅얼거릴 뿐이었다「다그치지 마세요.」 마부가 마부석에서 돌아보며 말했다「불쌍한 백치예요.」 호텔 여주인도 나와서 같은 말을 했다「불쌍한 백치. 말을 못해요. 이 동네 편지 전달은 저 사람이도맡아 하죠..
필립은 그때서야 그 남자가 아주 볼품없는 몰골이라는 걸알아차렸다. 머리도 벗어지고 눈가는 젖어 있었으며 때 묻은코가 씰룩거렸다. 다른 나라에서라면 그는 이렇게 돌아다니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사회 조직의 일원으로, 지연의 계획의 일부로 살고 있었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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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5-04 09: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정보 들어가니 품절이네요ㅜㅜ 제목은 완전 끌리네요 ㅎㅎ

청아 2021-05-04 09:43   좋아요 2 | URL
오 중고책 있길래 냉큼 샀어요! 초반인데도 여기저기 작가의 위트가 넘쳐요.성급한 판단일수도 있지만 강추예요!ㅋㅋㅋㅋ 츠바이크 풍의 유쾌발랄함이 있어요.😆

고양이라디오 2021-05-04 10: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첫번째 글 너무 멋진데요?

오늘은 봄비가 내리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청아 2021-05-04 10:11   좋아요 2 | URL
이탈리아에 막 가보고 싶은 글인듯 해요!ㅋㅋㅋㅋ라디오님도 흐리지만 유쾌한 하루 되세요!😁

얄라알라 2021-05-04 12:08   좋아요 3 | URL
첫번째 인용에 저도 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