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두력 - 지식에 의존하지 않는 문제해결 능력
호소야 이사오 지음, 홍성민 옮김 / 이레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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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은 내 생활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nie와 독서지도를 하고 있는 나는 신문에서 다루는 수많은 영역에 대한 지식을 두루 갖출 수 없기에 많은 부분의 정보를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된다. 인터넷을 이렇게 가까이 하면서도 가끔 ‘불안감’이 생기곤 하는데, 그 이유는 인터넷의 단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없을 때엔 궁금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 나름대로 궁리를 해보고 책을 찾고 알 만한 사람에게 물어보며 문제해결을 위해 다양한 경로로 접근했다. 그 과정과 결과로 알게 된 지식은 쉽게 잊히지 않고,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비슷한 과정을 거치며 문제해결 능력과 지식을 함께 채울 수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의 등장으로 너무도 쉽게 정보를 접하다 보니, 먼저 ‘내 생각’이라는 게 점점 사라져간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서로 다른 주장을 접하다보면 내 생각이 빠진 얕은 생각에서 바른 주장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적절하게 잘 활용하면 좋은 도구로 사용되어질 수 있으나 무분별하게 사용하면 텔레비전과 같이 ‘바보상자’와 다를 바 없는 게 인터넷이다.

  위와 같은 일이 비단 내게만 일어나는 일일까? 호소야 이사오의 「지두력」-지식에 의존하지 않는 문제해결 능력- 에서는 현대인들의 사고정지 위기를 꼬집으며, 앞으로 세상은 ‘생각하는 힘’을 갖춘 사람과 사고능력을 컴퓨터에 빼앗긴 사람으로 나뉘어 ‘지두격차’가 심화된 사회가 될 것을 예고한다. 과거의 학교와 기업에서는 지식과 기억력에 편중한 자질로 인재를 등용했다. 현대에는 좀 더 발달해서 ‘대인 감성력’을 높이 사는데, 이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분야지만 사람을 움직이기 위해서 꼭 필요한 능력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하여 앞으로는 ‘지두력’을 갖춘 인재를 채용하려 노력하는데, 잠재적 능력이 높아 업무지식을 빠르게 습득할 뿐만 아니라 높은 수행능력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지두력’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저자는 지두력을 위한 강력한 도구로 ‘페르미 추정’을 소개한다. ‘페르미 추정’은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원자력의 아버지 엔리코 페르미가 교편을 잡았던 시카고 대학에서 강의시간마다 학생들에게 과제로 내 주었던 것에 대해 붙여진 이름이다. 예를 들어 ‘도쿄에 있는 신호등은 전부 몇 개일까’, ‘세계에서 하루 동안 소비되는 피자는 몇 판일까?’등과 같이 단번에 파악하기 어렵고 황당하기까지 한 수량에 대해 추정논법을 사용해 단시간에 개수를 산출해 내는 방법이다. 최종적인 결과의 정확성보다는 해답을 이끌어낸 ‘과정’을 시험하는 것으로 문제를 풀 수 있는 생각하는 힘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페르미 추정은 친근하며 정답이 없고 간결하면서도 문제해결 능력을 알아볼 수 있기에 면접시험에 활용된다.

  책에서는 지적 호기심과 논리적 사고력, 직관력을 토대로 지두력의 기본이 되는 가설 사고력, 프레임 워크 사고력, 추상화 사고력의 구체적인 응용 예를 소개하면서 위와 같은 사고력을 습득하는 방법과 도움이 되는 것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다. 실제적인 대화의 예를 들거나 도표, 그림을 곁들여 각각의 사고력에 대한 핵심에 접근(생각의 가지를 치거나 최종적으로 합쳐지는)하는 방법을 제시해 준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8장 지두력의 토대 부분을 특별히 더 관심 있게 보았는데, “어린이는 예외 없이 이 두 가지 호기심으로 똘똘 뭉쳐 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수도 없이 ‘왜? 왜?’를 외치는 Why형 호기심이 강하다. 그런데 학교에서의 지식주입 위주의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하는 동안에 상식이라는 형태로 순수하게 의심하는 마음을 잃어간다.”에 깊이 공감하는 바이다. 아이가 다섯 살 때, 차를 타고 가면서 “엄마, 왜 사람이 지나가는 길의 신호등의 모양은 네모인데, 차들이 지나가는 길의 신호등은 동그라미예요?” 하고 물은 일이 있다. 여태 살아오면서 그런 류의 호기심을 가져보지 않았기에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책을 읽고 나니, 나 역시 아이에게 호기심에 날개를 달아주는 엄마가 아니라 현상을 유지하기에 급급했던 엄마였음을 깨달았다. 아이의 숱한 질문에 대답이 곤란할때마다 ‘우리 같이 생각해볼까?’하면서 생각의 힘을 키우지 못하고 무조건 ‘인터넷 검색 한 번 해볼까?’ 했던 내 자신이 한 없이 부끄러워졌다. 이러한 깨달음 하나만으로도 「지두력」을 끝까지 읽어낸 보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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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 - 나의 야고보 길 여행
하페 케르켈링 지음, 박민숙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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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기는 직접 여행을 하고 글을 쓴 사람에게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읽는 사람에게도 의미가 있는 책이 될 수 있을까는 의문이었다. 때론 분명한 목적으로, 때론 목적 없음이 여행의 목적이 될 때도 있기에 목적한 여행을 기록한 책에서는 그 곳을 돌아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정보를 제공해주고 그렇지 않은 여행기에서는 마음의 여유를 줄 수 있는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를 읽고는 기존의 여행기에 대한 선입관이 일시에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독일 최고의 인기 코미디언인 하페 케르켈링이 쉼 없이 달려온 방송생활에 쉼표를 찍게 된 계기는 ‘건강’이었다. 정작 중요한 ‘나’를 돌보지 않고 무리하게 일정을 소화했던 그에게 찾아온 것은 청력약화와 담석으로 인한 수술. 이를 계기로 생각조차 못했던 ‘야고보길 순례’에 발을 내딛게 된다. 스스로를 ‘카우치 포테이토’라 부르는 저자가 42일간의 도보 여행을 통해 얻은 귀한 감동을 혼자 소유하지 않고 나누어준 이 책은 ‘인생’이란 여정의 동반자인 내게도 많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빡빡한 스케쥴과 방송인이 겪게 되는 갖은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그저 걷는다는 것 정도는 아주 쉬운 일인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지 장시간 걸어본 사람들은 ‘걷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 저자 역시 우연히(서점에서 ‘기쁨의 야고보길’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인생에서 ‘우연’이 차지하는 비중은 정말 크다.) 도보여행을 마음먹고 어설픈 준비로 시작한 도보여행이었기에 여차하면 발길을 돌릴 것 같은 ‘무늬만 순례자’였다. 그러나 걷는다는 것, 그것도 600km미터를 걷는 쉽지 않은 일을 끝까지 해낼 수 있었던 것은 길에서 마주친 사람과 거리, 자연 등에서 감동과 힘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내 삶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이 여기 이 길에서 다시 나타나고, 거기서 갈라져 나온 가지들이 지금 여기서 나와 함께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213쪽

  내가 직접 야고보 길 여행을 하진 않았지만 책을 읽는 동안 나 역시 길을 걷고 있으며, 그 길속에서 나의 지난날과 현재를 짚어보게 되었다. 내가 달려가는 곳, 쉬어줘야 하는 곳, 되돌아보아야 할 곳을 길은 알고 있는 듯하다.

  요즘 각광받고 있는 ‘걷기’의 수많은 좋은 점 중 하나가 ‘삶에 대한 감정과 견해가 좋아진다’이다. 40여 일간 걷기만 한다면 다리는 걷고, 눈은 보고, 귀로 들을 때, 머리는 그동안 할애하지 못했던 ‘진지한 생각’으로 가득하게 된다. 그리고 때론 무념조차도 깨달음으로 이끌 때가 있음을 우리는 안다.

  월간지 좋은생각 8월호에 특집으로 실린 ‘첫 이야기’에 40에 실직을 한 아들이 치매에 걸린 칠순의 아버지와 200km를 도보로 여행한 이야기가 실렸다. 연로하신 아버지의 걸음과 맞지 않는 지도로 숱하게 고생을 하면서도 여행을 마치고 난 후 아버지에겐 좋은 추억이, 아들에겐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실어주었다. 인생에 어려움이 닥쳤을 때, 한 박자 쉬어가고플 때, 인생의 반전을 꿈꿀 때 걸어라. 길이 주는 지혜에 마음을 열어보자.

책 속에서..

마음을 열고, 그 날에 입 맞춰라!
나는 나의 그늘과 만나야 한다.
걸작은 예기치 않았던 장소에서 예기치 않았던 시각에 보게 된다. 
마음은 항상 옳다.

나는 꼭 필요한 것을 말한다. 그리고 더 이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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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격차가 아이의 미래를 결정한다 - 경쟁사회에서 살아남는 현명한 부모의 대처법
미우라 아츠시 지음, 이혁재 옮김 / 더난출판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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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한지 1년 반이 흘렀다.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유치원 잘 다니는 것만 해도 무척 고마운 일인데,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는 이맘때(7월 말에서 8월 초경)면 금전적인 부담 때문에 좀 고민스럽다. 한 달 유치원비 21만원, 특강비 7만원, 2학기 재료비와 식대(특강재료비 포함) 48만원, 모두 합해 76만을 유치원으로 입금해야 하니 특별한 과외수입이 없는 월급쟁이 형편에 여간 무리가 가는게 아니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도 형편이 이러한데 둘이나 셋을 키우는 가정은 어떨까 정말 걱정된다. 정부에서는 출산을 장려한다며 세자녀 가정엔 세금혜택도 주고 교육비 절감과 같은 정책을 내놓기도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큰 보탬이 될런지는 의문이다.

‘하류사회’의 저자 미우라 아츠시의 신작 「부모의 격차가 아이의 미래를 결정한다」를 보면, 그것도 1장만 보게 되면 ‘경제력 없는 부모는 아이도 낳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의기소침해지게 만든다. 소득이 많은 부모일수록 교육에 투자할 수 있는 여유가 많기 때문에 상위의 성적을 올릴 수 있다는 설문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딱히 이러한 설문 결과가 없다 하더라도 너무나 상식적인 것이기 때문에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지만, 소득격차에 따라 아이들의 능력을 키울수도 사장시킬수도 있다는 결과는 정말 안타깝다. 이 책에서는 자녀의 성적을 결정짓는 요인이 단지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에만 있지않고 부모의 관심과 생활 습관, 열정등이 크게 작용한다는 것을 다양한 설문양식의 결과를 토대로 보여준다.

일례로 규칙적이고 올바른 식생활을 하는 학생이 성적도 좋게 나온다. 아침식사를 반드시 먹는다는 아이들의 성적이 각 과목에서 고르게 높은 성적을 받았고 편식(상14%, 하30%)과 과식(상7%, 하20%), 식사시간의 불규칙(상4%, 하11%), 간식을 자주 먹는 것(상 10%, 하26%)과 같은 질문에는 성적 ‘상’의 학생들과 ‘하’의 학생들의 격차가 2배에서 3배에 이른다.

책 읽는 어머니와 낮잠 자는 어머니, 똑 부러지는 일처리를 하는 어머니와 그렇지 못한 어머니,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 식품첨가물과 제조회사를 따지고, 요리를 잘 못하더라도 정성을 다해 식사를 준비하는 어머니와 그렇지 못한 어머니의 자녀들의 성적이 나타내는 수치를 보면 어머니가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지대한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세상의 아이들이 모두 성적이 좋게 나올 수 없다지만, 적정수준의 성적을 유지하는 것은 아이들의 자존감이나 대인관계에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부모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 신경을 써줘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아이들 역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해야 할 필요가 있다. 씁쓸한 것은 자녀에 대한 관심이나 대화와 같이 의지적으로 개선이 가능한 부분이 아닌 ‘생활의 질’이 자녀의 성적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부모와 함께 자주 여행다니며, 문화혜택을 골고루 받는 아이들과 시간과 금전적인 여유가 없는 부모를 가진 아이들의 격차는 불을 보듯 뻔하다. 저자는 이러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학생들간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국가차원의 정책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공립교육기관이 기본교육과 실용교육, 문화교육을 병행할 수 있는 예산 책정의 필요성과 NPO, 자원봉사단체, 지역주민이 중심이 된 방과후 문화체험과 직업체험 등을 적극 추진해 다양한 사회상을 골고루 접하는 방법을 제시해 준다.

자녀의 성적이 좋아도 성격적인 문제가 크면 부모의 만족도는 하락된다고 한다. 세상의 아이들이 모두 성적 위주로 돌아가는 것 같기 때문에 성적만 좋으면 다른 것들은 무시하고 넘어가도 될 것 같은데 왜일까? 아마도 노력과 배려, 이해, 정직, 성실등과 같은 보편적인 덕목이 빠진 상태에서 단지 성적만 좋은 아이는 부모가 보기에도 인간적인 매력이 없다. 인간이 지향하는 보편적인 덕목을 지닌 아이가 성적까지 좋다면 금상첨화일텐데...

초등학교 1학년 엄마들이 모였다 하면 숫자 1에서 10사이의 덧셈 뺄셈이 주가 되는 수학시험 점수와 마침표와 쉼표, 띄어쓰기가 잘못 되면 점수가 빠지는 받아쓰기 점수에 열을 올리며 누구누구는 100점이라더라, 누구누구는 40점 맞았더라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정작 중요한 건 그게 아닌데...’ 하는 생각에 마음이 답답하다. 내년이면 나도 학부형이 된다. 휩쓸려서 쓸데없이 아이를 피곤하게 하는 엄마가 아닌 행복한 아이가 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엄마가 되고 싶다. 그래서 엄마들의 모임 성격도 ‘성적’이 아닌 ‘행복’에 초점을 맞춘 모임을 가질 수 있도록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싶다. 그래서 ‘엄마들의 모임’ 수준이 ‘아이들의 수준’을 결정지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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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된 평화
존 놀스 지음, 박주영 옮김, 김복영 감수 / 현대문화센터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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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성장 소설은 그 시기만의 즐거움과 고민, 아픔, 공감들이 잘 그려져 있어서 지난날의 나를 되돌아보며 함께 울고 웃게 만든다. 세상의 중심이 ‘나’일 수밖에 없는 시기에 ‘나’를 지배하던 생각과 행했던 일들로 인해 미래의 그림이 바뀐다는 것을 알았다면 아마도 더 인내하고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노력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그 시기에만 누릴 수 있는 풋풋함과 당당함,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어서 성인이 되어 잊거나 잃어버리고 산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2차 세계대전을 몸소 겪으며 어려운 시대를 헤쳐 온 작가 존 놀스의 자전적 소설인 「분리된 평화」는 주인공 진이 어른이 되어 성장통을 앓았던 모교 ‘데번 스쿨’의 나무를 찾으면서 시작된다. 어릴 때에는 산처럼 크게 느껴졌던 부모님이 커서 보면 여느 부모님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 것처럼, 소년 시절 위압감을 느끼게 하던 나무도 주변의 다른 나무와 특별히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며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하지 않는 것이 없음을 실감한다.

  마음을 드러내는 것에 익숙지 않은 진과 달리 수려한 외모와 운동에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어떤 사람이라도 자신의 편에 서게 만드는 매력을 지닌 피니어스가 진을 특별한 친구로 인정하며 모든 일을 함께 하길 원할 때, 진은 자부심과 함께 묘한 질투심을 갖게 된다. 사소한 일로 마음이 옹졸해진 진이 문제의 나무 위에서 순간적인 충동에 의해 피니어스를 떨어지게 만들고 이 사고는 훗날 피니어스의 죽음으로 이어지게 만든다.


  첫 번째 사고 이후, 겉으로는 여전히 서로에게 있어 최고의 친구인 것처럼 대하지만, 진은 죄책감에, 피니어스는 일말의 의심에 괴로워하며 위태위태한 ‘평화’를 유지해 나간다. 그러나 전쟁의 그림자가 ‘데번 스쿨’까지 드리워지게 되고, 전투참여를 종용하는 동급생 브린커 일당의 심문 과정에서 피니어스가 또 다시 사고를 당해 죽게 되면서 내면의 전쟁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믿어,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가끔씩 화가 나면 나도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게 디니까. 널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그 말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진심으로 네가 그런 것도 아니고, 네가 늘 날 미워했던 것도 아니라는 거, 개인적으로 맺힌 게 있어서 그런 거 아니란 거 알아.” 


  피어어스가 죽을 수 있으리라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때, 진과 피니어스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오랜 시간 둘 사이에 머물러 있던 앙금을 털어내게 된다.


  나 역시 학창시절 ‘질투’라는 것을 해 봤다. 아니, 지금도 대상이 바뀔 뿐이지 질투는 계속되고 있다. 다만, 그 대상이 개인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다행인데, ‘동경의 마음’이 ‘질투’라는 못난 이름으로 대치되는 것은 정말 순식간의 일이다. 그리고 ‘질투’가 시작되면 이미 마음속에서는 ‘평화’가 사라지고 ‘불안’과 ‘미움’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이러한 마음은 어떻게든 행동으로 표출되고 그로 인해 야기된 문제는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낸다.

  누구나 ‘만약에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문제 이전의 시간으로 돌아가서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싶다’는 후회의 감정을 느끼고 살 수 밖에 없는 부족한 사람들이 모인 사회 속에서 상대의 진심을 알아볼 수 있는 맑은 눈을 키울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나와 주변이 ‘분리된 평화’를 누리는 게 아니라 함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공존의 평화’를 누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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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집으로 - 내가 영원히 살 더 나은 본향
랜디 알콘 지음, 김광석 옮김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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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꿈을 오래 기억한다고 하는데, 나는 꿈을 잘도 기억한다. 그 내용도 엉뚱하고 몇 날 며칠 연속적인 게 아주 아동틱(때로는 유아틱)하기도 하고 드라마틱하기도 하다. 아직도 길가다 동전을 주머니 가득 주워 흡족한 상태에서 잠이 깨기도 하고, 우주 전쟁으로 인해 피난을 가려고 집을 나서는데 비가 와, 얼마 전에 인근 도서관 바자회에서 샀던 일회용 우비를 찾아 입고 헤맨다. 겨우 피난처인 대형 우주선(아마도 서울특별시 정도 되는 크기)을 발견하지만 안타깝게 추격을 당해 이동통로가 막혀 소름 돋는 공포를 체험하기도 한다. 이쯤 되면 완전 블록버스터 영화 수준인데, 여기에 좋아하는 가수 서태지와 장동건, 양동근 등을 만날 때면 거의 무아지경에 이른다. 이런 황당한 꿈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어쩌다 한 번 평온한 꿈을 꾸는데, 봄 날 새순이 가득 돋아났을 때와 같은 환한 연두 빛의 너른 풀밭과 맑은 시내, 눈부시지만 뜨겁지 않은 햇살 속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풀밭을 구를 때면 꿈속에서조차 ‘이 곳이 천국이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앞서 장황하게 무한 상상력(?)의 극치를 보여주는 내 꿈 이야기를 적은 이유는 ‘천국’에 대한 세계적인 권위자 랜디 알콘의 「아버지의 집으로」를 읽으면서 나의 꿈을 다시 기억해보니, 교회를 다닌 지 꽤 오래 되었으면서도 꿈에서는 물론 현실에서도 ‘천국’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일이 없음을 깨달으며 깜짝 놀랐기 때문이다. 겨우 내 머릿속에 자리한 천국은 꿈에서 받은 느낌처럼 아무런 걱정 없고 어린이 찬송가의 ‘사막에 샘이 넘쳐흘러 낙원이 되며, 독사 굴에 어린이가 손을 넣고 장난쳐도 물지 않고, 사자들이 어린양과 뛰노는’정도였다. 스타들과의 감격적인 만남을 극적으로 상상하고 우주 전쟁을 세세하게 꿈꾸는데, 왜 천국을 구체적으로 그리지 못하는지 정말 의문이다. 천국은 죽으면 가게 되는 것이고, 내게 있어 ‘죽음’은 아주 먼 훗날의 일이라 생각했기에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여태 ‘천국’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고 꿈꾸게 도움 주는 대상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란 생각도 든다.

  내가 지식적으로 알고 있는 천국은 몇 번의 주일설교를 통해 들은 것이 전부였기에 오로지 ‘천국’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추어 쓴 책에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지 우려가 되었다(물론 그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저자가 앞서 출간한 ‘헤븐’이라는 책에서 발췌한 내용으로 50일 간 묵상할 수 있게 구성한 책을 읽다보면 막연하기만 했던 ‘천국’의 개념이 점점 또렷하게 다가온다. 천국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기 때문에 그 시작이 존재하며 과거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있기 전과 현재의 신자들이 죽어서 가는 곳, 또 미래에 있을 영원한 천국(새 땅)역시 천국이라고 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현재보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것처럼, 주님을 믿는 자들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한 것들을 신뢰하고 소망하며 영원히 주님과 함께 새 땅에서 사는 것을 사모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입으로 주님을 믿는다 시인하고 십일조와 주일성수 하는 것에 정성을 다하면서도 머릿속에서 당연한 일이 가슴에서 받아들이지 않거나 당장 내 앞에 산적한 일을 해결하느라 ‘영원’에 대한 약속인 ‘천국’을 너무 홀대하고 있다. 그리고 우주만물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복음’이 마치 인간들에게만 적용되는 특혜인 것처럼 여기며 거들먹거리고 방종하게 생활한다. 끝을 향해 갈수록 신앙인으로써 너무 안일하게 생활했던(이 정도로 신앙생활을 하면 당연히 천국에 갈 줄 믿고 있었던) 나를 돌아보게 되어 한없이 부끄러웠다.

  ‘천국’은 아직도 내게 막연한 곳이지만, 내가 자식의 장래나 우리 부부의 노후를 대비하는 것처럼 ‘천국에서의 삶’도 기대하며 준비하는 마음으로 다시 한 번 50일의 묵상록을 대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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