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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 - 나의 야고보 길 여행
하페 케르켈링 지음, 박민숙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여행기는 직접 여행을 하고 글을 쓴 사람에게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읽는 사람에게도 의미가 있는 책이 될 수 있을까는 의문이었다. 때론 분명한 목적으로, 때론 목적 없음이 여행의 목적이 될 때도 있기에 목적한 여행을 기록한 책에서는 그 곳을 돌아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정보를 제공해주고 그렇지 않은 여행기에서는 마음의 여유를 줄 수 있는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를 읽고는 기존의 여행기에 대한 선입관이 일시에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독일 최고의 인기 코미디언인 하페 케르켈링이 쉼 없이 달려온 방송생활에 쉼표를 찍게 된 계기는 ‘건강’이었다. 정작 중요한 ‘나’를 돌보지 않고 무리하게 일정을 소화했던 그에게 찾아온 것은 청력약화와 담석으로 인한 수술. 이를 계기로 생각조차 못했던 ‘야고보길 순례’에 발을 내딛게 된다. 스스로를 ‘카우치 포테이토’라 부르는 저자가 42일간의 도보 여행을 통해 얻은 귀한 감동을 혼자 소유하지 않고 나누어준 이 책은 ‘인생’이란 여정의 동반자인 내게도 많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빡빡한 스케쥴과 방송인이 겪게 되는 갖은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그저 걷는다는 것 정도는 아주 쉬운 일인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지 장시간 걸어본 사람들은 ‘걷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 저자 역시 우연히(서점에서 ‘기쁨의 야고보길’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인생에서 ‘우연’이 차지하는 비중은 정말 크다.) 도보여행을 마음먹고 어설픈 준비로 시작한 도보여행이었기에 여차하면 발길을 돌릴 것 같은 ‘무늬만 순례자’였다. 그러나 걷는다는 것, 그것도 600km미터를 걷는 쉽지 않은 일을 끝까지 해낼 수 있었던 것은 길에서 마주친 사람과 거리, 자연 등에서 감동과 힘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내 삶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이 여기 이 길에서 다시 나타나고, 거기서 갈라져 나온 가지들이 지금 여기서 나와 함께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213쪽
내가 직접 야고보 길 여행을 하진 않았지만 책을 읽는 동안 나 역시 길을 걷고 있으며, 그 길속에서 나의 지난날과 현재를 짚어보게 되었다. 내가 달려가는 곳, 쉬어줘야 하는 곳, 되돌아보아야 할 곳을 길은 알고 있는 듯하다.
요즘 각광받고 있는 ‘걷기’의 수많은 좋은 점 중 하나가 ‘삶에 대한 감정과 견해가 좋아진다’이다. 40여 일간 걷기만 한다면 다리는 걷고, 눈은 보고, 귀로 들을 때, 머리는 그동안 할애하지 못했던 ‘진지한 생각’으로 가득하게 된다. 그리고 때론 무념조차도 깨달음으로 이끌 때가 있음을 우리는 안다.
월간지 좋은생각 8월호에 특집으로 실린 ‘첫 이야기’에 40에 실직을 한 아들이 치매에 걸린 칠순의 아버지와 200km를 도보로 여행한 이야기가 실렸다. 연로하신 아버지의 걸음과 맞지 않는 지도로 숱하게 고생을 하면서도 여행을 마치고 난 후 아버지에겐 좋은 추억이, 아들에겐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실어주었다. 인생에 어려움이 닥쳤을 때, 한 박자 쉬어가고플 때, 인생의 반전을 꿈꿀 때 걸어라. 길이 주는 지혜에 마음을 열어보자.
책 속에서..
마음을 열고, 그 날에 입 맞춰라!
나는 나의 그늘과 만나야 한다.
걸작은 예기치 않았던 장소에서 예기치 않았던 시각에 보게 된다.
마음은 항상 옳다.
나는 꼭 필요한 것을 말한다. 그리고 더 이상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