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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제리 클럽
유춘강 지음 / 텐에이엠(10AM)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란제리 클럽」이라. 팬티와 브라, 하얀색 메리야스를 뺀 속옷이라곤 입어본 일도 없는 내게 란제리는 멋 부리기 좋아하는 여성들의 필수품 정도로만 알고 있다. 졸업 후 첫 직장이었던 상호신용금고에서 여직원을 상대로 에티켓 교육을 받았을 때, 속옷을 아름답게 입는 사람이 겉옷도 아름답게 입을 수 있다는 얘길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속으로 ‘웃긴다.’라고 생각했던 나. 때문에 제목에서 풍기는 느낌이 썩 건전한 내용은 아닐 것 같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 그런데, 참 재미있다. 그리고 화가 난다. 중간 중간 ‘설마!?’하는 추임새까지 넣어가며 책장을 넘기다보니 벌써 끝이 났다. 마흔을 코앞에 둔 어느 날, 믿었던 남편이 유서 한 장 남기지 않고 자살을 해 버린다. 뜨겁게 사랑하지는 않았어도, 그래서 ‘사랑한다’는 말을 남발하며 살지 않았어도 서로에게 편안함을 느끼고 나름대로 만족한 결혼생활을 했다고 믿었던 그녀에게, 직장생활이라곤 해 본 일도 없기에 더더욱 암담하기만 한 그녀에게 의심어린 시댁의 눈총과 갚아야 할 대출금 그리고 배신감만을 남기고 떠난 남편. 아이러니하게도 지나치다 싶을 만큼 깔끔했던 남편의 비밀은 뿌연 안개가 서서히 걷히듯 드러나게 되는데, 그것도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당연히 받았어야 할 사랑과 믿음이 기초가 되는 결혼을 치졸하게 자신의 치부를 감추기 위한 위장을 목적으로 10년 세월을 유린당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괴로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다.
“․․․․․․ 결혼, 그거 남들 다 하는 거라고 그동안 우리가 너무 만만하게 봤지.” 라고 말하며 담배를 피워 물던 지소의 말처럼, 꿈같은 환상을 품고 있었던 20대의 그녀들인 나, 소정, 지소 이 세 여인들은 저마다 결혼의 굴레에서 상처받고 자가 치유하기를 10여 년간 계속해 오고 있다. 그리고 화자인 내가 태클 거는 세상에 당당하게 맞받아칠 용기를 갖게 되면서 통쾌한 반전을 준비하듯 소정과 지소도 저마다의 방법으로 자신들의 아픔을 치유해 나간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계속해서 공지영 작가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 생각났다. ‘절대로’의 혜완, ‘어차피’의 경혜, ‘그래도’의 영선처럼 나와 소정 그리고 지소는 묘하게 오버랩 되는 부분이 많다. 스물 살 초반에 읽었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에서 나는 ‘절대로’의 혜환을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지금 마흔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읽은 「란제리 클럽」에서 나는 ‘절대로’가 조금 누그러지고 ‘그래도’에게 꽤 많은 자리를 내어 준 듯한 느낌이 든다.
아내, 엄마, 딸로 살아가는 이 시대의 여자들의 마음을 이 한 권의 책이 대변한다고 하기엔 좀 무리가 있지만, 같은 여자로서 공감 가는 부분이 상당한 책 「란제리 클럽」을 읽고 나니, 책 속 그녀들이 종국에는 제 갈 길을 찾아간 것처럼, 내 인생 38년도 다시 돌아보고 점검해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충분히 아름답게 살아야할 나의 마흔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