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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설턴트 - 2010년 제6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ㅣ 회사 3부작
임성순 지음 / 은행나무 / 2010년 4월
평점 :
어쩔 수 없는 것..
‘핸드폰만 바꾸지 않았어도 이렇게 마음이 쓰이지 않았을 텐데...’
엊그제 남편과 함께 핸드폰을 새로 구입했다. 둘 다 첨단기기에는 매력을 느끼지 못하기에 전화 걸고, 받고, 메시지 보내고, 모닝콜만 가능하면 어떤 모델이든 상관없는데 사용하지도 않는 다양한 기능을 모두 장착해 가격 올리고, 자꾸 신모델에 욕심을 부리게 만드는 기업들의 행태가 불만스러웠지만 전체적인 흐름이 그렇다보니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싶어 그 불만을 꾹꾹 눌러왔었다. 기계치이기도 해 핸드폰이 바뀔 때마다 문자열이나 편리한 기능이 어디에 있는지 일일이 살펴봐야하는 번거로움이 싫어서 버텨보다가 액정이 있는 부분이 아예 분리되기 일보 직전이어서 대리점을 찾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 핸드폰을 사용함으로써 아득히 머나먼 아프리카 대륙의 작은 나라 콩고에서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연분홍빛 고운 핸드폰을 보는 마음이 착잡하다.
모든 첨단 전자제품에 들어간다는 탄탈의 원료가 되는 콜탄이 대량으로 매장되어 있는 콩코. 천혜의 자연자원으로 부를 누리며 안정을 추구하는 나라도 있지만 내전중인 콩고에서 콜탄은 가장 손쉽게 무기를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광물임과 동시에 순박한 주민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죽음의 재료’가 된다. 국제사회의 이슈가 되어 콩고산 콜탄 거래를 막지만, 식을 줄 모르는 첨단 전자제품은 그 시장이 점점 더 광범위해지고 변화하는 세계만큼이나 변하는 소비자들의 기호는 끊임없이 신제품에 열광한다. 신호가 바뀌는 찰나도 못 견뎌 앞 차에 분노를 터트리면서도 제 주변의 타인에게는 지독히 무관심한 우리이기에 보이지도 않고 존재여부도 알 지 못하는 나라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죽어간다고 하는 사실을 안다 해도 그로 인해 가슴 아파 할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마음이 많이 쓰리다. 그런데도 나는 누구나 하는 말만 한다. “어쩔 수 없어. 세상이 다 그러니까.”
킬링 컨설턴트
죽이고 싶은 대상이 있는 의뢰인과 그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회사, 그리고 회사의 명령으로 살인 시나리오를 쓰는 소설속의 ‘나’. 아무리 험악해졌다 해도 아직은 좋은 사람이 더 많아 살만한 세상이다. 그러나 그 좋은 사람들도 누군가의 사무친 원한 중심에 있을 수 있고, ‘좋다’는 기준이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대상에 따라 다르기에 좋음이 마냥 좋을 수도 없는 사회 속에서 죽이고 싶은 인간 하나 없는 게 오히려 이상할 수도 있겠다. 용도를 모르고 썼던 최초의 시나리오가 누군가의 사주로 이 사회에서 구조조정 당하는 이에게 인생의 무대에서 마지막 장을 장식하는데 필요한 조언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어도 ‘나’는 직접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고, 아마추어들처럼 선혈이 낭자한 상황을 연출하지도 않고, 시체를 유기하기는커녕 그 가족들에게 자연스런 죽음과 함께 장례를 맡겨 깔끔한 마무리를 선물(?)했기에 그다지 양심에 가책을 받지 않는다. 더더군다나 킬링 시나리오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죽을만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가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원죄
30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독교 신앙생활(어찌 보면 무늬만..)을 하면서도 정말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믿음이라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며 이러한 믿음의 보상이 믿는 것을 보게 된다는 아주 명쾌한 성 어거스틴의 말씀에 동감과 감동을 함께 느끼면서도 믿기지 않고,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중의 하나가 ‘원죄’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인데, 늘 자신을 돌보지 않고 다른 이들을 돌보았는데, 아낌없이 퍼주었는데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원죄 때문에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살아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누군가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것, 고통에 찬 세월을 살게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아니 이미 알고 있었지만 갖가지 이유를 들어 외면하고 싶어 했던 것들을 더 이상 모른 채 할 수 없게 되어 가시방석에 앉은 듯 마음이 편치 않다.
내 생활의 안락함을 위해 사용하는 에너지가 빙산을 녹게 해 아름다운 섬나라가 잠기고, 어딜 가나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종이컵으로 인해 사라져가는 밀림의 사람들은 시력을 잃는다. 내가 먹고 있는 수입농산물이 가난한 나라의 부족한 물로 키워낸 것이라는 것, 그래서 그들은 물 부족으로 더 큰 고통에 처한다. 이러한 현실을 알기에 나름대로 머리 감는 횟수도 일주일에 일곱 번에서 두세 번으로 바꾸고, 빨래와 설거지도 모아서 하며 외출할 땐 개인 컵을 들고 다니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것들로는 보상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뇌까리는 현실의 나. “어쩔 수 없어. 세상이 다 그러니까.”
그래서 더더욱 “직접적인 살인을 하지는 않지만 사실은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는 행동들 때문에 어딘가 주변부에선 죽음을 당하거나 기아에 시달린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우리 사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사회 구조에서는 ‘어쩔 수 없다’거나 ‘아무 책임이 없다’고 하는데, 과연 우리가 죄를 짓지 않고 사는 건지 묻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이 아프게 다가온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위 글은 랄프 왈도 에머슨의 시, ‘성공이란 무엇인가’의 한 구절이다. 무엇을 성공의 잣대로 삼든 개개인의 자유지만 그 성공을 위한 걸음마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가치가 더해졌으면, ‘나’부터 시작해 이런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한 번 책을 잡으면 내려놓을 수 없도록 재미있게 이야기를 이끌어간 작가의 역량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한 권의 책으로 작가 임성순은 이미 ‘세상을 조금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