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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퇴선언 -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죽을 만큼 매달린 사람들의 이야기
박은몽 지음 / 살림Friends / 2010년 7월
평점 :
학교가 있는 이유가 뭘까? 학령기에 학교를 다니는 것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학생의 권리이자 의무라고만 생각했기에 가기 싫어도 꼭 가야하는 곳으로 알고 다닌 곳이 학교다. 엄마아빠가 무학이었기에 겪었던 고통스런 나날을 몸소 체험하고 자랐기에 더더욱 의문을 품지 않았던 학교의 존재 이유에 대해 요즘 자주 생각하게 된다.
하나뿐인 딸 아이, 남편과 함께 딸의 장래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나오는 주제가 ‘정규교육을 꼭 마쳐야 하나?’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지식을 배우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곳인 학교. 과거엔 그 이유만으로 학교를 가는 게 너무도 당연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되지 않았던 고등학교 시절에도 앞으로 다가올 세상에서는 학교가 사라지고 각자 집에서 지식을 습득하게 될 것이라고 미래를 예측했었다. 이 예측은 그대로 맞아 떨어져 실제로 사이버대학이나 대학원에서 수학하는 사람들도 많고, 초중고교에서도 학교 수업으로 부족한 부분을 각종 인터넷 강의로 대체한다. 때문에 학교라는 제도 안에서 숨 막혀 하는 아이들에게 “그래도 학교는 가야 하는 곳”이라 말하며 설득하기엔 무리가 있다. 게다가 지금의 학교가 단체생활을 통한 인성이나 협동심을 길러줄 것이라 주장하는 데, 실제로 그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음을, 그로 인해 야기되는 수많은 문제점들이 불거져 나오는 것을 날마다 겪고 있기에 설득력이 부족하다.
몇 년 전, 안산예술의전당에서 주관하는 ‘여르미오 페스티벌’의 무대를 아름다운 선율로 장식했던 천재 재즈피아니스트 진보라의 공연을 관람했다. 요즘 열광하는 아이돌 스타들 못지않은 외모와 뛰어난 피아노 실력으로 청중을 사로잡았던 그녀가 ‘피아노가 치고 싶어서 교실에 앉아 있을 수 없다’며 중학교를 중퇴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그 어린 나이에 자신의 전부를 걸 대상을 발견하고, 제도권을 벗어나 성공했다는 것에서 부러움과 질시를 함께 느꼈다. 그런데,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죽을 만큼 매달린 사람들의 이야기 「자퇴 선언」을 읽으며 내 감정이 얼마나 옹졸한 것에서 기인되었는가를 깨달으며 부끄러워졌다.
이 책에 소개된 스무 명의 명사들은 모두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중퇴했거나 대학에 진학했다 하더라도 자신이 소망하는 일을 하는데 대학이 도움 되지 못하는 곳이라 여겨져 스스로 포기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좋아하고 재능 있는 것에 올인 하기 위해 오직 앞만 보고 달려간 축구선수 이청용, 가수 폴 포츠, 만화가 허영만, 모델 지젤 번천. 길이 끊겼다 생각될 때 새로운 길을 개척한 애플사의 CEO 스티브 잡스, 트위터의 공동 창업자 비즈 스톤, 영화 감독 제임스 카메론, 반전운동가이면서 여성운동가, 전위예술가로 알려진 오노 요코. 가슴이 이끄는 것을 따라 성공한 가수 빅뱅의 대성과 승리, 소설가 이외수, 재즈 피아니스트 진보라, 작곡가 조지 거슈인. 방황하는 삶이 끝이 아니고 그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낸 가수 김장훈, 사진작가 준초이, 자기계발 전문가 브라이언 트레이시, 힙합 뮤지션 제이지. 실패를 역전의 발판으로 삼아 성공한 음반 기획자 사이먼 코웰, 전 영국 총리 존 메이저, 만화영화 제작자 월트 디즈니, 트위터 공동 개발자 에반 윌리엄스가 이 책의 주인공들이다.
우리는 성공한 이후 매체에 화려하게 등장하는 명사들만을 볼 수 있기에 이들이 모두 황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을 거라는, 적어도 비빌 언덕 하나쯤은 있었으리란 생각으로 보통의 삶을 사는 사람들과는 환경면에서 다른 부분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보면 이들 대부분이 우리가 어렵다 생각한 환경보다 더 힘든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고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선 사람들이란 것을 알게 된다. 정상에 서고 난 이후에도 이들 모두가 누구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자기분야의 일에서 게을리 하지 않고 연습하며 연구하는 모습에서 보통 사람들과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아마도 책 제목만 보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 열정을 바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무더기로 자퇴를 결심하거나 선언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걱정이 되는데, 오히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다시 학교로 돌아온 사진작가 준초이 같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된다. 또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는 것만이 인생에서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임을 알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가치를 찾아 도전을 하고 그것으로 인해 만족한 삶을 사는 것 역시 빛나는 성공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사회 분위기도 학력만을 외치는 사회가 아닌데도, 여전히 입시에만 목숨 걸고 질주하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진정 즐기면서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볼 수 있는 시간을 주고, 그것과 관련한 공부를 더 열심히 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바뀌었으면 한다. 그리고 아이들도 어설픈 결정으로 학교 밖을 택했을 때 떠나온 곳을 동경하고, 자신이 하고 싶어 했던 일에 대해서도 회의감을 느끼는 일이 없도록 자신을 냉정하게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