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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런을 한 번도 쳐 보지 못한 너에게 ㅣ 내인생의책 작은책가방 3
하세가와 슈헤이 글.그림, 양억관 옮김 / 내인생의책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모든 운동에 관심이 없는 나. 2002년 월드컵 때에도 인근의 유원지나 광장을 찾지 않음은 물론 TV에서조차 축구경기를 한 번도 관람하지 않은 무심의 극치.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신기하기만 했던 나. 운동이라곤 오로지 숨쉬기 운동과 그저 생활의 일부라 할 수 있는 걷기가 전부이다. 때문에 운동과 관련한 책은 더더군다나 손이 가지 않는다. 그랬는데, 파란색이 주류를 이루는 시원한 그림책 표지가 먼저 시선을 끌고 「홈런을 한 번도 쳐 보지 못한 너에게」라는 제목에 강하게 이끌려 책장을 넘겼다.
몇 자 되지도 않는 글이 처음부터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6회 초 1아웃, 주자는 1,3루. 타자는 7번 2루수 데구치 루이.’ 머리가 피곤하다. ‘뭔 소리래?’ 일단 넘어간다. 스퀴즈라는 전문용어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엄두는 내지 못하고, 감독이 루이에게 용기를 주는 다독임의 말속에서 아이와 감독 사이에 흐르는 따뜻한 교감에 기분이 좋아진다. 곧이어 긴장한 루이가 쳐낸 볼의 결과는 ‘땅볼, 4-6-3 병살타’ 역시나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홈런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히 알겠다. 경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루이의 시무룩한 표정과 ‘아아, 더 잘 치고 싶은데.’하는 속말에서 짙은 아쉬움이 배어나온다.
집으로 돌아와 엄마의 심부름으로 편의점에 갔다가 우연히 만난 동네 형 센. 형이 자신의 시합을 보고 “6회 초에 말이야, 왜 그렇게 크게 휘둘렀어?”라 묻는 물음에 홈런을 쳐서 역전하고 싶었다는 루이. 실전 경기에서 한 번도 홈런을 쳐 본 경험이 없던 루이가 갑자기 홈런을 친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는 형. 전설적인 선수들이 홈런을 치기 위해서 과학적인 사고를 하고, 속도와 힘을 내기 위해 다부진 몸을 만드는데 힘든 훈련을 10년이나 했다는 사실과 ‘멋진 홈런에는 상대편 선수도 박수를 보낼 만큼 감동을 준다는 것을 이야기해 준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며 생각해본다. ‘나는 내 인생에서 홈런을 몇 번이나 쳐봤을까?’ 사랑스런 딸, 건강하고 즐거운 우리 가족... 그다지 생각나는 게 없다. 내 인생의 목표가 너무 두루뭉술해서 생각이 안나나?
집으로 돌아온 루이가 센 형을 만난 이야기를 하자, 엄마는 놀라운 얘기를 들려주신다. 1년 전쯤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어 걸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했다고... 고통스런 재활훈련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까.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돌아온 센 형은 이미 인생이라는 야구장에서 상대편 선수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는 멋진 홈런 하나를 친 것과 같다.
‘고마워. 나 언젠가는 꼭 홈런을 칠 거야. 하지만 그 전에 안타부터 쳐야겠지.’
루이가 멋진 홈런을 치기까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을 것 같다.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어수룩한 부분이 많아 보이는 그림인데, 보기에 편안하다. 내리는 것 같지 않은 가랑비에 옷이 젖어들듯 특별할 것 없어 보이던 그림책이 마음속에 젖어든다. 용어에 대한 설명을 책의 끝부분이 아니라 나처럼 야구에 문외한인 사람들이 바로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용어가 들어가는 페이지에 작게 배치했으면 더 좋겠다는 작은 아쉬움이 남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