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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 할머니 ㅣ 꽃보다 아름다운 우리
오채 지음, 김유대 그림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친할머니에 대한 좋은 기억이 없는 내게 ‘오메 할머니’는 경험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동경과 이룰 수 없는 꿈이다. 세상에서 제일가는 나쁜 시어머니 대회를 한다면 1등은 따 놓은 당상이고, 제일 사납고 정 없는 할머니 대회에 나가도 마찬가지일거라 생각되는 할머니가 세상의 할머니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때가 성년이 되고부터니 그나마 다행이랄 수 있을까?
봉지는 말씀하실 때마다 “오메!”를 연발하는 할머니를 ‘오메 할머니’라고 부른다. 노환으로 인해 약해진 채 은지네 집에 며칠 묵어가시려고 오셨는데, 할머니를 반기는 건 은지뿐이다. 주인남자도 좋아하긴 하지만, 주인여자의 눈치를 보느라 마냥 기쁜 표정을 지을 수 없다.
개 입장이 아닌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오메 할머니가 “어찌고 사람이 개랑 같이 잔디야.”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지만, 애완견으로 10년 가까이 은지 가족의 사랑을 받아온 봉지 입장에서 보면 오메 할머니는 반갑지 않은 침입자일 뿐이다.
수금이 안 되어 어렵게 단무지 공장을 운영하는 주인부부와 할머니를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아직 어린 은지, 이제 서서히 오메 할머니의 마음 씀씀이에 반하고 있지만 완전히 할머니 편이 되지 않은 봉지와 함께 서울 살이를 하는 오메 할머니.
생사를 알 수 없는 아들이 같은 주소지에 등록되어 있어 정부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박스 할머니를 돕자며 공책에 공원할머니들의 서명을 받으러 다니고, 근사한 곳에서 생일파티 한 번 못해봤다며 우는 손녀에게 거시기한 생일빠띠를 해 주려 평생의 대가라 할 수 있는 땅 판 돈 일부를 아낌없이 꺼내 베푸는 오메 할머니. 손녀에게 유행하는 무깰빠마(물결파마)를 해주면서도 미용사의 파마 권유에 자신만의 스타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지켜 나가는 오메 할머니.
“이것은 내 평생 시타일이요. 긍게 못 바꾸제라.”
평생을 할머니 입술에서 떨어지지 않는 구수한 사투리와 서운하면 서운한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면서도 인생을 더 산 사람답게 아랫사람들을 대함에 있어 모자람이 없다. 그것이 한낱 짐승일 뿐이라는 봉지에게도..
동물이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흔치 않은 방식의 동화책인 「오메 할머니」를 처음 읽던 딸아이가 도입부분에서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더니 끝내 눈물을 글썽이며 감동적이라 했을 때만해도 그저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내가 직접 읽고 나니 아이가 왜 그렇게 울며 감동적이라 했는지 알 수 있다. 양가 할머니가 모두 살아계시고, 딸아이라면 나보다 더 귀하게 여기며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려는 할머니가 딸아이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 궁금하다.
오메 할머니가 조금 더 살아계셔서 소원하시던 대로 자식들 모아놓고 마지막 식사를 같이 했더라면, 그래서 서운한 마음 조금 내비치고 원래 자식들에게 주고 떠나리라 했던 돈을 기분 좋게 나눠주고 가셨더라면 마음이 덜 아팠을까? 인생이 길다고는 하지만, 정작 자신이 생각한 것을 행동으로 옮길 만큼 긴 시간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마음에 스며든 느낌이나 생각이 있다면 바로 이야기하고 행동하라고, 그래서 떠난 후에 아쉬움 남기지 말라고 고운 언어로 충고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