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요시키 형사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엮음 / 시공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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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책을 선택할 때 제목에 신경 쓰지 않은지 오래다. 작가뿐 아니라 책이 잘 팔려야 수익을 많이 얻을 수 있는 출판사의 편집부에서 고민 끝에 내놓은 책 제목은 예전처럼 단순히 작가나 편집가의 생각으로 정해지기보다 독자의 반응을 고려해 독자 입장에서 책 제목을 선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마음이 확 끌리는 제목의 책을 들었다가 내용이 그에 못 미쳐 실망했던 일이 워낙 많았기에 이제는 제목만 보고 책을 선택하는 일이 그다지 없다.

단, 세상을 살다보면 늘 예외가 생기기 마련이고 그 예외가 때로는 쏠쏠한 재미를 안겨주기도 한다는 사실. 위대한 과학자의 전기에나 어울릴법한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는 추리소설치고는 꽤 섬뜩하다. 사건사고 없는 추리소설은 가당치도 않지만, 첫머리의 짧은 이야기만으로도 엽기적인 단편소설(실제로 소설 속 주인공이 쓴 소설이지만)로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몇 년 전에 읽었던 공포소설 ‘피의 책’을 읽으면서 너무 끔찍한 기분에 사로잡혀 다시는 읽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종류의 책이었기에 화장실에서 자살한 삐에로의 이야기만 읽고도 속이 울렁거려 몇 달을 방치해뒀다가 책장을 정리하며 다시 손에 든 이 책이 인내심이 부족해 무슨 일도 제대로 끝내지 못한다는 비난을 보내는 것 같아 읽어보았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추레한 노인의 우발적인 살인으로 보였던 사건이 약한 사람에게 등 돌리지 못하는 성격을 지닌 형사 요시키 다케시로 인해 그 사건의 복잡다단한 양상을 드러낸다. 누구도 해치지 못할 인물이라는 주변인들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상점의 여주인을 살해한 분명한 사실. 이러한 현실 속에 슬프고도 아픈 과거가 얽혀있어 읽는 순간에는 마음을 찡하게 하는 힘이 있는 추리소설인 건 맞지만, 인기 있다고 해도 한정된 장르 안에서 보여주는 과거가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 있는 몇몇 인사가 과거를 반추하고 부끄럽게 생각한다 하더라도 지난한 독도문제나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와 관련해 김연아 선수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이 여과 없이 보도되는 현실을 보자면 더 씁쓸할 뿐이다.

1세기 가까운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우리에겐 너무 아픈 과거이기에 굳이 파헤치고 싶지 않은 한국 사람으로서의 감성이 작용한 탓인가 싶으면서, 다른 개인사적 원한을 소재로 썼다면 이토록 흥미진진하게 느껴졌을까 싶은 생각도 들게 하는 이 소설,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읽었으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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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맨 - 왕찐드기 나의 영웅 소담 팝스 3
뤼디거 베르트람 지음, 헤리베르트 슐마이어 그림, 함미라 옮김 / 소담주니어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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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살아봐야 백 년도 못사는 인생, 즐겁고 상쾌한 일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인생은 계획한대로 살아지는 것도 아니고, 예측이 가능한 일도 아니기에 날마다 유쾌한 일상을 살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때론 유쾌하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평범한 날만 계속되어도 소원이 없겠다 싶을 때가 있으니, 사차원 소년 카이에게는 이 ‘평범함’이 더욱 절실하다.

자유분방한 사고를 지닌 연극배우 부모님과 특별함을 넘어 기이함까지 보여주는 누나가 있어서인지 카이는 알게 모르게 그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방어기제를 어릴 때부터 준비해 두었나 보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카이의 일상 전반에 걸쳐 크고 작은 사건 사고를 일으키게 만드는 주범인 쿨맨. 다른 이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카이에겐 진드기처럼 달라붙어 조언이라고 해 주는 것이 늘 사고의 시작이다. 더군다나 사고 후에 카이를 위로하는 수준은 언어유희의 최고봉.

글자를 읽으며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도록 유도하는 책의 도입 부분부터 범상치 않은 ⌜쿨맨 - 왕찐드기 나의 영웅⌟은 한마디로 ‘깨는’ 책이다. 일상적 규범이나 바람직한 어른상, 어린이상에 대해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내용이 많다. 그 보통의 범주에 속하는 나 역시 책을 읽으면서 아이가 읽었을 때 혹시나 생길 부작용(예를 들자면 안 그래도 상상 속에서 일어나는 일로 일상생활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딸아이의 상상력을 지금보다 더 업그레이드 시키는 것)에 대한 우려가 생기지만, 상상하는 것도 어렵고 상상을 했다 하더라도 현실에 적용해 보기엔 무리가 있음을 이미 알고 있는 빠르게 자란 아이들에게 엉뚱하고 유쾌한 일로 가득한 이 책이 대리 만족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재미있는 것에 대해 즉각적이고도 걸러지지 않은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아이들의 특성답게 책을 읽으면서 데굴데굴 구르기도 하고 깔깔거리며 웃는 딸아이의 모습에 덩달아 웃게 만드는 게 이 책의 매력인 것 같다. 이미 일어난 일로 인해 기운 빠진 카이에게 일어나지도 않은 더 끔찍한 상황을 상상하게 하며 다시 기운 차리게 만드는 쿨맨, 밉상이지만 길게 미워할 수 없는 재미난 캐릭터의 탄생이다.

‘하늘 산 소닌’과 ‘주디 무디’ 이후에 한동안 뜸했던 시리즈물을 다시 읽으니 후속편을 기다리는 재미가 다시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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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꿈에는 한계가 없다 - 최고의 멘토들이 전하는 직업 이야기
이영남 지음 / 민음인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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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가장 큰 불행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고, 두 번째로 큰 불행은

‘그 무엇’을 너무 늦게 발견하는 것이다⌟


버스 안에서 한 고등학생이 빗을 꺼내들고 지극히 차분한 머리를 틱 장애처럼 끊임없이 빗어 내리면서 단어 사이사이에 욕을 섞어 말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살짝 무거웠던 경험이 있다. 외모에 관심이 많은 시기니 흐트러진(?) 머리를 수시로 손질하는 그 마음이 이해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인생의 다른 면에서도 마음 쓰임이 머리카락을 손질하는 것과 같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별 것도 아닌 것을 보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것보다 본인 이외의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는 외적인 면모에 치중하며 오히려 그 치중하는 모습이 보기에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을 그 아이는 모를 것이라는 생각에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것이다. 손에는 빗을, 입에는 욕을, 얼굴엔 뽀얀 분가루를 묻힌 아이의 미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아름답게 그려질 수도 있을 테지만, 부디 그 아이가 나중에 후회하는 일 없도록 좀 더 많은 시간을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할애했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다.

얼마 전에 봉사를 간 공부방의 아이들과 현재 안고 있는 고민에 대해, 그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가능한 모든 방법, 그리고 가장 좋은 걸 선택해 실행에 옮기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중학생이 대부분이었기에 성적과 고등학교 입학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는데, 두 아이가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을 털어놨다. 예고를 가고 싶지만 부모님이 반대하는 아이와 아직 뚜렷하게 하고 싶은 것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곧 다가올 미래에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아이. 꿈이 있는 아이나 없는 아이나 막연한 것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는데, 너무도 쉽게 집안에 돈이 없으면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으면 된다고 하고,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알아보기 위한 방법으로 인터넷 검색을 1순위로 올려놓아 답답한 마음 가눌 길이 없었다.

자아성취나 보람 등의 거창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사람이 생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직업. 그러나 그저 먹고 살기 위해서만 일을 한다고 하면 금방 자기 자신에 대해 실망하고 풀리지 않는 일에 대한 원망을 세상으로 돌리기 마련이기에 단순한 생존 이외의 ‘그 무엇’이 있어야 사람은 행복함을 느끼며 인생이 살만하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진로선택의 기로에 놓은 아이들이 자신에게 어울리는 직업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하지만, 막연하게 인기가 많으니까, 돈을 많이 버니까 하는 이유로 어떤 직업을 선망하는 아이들에게 각각의 직종이 갖고 있는 특성이나 연봉, 향후 전망 등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제공해주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나의 마음과 필요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최고의 멘토들이 전하는 직업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책 ⌜너의 꿈에는 한계가 없다⌟가 출간됐다. 이 책은 외과 의사, PD, 공인회계사, 호텔리어, 기자, 회사원, 아나운서, 외교관, 변리사, 방송작가, 통역사, 판사, 승무원, 큐레이터, 조종사, 변호사, 치과의사 등 총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18명의 프로들을 인터뷰해 그들이 성공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 일하는 자세, 그 직업에 필요한 재능이나 인성 등을 다양한 각도로 풀어낸 책이다.

초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한 상태에서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평생 공장에서 일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험을 앞두고 1년 넘는 세월을 누워서 자보지 못했다는 이나, 맡고 있는 프로를 제작하는데 일점일획의 오류라도 있을까 하루 2∼3시간 밖에 못자고 일을 했다는 이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자신들의 성공이 개인의 노력도 크게 작용했지만 운 또는 주변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짐을 가득 실은 수레를 끌고 언덕을 올라갈 자신이 없었던 사람이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다 지쳐 혼자 그 수레를 끌고 올라가자 신기하게도 뒤에서 밀어주는 이들이 하나 둘 늘어났다는 이야기처럼 ‘성공의 절반인 주위 도움도 결국 자신의 노력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운도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프로 정신에 따른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진로 선택의 기로에 놓인 이들에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되겠다 싶었는데, 가장 먼저 아직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나 진로가 고민이 된다는 그 아이에게 이 책을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안에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찾지 못할지언정 자신의 인생이 성공적이라고 생각하고 인정받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어떤지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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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고래 - 하늘을 날고 싶은 꼬마 펭귄 '고래'의 꿈과 모험 초등 3.4학년을 위한 성장 동화
김혜란 지음, 김준연 그림 / 써네스트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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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포기한 조상을 바보라고 여기는 꼬마 펭귄 고래는 세상이 정해준 틀 안에서 살아갈 것을 강요받는 게 못마땅하다. 여느 꼬마 펭귄들처럼 중심을 잡아 미끄럼 타는 것도, 배를 깔고 엎드려 멋지게 슬라이드 하는 것도 어설픈 고래. 생각이 많아 활동적인 친구들에게 외면당하지만 특별한 펭귄이 되고 싶은 열망을 가슴에 품고 산다. 게다가 수업시간 중 몰래 빠져나왔다 만나게 된 큰새 할아버지(엘바트로스)로부터 환상적인 모험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는 하늘을 날며 먼 곳을 여행하고 싶은 꿈을 꾼다.

고래를 타고 북극으로 간 페페라는 펭귄의 모습을 그리며 꿈을 키우는 동안 젊은 펭귄이 된 고래. 그 사이 무리의 리더인 아빠가 생존의 리듬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포기한 소수로 인해 가슴 아픈 경험을 하고, 오직 먹고 사는 일과 천적으로부터 살아남는 일만 생각하는 리더를 존경할 수 없어 무리를 떠나기도 한다.

‘하늘과 바다와 육지에서 더 이상 조롱당하지 않고 더 나은 생활을 위한 적극적인 개척’을 하고 싶은 고래는 자신의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하늘을 날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결국 펭귄 무리의 새로운 리더를 뽑는 과정에서 만난 어려움 속에서 자신이 진짜 날았는지, 착각인지 알 수 없으나 리듬을 타면서 바람을 느끼는데 성공하고 무리에게 닥친 위험을 알리면서 새로운 리더로 부상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꿈은 크게 가지라고. 그러면서 불가능한 일엔 기운 빼지 말라고 한다. 상황을 바꿀 힘이 네게 없으니 변해야 하는 것은 너라고. 그들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고, 불확실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을 견딜 수 없어하기에 모두가 인정하는 쉬운 길로 걸음을 옮긴다. 그러나 이마저도 쉽지는 않다. 관계 속에서 빚어지는 갈등과 경쟁은 물론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늘 가슴 한쪽을 차지하면서 시시때때로 번민하게 된다.

때문에 펭귄 고래처럼 주변의 판단에 모든 것을 맡기지 않고 가슴에 차오르는 열망대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 한편이 시원해진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동경하던 페페가 펭귄 무리의 리더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아 무리가 수난을 겪었고, 그가 바로 자신의 아빠라는 것을 알게 된 고래는 무리를 이끄는데 있어서 개인의 무분별한 욕망이 얼마나 치명적인 지도 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능력과 펭귄 무리의 가능성을 꿰뚫어 본 고래는 무리로부터 생존이라는 큰 숙제 앞에서 소수를 보호하고 이끄는 것까지 수긍하게 하고 함께 길을 떠나는데 성공한다.

알을 깨고 나온 아기 펭귄이 장성해 무리의 리더가 되기까지의 성장 과정이 푸른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잔잔히 이어지는 ⌜날아라 고래⌟는 아이들을 위한 성장 동화다. 그러나 꿈이 있다고는 하나 진정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데는 지극히 소극적인 내게도 감동을 주는 한편, 세상을 살아갈 때 한쪽 면만을 보고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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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소녀 높새바람 25
한박순우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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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지난 몇 년간 나와 함께 한 지역아동센터의 아이들이 생각났다. 길게는 5년 가까이 보아온 아이들이 차츰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한 걸 보면 이 아이들에게 정이 많이 든 것 같다. 남녀를 막론하고 사용하는 욕설에 툭 하면 주먹부터 나가고, 세상에서 자신들이 제일 힘들다고 말하는 요즘 아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아이들이 때론 화가 나고 안타깝기도 하지만, 여전히 생기발랄하고 언제 어느 때든지 사랑스런 모습으로 변신이 가능한 귀한 존재이기에 생각하면 웃음부터 난다.


아이들과 만나면서 가장 피부에 가깝게 와 닿는 문제는 안정되지 않은 가정과 가난이다. 지역아동센터를 드나들며 아쉽게 생각되는 점은 센터의 중요한 역할이 아동을 보호하는 것이기에 위와 같은 문제로 인해 나타나는 크고 작은 현상들을 가장 가깝게 체감하면서도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시행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다는 것이다.


[거지소녀]의 화자인 해민이 역시 마음이 건강하지 않은 엄마와 가출한 언니, 자신들을 향한 동정의 시선 등 평범하지 않은 일상 속에서 부끄럼 많은 성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느 날 방송국에서 공부방을 취재하러 온 후 해민이의 언니에게 쏟아진 부담스런 관심과 금전적 지원에 심약한 엄마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더 많은 돈을 후원받으려는 욕심을 부리면서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받은 언니는 가출을 하고 만다.


언니에게 가해진 것들이 비록 선한 명목 하에 이루어진 것이라 할지라도 스스로 일어서려고 하는 언니가 원한 것이 아니었기에 결코 약이 될 수 없었던 것을 어렴풋이 깨달아 가는 해민이는 언니를 연상케 하는 ‘거지소녀’가 그려진 그림을 보며 당당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올 언니를 기다린다.


엊그저께 저녁때 센터에서 만난 중학교 2학년생인 J는 복지사 선생님이 “넌 매일 뭐가 그렇게 힘드냐?”고 물으니 “선생님도 학생 돼 봐요.”하고 대답했다. 말투도 꼭 싸움을 걸듯 불퉁하니 평소 아이들을 예뻐하시며 뭐든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고 하시던 선생님도 화가 나신듯 해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내가 중학교 다닐 땐 학교 갔다 오면 집안 청소와 빨래, 동생 돌보기, 주말엔 농사일도 도왔는데?”


꼭 가난 때문이 아니라도 다양한 문제로 인해 위축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더 크게 어깃장을 놓는 아이. 그래서 준비해 간 수업을 하는 것보다 마음읽기가 먼저 필요한 듯해 내 학창시절과 졸업 후 불안한 시기에 내가 걸어왔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며 어느 정도 진정이 된 상태에서 수업을 진행했다. 다행히 불퉁한 모습이 사라지고 수업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 “지금 이 순간 최고의 선택 즉, 이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최선을 다하는 것을 선택한 J에게 박수!!”하면서 칭찬을 해줬다. 모두가 가고 없는 깜깜한 공간에서 문단속까지 마무리하며 집으로 향하는 아이를 보며 물질적인 지원 역시 적절한 방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주 작은 마음의 여유만 있어도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예쁜 모습을 보여주는구나 하는 깨달음에 감사했다.


아마도 해민이의 언니 역시 내가 만나온 센터의 아이들처럼 자신 안에 내재되어 있는 힘으로 자존심을 되찾고 되돌아 올 것이다. 그렇게 돌아올 언니를 기다리는 해민이 역시 스스로의 힘으로 당당히 세상 앞에 우뚝 선 존재가 되었다는 걸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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