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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 시티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17
레나 안데르손 지음, 홍재웅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사람의 가치를 뭘로 평가해야 정확한 것일까.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살아야 할 누군가는 필살기를 '몸'이라 하지만..
아마도 인성이네 내면의 아름다움이네 고차원적인 점잖은 항목들을 갖다대며
아직도 우리 사회의 고품격 가식에 기대여 보려 하겠지만,
연예인이 미래의 꿈나무 직업 1순위로 오른 요 세상에 현실적인 잣대는 아마도 '외모'일 것이다.
얼굴은 유전적 요인 탓에 의료의 힘이 아니라면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기에 차치한다면
당근 '라인'이 아닐까 싶다. 이른바, 그 사람의 근성과 부지런함의 대명사로 군림하는 '몸매'말이다.
뚱뚱한 사람은 게으르고 자기관리를 잘 못하는 무능력자라는 인식이
어느 덧 자연스럽게 아이들 시각에도 자리잡힌 요 나날..
신기하게도 비만 인구는 오히려 증가일로라고 하니 이건 무슨 시츄에이션인가!
진정 비만은 개인의 의지박약 탓인 것인가?
이 책 '덕 시티'는 바로 이런 아이러니한 사태를 주목해 구조적으로 비만을 유발하는 사회를 신랄하게 풍자해 나간다.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사회로 타 국가의 롤모델로서 대우받던 덕 시티.
한 때 부의 상징이기도 했던 푸짐한 몸매의 오리들이 하나둘 넘쳐나면서 이들에 대한 멸시와 함께
날씬한 오리에 대한 강박증적인 집착은 강성일로를 걷던 덕 시티 제국을 위기감으로 몰아넘으며
정부는 '비만과의 전쟁'을 선포하기 시작한다.
이른바, 이 넘쳐나는 사회에선 전쟁도 가난도 아닌 '비만'한 시민들이 바로 제국을 망쳐가는 주범인 것이다.
국가는 시민들의 허리 사이즈와 몸무게를 직접 관리하는 에이햅 작전을 내걸며
모든 국민의 신발에 센서를 달아 음식물 섭취를 감시하기 시작하고
뚱뚱한 사람에겐 택시를 탈 권리를 박탈하며 기업은 비만인을 정리해고 1순위로 상정한다.
그런데 이러한 전국민의 라인관리를 위한 국책사업의 후원사는 아이러니하게도
달달한 도넛과 중독적인 패스트푸드로 모두의 영혼을 정복하며 비만인을 양산한 식품업체 JvA 사이다.
윤리, 비윤리 따질 것도 없이 JvA는 국가원수와 절친인 사장이 운영하는 업체라서 그리고 무엇보다
비만의 주범인 달달하고 짜고 기름진 음식을 팔아 챙긴 돈이지만 에이햅 군대를 유지할 임금과 군복을 지원해주니
JvA사의 제품엔 에이햅작전 수행에 적합하다는 인증마크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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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덕 시티가 어떤 나라를 풍자하는지 대강의 감이 온다.
자본력을 앞세워 햄버거와 피자로 대표되는 패스트푸드를 글로벌화시킨 단일패권국가, 미국.
지난 2002년 비만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국민의 허리둘레에 각종 제도와 규제를 실제 시행한 국가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전 인구의 2/3가 비만인이라는 현실에 주저앉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슬림한 몸매로 스크린을 누비며 사회적으로 거식증 찬양열풍까지 불러 일으킨 것도
미국 아닌가. 다이어트 열풍으로 성형수술과 다이어트약을 거침없이 권하는 사회 또한 미국의 모습이다.
더불어 한편,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되어가고 있다.
패스트푸드와 다이어트를 동시에 강요하는 현대 사회의 부조리를 풍자하는 덕 시티는
사람이 아닌, 오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비뚤어진 사회와 극단적인 정부정책을 비꼬았단 점에서
최고의 정치풍자우화소설로 손꼽히는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연상시키도 한 책이다.
한 번 읽을 때의 감상과 두 번 펼쳤을 때의 생각의 폭이 달라진 덕 시티.
책장에 모셔두고 간간히 사회 비판적인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 펼쳐볼 만한 고전 못지않은 현대소설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