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는 '절대 죄악'의 시대였다. 이와 같이 모든 수단은 그 절대 죄악을 심연으로 몰아넣기 위해 정당화되었다. 하이데거와 그의 제자들은 모두 '전선 세대'에 속해 있었다. '전선 세대'들이 잠깐이라도 허무주의에 관심을 보인 것은, 어떠한 영구적인 가치가 구축되려면 그 전에 대규모의 파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확신에서 비롯된 당연한 귀결이었다. (p. 73)
하이데거는 정권이 쓰라린 최후를 맞이할 때까지 나치당에 당비를 낸 당원이었다. 그는 지속적으로 '히틀러 만세!'라는 이른바 '독일식 인사'로 강의를 시작했다. (p. 77)
하이데거의 제자들은 그 프라이부르크 현자와 운명을 같이함으로써, 미래 철학의 정점에 이르렀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다른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하이데거의 새로운 '실존' 철학은 신칸트주의, 헤겔주의, 그리고 실증주의와 같은 당대의 지배적인 독일 강단 철학의 진부한 아카데미즘을 좌절시켰다고 느겼다. 그런 그의 갑작스러운 나치즘으로의 전향은 유대인과 비유대인을 포함한 대부분의 제자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만일 누군가 그의 초기 실존철학의 이데올로기적 요소를 주의 기피게 재구성한다면, 그의 정치적 전환은 전면적인 단절로 보이지 않는다. (p. 79~80)
통일된 정치 세력으로서 반유대주의가 갖는 잠재력은 과소평가될 수 없었다. 베를린에 충성하는 것보다 고백적·문화적·지역적 분할이 종종 보다 더 중대한 문제가 되는 독일 정치의 독특한 성격을 감안할 때 말이다. 반유대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유대인들을 대량학살하는 것만이 '병-폐'로서의 근대성이 갖는 독성을 올바로 치료할 수 있었다. (p. 100)
1930년 히틀러가 권력을 손에 쥐고 나치가 반유대주의적 조치를 확대함에 따라, 의미 있는 유대인 정체성을 탐색하는 일은 독일에 남아 있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긴급한 문화적 의무가 되었다. (p. 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