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페의 음악
장자크 상페 지음, 양영란 옮김 / 미메시스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윙이 넘치는 삽화가,

장자크 상페가 사랑한 음악과 음악가들

장자크 상페 의 삽화를 눈여겨 보게 된 것은 <승부> 라는 파트리크 쥐스킨트 의 책을 보면서 부터였다. 예쁘게 새로 편집되어 나온 책을 읽으며 오래전 읽은 <좀머씨 이야기> 도 생각나고, 세월이 지나서인지 전에는 그림보다 글이 눈에 들어왔던 책이 지금은 글보다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글이 직접적으로 전해주는 의미와 또다르게 삽화가 간접적으로 전해주는 의미에 더 풍성한 여운을 느끼며 상페의 그림책들을 몇 권 찾아 읽어보기도 했다.

이 책은 저널리스트 마르크 르카르팡티에와 '음악'에 대해 인터뷰한 것을 엮은 책이다. 상페는 어렸을때 여건이 허락했다면 음악가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생계를 위해 시작한 삽화일이 직업이 되고 안정을 마련한 이후 자신이 좋아하던 음악에 본격적으로 심취한 것 같다. 상페가 사랑하는 다양한 음악의 경쾌함을 스윙으로 압축시켜 말해본다면 그의 흐르는 듯한 필체의 그림은 분명 스윙이 넘쳐나고 있다.

상페의 그림이 좋아서 그림책인줄 알고 선택했던 이 책이 그림책이 아니라 인터뷰책이었음을 책을 읽기 시작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림과 짧은 문장들이 어우러지면서 전해주던 유머와 감동이 있는 기존에 읽었던 그런 상페의 책은 아니었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컸는지 상페라는 작가에 대해 조금은 알게 해주는 책이었다.

그가 걸어온 예술가로서의 궤적을 기뻐해야 할까, 아니면 안타까워해야 할까? 스스로를 기꺼이 <그림 그리는 문필가>로 정의하곤 했던 사울 스타인버그의 말을 빌려 이 질문에 감히 대답해 보자면, 상페는 <그림 그리는 음악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스윙이 넘치는 삽화가이다. -마르크 르카르팡티에- (p. 9)

상페를 인터뷰했던 마르크 르카르팡티에는 그를 '그림 그리는 음악가' 라고 표현했지만, 내가 읽어온 상페의 책을 바탕으로 생각했을때 내게 상페는 <음악을 그리는 삽화가> 였다. 어느 책에서건 상페의 책 속엔 늘 음악에 관련된 그림이 빠지지 않았고 그림을 보고 있을 뿐인데도 음악이 들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 상페는 너무나 열렬하게 음악을 숭상하고 음악가에 대한 꿈이 있었다지만, 나는 음악을 그릴 줄 아는 삽화가로서의 상페가 훨씬 좋다. 그의 그림엔 늘 음악이 흐른다.

당신은 음악에 미쳐 있으면서도 그림 그리는 일을 합니다.

나는 그림 그리는 일을 하는 거 맞습니다. 그런데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종이 한 장과 연필 한 자루를 마련하기가 피아노 한 대를 장만하기보다는 훨씬 쉽기 때문이지요. (p. 14)

 

상페가 음악을 했어도 아마 잘 했을 것이다. 인터뷰 내용을 읽다보니 음악적 능력도 출중한 것 같다. 하지만 음악을 했다면 상페 특유의 그림을 통한 유머는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내게는 상페가 삽화를 그려서 다행이다.

 

상페의 그림은 쉽게 대충 그린것 같은데 너무 잘 그렸다는 점이 놀랍곤 하다. 선 몇개 그은 것 만으로도 그의 삽화는 무엇을 전달하고자 했는지 거의 완벽하게 보여주곤 한다. 하지만 이렇게 쉬워보이는 그림도 내가 그리면 당연히 이렇게 그릴 수가 없다. 그리고 상페자신도 이런 그림을 그리게 되기까지 무수한 노력이 필요했음을 말하고 있다.

음악이니 연주니 하는 건 무엇보다도 기술의 문제입니다. 그림도 마찬가지고요! 사람들은 언제나 영감을 말하지만, 사실 연습과 노력의 문제인 거죠. (p. 20)

 

상페의 인터뷰를 읽다보면 그가 품어온 음악에 대한 열정이 정말 놀랍다.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순수한 것이 느껴진다. 그가 좋아하는 음악들은 내겐 너무 옛날의 오래된 음악들이지만 그가 음악을 대하는 마음 만큼은 어렸을 때의 그마음 거의 그대로라는 것이 전달되어서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상페는 작사,작곡도 틈틈이 하고 있었다.

이제는 우리가 당신의 작사가이자 작곡가, 요컨대 창작가로서의 지위에 대해서 말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만.

내가 보관하고 있는 어느 상자 속엔가 책이 한 권 들어 있는데, 아마도 나는 그걸 절대 못 끝내지 싶어요. <올리브의 결혼>이라는 제목으로 고양이들을 전면에 내세운 이야기책입니다. (p. 45) 엄청 많이 썼죠. 모두 곡을 붙인 건 아닙니다. 곡과 노랫말 때문에 내 머리가 너무나 복잡하죠. (p. 46)

그래도 암튼 머릿속엔 있다는 말이죠?

엄청 많이 들어 있죠. (p. 46)

상페가 작사, 작곡 하고 무대의상과 무대연출까지 한, 고양이들이 등장하는 코미디 뮤지컬이 개막되기를 기다려봐야 하려나 ㅎㅎㅎ

당신은 유쾌한 존재입니까? 유쾌하기보다는 위로가 불가능한 쪽입니까, 아니면 위로가 불가능하기보다는 유쾌한 쪽입니까?

내가 보기엔 유쾌한 쪽입니다. 어렸을 땐 늘 유쾌했어요.

여러 주변 상황에도 불구하고 말입니까?

다른 사람들 덕분에! 내가 몹시 좋아했던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나의 삶을 구원해 줬죠. 그래요, 그 사람들은 유쾌한 사람들이었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비록 이따금씩 비극적인 짓을 한다고 해도, 대체로 유쾌한 사람들입니다. (p. 96, 97)

상페가 말하는 유쾌함은 그저 밝다거나 가볍다거나 하는 것과는 좀 다른 성격의 것이다. 멜랑꼴리가 함께 하는 유쾌함이랄 수도 있는데... '웃픈'의 반대라고나 할까....

경쾌함은 어리석음과 정반대죠.

시대가 유머러스한 그림마저 사라지게 하고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사실이에요!

그리고 보니 당신은 화석 같은 존재로군요.

솔직히 나도 몹시 불안합니다.

사실 프랑스엔 더 이상 유머러스한 삽화라는 장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있다해도 아주 드물고요. (p. 100, 101)

상페의 그림은 경쾌하고 유머러스 하다. 서양식 유머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편이지만, 상페가 사랑해마지않는 유머라는 게 무엇인지 조금은 알것 같다. 하지만 상페도 인정하듯이 시대가 많이 변했다. 장자크 상페는 1932년생이다. 그의 전성기와 지금은 달라도 정말 너무나 다르다.

 

드뷔시, 라벨, 사티... 이들이 당신의 3인방인가요?

나에게 제일 위대한 3인은 드뷔시, 라벨 듀크 엘링턴 이죠.

그리니가 난 클래식 음악을 두고 말하는 겁니다.

클래식 음악이다, 아니다 같은 구분은 없습니다.!

아, 그래요?

네, 없어요. 드뷔시는 클래식 음악이 아니라 그냥 음악입니다! 마찬가지로, 엘링턴과 라벨 사이엔 아무런 차별도 있을 수 없습니다. (p. 134)

상페는 음악을 구분하지 않는다 했지만, 사실 그가 좋아하는 음악의 분야는 특정적인 분야로 보였다. 클래식, 재즈, 샹송.

그의 그림엔 클랙식 연주장이자 클래식 악기들이 자주 등장한다. 피아노도 꼭 그랜드 피아노이다. 항상 스탠드 마이크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은 댄스홀에서 왈츠를 추는 것으로 보인다. 상페가 좋아하는 음악은 아마도 느낌이 찐~한 그런 류인것 같다. 모짜르트도 바흐도 그는 즐기지 않는다. 그의 음악적 감성은 프랑스식 유머 혹은 프랑스식 경쾌함 이라고나 할까... 1950~70년대의 벨 에포크 라고 할만한 그런 분위기의 곡들이라고나 할까...

혹시 최초로 뮤지션들을 그렸을 때를 기억하나요?

뮤지션들에 대한 그림이라고요?

아니면 음악에 대한 그림이라도 좋고......

내가 오래도록 보관하고 있었는데, 결국 분실했어요. 악기를 팔던 상점 앞을 고양이가 지나가는 그림이었죠. 내용이라곤 그게 전부였어요. (p. 153)

왜 다시 그려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궁금한데...

당신은 현실을 그대로 복사해서 그리기보다는 암시하는 편을 선호하나요?

네, 내 클라리넷들은 정확하지 않고, 내 자전거들은 굴러가지 못합니다! 나라고 그런 게 자랑스럽진 않지만, 어쨌거나 난 내가 할 수 있는 걸 할 뿐입니다. 그건 확실해요! (p. 161)

책의 뒷부분 1/3 정도는 음악과 관련한 상페의 삽화들로 채워져 있다. 아무런 멘트 없이 악기와 함께 그려진 사람들의 모습들이 담긴 그림을 보다보면 음악적 삶에 대한 희노애락이 느껴진다고 해야할까... 어린아이때부터 노년까지 평생을 음악과 함께 살아온 상페의 시간들이 느껴진다고 해야할까... 하여튼,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최선을 다해 한다는 말이 음악이 되어 깔려있는 듯 각양각색의 음악하는 사람들이 모두 편안해 보였다. 이 책을 통해 상페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알 수 있게 되긴 했지만 삽화 속 암시를 찾아내는 재미가 있는 상페의 그림책들이 훨씬 재밌었던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