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는 거짓말 - 우울증을 가리는 완벽주의 깨뜨리기
마거릿 로빈슨 러더퍼드 지음, 송섬별 옮김 / 북하우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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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을 가리는 완벽주의 깨뜨리기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어 보이지만 무엇인가 잘못되어가고 있는데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른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걸까?

'내가 우울하다고? 난 그저 바쁜 것뿐...'

저자가 완벽주의와 우울증의 관계를 연구하는 동안, 겉으로는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많은 이들에게서 자신들은 어린 시절부터 갖게 된 완벽주의라는 생존전략이 자신들을 보호해주었지만 동시에 짐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25년간 심리학자로 살아오면서 완벽하게 숨겨진 우울의 치료제는 진정한 자기수용, 즉 나의 강함이나 취약함 중 하나만이 나를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고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그 깨달음을 전해주려 한다.

집 안의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쓰레기통은 말끔히 비워져 있었다. 냄비와 접시는 조리대 위에서 건조 중이었고 행주는 아직 축축했다. 아이들 장난감은 소파 옆 정리함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침실 역시 침대만 제외하면 흠 하나 없이 정돈된 상태였다. 널브러진 옷가지나 신발도 없었다. 구석에 있는 책상 역시 종이 한장 없이 깨끗했다. 완벽하게 깔끔한 자살이 될 뻔했던 것이다. 내가 우울증에 대한 통상적인 기준에 의문을 품게 된 것, 그땐 깨닫지 못했지만 완벽하게 숨겨진 우울 개념을 정립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날이다. (p. 18)

어느날 저자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상담자의 남편이었는데 아내와 통화시 느낌이 이상했다며 집에 가달라는 부탁을 한다. 원칙적으로는 상담자의 집에 가는 것이 규정상 어긋나지만 바로 옆집인데다 남편이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라 혹시나 하는 걱정스런 마음에 저자는 상담자의 집에 가본다. 저자는 911을 불러야 했다.

이 상담자는 직업상 큰 성공을 거두었고 유명했으며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타입이었다. 모든 일에 성실하기 그지없이 임했고, 아이들에게는 세심하고도 열성적인 어머니였다. 아이들의 학교에서도 지역사회에서도 봉사활동을 했다. 그녀는 우울하다기보다는 불안하고 바짝 긴장해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상담초기 저자가 직접적으로 묻지 않았다면 그녀는 과거의 상처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을 터였다. 그녀는 부모, 특히 자신이 무엇을 해도 흡족해하지 않는 어머니에게 얽매여 있었다.

주어진 일을 완수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으로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그러한 삶에 지치고 힘들어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혼자 책임지는 사람들 중에는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보면 완벽한 사람이 정작 스스로에게는 자살충동을 느끼는 사람들 중에는 이 사례처럼 '숨겨진 우울'을 갖고 있을 수 있다. 완벽주의는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마다 더 깊은 우울의 우물을 파게 만든다.

저자는 상담가로서 다양한 사례들을 활용하고 있기도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했음을 고백한다. 내담자들의 치유의 과정이자 자신의 치유의 과정이 녹아있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블로그에 올렸는데 글이 입소문을 타고 책으로 나오게 되면서 긍정의 기운을 듬뿍 얻은 저자는 자신의 경험이 다른 이들에게도 긍정의 에너지를 치유의 힘을 북돋울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책의 목적은 심리치료사의 도움이 있건 없건 당신이 내면의 변화를 이룰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주는 것이다.

완벽한 페르소나라는 감옥에서 한 발짝 나온 당신은 자기수용, 그리고 취약함 속의 힘이라는 평화를 찾게 될 것이다. (p. 25)

쉬운 일처럼 포장할 생각은 없다. 이 과정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감옥에서 벗어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타인에게 베푸는 것과 타인으로부터 받는 것 사이에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수치심이 내가 가치 있는 존재라는 감각을 방해하고, 취약함이 흠결이라고 여겨질 때, 바로 그때 완벽하게 숨겨진 우울을 생각해야 하는 순간이다. (p. 26)

이 책은 앞에서부터 차근차근 읽어나가야 하는 책이다. 저자는 단계적으로 자신이 제시하는 성찰과제들을 수행해가며 이 책을 읽어나갈 것을 제안한다. 그렇게 조금씩조금씩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고 글로 적어보고 사례들을 읽다보면 저자의 조언이 조금씩조금씩 마음에 스며들어 올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누군가 '괜찮아요?' 라고 물었을 때 '괜찮아요' 라고 했던 대답이 거짓말이었음을 인정하는 것만 되도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저자는 이 책을 읽으며 스스로 해나가야 할 작업은 '완벽하게 해내야 하는 또 다른 숙제가 아니다. 완벽한 해답도 완벽한 해결책도 없다' 라고 강조한다. 저자의 제안들을 다 수행하지 않아도 괜찮다. 수행하지 못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자기만의 속도로 나아가는 것이다. 목표가 아니라 과정에 의미를 두며. 삶이 죽음이라는 목표를 향해가는 시간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생'이라는 과정을 충분히 느끼는 과정에 의미가 있는 것처럼.

완벽하게 숨겨진 우울을 겪는 사람들은 통상적 우울증 환자처럼 보이지 않는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슬퍼 보일 것이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에너지가 없을 것이다. 무기력하고 불안해하면서 매일 잠만 잘 것이다. 이런 생각 때문에 당신은 자신이 우울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게 된다. 적어도 완벽하게 숨겨진 우울이 무엇인지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사실 당신은 울적하거나 막막하다는 감정을 털어놓았을 때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게 될지 두렵다. 당신은 정신질환이라는 낙인이 두렵다. 당신은 수많은 압박감과 상실감을 견뎌냈다. 무엇보다도 우울을 인정하는 건 흠결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완벽주이자인 당신에게 흠결이란 숨겨야 하는 것인데 말이다. 무언가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당신이 자살을 할지도 모르는데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른다. (p. 38, 39)

자신이 말하는 고통과 자신에게 허용한 감정 표현 사이의 정서적 단절감을 보이며 감정을 표현하기 보다는 설명하는 경향이 있고,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할 때 그 책임을 항상 떠맡는 것이 차라리 마음 편하며, 그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의 취약점을 드러내려 하지 않아 모든 것을 완벽하게 처리하는 걸로 보이는 사람은 빠져나올 수 없는 순환구조에 빠지게 된다. 걱정은 통제욕구를 부르고, 통제욕구는 다시 더 큰 책임감을 부르며, 결과적으로 지쳐버리고 그러면 숨겨진 분노나 억울함이 생긴다. 그런데 이런 마음상태를 아무도 모르게 한다. 그렇게 갑자기 자살을 택한 가족을 둔 사람들은 저자의 글을 읽고서야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숨겨진 우울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주는 것은 편해도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전혀 상반된 두 그룹의 친구를 사귀기도 한다. 서로를 모르는 두 그룹의 친구들은 자신들이 아는 모습으로만 이해할 테니 결국 우울한 완벽주의자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채 진정한 자신을 모르게 된다. 친구들도 자기자신도 아무도 자신을 모른다. 지독히 외롭고 지치게 된다. 완벽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일상을 꼼꼼이 살아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많은 부분에 공감이 갈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의사는 아니다. 따라서 정확한 진단과 처방은 의사를 찾아가도록 자주 언급하고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완벽하게 숨겨진 우울은 진단명이 아니다. 정신장애도 아니다. 완벽하게 숨겨진 우울이란 우울증을 가릴 수 있는 (일련의 행동인) 증후군을 가리키려 만들어낸 용어다. 정신의학이나 심리학 교과서에 나오는 용어가 아니다. (p. 81)

병증까지는 아니더라도 치유가 필요한 심리상태에 대해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저자는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모든 치유의 시작은 정확히 아는 것부터 시작되므로.

저자가 종종 언급하듯이 심각할땐 병원에 가야 한다. 치유차원에서 해결이 안되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이 책은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에너지가 남아 있는 사람에게 유용할 수 있는 책이다.

통상적 우울증 치유이 주목적은 한 사람을 외부 세계와 재연결시키는 것이다. 즉 가족, 친구, 목적과 다시 관계를 맺고, 자기 안으로의 침잠과 자기파괴를 그만두고, 자신과 자신의 삶을 혐오하는 악몽을 누그러뜨리고자 한다.

완벽하게 숨겨진 우울 치유의 일반 목적은 한 사람을 자신의 내면세계, 즉 확고한 신념과 숨겨진 감정이 존재하는 세계와 연결시키는 것이다.

통상적 우울증이 활력결핍상태라면, 완벽하게 숨겨진 우울은 자기수용이 결핍된 상태다.

당신이 알고 있는 강점과 능력에서 불안과 취약함에 이르기까지, 당신의 자신감과 성취에서 후회와 회한에 이르기까지, 당신이라는 사람의 다양한 면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연습하는 자기수용-이것이 바로 완벽하게 숨겨진 우울의 치료제다. (p. 95~97 발췌 )

저자는 우울증과 다른 정신의학적 병들로부터 범위를 줄이고 줄여 '숨겨진 우울' 에 집중한다. 이 증후군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돕고나서 단계적인 치유를 시작한다. 하지만 완벽주의 덕분에 현재 자신의 모습이 된 사람들이 변하려는 마음을 먹는건 쉽지 않다. 완벽하게 잘 해왔는데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상담소를 찾고 이 책을 손에 들게 된 사람이라면 그런 용기를 이미 시작한 것임을 저자는 상기시킨다.

이 장에서 당신에게 전하고자 하는 교훈도 비슷하다. 우리는 강점뿐 아니라 약점까지 내보일 때 평온해지고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제 감정을 절제하지도 숨기지도 않게 된 당신은 불편한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다시 진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질투심, 억울함, 화, 두려움, 슬픔, 수치심, 심지어 완벽해 보이고 싶은 욕망까지 이제는 인정할 수 있고 이런 감정들의 존재에 연민을 느낄 수 있다. (p. 208)

취약함을 받아들이고 나면 도전하기가 더 쉬워진다. 실패하거나 힘겨워한다 해도, 성공처럼 실패나 힘겨움도 당신이라는 사람을 정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당신은 실패로부터 배운다. 실패를 숨길 필요가 없다. 취약함을 받아들일 때 자유가 함께 온다. (p. 246)

심리치유 관련 책을 읽으면 '마음챙김' 수련이 항상 나온다. 이 책에서 또한 그렇다. 동양의 명상 혹은 불교적 성찰과 비슷한 마음챙김은 '지금 여기' 에 집중하고 '나' 에 집중하며 자신을 가둔 틀에서 벗어나 좀더 평안하고 자유로운 자신이 되도록 도움을 준다. 무감하지만 완벽하게 사는 것과 불완전하지만 희노애락을 느끼며 사는 것 중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어떤 일의 단점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긍정적인 장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조금 불평한들, 뭐 어때? 우리 모두 가끔은 조금씩 불평해도 괜찮다. (p. 270)

상대의 부정적인 반응을 마주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이 세운 경계를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상대의 반응이 무엇이건 간에 상대와 나 사이의 경계를 명확하게 긋는 것이 중요하다. (p. 322)

이분법으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은 참 쉽다. 이쪽저쪽 다 생각해보고 이쪽저쪽 다 그럴수 있다고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것은 어렵다. 너그럽게 받아들이기는 커녕 불평하기 일쑤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그럴수도 있지 뭐! 함부로 감정이입하지 않고 건강한 경계를 유지하는 것 그런 훈련을 해나가는 과정이라고 여기면 된다.

당신은 그들을 당신의 여정에 데려갈 필요가 없다. 당신이 할 일은 스스로를 치유하는 일이니까. 능력이라는 말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보자. 능력이 없는 것은 주기를 거부하는 것과 다르다. 철물점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달라고 할 수는 없다. 상대가 당신에게 무언가를 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무엇이 없을 수도 있다. (p. 325)

혼자 완벽하게 살기보다 함께 공감하며 사는 방법을 알려주고자 하는 저자는 치유의 단계에서 주변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주변사람들에 대해서 건강한 경계를 잘 세운다는 것은 상대가 나와 같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상대방과 충분한 협조적 관계가 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그 상황을 잘 이해하고 넘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과정이 한번에 단숨에 될리 없다. 재발할 수도 있고 사례중에서도 상담을 중단한 사람들이 있기도 했다.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당신은 불완전함과 취약함에도 불구하고 지켜야 할 존재가 아니라, 바로 그 불완전함과 취약함 때문에 가치 있는 존재다. 당신은 당신의 능력때문이 아니라 당신이라는 존재 자체로서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 당신은 통제되어 있는 것처럼 보여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감정과 연결되어 감정을 받아들이고 감정이 당신을 이끌도록 허락할 수 있는 사람이기에 강하다. (p. 329)

앞서 저자가 말했듯이 우울증 관련 책들에서는 대부분 스스로의 늪에 빠진 사람을 외부로 다시 끌어내고자 조언해주곤 한다. 다시 일어서라고 힘을 내라고 응원하곤 한다. 하지만 활발하고 에너지 넘치게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마음에 늪이 있다는 것을 이토록 정확하게 짚어내고 조언해준 책은 이 책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우울증이 흔한 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우울증에 대한 인상은 비교적 단순한 편이다. 하지만 감기바이러스가 변종되고 다양하듯이 마음의 감기도 복잡하고 다양할 수 있음을 저자는 명료하게 풀어내주고 있어 의미깊게 다가온 책이었다. 열심히 잘 살고 있는것처럼 보이지만 피곤하고 힘들다는 내색을 못하고 있는 이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무엇을 선택하건 완벽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p. 330)

그래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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