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블랙독을 처음으로 연관 지은 작가는 새뮤얼 존슨이었다고 한다. 이 책의 첫머리에 추천사를 쓴 '블랙독 연구소 소장' 은 이 비유에서 자신이 일하고 있는 연구소의 이름도 따오게 되었다고 설명하며 블랙독의 이미지가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어져 왔고 이 책의 접근방식 또한 여러가지 영감을 불러일으켜서 감동적인 메세지를 전달해주고 있으니 읽어볼 것을 권하고 있다.
새뮤얼 존슨의 우울증에 대해서는 얼마전 읽은 다른 책을 통해서도 확인한 바 있었다. 존슨이나 처질 외에도 역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이들중에서 의외로 우울증을 갖고 살았던 사람이 많다. 우울증 때문에 굳이 요절하지 않았더라도 평생 내적고난에 시달리며 산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크던작던 많은 사람들이 블랙독 한마리쯤 다들 키우고 살았다는 의미가 아닐까.
감기처럼 흔하다고 해서 요샌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 라고 표현하기도 하던데, 나는 이 표현이 너무 가벼운 것 같아서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우울증을 갖고 있는 사람의 주변인들은 감기처럼 우울증이 약 며칠 먹고 잠 며칠 푹자고 훌훌 털어버렸으면 하는 생각에 그렇게 가볍게 표현하는 것이 편하겠지만, 당사자는 그렇게 가볍게 취급되는 자신의 마음이 더 힘들게 되지 않을까? 가까운 사람이 어둠에 휩싸여 있다고 해서 굳이 서둘러 환하게 불을 켜주려고 하기 보다는 어둠이 점점 흐려지고 밝음이 잔잔하게 스며들 수 있도록 천천히 공감해주고 천천히 기다려주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섣부른 위로의 말보다는 가만히 옆에 함께 앉아있어 주는 것이 때론 더 큰 위안이 되는 것처럼.
몸이 추우면 감기가 들듯이 마음이 추우면 감기가 드는 것도 맞는 말이지만, 마음은 감기에 걸린다기 보다는 구멍이 뻥 뚫리는 셈이기 때문에 메꿔질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그 커다란 구멍을 블랙독이라는 형체로 그려냄으로써 좀더 편안하게 우울증에 젖어든 심리상태를 그림으로나마 직면하게 해준다. 자신의 경험을 고스란히 담은 그림들은 친근하게 다가온다. 블랙독은 무섭지 않고 때론 친구처럼 가족처럼 일상을 함께 한다. 하지만 함께 하면할수록 '나'를 힘들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나'는 블랙독과 천천이 이별하는 노력을 시작한다.
글줄이 많지 않은 그림책이므로 마음만 먹으면 십분도 안되서 휘리릭 볼 수 있는 책이지만, 그림책이란 것이 늘 그렇듯 그림 한장한장 생각하고 넘기다보면 한참을 붙잡고 있게 되는 책이기도 한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블랙독과 함께 사는 청년의 일상을 보며 때론 블랙독에게 눈길이 가고 때론 청년에게 눈길이 갈 것이다. 읽을때마다 마음에 드는 그림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 또한 이런 심리그림책의 매력이다.
중요한 것은 공감과 이해이다. 이 책이 선사하는 편안함과 응원이 이 책을 곁에 두고 가끔씩 꺼내볼 독자들에게 심심찮은 위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