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것의 종말 - 과학으로 보는 지구 대재앙
밥 버먼 지음, 엄성수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지구는 언제 사라질까?

과학자가 제대로 알려주는 우주적 차원의 종말 시나리오

책에 대한 제대로 된 소개는 앞표지 보다 뒤표지에서 더 정확히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책도 그런 경우다.

'과학으로 보는 지구 대재앙의 역사' 라는 부제에서 내가 꽂혔던 부분은 '역사' 였다. 지구에서 일어났던 다양한 '재앙'과 '종말'의 역사를 '과학'적으로 읽을 수 있을 책이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이 책은 '역사'를 다루고 있진 않았다.

이 책의 원제는 'EARTH - SHATTERING 세상이 깜짝 놀랄' 이라는 숙어적 표현이던데... '지구종말' 정도로 이해해도 무방할 듯 하다. '거의 모든 것의 종말' 이라기 보다는 천문학 전문 작가가 생각해본 우주적 시점의 지구 격변 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과거에 일어났고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으며 미래에도 일어날 전 지구적인 대격변 내지 재앙들을 사실에 입각해 자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p. 10)

대격변들이 언제 어떻게 일어났는지, 그 결과 지구와 그 생명체들에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어떤 대격변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더 높은지, 이런 것들이 이 책이 다루고자 하는 주제이다. (p. 18)

우주는 너무 멀고 거대하고 체감되는 바가 거의 없다. 하지만 지구는 우주 속의 작은 행성이고 지구의 생애는 인간의 시간보다는 우주적 시간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 과학적이긴 하다. 이 경우 과학적 설명이 더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랄 수도 있지만;;; 여하튼, 저자는 우주의 대격변들 속에서 지구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우리 지구와 태양은 바로 이 밀키웨이 은하계, 즉 은하수 안에서 태어났고, 둘 다 초기에는 조용할 날이 없었다. 지구가 생겨나고 처음 10억 년간은 허구헌 날 일어나는 대혼란 속에서도 고통받는 생명체가 없었다. 그러다 최초의 생명이 신비스럽게 나타나기 직전에 지구는 아카데미 최우수 격변상을 받을 만한 대충격을 받는다. 화성처럼 지름이 약 6,400킬로미터나 되는 행성과 충돌했기 때문에 화성과의 충돌이란 말을 쓸 수도 있으리라. 그 행성은 초속 12킬러미터 속도로 정면충돌해 지구를 완전히 파괴시켰으며, 그 후에 테이아Theia라 불리게 되었다. 우리 지구는 궤멸을 면치 못했다. 우리 지구의 가장 두껍고 가장 중요한 층인 맨틀이 테이아 전체와 충돌하면서 산산조각난 것이다. 테이아 잔헤들이 지구 잔해들과 뒤섞이면서 녹아내린 지구의 핵 속으로 내려앉았고, 오늘날까지도 거기에 남아있다. 그렇게 지구는 사실 테이아와 합쳐진 혼혈 행성이 되었다. (p. 38~39 발췌)

지구가 혼혈행성이었다는 것은 처음 읽어보는 내용이었다. 우리 은하 안에서 태양계 행성들이 생겨나던 초기 지구도 그냥 생겨난 것인줄 알았는데 지구는 지구 테이아 라고 이름붙인 커다란 행성과의 혼혈행성이었다. 그때 충돌이 없었다면 아마도 태양계 안에 테이아 라는 행성이 더 있었을 것이다. 화성보다 더 가까이에서 지구와 함께 태양주변을 돌고 있었을지도... 여하튼, 산산조각난 지구가 지구와 관련된 '최초의 대격변'이라 할만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그 산 증거를 우리는 매일 보고 있다고. 바로 '달' 이다. 달은 그냥 지구의 위성이라고만 여겼었다. 하지만 저자가 알려주는 '달'의 특성은 굉장히 독특했고 굉장히 중요한 존재였다.

아리스타르코스는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으며, 스스로 지축을 중심으로 자전하고 있다는 얘기를 처음으로 한 사람이다. 아리스타르코스는 달과 태양까지의 대략적인 거리도 계산해냈다. 이는 천문학 역사상 보통 큰 사건이 아니었다. 1세기 후 그리스인 히파르코스가 850개의 별의 지도를 만들었고, 다시 약400년 후에 그리스인 프톨레마이오스가 그 지도에 170개의 별을 보탰다. 1,000개 이상의 별이 담긴 그 지도들은 르네상스 시대에도 귀한 자료가 되었으며, 1725년까지는 더 나은 지도가 나오지 않았다. 프톨레마이오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빛의 밝기 분류법을 만들었다. 그의 밝기 분류법은 현대 천체물리학자들도 아직 사용 중이다. (p. 55)

기원전 200년 경부터 세계의 전혀 다른 지역에서 하늘을 관찰하던 사람들이 하늘의 변화를 연대순으로 꼼꼼히 기록하고 있었다. 중국인들이었다. 히브리인처럼 고도로 체계적인 문화와 문자 언어를 가졌던 초기의 주요 문명권 사람들이 천체 현상 기록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다른 문명권 사람들이 천체 현상을 집요하게 기록했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히브리인의 경우 종교심이 워낙 강해 천체 현상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던데 데 반해, 중국인은 지구와 천체 간에 연관성 같은 걸 발견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p. 57)

불가능해 보일 만큼 밝은 이런 새로운 별이 1,500년 전에 나타났다면, 탐구심에 불타는 그리스인들이 많은 기록을 하고 별의 특성에 대해 이런 저런 추측들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11세기의 유럽에서는 전혀 다른 반응이 나왔다. 별이 무려 1년 넘게 밤하늘을 지배했는데도 그야말로 쥐죽은 듯 조용했다. 이유는 뻔했다. 하늘과 그 속에 있는 모든 것은 '천국의 영역'이며, 기독교 고리에 다르면 천국의 영역은 변치 않는 불변의 영역이었다. 어쨌든 당시 전 유럽을 통틀어 그 어떤 연대기도 우주의 이 무례에 대해 일언반구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과 중동 지역에서는 모든게 달랐다. 두 지역의 필경사들은 갑자기 나타난 이 새로운 별에 대해 자세히 적었다. (p. 78)

기원전 3세기 고대 그리스인은 이미 태양과 지구의 관계를 밝혀냈다. 하지만 그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인정받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음에도 저자는 고대 히브리인들을 고도로 체계적인 문화와 문자언어를 가졌다고 이후 기독교시대에 천문관측은 의미가 없었을 뿐이라고 간단히 넘기면서 중국인들의 기록에는 흥미롭다고 한다. 서양고대인들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고대인들도 고도로 체계적인 문화와 문자 언어를 가지고 있었고 다른 종교관을 가졌기에 천체 현상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것이라고 표현해 줄 수는 없었을까... 서양중세시대에 뻥 뚫려 비어있는 천문학 자료들을 중국과 중동지역에서 얻어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서양노학자에게 그건 어려운 관점인 것일까... 어쨌든, 우주의 대격돌을 제대로 파악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고 저자가 본격적으로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서양중세시대 이후의 이야기들이다. 이 책은 역사책이 아니므로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묘한 일이지만, 이 특별한 폭발들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 타이밍 때문이다. 1572년 첫 번째 초신성 폭발이 있었을 때, 유럽은 이제 막 암흑기를 대체할 새로운 과학 탐구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두번째 폭발을 계기로 이 같은 새로운 계몽 시대로의 변화는 더욱 공고해졌다. 두 차례의 폭발은 공식적으로 sn초신성1572와 sn1604로 기록되고있으나, 그들의 유명한 이름인 '티코의 별' 과 '케플러의 별'은 지금도 그대로 쓰이고 있다. (P. 89~90)

우주... 신성... 초신성에 대한 이야기들은 무척 천문학적인 이야기들이었다.;;; 중요한 것은 우리와 아무 상관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멀고먼 저 아득히 먼 어딘가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만 여길것이 아니라 지구와 지구에 사는 인간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우주대격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

우주이야기를 어느정도 마무리하고 나면 본격적으로 '지구의 대격변들' 이야기로 들어간다. 하지만 이 챕터에서 주로 다루어진 내용은 천문학적인 내용이 아니라 '핵'위험에 대한 경고였다.

유감스럽게도 20세기에는 세계 인구의 1퍼센트(이는 우리가 설정한 대재앙의 또 다른 기준이지만)이상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건이 세 차례나 있었다. 이제부터 잠시 1918년의 이야기를 하려는 이유이다. (P. 216)

1918년은 세계1차대전시기이기도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재앙은 '독감' 전염성이다. 그리고 2차대전 마지막으로 핵(폭탄 과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다. 이 책의 본문이랄 수 있는 '지구의 대격변들' 에서 앞서서 풍기던 천문학의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지구를 종말로 몰아넣고 있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핵' 이다. 하지만 저자는 천문학자이고 이 책의 주요 소재는 우주적 격변이기에 마무리는 다시 천문학으로 돌아온다.

우리가 탐구해온 재앙들 중 일부는 지구에서 일어났다. 또 어떤 재앙들은 우리 지구와 가까운 우주 공간 안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보이지도 않을 만큼 먼 데서 일어나 그 주변을 파괴시키는 재앙은 우리에게 별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안 그런가?

꼭 그렇지는 않다. (P. 311)

마무리장은 3부는 '내일의 대격변들' 이다. 미래는 알 수 없기 마련이고 따라서 섣부른 예측은 위험하기에 가장 적은 분량일 수밖에 없을 터.

두 은하계는 초당 약96킬로미터씩 거리가 줄고 있어, 수십 년에 걸쳐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그리고 2012년에 나온 NASA의 연구를 통해 이런저런 의문들이 다 사라졌다. NASA는 두 은하계는 조금도 빗나가지 않고 그야말로 완전히 정면충돌하게 될 거라고 결론내렸다. 앞으로 약 40억년 후면 불꽃놀이가 시작된다. (p. 328)

우주 전체에서 흔힌 있는 일이지만, 은하계들은 보통 그 은하계 너비의 20배 정도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그런 상태에서 서로 상호작용하지만, 서로 충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은하계들 속의 별들은 별 직경의 평균 100만 배 정도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그래서 별들끼리의 충돌 또한 아주 드물며, 충돌이 일어날 경우에 관한 연구논문들까지 나왔다.

두 은하계가 충돌한다 해도 그 안에 있는 별들은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충돌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러나 일부 별들은 중력에 의해 한 은하계에서 다른 은하계로 끌려갈 것이고, 언젠가 은하계를 바꿔 우리 은하계에서 안드로메다 은하계에 합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충돌이 일어나면, 은하계를 바꾼다는 개념은 별 의미가 없다. 두 은하계가 합쳐져 전혀 새로운 한 은하계가 만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p. 329)

지구와 태양이 속한 우리의 은하계는 안드로메다은하계와 충돌할 예정이다. 이렇게 보면 이것이 바로 지구의 종말 시나리오 같지만, 사실은 아니라고 한다. 하나하나의 은하계는 굉장히 광활하고 은하계와 은하계가 충돌한다는 것은 교통사고처럼 물체적인 것이 아니다. 은하계가 충돌한다고 해서 그에 속한 별들이 하나씩 짝지어져 충돌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초속 96킬로미터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안드로메다 은하계도 아니고 '홀로세 절멸' 이라며 폭발적 인구증가로 인한 지구자원소멸도 아닌 바로, '태양' 이다.

궁극적인 대재앙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우리 생물권, 즉 생물이 살 수 있는 지구 표면과 대기권의 완전한 파괴일 것이다. 이론의 여지없이 지구 생물권을 완전히 파괴해버릴 수 있는 재앙이 딱 하나 있다. 그 무서운 아마겟돈은 다행히 지금 당장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미래에도 일어나지 않으리라 100퍼센트 장담할 수 없다. 우리는 지금 태양 얘기를 하고 있다. 만일 태양의 내부 온도 조절 장치가 작동돼 방출 에너지가 2퍼센트 떨어지면, 무시해도 좋을 것 같은 그 감소로 지구는 곧바로 '눈덩이 지구' 상태로 변한다. 다시말해 육지는 물론 어쩌면 바다의 생물까지 모조리 죽는다는 의미이다. (p. 348~349 발췌)

태양의 흑점 폭발이 있었을 때 그 부근에서 가까운 지구의 지역은 전력이 나가고 자기장이 흔들리는 혼돈에 빠졌었다. 우리가 매일 보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존재인 태양은 사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태양은 별이고 우리는 별이 태어났다가 소멸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태양은 언젠가 빛이 꺼질것이고 지구는 그저 검은 암석덩어리가 될 것이다.

'최종 결정권은 태양이 쥐고 있다' 는 저자의 마지막 멘트가 '거의 모든 것의 종말' 을 설명하는 단하나의 답변인지도 모르겠다. 크게는 우주를 연구하고 작게는 핵분열을 연구하는 것보다 가장 시급한 것은 '태양' 연구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구는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과학적으로 그렇다. 그 마지막에 대해 우리의 과학계 연구가 어디까지 다가갔는지 궁금해지지만 나의 짧은 인생 동안에는 지구종말이 오지 않으리라는 확신하에 이 시나리오는 그만 잊기로 맘먹으며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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