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의 헌법 이야기 - 인간의 권리를 위한 투쟁의 역사
김영란 지음 / 풀빛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의 권리를 위한 투쟁의 역사

우리 헌법은 무엇을 향해야 하는가?

 

 

사회가 확대되고 혼란해질수록 기본에 대한 인식은 중요하다. 국가와 사회체제질서의 기본은 법에 근간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시민이 다 법학자가 될 수는 없으므로 누구나 법전문가처럼 법을 잘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수많은 조항을 매달고 있는 법들과 법 중의 법이라고 할 수 있는 헌법은 다르다. 헌법에 대한 기초만 제대로 알고 있어도 우리는 법에 대해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 시작을 헌법의 역사에서 시작하는 것은 재미있고도 유익한 출발점으로 보인다.

저자는 우리 헌법에 많은 영향을 끼친 네 나라 즉, 영국, 프랑스, 미국, 독일 의 헌법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우리 헌법 이해의 기초를 마련해주고 있다. 또한 쉬운 질문에 대한 답을 설명해주는 방식으로 서술되어 이야기처럼 술술 읽힘과 동시에 핵심사항이 저절로 정리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서술형 질문에 대한 정답모음집 같은?! ㅎㅎ

'차례'에서 확인되듯이, 영국의 대헌장은 헌법의 주춧돌이 되었고 프랑스 혁명은 헌법에 인권을 불어넣었으며 미국 독립선언서는 헌법에 살을 붙이고 독일의 바이마르 헌법은 현대 헌법의 기틀이 되었다. 이 네 나라의 헌법 형성과정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들의 헌법에 영향을 끼쳤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이 네나라의 역사가 세계역사의 주름을 잡았었고 그러한 역사를 바탕으로 법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영국의 경우 헨리2세 시대에 와서 지역마다 다르게 적용되던 관습법 대신 나라 전체에 적용되는 하나의 공통된 법체계가 성립되었다. 보통법이라 불리는 이러한 법체계 마련으로 헨리2세는 '법의 아버지' 라고 불린다고 한다. 이후 왕과 의회의 권력경쟁 속에 영국의 대헌장이 만들어졌다. 여러번의 수정을 거친 대헌장은 '법의 지배'라는 개념을 만들어냈기에 '헌법의 기원'이라고 불린다. 그런데 신기했던 것이 영국에는 헌법이 따로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 영국에는 따로 헌법이 없다는 게 사실인가요?

영국은 우리처럼 하나의 문서로 된 성문헌법을 가지지 않은 나라 중 대표적인 나라지요. 1215년의 대헌장과 1628년의 권리청원, 1689년의 권리장전이 영국의 헌법정신을 담은 3대 문서라고 합니다. (p. 62)

'헌법의 기원'이 된 개념을 만든 나라 영국은 여전히 성문헌법 없이 헌법적 효력을 가지는 관습법에 따라 다스려지고 있다고 한다. 워낙 오랫동안 판례가 축적되어 있다보니 이것이 헌법적 관습법의 일부로 형성되어 있어서 이런 방식이 가능하다는데 그런 방식이 현대에도 가능하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성문헌법이 없기에 좀더 자유롭게 토론하고 충분한 숙려기간을 가지며 합의하게 되는 것일까... 하지만 왠지 좀 위험해 보이기도 하고;;;

프랑스 혁명은 인권과 연결되어 다방면에 회자되는 사건이다. 하지만 1789년의 혁명 외에도 어떤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프랑스 혁명기간은 거의 100년에 가까운 혼란의 시기를 포함한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배경에는 재정파탄이 가장 큰 이유였는데, 이 재정 파탄의 직접적 원인은 미국독립전쟁을 과도하게 지원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프랑스 혁명의 시발점으로 볼 수 있는 '바스티유 함락 사건'은 왕과 대표단의 협상내용이나 경과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우발적으로 벌어진 사건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사회를 불러올 시대적 여건은 충분히 차오른 때였기에 '인권선언(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이 탄생할 수 있었다.

프랑스의 인권선언은 영국의 권리장전이나 미국의 독립선언보다 폭넓은 인간의 권리를 선언하였다는 평가도 있으나, 당시 제헌의회를 지배하던 부르주아의 특성이 반영되어 자유와 평등을 형식적으로만 인정했을 뿐이라는 비판도 많았습니다. (p. 99)

여담으로 의장석 왼쪽에는 왕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데 반대하는 의원들이, 그리고 오른쪽에는 찬성하는 의원들이 자리했는데 이후로 '좌익' '우익' 이라는 용어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뉴스나 언론에서 나오는 '좌파'나 '우파'라고 하는 말의 유래가 되었지요. (p. 101)

역사로 읽는 법이야기는 그냥 역사만 읽는 것과 또다른 재미가 있었다. 영국의 법을 이야기할 때는 '로빈 후드'이야기를 프랑스의 법을 이야기할 때는 '장발장' 과 '두도시이야기'를 곁들여 하니 소설 속 내용들이 생각나면서 더 이해가 잘 되는 기분이었다.

보통 미국은 아무도 살지 않은 곳에 유럽인이 건설한 나라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원주민의 존재를 잊어서는 안 되겠네요.

그 땅에는 원래부터 살던 사람들이 있었고 초기 어떤 자들은 원주민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이어 가기도 했지요. 그러니까 미국 역사를 이야기할 때는 원주민의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게 옳습니다. (p. 131, 132)

역사를 읽을 때 균형잡은 시각은 굉장히 중요하다. 미국의 법과 미국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그 땅에 살았던 원주민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여하튼, 미국은 유럽에서 건너온 개척자들이 만들었고 프랑스와 영국의 전투에서 영국이 승리하면서 미국은 거의 영국의 식민지화 되어 간다. 하지만 개척자들의 자치권이 영국 본토에서 제약에 걸릴 수록 독립의 현실적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갈등 끝에 미국의 독립이 선언된다.

미국 독립선언서가 영국의 권리장전, 프랑스의 인권선언과 함께 인간의 권리를 선언한 문서라고 평가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가장 잘 알려진 이유로는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창조주로부터 생명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부여받았다"고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인류가 정부를 조직했는데 인민의 동의로 탄생한 정부가 이 권리를 어긴다면 인민은 저항권을 가진다고 독립선언서는 밝힙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뒷부분에서는 영국의 왕이 그와 같은 인민의 권리를 훼손해 왔음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면서 독립의 당위성을 역설했어요. 모든 사람이 하늘로부터 권리를 부여받았고 저항권을 가진다는 선언은 가히 혁명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p. 144)

유럽에서 중앙집권화가 가속화될 때 종교는 큰 역할을 했다. 신과 인간의 사이에 교황이나 왕이 있었다. 그런데 미국의 독립선언서에서는 이 중간존재를 걷어낸 것이다. 신은 인간에게 직접 권리를 부여받았음을 천명하면서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희미하게 남아있던 왕의 존재는 완전히 지워졌다.

프랑스왕이 영국왕에게 패전의 복수를 하려고 미국의 독립을 지원하느라 프랑스왕은 자국의 재정을 파탄냈는데 그렇게 지원한 미국의 독립이 프랑스왕을 몰락시킨 혁명을 유발하는 것을 보면 역사란 정말 한치앞도 내다보기 힘든 것 같다.

혼란이 계속되자 영국이나 프랑스처럼 미국에도 군주제를 도입하자는 주장과, 군주제는 아니지만 그에 버금가는 강력한 중앙정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대두되었어요. 그 외에도 앞서 제정한 연합규약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p. 148)

당시 사람들은 왕정이나 대통령제나 특별히 다르다고 보지는 않았기 때문에 평생 연임이 가능한 대통령제도 이상하게 보지 않았던 거지요. (p. 154)

미국이 독립은 했으나 워낙 큰 땅덩어리에 각 주마다의 연합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혼란한 시기에는 강력한 중앙집권에의 향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프랑스혁명도 결국은 나폴레옹을 황제로 등장시켰고 독립된 미국도 평생 재임가능한 강력한 대통령제를 승인했다. 뒤에 나오지만 히틀러의 등장도 이와 비슷한 배경이다. 이후의 발달과정 속에서 많은 수정이 있게 되지만, 자발적 민주주의와 사회적 혼란과 강력한 지도자 사이의 균형은 늘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다...

바이마르 헌법의 현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로자 룩셈부르크입니다. 룩셈부르크는 사회주의 이론가로 활동하면서도 폴란드의 사회주의자들과도 맞섰고 독일 사회민주당이 주장한 수정주의와도 맞서는 노선을 걸었지요. (p. 174)

룩셈부르크는 점진적으로 권력을 장악하려는 사회민주당의 수정주의는 자본주의를 돕고 혁명을 방해할 뿐이라며 비난합니다. 심지어 자신을 칭찬했던 레닌과도 맞섰는데, 직업 혁명가의 정치적 폭력을 옹호하는 레닌의 노선은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는 자발적 혁명인 사회주의와 다르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p. 176)

가장 현대적인 헌법이라는 독일 바이마르 헌법 이야기를 시작함에 있어 로자 룩셈부르크 에서 출발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똑똑했고 이상주의자로 보이는 혁명가였는데 그녀가 바이마르 헌법 어떤 조항에 구체적으로 영향을 끼친것인지 알수 없어서 아쉬웠다. 룩셈부르크가 사망하고 얼마안되 치뤄진 총선에서 여성도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는 점이 관련이 있었을까...

이 소설(알퐁스 도데 의 마지막 수업)은 알자스-로렌 지방의 주민들의 상황과는 관련 없이 프랑스에 퍼져 있던 반독일 정서를 프랑스 작가가 작품에 반영한 결과물이라는 견해가 많아요. <마지막 수업>은 우리에게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어 수업을 하지 못하게 한 일제의 정책을 상기시켜서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읽혔지만 역사적 배경은 전혀 달랐던 거지요.

그래서 일본인들이 한국에서 일본어로 마지막 수업을 하면서 슬퍼한다는 패러디가 만들어졌던 거군요. 소설도 얼마나 시대적 배경을 알고 읽는지에 따라 이해의 깊이가 달라지겠네요. (p. 180)

'마지막 수업' 기억난다. 독일의 지배로 들어가게 된 지역에서 프랑스로 하는 마지막 수업을 안타깝게 그렸던 소설... 그런데 원래 독일의 땅이었던 알자스-로렌 지방을 프랑스가 침략하여 독일어 대신 프랑스러를 사용하도록 강제하다가 다시 독일이 그 지역을 수복하면서 프랑스어 수업을 금지시킨 것을 프랑스 작가가 그렇게 표현했던 것이라니;;;

윌슨 대통령이 말한 민족자결주의 원칙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나라의 식민지에만 적용되는 것이었습니다. 독일을 비롯한 패전국이 내놓은 식민지를 승전국인 영국이나 프랑스가 차지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로 이 원칙을 주장한 것이지요. 당시 일본은 패전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적용되지 않는 원칙이었어요. (p. 183)

1차대전의 패전국 독일에서 공화국이 된 정치상황은 시민들에게 제대로 인식될 수 없었다. 패전으로 황제는 폐위되고 하루아침에 등장한 민주제는를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경제는 파탄났고 사회는 혼란스럽기만 했다. 오랜 세월 왕정에 익숙했던 사람들중 황제에 대한 충성심이 남아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독일 국민들은 정치인들이 연합국들과 손잡고 공화국이라는 체제를 받아들이는 것을 자신들에게 강요했다고 생각했기에 민주주의나 공화국에 대한 반감도 커졌습니다. 이전에는 공산당 쪽에서 나왔던 위협이 이제부터는 공화국을 부정하고 민족주의적인 선동을 하는 세력들에서 나오게 되었지요. (p. 193)

혼란한 와중에도 바이마르 헌법은 공포되었고 이원정부제를 도입했으나 애초에 불안정한 연립정부 형태였기에 이를 악용한 히틀러의 등장을 독일 국민들은 환영하기에 이른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해체 과정은 민주주의가 대중과 함께 가지 않으면 극단적인 세력에게 어떻게 이용당하고 몰락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p. 199)

프랑스 혁명기간에 있었던 폭력과 미국 독립과정에 있었던 자치와 독일 공화국의 짧은 집권을 모두 겪어낸 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역사는 독립하자마자 닥친 냉전시대와 맞물려 더욱 혼탁한 시간을 보냈다. '신탁통치오보사건'은 읽고 또 읽어도 너무 안타깝고 아쉬웠다. 그때 제대로 알았더라면 분단은 안되지 않았을까...

지금 헌법은 1987년에 전부개정된 헌법인가요

그렇지요, 네 차례의 전부개정에서 세 차례의 개정은 권위주의 정권이 자신의 권력 기반을 튼튼히 하기 위한 개정이지만, 1987년의 마지막 전부개정은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로 만들어진 것이고 현재도 계속 적용되는 헌법이지요. (p. 234)

독립되자마자 독재가 이어져왔고 민주항쟁의 불씨가 꺼지기 전에 급하게 수정해야 했던 헌법이 지금에 이르렀다. 헌법에 문제점이 있다고 말할만큼 잘 알지 못하지만 헌법개정논의가 끊임없기 제기되는 것을 보면서 변화된 시대의 가치를 반영시켜야 하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생각만 해볼 뿐이었다.

참고로, 이 책과 '주민의 헌법'이라는 책을 세트로 읽으면 우리나라 헌법에 대한 기초이해는 왠만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하튼, 저자의 책을 읽으면서 역사로 법의 형성과정을 읽는 동안 법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 라는 근본적 질문을 숙고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경의, 정의, 숙고 의 감정을 역사와 함께 오래도록 기억해야 할 것 같다.

 

민주주의를 받아들인 지 아직 100년도 채 되지 않은 나라로서 민주주의를 향하여 계속 도전해 왔고 '스스로의 실수를 인정하고 그 실수로부터 배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평가를 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 우리나라 헌법뿐 아니라 근대를 대표하는 여러 헌법의 역사에서 얻은 교훈이 더 좋은 민주주의를 위한 선택의 순간에 기여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하며 여기서 긴 여행을 마칩니다. (p. 25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