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갖고 싶어 하지만 아이가 없는 대학 동기 앞에서 육아가 화제가 되었을 때 신속하고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리는 친구.
시한부 선고를 받은 가족 앞에서 평소처럼 대화를 나누며 저녁 식사를 하는 가족들.
카페 옆자리에 서 시끄럽게 소음을 내는 자폐 아동에게 무관심하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책으로 눈길을 돌리는 대학생.

이들은 모두 서로의 연기가 품고 있는 의도를 공유한다. 친구가 나를 배려해서 화제를 돌리고 있다는 걸 나는 안다

아픈 사람도 아프지 않은 사람도 함께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면서도 평범한 일상을 조금이라도 더 함께하고 싶기에 시덥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저녁 식탁에 마주 앉는다
자폐 아동의 부모는 소란 속에서도 태연히 책을 읽는 대학생이 무관심한 척 연기를 하고 있다는 걸 안다

서로를 인격체로 존중하는 상호작용은 실제를 공유하면서 그 존중을 강화한다. 모르는 척해주는 익명의 대학생이 고마워서 그를 존중하며 자신을 존중하려 애쓰는 자페아 부모의 노력을 아는 대학생은 더더욱 무심한 척 책으로 눈길을 돌린다. 타인이 나의 반응에 다시 반응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우리는 타인을 존중하게 되며 나를 존중하는 타인을 통해 나 자신을 다시 존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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