쥰에게
잘 지내니?
네 편지를 받자마자 너한테 답장을 쓰는거야. 나는 너처럼 글 재주가 좋지 않아서 걱정이지만

먼저 멀리서라도 아버님의 명복을 빌게.

나는 네 편지가 부담스럽지 않았어.
나 역시 가끔 네 생각이 났고, 네 소식이 궁금 했어. 너와 만났던 시절에 나는 진정한 행복을 느꼈어.
그렇게 충만했던 시절은 또 오지 못할거야.

모든 게 믿을 수 없을 만큼 오래전 일이 돼 버렸네.

그때 너한테 헤어지자고 했던 내 말은 진심이었어.
부모님은 널 사랑한다고 말하는 내가 병에 걸린 거라고 생각했고 난 억지로 정신 병원에 다녀야 했으니까.
결국 난 오빠가 소개해 주는 남자를 만나 일찍 결혼했어.

이 편지에 불행했던 과거를 빌미로 핑계를 대고 싶진 않아.
모두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일이라고 생각해. 나도 너처럼 도망쳤던 거야.
그 사람과 내가 결혼식을 올리던 날,
우습게도 가장 먼저 떠올랐던 사람이 너였어. 모르는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이곳을 떠난 네가 행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빌었어.

쥰아,
나는 나한테 주어진 여분의 삶이 벌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그동안 스스로에게 벌을 주면서 살았던 거 같아.
너는 네가 부끄럽지 않다고 했지.

나도 더 이상 내가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 우리는 잘못한 게 없으니까.

마지막으로 내 딸 얘기를 해 줄게. 이름은 새봄. 이제 곧 대학생이 돼.
나는 새봄이를 더 배울 게 없을 때까지 스스로 그만 배우겠다고 할 때까지 배우게 할 작정이야.

편지에 너희 집 주소가 적혀 있긴 하지만 너한테 이 편지를 부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나한테 그런 용기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만 줄여야겠어, 딸이 집에 올 시간이거든. 언젠가 내 딸한테 네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용기를 내고 싶어.
나도 용기를 낼 수 있을거야.

추신, 나도 네 꿈을 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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