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바 1 - 제152회 나오키상 수상작 오늘의 일본문학 14
니시 카나코 지음, 송태욱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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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혀 모르는 세계에 희희낙락 뛰어드는 쾌활함은 내게 없다. 먼저 공포가 있다. 그 세계에 친숙해질 수 있을까, 살아갈 수 있을까. 공포는 잠시 내 몸을 정지시킨다. 그리고 그 정지를 간신히 풀고, 등을 밀어주는 것은 체념이다. 내게는 이 세계밖에 없다, 여기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는 체념은 태어난 순간의 `이미 태어나버렸다`는 사실과 느슨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여기에 있는 모두는 언젠가 만날 수 없게 되는 친구들이다. 어렸던 우리는 자연스레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 시간을 소중히 했다. 한순간, 한순간은 우리 안에서 스파크를 일으켰고,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이기에 그 반짝임은 강렬했다.

나에게 침을 뱉은 그 아이는 내 웃음의 의미를 알아채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결국 그들을 얕보고 있었다는 것을.
대하기 힘든, 우리와는 수준이 다른 인간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어머니의 방식은 절대적으로 잘못되었지만, 잘못된 만큼 진실이었다. 자신을 더럽히는 행위를 함으로써 어머니는 그들과 같은 지평에 서 있었다. `그런 짓을 해서는 안된다` `인간으로서 비열하다`하는 규탄받을 방식으로 어머니는 외쳤다.
반면 나는 안전한 장소에서, 누구도 돌을 던지지 못할 장소에서 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압도적으로 그들을 멸시하고 있었다. 어머니보다 깊은 곳에서.

처음 왔을 때는 지독하게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 모든 것들이 나를 안심시키고 정겨운 마음이 들게 했으니 `산다`는 경험이 가져다주는 것은 정말 헤아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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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로키언
그레이엄 무어 지음, 이재경 옮김 / 비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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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긴요. 자신을 증명하는 것이 어떤 건지 잘 알아요. 오랫동안 머리속으로만 상상하던 것을 현실세계에서 행동으로 보여줄 기회를 잡는거죠. 하지만 현실은 생각만큼 녹록하지 않죠."

어맨다와 관련해 기억에 남은 것은 그녀의 현재에 집중하는 능력이었다. 어맨다는 즐거움이든 불행이든 눈앞에 닥치는대로 받아들였다. 이 기쁨이 언제 끝날 것이며, 이 불행에서 언제 해방될 것인지 노심초사하는 법이 없었다.

"추리소설에서 최악의 결말은 `모르고 끝나는 것`이에요. 사람들은 세상일엔 모두 속사정이 있고, 그걸 알아낼 수 있다고 믿고 싶어해요. 정의 실현은 선택사항이지만 해답은 의무사항인거죠. 내가 홈스를 사랑하는 것은 그 때문이에요. 그는 명쾌한 해답을 주고, 그가 사는 세상은 질서정연하고 이성적이니까요. 아름다운 세상이니까요."

거리에서 어둠과 공포의 장막이 싹 걷히면서 도시 전체가 희고 깨끗해지는 느낌이었다. 한편으로는 하얗게 번쩍인느 거리 풍경이 씁쓸할 때도 있었다. 두 남자 모두 그 이를 말로 설명할 능력은 없었다. 숨겨져 있던 것들이 전깃불 아래 살벌하게 드러나면서 사람들은 많은 것을 얻었다. 하지만 어쩐지 잃은 것도 있는 듯했다. 두 남자 모두 말을 안 할 뿐, 가슴 한편으로는 낭만적으로 깜빡이던 가스등 불빛을 그리워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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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포드케인 불새 과학소설 걸작선 14
로버트 A. 하인라인 지음, 안태민 옮김 / 불새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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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디는 언제나 내게 말했다. "있는 그대로의 너 자신이 되렴." 맞는 말이다. 그러니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자. 그리고 "유명한 탐사대장, 포드케인 프리스 선장"을 잠시만 잊기로 하자. 어떤 모습이 보일까?

아저씨는 또 다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누구도 다른 사람을 책임질 수는 없는 법이야. 사람은 각자 혼자서 세상을 마주햐야만 하지. 세상은 언제나 그렇듯 무심한 태도로 우리를 위해 일부러 그 냉엄함을 누그러뜨리지 않아. 그래서 오랜 시간이 흐르면 결국 세상이 우리를 이기고, 모든 것을 차지하게 된단다. 하지만 사실이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책임지려는 우리의 노력이 쉬워지는 것은 아니야. 지금 너와 내가 이러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지. 우리는 사태를 되집어보고 앞으로 책임을 더 확실하게 맡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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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어리던 시절은 이제 아마도 끝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까지는 자신이 어른이라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부모라는 존재는 죽음을 통해서 자식에게 마지막으로 가장 큰 교육을 하는 건지도 몰랐다. 좋게도 나쁘게도.

그 아이는 아무 나쁜 짓도 하지 않았는데 왜 그런 고통을 당해야만 할까? 어째서 겨우 여섯 살의 나이로 삶을 마쳐야 하나? 과학자 나부랑이인 겐토는 그 답을 알고 있었다. 때때로 자연은 인간에게 잔혹할 정도로 차별 없이 불평등을 안겨 주었다.

자신의 책에 사인을 하고 있는 박사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동료들이 차례로 죽어 가는 극한 상황 속에서 강제 노동으로 하루하루를 넘겨왔던 작은 손. 그 작은 손에는 마지막으로 어머니가 안아 주었던 때의 감촉이 남아 있을까?

그렇게 생각한 순간, 루벤스의 가슴은 깊은 감사의 마음으로 복받쳤다. 눈 앞에 있는 노인이 가혹한 운명과 싸우면서 살아남아 주었다는 것과, 그가 지켜온 생명에 대한 감사였다.

생명이라는 것이 너무나 여려서, 인간의 소름끼치도록 끔찍한 부분 때문에, 선의 무력함에, 그리고 선악의 판단조차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에게, 예거는 화가 나서 소리를 죽인 채 비통하게 울었다.
"예거, 참아. 나도 견디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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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미쓰를 원망할 수 있을까. 어떻게 그 죄를 물을 수 있을까. 산다는 것은 힘들고 살아남는다는 것은 더욱 험하다. 그래도 언니는 도망쳐서 지금도 어디선가 살고 있다. <음력 열엿새 밤에 내리는 비>

남겨진 사람들은 살아가기 위해 누군가위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간다. <음력 열엿새 밤에 내리는 비>

유곽의 문이 열린다. 창녀가 병으로 죽어도, 그 죽은 여자를 생각하며 우는 사람은 있어도, 어김없이 유곽은 문은 열고 꽃을 판다. 그리고 죽은 창녀의 방에는 언젠가 다른 여자가 살고, 향이 다 타서 없어지듯 기억도 풍화되어 어딘가로 사라진다. 어차피 창녀란 어디나 마찬가지다. 자신이 없어져도 대신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어젯밤 유곽에 나오기 전에 울면서 한 생각을 떠올린다. 아니, 대신은 없어. <고드름처럼 나뭇가지에 얼어붙은 눈 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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