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냥 어리던 시절은 이제 아마도 끝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까지는 자신이 어른이라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부모라는 존재는 죽음을 통해서 자식에게 마지막으로 가장 큰 교육을 하는 건지도 몰랐다. 좋게도 나쁘게도.

그 아이는 아무 나쁜 짓도 하지 않았는데 왜 그런 고통을 당해야만 할까? 어째서 겨우 여섯 살의 나이로 삶을 마쳐야 하나? 과학자 나부랑이인 겐토는 그 답을 알고 있었다. 때때로 자연은 인간에게 잔혹할 정도로 차별 없이 불평등을 안겨 주었다.

자신의 책에 사인을 하고 있는 박사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동료들이 차례로 죽어 가는 극한 상황 속에서 강제 노동으로 하루하루를 넘겨왔던 작은 손. 그 작은 손에는 마지막으로 어머니가 안아 주었던 때의 감촉이 남아 있을까?

그렇게 생각한 순간, 루벤스의 가슴은 깊은 감사의 마음으로 복받쳤다. 눈 앞에 있는 노인이 가혹한 운명과 싸우면서 살아남아 주었다는 것과, 그가 지켜온 생명에 대한 감사였다.

생명이라는 것이 너무나 여려서, 인간의 소름끼치도록 끔찍한 부분 때문에, 선의 무력함에, 그리고 선악의 판단조차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에게, 예거는 화가 나서 소리를 죽인 채 비통하게 울었다.
"예거, 참아. 나도 견디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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