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 - 김주영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5
김주영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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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대표적인 이야기꾼 김주영의 [홍어]는 열세 살 세영의 성장소설로 시적 상징과 묘사를 통해 한 폭의 그림 같은 아름다운 작품이다. 세영은 유부녀와 정을 통하고 집을 나가버린 아버지를 기다리며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었다. 밤새 내린 눈이 툇마루를 덮었고, 문짝 사이로 펼쳐진 설국의 세계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밤사이 열여섯 살 된 낯선 계집 하나가 부엌으로 숨어 들었다. 회초리를 맞아도 당찬 성격에 지쳐버린 쪽은 어머니였다.

 

식구로 거두기로 정하고 삼례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부엌 문설주에 매 달아논 홍어가 보이지 않았다. 홍어는 숙회나 찜을 해서 먹는데 아버지가 홍어찜을 좋아했다. 홍어는 부재하는 아버지의 별명이기도 한데 삼례가 먹었거나 없어졌던 것이다. 음력 보름 부터 겨울 내내 가오리연을 띄우며 살았다. 삯바느질로 가계를 꾸려나가고 있었지만 많은 창호지 옷본들 중에서 새로운 연을 만드는 어머니의 표정은 너무나 진지하였다. 그것이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는 아버지에게 던지는 어머니의 화두였다는 것은 훨씬 뒷날에야 깨달았다.

 

오년 전 아버지가 집을 떠난 이후 이웃의 남정네들과는 철저한 단절을 두었고, 아낙네들끼라도 야단스러운 교류를 하지 않았다. 소모적인 감정 발산을 최대한으로 절제하는 이면에는 남편으로부터 외면당한 모멸감이 자리잡고 있었다. 옆집 남자가 춘일옥에 부인과 아버지가 불미스러운 일을 벌여 거리매질 당하지 않으려고 야밤 줄행랑하게 된 이야기를 해준다. 어머니는 삼례가 춘일옥 작부들의 일감을 가져온 것에 혼을 낸다.

 

삼례는 어머니가 자신에게 매질을 하는 것은 한풀이라고 말한다. 세영은 바람이 불지 않아 연을 날리지 못하고 돌아갔을 때 어머니의 우울한 얼굴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살아 있는 새를 잡겠다고 남의 집 굴뚝에 새집을 건드려보기도 하였다. 삼례는 고무신을 돌려 신어 두 사람의 발자국을 세 사람의 발자국으로 만들 수 있는 지혜를 가졌다.

 

자다 말고 나가는 삼례를 미행하다 몽유병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느 날 삼례의 지갑이 두둑한 것을 알고 채근하였다. 삼례는 자전거포에서 일하던 청년과 함께 집을 나가버렸다. 그녀의 소굴이었던 담구멍의 고무신 한 켤레도 보이지 않았다. 홍어포가 걸려 있었던 부엌 문설주에는 씀바귀 한 묶음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아버지가 떠난 지 육년째가 되었고, 삼례도 떠나고 고즈넉한 산골 마을에 한 낯선 사내가 찾아와 종적을 감춘 삼례의 간곳을 대라고 위협한다. 어머니는 돈을 주어 달래자 가끔씩 마을 방천둑과 소택지 부근을 배회하곤 하다 여름이 되자 사라진다.

 

겨울, 옆집 남자는 삼례가 술집 색시가 되어 읍내에 나타났다고 귀뜸한다. 세영은 혼자 읍내를 헤매다가 삼례를 여러 번 찾아가 만난다. 어머니가 삼례를 불러내어 그동안 아버지를 찾기 위하여 모아둔 고액이 돈을 쥐여주고 멀리 떠나라고 하였다. 흡사 삼례를 대신하듯 삼십대 초반의 여자가 아이를 업고 나타났다. 며칠 지나 차표를 끊으러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의 소생이라며 호영이라 이름을 지었다. 어머니가 호영이를 애지중지 돌보는 것에 질투를 하여 수탉이 옆집 누룽지가 잡아 먹은 것을 모른체하였다. 아이까지 생겨 일손이 모자라 창범이네를 부른다. 세영은 옆집 남자와 창범이네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것을 목격한다.

 

세영이 삼례를 그리워 하는 대목은 환상인지 몽유병인지 꿈인지 애처러웠다. 미스 민에게 받은 삼례의 주소가 적힌 쪽지를 담구멍 속에 감추었다. 발길이 끊긴 외삼촌이 찾아오고 춘일옥 남자와 화해하고 아버지가 돌아온다고 하였다. 집안을 정돈하고 어머니의 얼굴에는 홍조가 가득했다. 6년 만에 만나는 아버지의 한마디는 세영이 사팔눈은 아직 고치지 못했군.”(p301)모든 몽환의 날개를, 누룽지가 수탉의 날개를 요절대고 말았듯이 깡그리 물어 비틀어버리고 말았다.

 

눈이 소복하게 쌓인 곳에 고무신 발자국을 보았지만 들어왔던 발자국이 집밖으로 나간 흔적은 없었다. 담구멍에 삼례의 주소가 적힌 쪽지가 없었다. 나는 떠나간 어머니 때문에 절망적인 동요를 느끼지는 않았다. 마지막 장면이 희망적이다. 어머니는 아주 떠난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돌아오게 한 삼례를 데리러 간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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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 같은 삶
박건웅 지음, 님 웨일즈 외 원작 / 동녘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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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 같은 삶

 

[아리랑]은 일제 강점기 식민지 조선 청년의 고뇌와 투쟁을 통해 조선인 혁명가로 거듭난 김산의 삶이 님 웨일즈에 의해 기록된 이 책은 그 시대를 살다간 지식인의 생생한 전기이자 동아시아 역사의 기록이고 증언이다. 동녘출판사에서 30여 년전 번역 출간된 [아리랑]을 역사 만화가 박건웅의 손을 거쳐 그래픽 노블로 탄생하였다.

 

두껍고 무거워 보일 수 있는 이 책이 조금 더 편하게 읽힐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해왔는데 [아리랑] 만화판의 출간으로 그 염원이 이루어진 것 같아 참으로 다행스럽다. 김산(장지락) 선생은 님 웨일즈와 인터뷰를 하고 1년 후에 엉뚱하게 중국공산당에 의해 일제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처형되었다. 그러나 1983년 중국공산당은 뒤늦게 김산의 억울한 죽음을 인정하고 명예와 당원 자격을 회복시키는 복권을 결의했다. 중국 정부는 김산의 진정한 명예 회복을 위해 열사 칭호와 함께 서훈을 해야 한다. 이 책의 출간이 그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추천의 말] 중에서

 

 

 

민족의 암흑기에 이국에서 조선 독립을 위해 투쟁하다 짧은 생애를 마친 김산은 한국의 체 게바라로 불리기도 한다. 님 웨일즈는 글쓰기와 취재 활동을 하는 중에 김산을 만났는데 7년 동안 동방에 있으면서 만났던 가장 매력적인 사람 중 하나라고 말한다. 님 웨일즈가 김산을 주인공으로 삼아 쓴 [아리랑]에는 의열단과 조선의용대의 모습이 리얼하게 그려진다. 김원봉과 의열단 조선의용대 등의 중국 관내에서의 활동상은 [아리랑]에서 많이 보충되고 있다.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일본, 만주, 상하이, 베이징, 광둥, 홍콩, 옌안…… 등 중국 대륙을 누비며 조선의 독립을 위해 투쟁한 김산의 이야기는 질풍노도의 1980년대를 살아간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93일 일본 정부는 도쿄 경시총감 명의로 조선인 무정부주의자와 민족주의자들이 일본인 무정부주의자들과 힘을 합쳐 집을 불태우고 사람들을 죽이며 돈과 재산을 훔치고 있다는 내용의 포고문을 냈다. 이 포고문은 거짓말이었지만 모든 공공장소에 게시되었다. 일본은 테리리즘에 광기에 빠져들어갔고 조선인 대량 학살을 자행했다. 너 일본말 해봐! 모르지? 학생 1000명을 포함해 일본에 거주하던 조선인 6000명이 살해되었고 중국인도 600명 이상 피살되었다.자경단들은 비밀리에 20~100명씩을 동원해 단검, 죽창, 일본도, 망치, 낫 등을 사용해 지체없이 학살을 시작했다. 많은 조선인들이 죽창으로 고문을 당하면서 서서히 죽어갔다. 영화 [박열]에 한 장면이 생각났다. 일본이 조선인에게 저지른 만행을 그래픽노블로 보니 분통이 터진다.

 

 

 

조선에는 민요가 하나 있어요. 그것은 고통받는 민중들의 뜨거운 가슴에서 우러나온 아름다운 옛 노래지요. 심금을 울리는 아름다운 선율에는 슬픔이 담겨 있듯이 이것도 슬픈 노래예요. 조선이 그렇게 오랫동안 비극적이었듯이 이 노래는 300년 동안이나 모든 조선 사람들에게 애창되어왔습니다.p255

 

오늘 같은 날에 내가 부를 수 있는 노래는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조선에서 아주 오랜 옛날부터 내려오는 죽음과 패배의 노래입니다. 아리랑이지요. ......? 아리랑~p435

 

 

 

님 웨일즈는 김산과 몇 개월 동안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작별인사를 하였다. 조선이 해방이 되면 다시 만날 수 있을거라고 하였지만 그게 마지막이 되었다. 님 웨일즈가 조선에 처음 갔던 곳이 금강산인데 그 산 이름을 따서 김산이라는 이름으로 출간을 하였다. 원작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이 책은 감동적이고 충격적인 작품이다.

 

박건웅은 만화가로 활동하던 중에도 틈틈이 읽었던 [아리랑]은 언젠가 작업해보고 싶은 목록 중 하나였다. 중국 답사를 다녀오고 기획단의 배려로 [아리랑]의 주 무대인 광둥 지역에 찾아가 김산의 흔적이 있는 길을 따라 걸었다. 머릿속 배경이 오감으로 완성되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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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환자
재스퍼 드윗 지음, 서은원 옮김 / 시월이일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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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환자를 만나고 모든 것이 달라졌다! 정신병원을 둘러싼 충격 미스터리

내가 엄청난 비밀을 알고 있는 건지 아니면 나 자신이 미쳐버린 건지 현재로서는 확신이 서지 않아 이 글을 쓴다.

 

엘리트 정신과 의사, 파커는 약혼녀 조슬린의 집 근처인 병원만 면접을 보기로 했다. 선배와 교수님들은 진로에 단호한 태도를 보였지만 재정과는 상관없이 어렸을 적 어머니가 망상형 조현병으로 정신병원에 수용된 후 높은 지위에 안주보다 의학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곳을 개선해 나가는 데 관심이 있었다.

 

파커는 여러 모로 열악한 환경의 주립 정신병원에 부임한 첫날 위험한 케이스의 환자를 알게 된다. 우리 병원에 있던 그 환자는 유독 특이했다, 먼저 여섯 살에 처음 입원한 후 아무도 그의 병을 진단하지 못했는데도 어찌 된 영문인지 30년 넘게 병원에 수용돼 있었다. 사람들은 그 환자를 라고 불렀다. 그를 치료하려 했던 모든 의료진이 미치거나 자살하면서, 모두의 안전을 위해 제한된 인원만이 조와 접촉하도록 허용되었다. 그 환자에게 매료된 파커는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맡아 치료하겠다고 자원한다.

 

병원 관계자들은 농담조로 듣고 치기 어린 열정으로 여기고 웃어넘겼다. 나이 든 간호사 네시에게 조를 치료해보고 싶다고 하니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은 입에 담지 말라며 자신이 조의 병실에 가야 할 때마다, 여기 입원하게 되지 않을까 똑똑한 젊은이라면 조에게 가까이 가지 않겠다한다. 입원 환자 기록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고 서류를 보는데 조의 병은 진단조차 되지 않은게 아니라 두 번 진단을 했지만 조의 증상이 예측할 수 없게 돌변한 듯 보였다.

 

조의 기록은 직원들에게 조를 다른 사람들과 격리하라고 지시한 전 병원장의 짤막한 메모만 남겨두고 4년간 아무런 기록도 존재하지 않았다. 다음날 간호사 네시가 저녁 병실 순회를 마치고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어떤 환자 말로는 네시가... 그 환자의 병실에서 나온 직후에 그랬다한다. 네시의 죽음은 파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고 병원도 간호사를 잃은 걸 안타깝게 여겼다.

 

조를 처음 진단한 사람은 현 병원장 로즈였다. 두 번째는 전 병원장 토머스였다. 조를 담당한 의사는 1년 동안 치료를 시도하다 어느 날 갑자기 병원에 나타나지 않았고, 다음 의사는 6개월밖에 버티지 못하고 긴장병을 일으켜 이 병원에 수용되었다. 몇 개월전에 자살을 하게 되었다. 병원은 조의 병세를 개선해 보고자 조금 거친 의사에게 맡겼는데 18개월간 조를 치료하다 한 줄 짜리 사직서를 남기고 자기 머리에 총을 쐈다.

 

로즈는 조를 치료하기 앞서 가장 두려워하는게 뭐냐고 물었다. 처음에는 떠오르지 않았다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소중한 사람을 지키지 못하는 거라고 말했다. 한마디 덧붙였다 어떤 상황이 닥치든 부디 자살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진단을 위해 그 환자 와 처음 대면한 순간부터 모든 것이 통제 불가능해지고, 상황은 상상 이상의 격렬한 수준으로 치닫는다. 파커는 조를 만나고 그날 밤 어린 시절 악몽을 다시 꾸었다. 무엇이 진실이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의문을 가지게 된 파커와 조의 미래는 어떻게 흘러갈까.

 

이 책은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반전의 연속으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미국 최대 커뮤니티 레딧Reddit’ 공포 게시판에 처음 공개된 이 이야기는 당해 베스트 게시물로 선정되며 소설 출간까지 이어졌다. 미국에서는 202077일에 The Patient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고, 영화화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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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치의 상상력 - 질병과 장애, 그 경계를 살아가는 청년의 한국 사회 관찰기
안희제 지음 / 동녘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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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크론병을 앓고 있는 20대 청년이 써내려간 청춘 고발기이자 아픈 몸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모순을 비판한 날카로운 보고서다. 안 아프면 좋겠다는 말, 얼른 나으라는 말은 아픔을 불행이나 피해로만 전제한다. 저자는 난치 질환이다. 얘기해도 사람들이 잘 모르는 희귀 질환이기도 하다. 이 책을 통해 아픈 사람으로서 갖게 된 태도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고 싶었다.

 

스무 살의 여름, 크론병을 진단받는다. 면역계가 정상 세포를 공격하는 과잉 면역 반응을 일으켜 소화기의 입구부터 출구까지 염증이 생기는 희귀병이다. 진단 받기 전 항문 주의 농양이 생긴 것이 이해가 됐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종기를 달고 살았는데, 자신의 피를 물려준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청춘이라고 하면 알바도 하고, 인턴도 하고, 놀러도 다니고, 술도 마셔야 한다. 가령 여행을 가서 아픈 적은 없었지만 피로와 스트레스에 약해 힘들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도 아픈 사람이었다. 크론병을 가진 아들과 메니에르병을 가진 어머니와 새로운 공동체를 상상하게 했다. 메니에르병을 가진 저자의 친구들은 어머니에게 먹어선 안 될 것과 조심해야 할 것들을 알려준다.

 

저자는 오래 일했던 장애인권동아리의 회장 후보가 되었을 때 장애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반대에 부딪힌다. 장애인 옆에서는 비장애인으로 비장애인 옆에서는 조금 더 장애인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대학생활에서 아플 것 같아 수업에 빠지는 상황을 교수님들께 메일을 구구절절 써서 보내야 했다. 크론병은 언제나 아픈 것은 아니다. 통증은 왔다가, 돌아갔다가, 어디로 사라졌다가 어느새 돌아오는 길고양이 같은 존재이다.

 

건강했다면 저자 역시 취업 준비에 매진하거나 유예된 시간을 걱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아픈 몸은 청춘이란 화려한 포장에 가려진 진짜 청년들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청춘의 낭만 뒤에는 값싼 노동력으로 청년들을 사용하려는 시장의 논리가 도사리고 있었다. 저자는 경제학과 대학원을 오래 고민했다. 공무원 시험, 로스쿨을 고민했지만 어딜 가나 몸이 문제여서 포기하고 몸을 다루는 학문들을 찾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문화 인류학은 아픈 몸으로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배우고, 알아갈 수 있어서 지금이 행복하다.

 

코로나19에서 수많은 기사, 칼럼, 평론이 쏟아져 나왔다. ‘바이러스는 가장 흔한 은유였다. 인종차별, 지역 차별 등을 혐오 바이러스라고 칭한 사람과 언론사는 세기 힘들 정도로 많다. 저자는 자주 의심받았고 고통은 사소한 것으로 무시되기 일쑤였다. 질병을 노화와 연결 짓는 빈곤한 상상력과 눈에 보이지 않는 아픔을 꾀병으로 취급하는 사회가 낳은 비극이었다. 젊으니 금방 이겨낼 수 있다는 말, “안 아파보이는 데 왜 그래?” 같은 친구의 물음 등은 공감이나 응원이 아닌 비하에 가깝다. 저자는 이렇게 타인의 아픔을 존중하지 않거나 쉽게 넘겨짚는 행위를 이른바 헬스플레인이라고 말한다. 남성이 여성에게 저지르는 맨스플레인처럼 헬스플레인은 건강이 권력인 세상에서 아픈 이들이 수시로 당해야 하는 횡포다.

 

질병과 장애를 뚜렷이 나누고 다르게 대우하는 사회를 생각하게 되면서, 이제는 질병과 장애를 대하는 사회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어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저자도 그렇고 주변에는 SNS에 자주 찡찡대는이들이 있는데 그 찡찡대기가 정말 중요하다고 말한다. 의존해야 한다. 아픈 사람이 혼자서는 살기가 정말 힘들다. 저자와 친구는 인스타그램 DM으로 찡찡대다가 찡찡의 공동체라는 말을 떠올렸다. 20대 청년이 쓴 첫 책인데 성찰과 예민한 감각이 곳곳에 녹아 있다. 질병과 아픔의 경험, 나의 이야기가 다른 아픈 사람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그렇게 아픈 사람들이 서로를 참고하면서, 이 사회에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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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 - 바로 지금,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하여 클래식 클라우드 22
정여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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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지금,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하여

 

클래식 클라우드 거장을 만나는 특별한 여행시리즈를 세 번째로 만나게 되었다. ‘헤세는 작가 정여울이 독일과 스위스에 남겨진 헤세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헤세로부터 받은 치유의 순간들을 생생하게 전한다. 멘토라고 할 만큼 헤세를 좋아하고 그의 문장을 읽을 때마다 나 자신에 가까워짐을 느끼고 헤세에게서 독학의 묘미를 배우고 나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저자도 멋지지만 헤세를 읽으며 헤세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 세 권만 읽었는데 작가님의 멋진 해설은 헤세의 전작을 읽어보게 만든다. 저자는 헤세의 고향인 칼프에서 목조 건물과 아름다운 골목길, 헤세의 흔적이 녹아 있는 마을의 산책로를 돌아본다. 헤세가 세 아들을 낳아 키운 곳이며 [수레바퀴 아래서]라는 출세작을 쓴 곳이기도 한 가이엔호펜은 여정이 험난했다. 숙소를 찾을수가 없어 라돌프첼의 기차역 근처에 숙소를 정했는데 너무나 아름다워 탄성을 질렀다.

 

헤세의 집을 보존해야 한다고 뜻있는 할아버지가 집을 사들였다니 고마운 마음이다. 헤세의 끊임없는 방랑벽을 에로스적인 충동이라고 생각했다. 조국 독일의 전쟁에 반대하는 글을 쓴 이유로 출판이 금지되어 스위스의 몬타뇰라로 이주해 제2의 고향을 만난다. 몬타뇰라 곳곳에 펼쳐져 있는 헤르만 헤세 산책로는 헤세가 찾아낸 자기 자신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마음의 이정표다.

 

헤세의 작품은 [데미안]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데미안]이 출간한 이후 작품 속 주인공들이 공통으로 추구한 삶의 목표는 개성화.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한 끝없는 탐구, 세상이 요구하는 존재가 아니라 오직 진정한 나 자신이 되기 위한 새로운 싸움, 그것이 개성화다. 두 번의 이혼, 세 번의 결혼까지도 화젯거리였다. 1차 세계대전, 아내의 우울증, 아들의 병, 아버지의 죽음 등 신경쇠약과 우울증으로 정신적 위기를 맞은 헤세는 랑 박사의 주선으로 융을 만나 심리 상담을 받기도 하고 융과 서신을 교환하기도 하였다. 자기와의 대면이 고통스러워 헤르만 헤세라는 본명을 숨기고 에밀 싱클레어라는 이름으로 출간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 모두에게는 싱클레어처럼 자존심으로 중무장해 강한 척하는 에고가 있는가 하면, 데미안처럼 그 누구의 시선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오직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셀프도 있다. 저자는 감정, 변덕이 심해 친구들이 무디 여울이라 놀려 먹었다. 헤세의 캐릭터 크눌프를 사랑하는 것은 변덕스러움을 가장 잘 이해해줄 것 같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 나의 재능을 타인의 재능에 비춰보는 것. 설사 그 재능이 확실한 가능성으로 비치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타인의 작품을 읽어보고, 그런 후에 자신의 작품을 비평적인 관점에서 냉정하게 읽어보는 것. 그 힘겨운 자기 비평의 시간을 제대로 거쳐야만 내 작품을 바라보는 객관적인 눈이 생긴다.p98

 

헤세는 고향을, 성실하게 자연과 소통하는 농부들의 삶을 사랑했지만 방랑자의 기질을 타고나 농부의 삶을 살수는 없었다. [황야의 이리]1970년대 미국 히피들의 우상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영혼의 자유를 얻기 위한 첫걸음임을 알고 있었다. 독일의 마을이나 도시에서 영감을 받았던 다른 작품과 달리 [싯다르타]는 자신의 인도 여행에서 영감을 받았다. 싯다르타에게 깨달음을 주는 뱃사공 바주데바를 닮고 싶은 인물이다.

 

헤세는 나이 들수록 영감이 고갈되지도 매너리즘에 빠지지도 않았고 타오르는 영감을 주체하지 못했고, 좋은 작품을 구상하고 출간했다. 무엇보다 헤세는 나이 들수록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갔다. 다른 사람의 길과 나의 길을 비교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것. 그것이 헤세의 눈부신 재능이었다. 헤세와 함께라면 당신 또한 외롭지 않게 혼자 있는 법을 알게 될 것이라는 정여울 작가의 메시지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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