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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 - 바로 지금,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하여 ㅣ 클래식 클라우드 22
정여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7월
평점 :
바로 지금,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하여
클래식 클라우드 거장을 만나는 특별한 여행시리즈를 세 번째로 만나게 되었다. ‘헤세’는 작가 정여울이 독일과 스위스에 남겨진 헤세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헤세로부터 받은 치유의 순간들을 생생하게 전한다. 멘토라고 할 만큼 헤세를 좋아하고 그의 문장을 읽을 때마다 나 자신에 가까워짐을 느끼고 헤세에게서 독학의 묘미를 배우고 나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저자도 멋지지만 ‘헤세’를 읽으며 헤세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 세 권만 읽었는데 작가님의 멋진 해설은 헤세의 전작을 읽어보게 만든다. 저자는 헤세의 고향인 칼프에서 목조 건물과 아름다운 골목길, 헤세의 흔적이 녹아 있는 마을의 산책로를 돌아본다. 헤세가 세 아들을 낳아 키운 곳이며 [수레바퀴 아래서]라는 출세작을 쓴 곳이기도 한 가이엔호펜은 여정이 험난했다. 숙소를 찾을수가 없어 라돌프첼의 기차역 근처에 숙소를 정했는데 너무나 아름다워 탄성을 질렀다.
헤세의 집을 보존해야 한다고 뜻있는 할아버지가 집을 사들였다니 고마운 마음이다. 헤세의 끊임없는 방랑벽을 ‘에로스적인 충동’이라고 생각했다. 조국 독일의 전쟁에 반대하는 글을 쓴 이유로 출판이 금지되어 스위스의 몬타뇰라로 이주해 제2의 고향을 만난다. 몬타뇰라 곳곳에 펼쳐져 있는 ‘헤르만 헤세 산책로’는 헤세가 찾아낸 ‘자기 자신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마음의 이정표다.
헤세의 작품은 [데미안]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데미안]이 출간한 이후 작품 속 주인공들이 공통으로 추구한 삶의 목표는 ‘개성화’다.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한 끝없는 탐구, 세상이 요구하는 존재가 아니라 오직 진정한 나 자신이 되기 위한 새로운 싸움, 그것이 개성화다. 두 번의 이혼, 세 번의 결혼까지도 화젯거리였다. 제1차 세계대전, 아내의 우울증, 아들의 병, 아버지의 죽음 등 신경쇠약과 우울증으로 정신적 위기를 맞은 헤세는 랑 박사의 주선으로 융을 만나 심리 상담을 받기도 하고 융과 서신을 교환하기도 하였다. 자기와의 대면이 고통스러워 헤르만 헤세라는 본명을 숨기고 에밀 싱클레어라는 이름으로 출간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 모두에게는 싱클레어처럼 자존심으로 중무장해 강한 척하는 에고가 있는가 하면, 데미안처럼 그 누구의 시선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오직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셀프도 있다. 저자는 감정, 변덕이 심해 친구들이 ‘무디 여울’이라 놀려 먹었다. 헤세의 캐릭터 크눌프를 사랑하는 것은 변덕스러움을 가장 잘 이해해줄 것 같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 나의 재능을 타인의 재능에 비춰보는 것. 설사 그 재능이 확실한 가능성으로 비치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타인의 작품을 읽어보고, 그런 후에 자신의 작품을 비평적인 관점에서 냉정하게 읽어보는 것. 그 힘겨운 자기 비평의 시간을 제대로 거쳐야만 ‘내 작품을 바라보는 객관적인 눈’이 생긴다.p98
헤세는 고향을, 성실하게 자연과 소통하는 농부들의 삶을 사랑했지만 방랑자의 기질을 타고나 농부의 삶을 살수는 없었다. [황야의 이리]는 1970년대 미국 히피들의 우상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영혼의 자유를 얻기 위한 첫걸음임을 알고 있었다. 독일의 마을이나 도시에서 영감을 받았던 다른 작품과 달리 [싯다르타]는 자신의 인도 여행에서 영감을 받았다. 싯다르타에게 깨달음을 주는 뱃사공 바주데바를 닮고 싶은 인물이다.
헤세는 나이 들수록 영감이 고갈되지도 매너리즘에 빠지지도 않았고 타오르는 영감을 주체하지 못했고, 좋은 작품을 구상하고 출간했다. 무엇보다 헤세는 나이 들수록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갔다. 다른 사람의 길과 나의 길을 비교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것. 그것이 헤세의 눈부신 재능이었다. 헤세와 함께라면 당신 또한 외롭지 않게 혼자 있는 법을 알게 될 것이라는 정여울 작가의 메시지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