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길 위에 저 시간 속에 - 빛나지만 음험하고 고요하지만 번화하며 고풍스러우면서도 탈역사적인 척하는 어느 매력적인 도시 여행기
이인우 지음 / 파람북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전직 기자이자 교토 리쓰메이칸대학 객원연구원인 이인우 저자의 교토 탐방기다. 1년간 교토에서 생활하면서 교토 걷기가 진행됐다. 한번은 교토 속의 일본을 찾아서 한번은 교토 속의 한국을 찾아서, 한 주씩 번갈아 떠난 것이 총 69회에 걸쳐 120여 곳에 달했다. 책은 5부로 되어 있으며 에필로그는 교토의 윤동주 시비 앞에서 작별인사를 바치는 필자의 소회로 대신했다.

 

교토 동쪽 히가시야마 산기슭 아래 데쓰가쿠노미치라고 불리는 산책로가 있다. 철학의 길이라 불리는 이 길은 가족, 친구와 함께 걷기도 좋지만, 나 홀로 걷는 것도 좋다고 한다. 철학의 길에는 교토라는 천년고도가 낳고 일궈온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람이 있다, 교토에서 이 길을 거닌다는 것은, 어쩌면 일본이라는 나라의 내면을 산책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교토에서는 많은 절이 문화유산급의 뛰어난 그림과 조각, 공예품 등을 소장하고 있다. 다이토큐지, 쇼코쿠지, 난젠지 같은 절은 일반관람이 쉽지 않아서 그렇지, 소장목록을 보면 그 자체로 하나의 초일류 미술관이다.

 

금각사와 은각사는 교토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각각 금각과 은각 이름의 누각으로유명하다. 짧은 일정 속에 방문 인증샷이 필요하다면 금각을 배경으로 한 컷을 남기는 것과, 여유 있는 일정이라면 은각사를 천천히 거닐어보는 것이 어떨까. 교토의 랜드마크는 교토타워가 될 것 같다. 옛날 오사카와 나라 지방에서 상경하는 사람들은 멀리 5층탑 꼭대기가 아스라이 보이면 교토가 가까웠음을 알았다고 한다.

 

교토 산책길에서 빠지면 섭섭할 이름난 교토의 정원 12선을 소개한다. 일본에 정원은 만들 때까지가 4, 이후 유지관리가 6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종의 현재진행형 예술행위로까지 높여진다. 루리코인은 교토 히에이잔 케이블카 야세역 앞에서 왼쪽으로 맑은 시내를 따라 걸어 올라가면 만날 수 있다. 야세 계곡은 고대부터 귀족과 무가 계급의 휴식처로 사랑을 받아온 곳이다. 많은 사진애호가들이 사진에 담기 위해 계절별로, 시간대별로 찾아온다고 한다.

 

일본의 고대사가 중에는 신라의 연오랑세오녀 설화에서 실마리를 찾는 이들도 있다. 신라 동해물가에 연오랑 세오 부부가 살았는데, 연오가 바닷가에 나타난 바위에 실려 왜로 갔고, 남편을 찾아 세오 역시 바위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 그곳에서 왕이 돼 있던 연오와 재회하고 귀비로 추대됐다는 이야기다. 아득한 고대에 신라와 왜 양쪽 사람들을 모두 놀라게 한 어떤 실화가 모티브가 됐을 것이다. 설화 후반부는 연오와 세오가 왜로 떠나자 해와 달이 빛을 잃어 신라 왕과 백성이 당황하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해마다 교토에서는 조선시대 일본방문 사절단인 조선통신사 재현 행진이 교토 코리아 페스티벌의 하나로 펼쳐진다. 풍물패가 우리 민요와 농악으로 흥을 돋우는 가운데 쓰시마번사를 앞세운 사절단의 정사와 부사가 국서함을 받들고 오카자키공원 일대를 행진했다.




가미가모신사 근처 주택가에 고려미술관이 있다. 일본 역사문화의 중심지 교토에서 오직 한국 문화유산만을 소장 전시하는 뜻깊은 곳이다. 1988년 재일동포 사업가 정조문이 설립했다. 정조문이 수집한 고려청자, 조선백자, 회화, 민예품, 고대 유물 등 한국의 고미술품 17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지병을 앓던 정조문이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여명을 갈아넣은 필생의 결실이라고 했다. 고려미술관 개관을 도운 일본인은 역사소설가이자 문명비평가인 시바료타로이다. 현재는 아들 정희두씨가 대표를 맡고 있다고 한다.

 

한국인으로서 교토에 살면서 윤동주기념비를 찾아보는 일은 일종의 의무에 해당했다. 가장 먼저 세워진 도시샤대학의 시비는 이미 관광명소로도 이름나 있다. 교토를 여행할 수 없지만 글로나마 정원도 거닐고 윤동주 시인의 삶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이 책은 교토 트레킹을 꿈꾸는 여행자들의 가이드로도 제격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맡겨진 소녀에 이어 11년 뒤 출간된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독자들에게 흥분을 일으켰다. 이 책은 2022년 부커상 최종후보 중에서 가장 짧은 작품이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긴 대화나 설명을 피하고 무수한 의미를 압축했다. 번역가님의 말대로 두 번, 세 번 그 이상 읽어야 눈에 들어오는 것도 있다.

 

소설은 1985, 실업과 빈곤에 허덕이며 혹독한 겨울을 지나고 있는 아일랜드 한 소도시 뉴로스에서 아내와 다섯 딸을 두고 안정된 생활을 하는 석탄 상인 빌 펄롱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펄롱은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고 태어났지만 엄마가 일하는 집 주인 미시즈 윌슨덕분에 부족함 없이 자랄 수 있었다.

 

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는 걸 펄롱은 알았다. 실업수당을 받으려는 사람들 줄이 길어지고 있었고 전기 요금을 내지 못해 창고보다도 추운 집에서 외투를 입고 자는 사람도 있었다. 펄롱은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자각했다. 과거에 머물지 않기로 했다.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직업이 있고,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딸들이 잘 커서 좋은 학교를 무사히 마치도록 뒷바라지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딸들이 사소하지만 필요한 일을 하는 걸 보며 이 애들이 자식이라는 사실에 진한 기쁨을 느끼곤 했다. 그러나 종일 무거운 짐을 나르며 일을 하고 잠자리에 누워 있다 보면 생각이 많아 마음을 어지럽힌다. 수녀원에 배달을 갔을 때 마루를 닦는 여자 아이가 도움을 요청했는데 들어주지 못하고 돌아왔었다. 두 번째 배달을 갔을 때 석탄 창고에 맨발의 한 아이가 갇혀 있었다. 이름은 세라였고 얼마 전 아기를 출산했는데 아기를 뺏겼다며 배고플텐데 누가 젖을 주냐고 했다.

 

수녀원장에게 갇힌 아이에 대해 물어보려고 했지만 펄롱의 딸들이 수녀원에서 음악 수업을 듣거나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자주 다니는 식당 주인은 수녀원에서 트러블이 있었느냐고 물었고 수녀들이 안 끼는 데가 없으니 조심하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그 애의 아기에 관해 묻지도 않고 수녀원에서 아이가 받은 취급을 보고도 내버려두고 나와 미사를 보러 갔다는 사실이 펄롱의 마음을 괴롭힌다.

 

크리스마스 선물과 카드를 건네주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좋은 사람들과 주고받는 것을 적절하게 맞추어 균형 잡을 줄 알아야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단 생각을 했다. 이발소에서 머리를 깍으면서 네드와 닮았다는 이웃 여자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둘이 친척이라고 여겨 닮았다고 착각한 것일 수도 있었다.

 

펄롱은 미시즈 윌슨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과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생각했다. 윌슨이 아니었다면 어머니는 결국 그곳에 가고 말았을 것이다. 더 옛날이었다면, 펄롱이 구하고 있는 이가 자기 어머니였을 수도 있었다.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세탁소'라 불리던 이 수도회의 시설은 1922년에 가톨릭 교회에 의해서 지어졌다. 1996년에야 세탁소가 문을 닫았다. 이 시설에서 타락한 여성들을 수용한다는 명분으로 설립했으나, 은폐, 감금, 강제 노역을 당한 여성과 아이가 얼마나 많은지 알려지지 않았다. 가톨릭교회가 아일랜드 국가와 함께 운영하고 자금을 지원하는 곳이었다. 정부에서는 막달레나 세탁소에 대해 아무런 사죄의 뜻도 표명하지 않다가, 2013년이 되어서야 엔다 케니 총리가 사과문을 발표했다.

 

펄롱은 여자 아이를 데리고 나온다.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을 평생 지고 살아야하는 것보다 낫다. 지금부터 마주하게 될 고통은 어떤 것이든 지금 옆에 있는 이 아이가 이미 겪은 것, 어쩌면 앞으로도 겪어야 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소설 몇 번이고 읽어보고 싶어진다. 이처럼 사소하다고 하지만 사소하지 않고 소중한 것들이다. 펄롱의 가슴속에는 두려움이 있겠지만 용기가 대단하고 결말 뒤의 일이 궁금해지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
이소영 지음 / 홍익 / 201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우리의 삶에 위로와 힘이 되어주는 그림을 전달하는 아트메신저 이소영 작가가 모지스 할머니의 삶을 담아냈다. 미국의 국민 화가로 불리는 그녀의 이름은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이다. 75세 늦은 나이에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세상을 떠난 101세까지 1,6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고 한다.

 

그림은 크리스마스실이나 우표, 카드에 사용되었다. 6,000만 장의 크리스마스 카드는 금방 동이 났다. 그녀의 100번째 생일을 당시 뉴욕 주지사였던 넬슨 록펠러가 모지스 할머니의 날로 선포할 만큼 인기는 대단했다.

 

도시에 살면서 나무 향기가 그리울 때마다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저자 마음 안에 담긴 시골에서의 추억들이었다. 모지스의 그림은 작은 추억을 소중하게 꺼내어 생각하게 하는 주문이라고 한다. 저자는 진정으로 심장이 시키는 일이 있다면, 그 순간이 우리 삶에 있어 가장 젊고 적절한 때라는 그녀의 말을 응원한다. 그 말 덕분에 나의 오늘 하루도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가장 적절한 날이 된다.

 

우연히 손자의 방에서 도화지와 그림물감을 발견한 모지스 할머니는 자신의 어릴 적 꿈이 화가였다는 사실을 떠올렸고 누구보다 응원해준 사람은 여동생 셀레스티아였다. 처음 그린 그림은 커리어 아이브스라는 그림엽서 회사에서 나온 엽서를 따라 그린 것이다. 모지스에게 이별은 삶에서 불쑥 등장하는 인사와도 같았다. 열 명의 아이들 중 다섯 명을 먼저 보내고 남편, 딸 애나, 막내아들 휴마저 먼저 세상을 떠났다.




저자는 모지스 할머니의 작품을 이야기하는 글을 쓰는 동안 도시에서의 삶을 살면서도 그녀의 그림 속 마을에 가 있었다고 한다. 때로 그녀의 딸이 되었고, 옆집 아줌마가 되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화가의 그림을 보는 것은 그의 삶의 태도를 보는 것과 같다. 모지스 할머니가 그린 그림은 그녀의 삶의 자세이고, 그녀의 삶을 엿볼 수 있는 통로이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성경도 한번 그려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기자의 질문에 경험하지 않은 것을 그리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모지스 할머니는 시간적 여유가 되면 창문 보는 일을 즐거워했다. 세상이 아무리 바삐 돌아가도 창문 밖은 세상의 시간보다는 늘 느리기 때문일까. 그림만이 아니라 삶 전체적으로 화가 그 이상의 등불이 되어 주었다. 화가들의 삶과 함께 나 역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 미술 수집가 루이스 칼더는 뉴욕 주 후식 폭포에 방문하여 골목길을 걷다가 약국 벽에 걸린 모지스 그림을 발견하고 감동하였고 10점 정도 구매한다. 작품이 후원자를 만나 세상에 알려지는 경우는 많은데 칼더는 모지스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모지스가 여든 살이던 1940년 가을, 오토 칼리어의 갤러리에서 처음 개인전을 열었다. <어느 농부의 아내가 그린 그림들>로 칼더가 소장했던 34점 유화를 중심으로 전시되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은 소문이 난다. 그림은 엽서나 우표, 기념품이 되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아흔두 살의 그녀는 <내 삶의 역사>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출간했다. 이듬해 <타임지>표지 모델이 되기도 했다. 자신의 그림을 세상과 나누며 행복하게 지냈고 모지스 부인으로 시작된 그녀의 이름은 모지스 엄마, 다시 모지스 할머니로 불리게 되었다.




모지스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남긴 그림은 <무지개>이다. 그림 속에서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즐거운 일상을 살고 있다. 끊임없는 폭우를 겪을지라도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무지개를 기다렸다.

 

저자는 모지스 할머니의 작품만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그녀의 삶 속에서 탄생한 그림들이 현대를 살아가는 의미를 별자리를 연결하듯 그려간다고 생각하며 썼다. 책을 쓰는 동안 그녀의 마을 곳곳을 더 열심히 걸어다녔다. ‘우리는 열정이 있는 한 늙지 않는다는 모지스 할머니의 말은 나이가 들어 너무 늦은 것 아닌가 도전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큰 위로와 용기가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민해서 더 빛나는 너에게
성유나 지음 / 모모북스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의 저자는 소심하고 예민하게 오랫동안 살아왔지만 예민함을 받아들이고 잘 살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노라 열심히 노력했다. 저자는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자신의 경험을 승화시켜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에게 위로를 해주고 싶다는 마음을 전한다.

 

외국 근무를 마치고 온 사촌 언니의 영향으로 브라질 유학을 꿈꾸기도 했지만 목을 다치는 사고로 대학 한 학기를 남기고 휴학하게 된 것이다. 열심히 재활을 거치고 몇 년간의 침대 생활을 마치고 사회로 복귀했을 때 이전과 같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노력했다.

 

지나치게 나를 낮추고 상대방을 맞춰 주는 바람에 연애의 끝은 좋지 않았다. 아빠의 사업이 바빴고 엄마는 외할머니 건강을 신경 쓰느라 가족들의 관심이 멀어졌다. 외숙모가 찾아와 이야기를 들어주고 많이 외롭고 힘들어겠다며 위로해 주는 말에 안정감을 찾았다. 사람들은 누구나 예민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저자는 조금 더 예민하기에 싫어하는 말을 들었을 때 짜증을 내곤 하였고 겉으로는 밝게 웃고 다니지만 속은 곪아 갈 수 밖에 없다.

 

일 때문에 바쁜 부모님과 떨어져 살게 되면서 가족은 흩어져 살았다. 큰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각자 다른 문제들을 보고 공감과 위로를 받았다. 일상생활을 정상으로 할 수 있을 때 유튜브 채널을 열었다.

 

좀 더 건겅해지라고 척추를 맞춰 준다는 곳에 가서 오히려 병을 얻어온 것은 큰 사고였던 것 같다. 앓아누웠고 엄마 친구 가족은 좋아졌다는데 말을 들으면 자신도 가족도 세상이 많이 원망스러웠다. 몸과 마음이 좋아지기 위해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일부터 다시 시작해 보자고,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 다시 힘을 내보기로 하면서 왜 이런 아픔을 겪어야 하는지 수없이 되물은 끝에 고통의 원인을 찾았다.

 

오로지 자신을 위한 공부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다른 사람을 바꾸는 일보다 나를 바꾸는 쪽이 훨씬 쉬웠다. 지혜를 담은 책, 인간관계, 심리에 관련된 서적을 읽었고 다른 사람의 성향과 차이점을 좀 더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사고 전에 할 수 있었던 것들을 다시 할 수 있게 되면서 작은 것 하나도 더 특별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북튜버 채널을 운영하면서 주로 책을 낭독하고 소개하다 보니 그 글을 쓴 이의 마음을 읽어보려고 했다. <행복한 이기주의자>를 읽고 오로지 나를 위해서 행복한 이기주의자가 돼보자고 다짐했다.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우선 나를 챙기게 되었다.

 

베란다 전체를 화분을 심었다. 꽃을 좋아하면 나이가 드는 것이라고 하지만 식물을 키우면서 안정감을 받고 싶은 것이라 추측한다.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소심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충격을 받았다.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었나 돌이켜보니 평소 남들 눈치를 보고 긴장하며 위축된 모습이었다. 몸에 힘을 완전히 뺀다는 게 대체 어떤 느낌일까? 명상을 따라 하기 시작했을 때 가장 어려웠던 건 바로 긴장을 내려놓는 것이었다.

 

전학 간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했고, 가족의 무심함과 대처에 마음이 무너졌다. 성인이 되어 첫 직장에서 왕따를 당하게 되니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인지 고민되기 시작했다. 매일 출근 전 머릿속에 시뮬레이션을 돌려 보았다. 기가 센 사람 앞에서 당당하게 나의 의견을 논리 정연하게 펼치는 모습을 말이다.

 

어릴 때 잔병치레와 사고로 홀로 지내는 동안 온기가 그리울 때도 있었다. 혼자 지내는 게 외롭고 서럽지만 사람들과 지지고 볶고 부대끼고 싶다고 하면서 혼자 있는 게 괴로운데, 솔직히 편하긴 해가 솔직한 심정이었다. 용기를 내어 독서 모임을 통해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사람들과 끈끈한 만남을 이어갔다. 무장 해제된 모습을 보여줘도 변하거나 떠나지 않는 인연들과 함께하면서 혼자만의 동굴 속에서 점차 벗어나게 되었다.

 

[예민해서 더 빛나는 너에게]는 예민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을 이해하고 자기 자신을 더 잘 돌볼 수 있는 방법을 찾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신을 치유하는 과정을 통해 삶의 새로운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듣는 사람
박연준 지음 / 난다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전을 왜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하며 박연준 시인은 자신이 겪은 일화를 소개한다. 길을 잘못 들어 뒤늦게 방향지시등으로 사과의 뜻을 전했음에도 뒤차는 클랙슨을 울리며 창문을 내려 이봐요! 길을 잘못 들었으면 그냥 잘못 가세요! 위험하니까 계속 잘못 가시라고요!”이 말이 화두처럼 다가왔다. 어차피 잘못 드는 것이 길이라면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는구나. 고전을 읽어야 한다면 잘못된 길을 열심히 걸을 때 우리가 얻는 가치를 위해서라고 말한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저자가 외울 정도로 반복해 읽었던 책이다. 주인공 콜필드는 부사와 형용사를 남발한다. 정말, 굉장히, 엄청난 무시로 튀어나온다. 여동생이 좋아하는 것을 단 한가지만 말해보라는 물음에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말로 이어진다.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게 많아 늘 투덜대는 인물이지만 그건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많아서다.

 

태어나 먹고 자고 사랑하고 다투고 화해하며 늙는 일. 변하지 않는 인간사, 일상은 고전이 됩니다. 오래 살아남는 게 고전이라면 말이지요.p12

 

이상 소설 전집 [봉별기]는 봄마다 끄집어내 읽는 짧은 소설이다. 인간사야 만나고 헤어지는 일을 피할 수 없으니 인연의 기록은 결국 다 봉별기. 좋은 소설은 겪지 못한 인생을 살아보게한다. 다 읽은 후 고치처럼 몸을 말고 웅크리게 만든다.

 

여행을 당장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장소가 내 방이라고 한다. 저자가 가택연금 기간 중 자기 방에서 써내려간 [내 방 여행하는 법] 제목이 끌린다. 갇힌 신세라고 상심하지 않고 특유의 모험심으로 발상의 전환을 꾀한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이야기는 인간을 이루는 일부이자 전부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장자]를 소개한다. 장자는 일상에서 꺼내 보기에도 좋은 생활 경전이다. 주의사항으로 장자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할 때 가르치려 하면 안 된다. 이야기만 들려주고 깨달음은 듣는 이의 몫으로 남겨둘 것. 깨달음까지 가르치려들면 당신은 꼰대가 될 것이다.

 

독서는 남의 말을 듣는 행위고 듣기는 침묵이란 의자에 앉아 있는 일이다. 타인의 생각 속에서 기다리고 머무는 일이다. 혼자 책 읽는 사람을 보라. 침묵에 둘러 싸여 얼마나 아름다운지!p112

 

[슬픔이여 안녕]의 사강은 어느 산문에서 사강은 책이 잘 팔려 미친듯이 돈이 들어오던 시절을 회상하며 수표가 벚꽃처럼 흩날리던 시절이라고 썼다. 글쓰기로 이른 나이에 성공해 삶이 주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고루 누렸다. 도박과 스피드, 약물, 쾌락과 정념, 자기 파괴에 열중했다.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7) 변신은 강렬한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가족의 생활비를 벌던 일벌레가 진짜 벌레로 변하자 가족들은 싸늘한 태도를 보이고 현실적으로 변한다. 작가는 인간이 어떻게 고립되는지, 몰락하는지 집요하게 보여준다. 소설은 가족은 사랑해서 필요한 것인가, 필요해서 사랑하는 것인가? 우리는 결국 무엇으로 변신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헤매고 싶어서 읽는 책이 있다. 명료한 답을 구하기 위함이 아니라 혼란 속에서 거닐고 싶어서 읽는 책.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소설집 [모자]가 그렇다. ‘가볍고 즐겁고 재밌고 신나는콘텐츠가 각광 받는 이 시대에 베른하르트의 소설을 읽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요즘 스토너를 조금씩 읽고 있다. 소설에는 대단한 사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라고 말한다. 스토너는 스토너 자기 자신을 살다 간 사람이었다.

 

[듣는 사람]은 언제 읽어도 심장을 뛰게 하고, 옆 사람의 팔을 잡아끌며 일독을 권하게 만드는 서른아홉 권의 고전을 소개한다. 글쓰기는 공들여 말하기, 읽기는 공들여 듣기라고 했다. 공들여 듣는 사람이 되어 고전을 천천히 읽어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