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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불빛의 서점 - 서점에서 인생의 모든 것을 배운 한 남자의 이야기
루이스 버즈비 지음, 정신아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평점 :
노란 불빛의 서점...표지에서 은은한 향이 풍겨 나온다.
책이 잔뜩 쌓여있는 공간에 들어서면 가슴이 쿵쾅거린다. 내 책도 아닌데 왠지 내 것 같고, 그 안에 들어있는 온갖 신비롭고 잡다한 내용들이 모두 내 머릿속에 들어앉을 것 같아서 마음이 설레인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독특한 자기만의 세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만의 고유한 향을 지닌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감히 그 안에 들어가 휘젓고 다니기 멈칫해진다. 왠지 내가 침범할 수 없는 뭔가 대단한 세계가 있을 듯, 나보다 똑똑하고 나보다 지혜로울 듯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서점과 출판사 직원으로 일하며 책을 마치 삶의 전부인 양 여기며 살아왔던 작가 루이스 버즈비의 책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종이가 나오기 이전, 파피루스와 양피지와 필경사가 존재하던 시대부터 중국에서 종이가 사용되면서 겪게 된 수많은 에피소드, 그리고 19세기에 이르러 서점과 출판사가 분리되는 시점의 이야기, 그리고 현재 책과 관련된 시스템에 대해 짚어준다. 책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한 권의 역사서로도 손색이 없겠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났다면 다소 지루하고 따분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책에 대한 생각, 책이 준 영향, 서점과 출판사에서 일하며 깨닫게 된 수많은 지혜로운 이야기들을 마치 수필같은 느낌으로 담아내고 있다. 일반인들이 모르는 책과 관련된 이야기, 예를 들면 책 한 권의 수익이 어떻게 배분되는지, 신간이 나와서 반품되고 다시 재고도서로 팔리게 되는 과정 같은 이야기가 나와서 흥미로웠다. 좋은 책을 읽으면서 가끔, 작가에게 얼마만큼의 수익이 돌아갈까 궁금했는데 속시원한 대답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의미는 있었다. 책 한 권이 만들어지는 데 가장 크고 중요한 역할을 한 작가에게 큰 공이 돌아가지 못하는 것 같아 조금 안타까웠다. 물론 우리나라 사정을 다를지도 모르겠다.
서점에서 근무하고 출판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삶이 무척 궁금했다. 넘치는 책과 씨름하며 일하는 사람들이 살짝 부럽기도 하다. 작가는 서점 업스타트 크로와 프린터스에서 10년을 일했고, 출판사 외판원으로 7년을 일했다고 한다. 기쁨과 보람도 있었지만 늘 비평과 불만이 쏟아지는 곳이었기에 애로사항도 있었다고 고백한다. 일자리를 옮기는 과정에서 겪게되는 혼란과 결정의 두려움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말하고 있다.
동네 서점은 이제 구경조차 하기 어렵다.노란 불빛이 어울리는 분위기 있는 서점이 그립다. 인터넷 서점을 자주 이용하는 편이지만, 가끔 서점에 들른다. 집근처에 있는 서점은 익숙해져서 이제는 어떤 책이 어디쯤 있는지 눈에 선하다.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그 안의 책들이 모두 나에게 의미있는 존재로 다가와서 가슴이 두근거린다.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 모두 있을 것 같은 안도감을 즐기는 일도 꽤 괜찮다.작가가 말하는 설레임과 기쁨을 조금 이해할 수 있겠다.
오래된 책의 향기가 솔솔 배어나오는 책이다. 책이 있고, 책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고, 책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삶이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