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더블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6-4 리졸리 & 아일스 시리즈 4
테스 게리첸 지음, 박아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법의관 마우라 & 형사 리졸리'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 <외과의사>, <견습의사>, <파견의사>에 이은 <바디더블>의 공통적인 특징은 (당연하게도) 희생자가 여자입니다. 그리고 사건 해결의 중심인물도 역시 여자이고요. 마지막으로 길거리에서 마주치기 싫을 만큼 끔찍한 사이코가 등장합니다. <외과의사>에서는 별명이 '외과의사'인 사이코가 등장하여 여자들의 자궁을 도려냅니다. 사실 가슴에 확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자궁을 도려낸다는 것이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았고, 그 고통의 무게 역시 짐작이 되지 않으니까요. 이번 <바디더블>에 등장하는 사이코는 <외과의사>의 '외과의사'보다 더 잔인하고 과감하며 인간 이하의 (소설 속의 묘사처럼 정말 '괴물' 같은) 행동을 보여줍니다.

<바디더블>은 혹시 모성애를 말하고자 하는 소설일까? 유능한 여형사 리졸리는 임신을 한 상태입니다. (뭐 그럼에도 열심히 사건 현장을 방문합니다.) 그리고 땅 속 상자 속에 생매장 당한 여자도 임신한 상태이고요. 가끔 그런 뉴스를 볼 때가 있어요. 기적이라고 할까요? 엄청난 모성이 극한 상황에서 자식을 살려내는 그런 기사 말이죠. 이 소설에서도 그런 기적 같은,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물론 그 대단한 힘은 모성애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고요. 암튼 그래서 사실 조금 불편하기는 했습니다. 모성애를 내세워서 감동을 주려는 것인가? 아닙니다. 이런 모성애를 뛰어 넘는 악한 인간이 등장합니다. 괴물이라 불리는 정말 악한 여자(어머니)가 등장합니다. 워낙 여기 저기 임신한 여자들이 많이 나와서 (죽기도 많이 죽습니다만) 모성애를 다룬 추리소설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런 소설은 아닙니다. 어머니는 위대하지만 그만큼 사악할 수도 있죠. 모성뿐만 아니라 혈연 자체도 이제는 의심스럽지 않나 생각합니다. 결코 안전한 곳은 이제 없다는 것이죠. 과연 누구를 믿을 수 있을까요? 이 소설은 그런 믿음에 대한 배신이기도 합니다. 결코 믿지 마세요.

테스 게리첸는 여성 작가입니다. '법의관 마우라 & 형사 리졸리' 시리즈를 한 권이라도 읽으신 분들은 소설 속에서 여성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는지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여성과 관련이 있는 자궁, 임신, 태아 등등. 여성에게 소중하면서도 은밀하게 감추고 싶은 그런 부분을 살인자(사이코)는 희열을 느끼고 잔인하게 유린합니다. 사실 여성 입장에서는 몹시 불편한 소설이지 않을까 싶어요. 의사 출신의 여성 작가 테스 게리첸이 그리는 내용은 무척 섬뜩합니다. 상상이 아닌 현실이고, 그 묘사가 무척 사실적이기 때문이죠. 왜 이렇게 작가는 여성들을 괴롭히는 것일까요? 소설적인 재미를 조금은 가미를 했지만, 결코 소설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 현실에서도 여성범죄는 비일비재하다는 것, 그리고 그만큼 잔인하다는 것. 작가는 독자들에게 계속 상기시켜주고 싶은 게 아닐까요? 그리고 그 고난 속에서도 여성들은 멋지게 사건을 해결합니다. '살아남은 건 시작에 불과할지 모르지만'(소설 속의 형사 리졸리가 이런 말을 하죠) 상처는 계속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그래도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냈다는 것은 무척 중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왜 제목이 <바디더블>일까요? 대부분 알고 있는 것은 '쌍둥이 자매'라는 것. 자기 자신도 모르는 자기 자신과 똑같이 생긴 여자가 자기 집 앞에서 총에 맞고 죽었다는 사실. <외과의사>에서는 리졸리가 엄청 고생을 하더니 <바디더블>에서는 미우라가 엄청 고생을 하네요. 미우라와 리졸리는 이 이상한 사건을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마주치는 진실은 (특히 미우라에게는) 쌍둥이 자매의 죽음을 뛰어넘는 엄청난 충격입니다. 가족과 모성, 외면할 수도 없고 다가서기도 힘든 진실, 그리고 '인간은 과연 어디까지 사악해질 수 있을까?' 시험대에 올라선 느낌. 진실과 대면할 용기가 있다면 과감하게 선택해 보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긋나긋 워킹
최재완 지음 / 바우하우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한 녀석은 그게 무서워서 다른 친구들이 계속 위로 위로 올라갈 때도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가 울어버렸다. 언제 타면 되는 걸까? 언제 올라타면 안전한 걸까? 지금 타야 하는 건가? 앞에 서서 보고만 있다가는 위로 올라갈 수가 없다."

급 만남이 아닌 진지한 만남, 아니 진지할 것까지도 없고 그냥 가볍게 만나는 정도도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힘들어진다. 그러고 보면 예전 사람들의 연애 방식이 ‘만나서 살기에는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선 몇 번 보고 그냥 결혼해서 지지고 볶고 사는 것. 죽네, 사네 싸워도 정인지 개뿔인지 그래도 살아가더라. 이런 선보고 결혼하는 문화가 사라진 요즘(물론 있는 집안 자식들은 혈통을 중시해서 이런 식의 결혼을 하겠지만, 일반 평민은 그냥 알아서 찾고, 만나서 결혼을 해야 하는 무척 연애하고 결혼하기 힘든 요즘) 만남의 자리를 갖기는 정말 어렵다. 가끔 들어오는 소개팅. 예전 지 성깔대로 꼴리는 대로 소개팅 자리에서 처신하면 100% 깨진다. 그것도 피 끓는 20대가 아니라 30대라면. 조건도 중요시 하고, 그 사람의 됨됨이, 성격, 재산, 뭐 조건도 무척 많다. 아니다 싶으면 그냥 돌아선다. 냉정하게. 서로 아쉬울 것이 없다.

암튼 <나긋나긋 워킹>은 34살의 남욱과 30살의 해진의 소개팅 이야기다. 사연 있는 여자는 No, 담배 피우는 여자는 No, 찌질하게 옛사랑 얘기하는 여자는 No, 첫날부터 목구멍 속으로 술 퍼다 붓는 여자 No……. 소개팅만큼 확실하면서도 어려운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소개팅을 통해서 서로 만나기까지의 무수한 if들……. 그 가능성들이 모여서 한 번을 만나는 자리, 소개팅. 잘 해야지 하면서도 잘 되지 않는 것. 그래도 요즘에는 이런 소개팅으로 만나서 결혼도 하고 그러는 것 같다. 워낙 남녀가 만날 수 있는 자리가 없다 보니. 이 소설 가볍다. 때로는 웃기다. 조금은 서글프기도 하다. 그리고 소설적인 우연도 있다. 물론 현실에서도 이런 우연을 기대할 수는 있겠지만. 공감 100%는 모르겠다. 소설 속 남녀 주인공의 라이프스타일이 나와 조금 다르다. 그건 뭐 내가 평균 이하의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지만. 연애다운 연애를 해 본적도 없고, 할 노력조차 귀찮은 나에게 소설 속 남녀 주인공의 무한한 노력은 달나라 이야기 같기도 하다. 역시 나는 평균 이하의 인간이었어. 그러니 이 모양, 이 꼴로 살고 있지. 갑자기 서글퍼지네.

가벼운 연애 이야기를 읽고 싶으신 분들이나 연애 경험이 전무해서 대리 만족을 얻고 싶으신 분들에게는 살짝 추천을 하나 그렇지 않은 분들에게는 다소 밋밋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접할 수 있는 연애 이야기의 그 이상은 아니라는 것. 남녀 연애 이야기가 뭐 거기서 거기지만. 만나고 헤어지고, 만나고 헤어지고. 그냥 2시간 동안 가볍게 웃고 즐기실 분들만 읽으시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듀마 키 1 - 스티븐 킹 장편소설 밀리언셀러 클럽 86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인간은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믿지 않으려고 하죠.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 두려움의 근원이라면 더욱더 믿고 싶어 하지도 믿으려고 하지도 않는 것 같아요. 스티븐 킹의 이번 신작 <듀마 키>는 그런 보이지 않는 아니 믿을 수 없는 두려움의 근원에 대해 다룬 이야기입니다. 물론 그 두려움은 때로는 무척이나 매혹적이기도 합니다. 이상하게 두려우면서도 매혹적인 양가적인 감정이 드는 묘한 느낌의 소설이었습니다. 듀마 키에는 슬픔도 공포도 유머도 그리고 재치 있는 말장난도 있습니다. 스티븐 킹의 귀환은 역시나 반가움 그 자체입니다. "자기 자신을 너무도 잘 속여 그걸로 밥벌이까지 하는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들이라고 했던가?" 이 대사가 자주 나오는데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를 이처럼 시니컬하고 정확하게 묘사하다니 정말 웃지 않을 수 없더군요. 암튼 이런 재미있는 대사가 무척이나 많습니다. 50대의 두 아저씨(와이어먼, 에드거) 정말 골 때립니다. 표현이 조금 저속하지만 에드거 식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네요. 사실 에드거는 자기 자신과 와이어먼, 엘리자베스를 더 심하게 표현합니다. 셋 다 머리에 문제가 있거든요. 좀 더 노골적으로 이 소설에 대해 표현하자면 듀마 키에 거주하는 세 명의 병신들이 악녀 퍼시를 용감하게 물리치는 이야기입니다.

불의의 사고로 팔을 잃고, 정신도 이상하게 돼 버리고, 아내의 불륜과 이혼, 그리고 큰 딸의 따가운 시선.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내 에드거는 불의의 사고로 모든 것을 잃고 요양 차 듀마 키 섬에 갑니다. 불길한 기운이 음습하게 젖어있는 섬에서의 생활은 그를 전혀 다른 인간으로 점차 변화시킵니다. 이상한 능력을 얻게 된 것이죠. 그림으로 사람을 죽이기도 때로는 병을 고치기도 합니다. 걷잡을 수 없는 또는 통제할 수 없는 (신의) 능력을 얻은 그는 두려우면서도 점차 이러한 자신의 능력에 매혹당합니다. 또한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총으로 자살을 하려다 실패하고 뇌에 이상이 생긴, 와이어먼과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듀마 키 섬의 주인인 노파 엘리자베스를 만납니다. 암튼 머리에 문제가 있는 인생의 변두리로 내몰린 인간들의 평온한 나날을 다룰 것 같은 소설은 기이한 사건을 시작으로 이들을 점차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갑니다. 숨 막히고 답답한 그리고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 정말 킹의 소설답게 훌륭합니다.

스티븐 킹의 소설은 열광하는 독자가 있는 반면 지루하다고 외면하는 독자들도 많죠. 스티븐 킹을 싫어하는 독자들에게 이 소설 역시 다소 지루할 수도 있습니다. 스티븐 킹의 <셀>을 좋아하는 분들은 특히 더 그렇지 않을까 싶네요. 반면 <셀>에 조금이라도 실망한 독자라면 이번 <듀마 키>는 무척 좋아할 것 같아요. 사실 공포소설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인간 개개인이 느끼는 두려움은 모두 다르고 또한 보편적인 두려움을 다룬다는 것도 쉽지가 않으니까요. 귀신이나 유령이 나온다?, 잔인한 연쇄살인마가 나온다?, 변종 괴물이 나온다?, 사이코가 나온다? 등등 인간이 무서움을 느낄만한 소재와 이야기는 주변에 널렸죠. 그런데 정말 근원적인 공포 자체로 사람을 오싹하게 만드는 것은 정말 어렵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이번 작품 <듀마 키>는 정말 반가운 작품입니다. 분위기 하나만으로 그 공포를 표현하거든요. 개인적으로는 2권의 본격적인 악녀 퍼시와의 대결을 그린 이야기보다는 1권의 그 잔잔한 (불운한 기운이 감도는) 분위기의 묘사가 더 좋더군요. 뭔가가 일어날 것 같은 그런 답답한 무엇. 하나 둘 주인공들은 알지 못하는 숨어 있는 복선들. 거대한 악운을 암시하는 듯한 자잘한 일상들. 그만 멈추라고 말하고 싶지만 멈출 수 없는 개인들이 처한 상황들. 암튼 그런 면에서 이번 작품은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이런 분위기의 공포소설을 쓰는 작가는 요즘 활동 중인 작가 중에서 스티븐 킹을 제외하고는 정말 찾아보기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믿지 못할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룬 이야기. 그림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말이 안 되는 그런 이야기를 믿을 수 있게끔, 아니 빠져들게끔 독자들을 유혹하는 킹의 문장들은 정말 매혹적입니다. 그리고 유머, 개인적으로 이런 유머 무척 좋아합니다. 소설 중간 중간 '그림을 그리는 법'이라는 이야기가 들어가 있는데 표현이 무척 고급스럽습니다. 그런데 와이어먼과 에드거가 나누는 대화는 정말 상스럽습니다. 지들 꼴리는 대로 그냥 말을 툭툭 내 뱉거든요. 암튼 공포소설이라는 이야기 자체의 매력은 제쳐두고라도 스티븐 킹의 문장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무척 재미있지 않을까 싶네요. <듀마 키>는 개인적으로 불운한 기운에 관한 소설이라 생각합니다. 뭔가 안 좋은 일어날 듯한 그런 분위기를 그린 소설이요. 그리고 듀마 키 섬에 거주하는 와이어먼, 에드거, 엘리자베스라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인간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에드거가 관계를 맺고 인간들과 듀마 키 섬에 거주하는 인간들의 삶을 관찰하고 있노라면 제가 살아온 삶이 이상하게 생각나더군요.

"그대가 삶을 살고 삶이 그대를 살도록 하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귀신전 1
이종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표지의 노란 부적을 들고 담배를 피우는 아저씨가 바로 불량스럽고 질투심 많은(고등학생에게도 질투를 느끼니 뭐 이건) 장선일 법사군요. 오른쪽으로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가진 소설 <귀신전>의 작가 소영, 그리고 왼쪽으로 카페 사장 겸 귀신전용 상담사인 찬수군요. 선남선녀네요. 왜 갑자기 표지 얘기를 하냐고요? 국내 공포소설 <이프>, <분신사바>의 작가 이종호 씨의 작품과는 처음에 조금 안 어울린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정통공포소설 작가의 신작 표지가 조금 가벼운 느낌이 들어서요. 또한 띠지의 공포테인먼트 소설, "공포랑 놀자!"라는 문구도 조금 의아했고요. 그런데 이 소설 가볍습니다. 그리고 무서우면서도 유쾌하고요(물론 전작 <이프>나 <분신사바>만큼의 오싹함은 없지만요. 이는 중간 중간 캐릭터들이 빚어내는 유머 때문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긴장과 이완이 반복된다고 할까요? <이프>나 <분신사바>는 심적으로 쉴 여유가 없었던 반면 <귀신전>은 중간 중간 조금은 여유를 가질 수 있더군요). <귀신전>은 제목처럼 귀신이 나오는 소설입니다. 그리고 귀신은 퇴마사들이 물리치고요. 그러니까 이 소설은 귀신과 퇴마사, 그리고 인간들의 이야기입니다.

귀신 잡는 퇴마사 하면 떠오르는 소설이 있지 않나요? 바로 이우혁 씨의 <퇴마록>이죠. 이우혁 씨의 <퇴마록>은 너무나도 유명하죠. 그렇다면 정통공포소설을 주로 써온 작가는 왜 갑자기 귀신과 퇴마사 이야기를 썼을까요? 물론 저야 모릅니다. 우선 이 소설은 조금 유쾌합니다. 그렇다고 코믹한 공포소설은 아니고, 6명의 귀신 잡는 인간들이(퇴마사가 아닌 인간도 있습니다) 빚어내는 상황이 조금 웃깁니다(<귀신전>의 작가를 좋아하면서 그런 작가가 예뻐하는 고등학생 공표를 질투하는 마흔이 가까운 퇴마사 아저씨의 질투라든지, 동표에게 달라붙은 여자 귀신과의 애증과 질투, 좋은 검을 가지고 있음에도 제대로 활용할 줄 모르고 사고만치는 새내기 퇴마사 등등). 암튼 그러니까 이종호 씨의 <이프>나 <분신사바>를 읽으신 분들이라면 조금 의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공포스러운 묘사도 당연히 있습니다. 악귀라고 해야 하나 원귀라고 해야 하나 독한 귀신들이 있거든요. 악귀들의 소굴 귀사리, 액막이 인형, 아내의 복수를 위해 사악한 귀신에 달라붙은 남편의 원혼 등 오싹한 장면도 있습니다. 액막이 인형 이야기의 결말은 조금 안타까우면서 씁쓸하고, 아내에게 복수를 하는 남편 귀신의 이야기는 조금 추악하면서 사악합니다. 암튼 다양한 인간사의 슬픔과 공포, 웃음, 사악함 등이 귀신 이야기와 만나서 색다른 재미를 던져줍니다. 물론 조금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물론 아직 1권 밖에 읽지를 않아서 단정 짓기는 힘들지만요) 인간사를 다루는데 있어 좀 더 어둡고 슬프고 절망적인 이야기를 다루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의처증 남편과 바람피우는 아내 이야기는 조금 식상했고, 액막이 인형의 이야기는 인간적인 드라마보다는 액막이 인형 자체가 주는 공포에 초점을 맞춘 것 같아서요. 개인적으로는 액막이 인형 같은 조금은 정통공포의 느낌을 좋아하지만요. 암튼 나름대로 이런 점에서는 기존의 퇴마사가 등장하는 이야기와 조금은 차별을 준 느낌입니다. 앞으로 2권, 3권의 이야기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는 모르겠지만 좀 더 인간들의 슬프고 어둡고 절망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네요.

마지막으로 제1장의 '귀사리'는 다음 권에서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가 맺어지겠지요.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마을 귀사리. 6인의 귀신 잡는 인간들도 포기하고 돌아온 귀사리에서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 같은데, 1권에서는 살짝 맛배기만 보여주더군요. 그리고 숙희라는 아가씨의 정체도 궁금하더군요. 무척 미스터리한 여인네입니다. 이상한 소리를 하다가 제정신으로 돌아오고. 암튼 정체가 몹시 궁금한 인물입니다. 사실 (조금 오버해서 표현하면) 이 소설은 (시리즈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캐릭터 소설이기도 해요. 주인공들이 무척 재미있고 정감이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 <귀신전>의 작가 아가씨 수정 양과 귀신 묘령을 무척 좋아합니다. 암튼 2권이 궁금해지네요. 이들에게 또 어떤 시련과 고난이 다가올지, 그리고 이들의 인간관계는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도 몹시 궁금하네요. 암튼 몸에 힘 빼고 가볍게 읽으세요. 물론 그렇다고 너무 힘을 빼면 밤에 잠을 못 잘 수도 있습니다(액막이 인형은 제가 정말 무서워하는 인형인데 이 소설에 나오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굿바이 미스터 하필
김진경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필이 누구지? 이름 한번 고약하다. '하필이면'은 내가 자주 가는 바위 위에서 자살을 시도한 노숙자 아저씨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하필이면이라는 이름은 없으니 그냥 하필로 부르자. 그리고 그 당시 막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중학교 1학년 사이에서 유행하는 미스터를 붙여주자. 그래 이제부터 세상으로부터 지워진(사라진 것이 아닌) 노숙자 아저씨는 내 속에서 미스터 하필이 된다.

실어증에 걸린 나(지수)는 학교로 자주 찾아오는 빚쟁이 아줌마들을 피해 학교 뒷동산에 있는 바위에 자주 올라간다. 엄마와 아빠, 동생, 형들과는 모두 따로따로 지낸다. 나는 대선동 당숙네의 버려진 주택에 더부살이를 한다.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에 바위를 못 간 사이 웬 냄새 나는 아저씨가 바위 위에서 죽어 있다. 암튼 그 날 이후로 나는 미스터 하필과 동거 아닌 동거를 하게 된다. 미스터 하필이 누구냐고요? 자살한 노숙자 아저씨. 아 맞다, 노숙자 아저씨는 죽었지. 그렇다면 내가 만들어 낸 또 다른 나. 나의 분신인가? 시큼한 냄새가 나면 이 하필 아저씨가 찾아온다. 나는 혹시 정신분열증 아니 이중인격자인가? 하필 아저씨를 통해 나(지수)는 어려운 고비를 잘 헤쳐 나갑니다.

<굿바이 미스터 하필>은 나의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시절까지의 성장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성장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나와 자주 대화를 하는 노숙자 아저씨는 세상으로부터 지워진 존재입니다. 또한 관계 맺기에도 서툰 사람이죠(자살이라는 방법을 통해 세상에서 사라지거든요. 노숙자 아저씨가 죽어도 누구 하나 찾을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아니 노숙자 아저씨가 이 세상에 있었는지조차 모른 채 사람들은 평범한 일상을 보내죠).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안내하는 안내자로서 냄새 나는 게다가 자살한 노숙자 아저씨라 이거 뭔가 이상하네요. 성공하고 멋있는 그런 어른이 아닌 자살한 노숙자 아저씨가 지수와 동행하는 안내자라니. 성공한 어른 중에는 분명 멋진 어른도 있죠. 그러나 나(지수)를 과연 그런 어른이 상처를 보듬고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또한 아이들에게는 그런 멋지게 성공한 어른들만 필요할까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이 성장소설은 무척 올바른 성장소설이 아닐까 싶네요. 자살한 노숙자 아저씨의 등장은 (좋은 어른들이 동반자로 나오는) 성장소설을 주로 읽은 제게는 무척 충격적이었고, 그만큼 저의 닫힌 사고방식도 열리게 해준 의미 있는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편견과 선입견을 그렇게도 싫어하면서 이런 사소한 것에도 이미 편견과 선입견을 저도 모르게 가지고 있었더군요. 자살한 노숙자 아저씨라고 해서 무조건 삶을 낭비하듯이 살았을 거라는 편견, 없애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실어증에 걸린 나(지수)가 주인공인 소설입니다. 가족은 빚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집니다. 셋째 형은 대학에서 대모를 하다가 학교에서 쫓겨납니다. 어머니는 몸이 아픕니다. 그리고 당숙 어른들 사이에서는 돈 문제를 가지고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과외를 하고, 차별을 합니다. 세상은 그렇습니다. 어수선합니다. 빚쟁이로 몰려 힘들게 살아가는 나의 친척 희수네는 엄청난 부자입니다. 친척이 부자라 선생님도 잘해줍니다. 돈이 많고, 빽이 있으면 어른 세계에는 존중을 받고 사랑을 받습니다. 어른들의 세계와 아이들의 세계는 다르고, 어른들의 언어와 아이들의 언어는 다릅니다. 어른도 아닌 아이도 아닌 지수는 이런 이상한 세계에 적응을 못하고 실어증에 걸립니다. 그래도 지수는 씩씩하게 살아갑니다. 백장미를 좋아했던 지수는 엄마를 찾아가는 여행을 통해 무언가를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리고 이제 지수는 흑장미를 좋아합니다. 친구들과의 행복했던 시절, 그리움과 따뜻함을 전해 주면서도 내용이 결코 가볍지가 않습니다.

<굿바이 미스터 하필>은 주로 나(지수)와 미스터 하필(자살한 노숙자 아저씨)의 대화로 이루어졌습니다. 마치 희곡을 연상시킵니다. 각 장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실려 있습니다. 초등학교 5, 6학년, 중학교 1학년 시절의 친구, 첫사랑, 여행, 가족, 친척 등의 이야기가 아기자기하게 실려 있습니다.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려한 추억을 전해주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색다른 재미를 안겨줍니다. 개인적으로 몇 개의 에피소드는 무척 공감이 가더군요. 친구들과의 위험한 놀이, 학교 풍경 등은 시대는 다르더라도 흐르는 공기의 분위기는 묘하게 비슷하더군요. 옛날 생각이 많이 나더군요. 가벼우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 학생들을 가리키는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읽으면 무척 좋겠더군요. 물론 선생님이나 학생이 아니더라도 무척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미스터 하필은 과연 누구일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