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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시간 ㅣ 사계절 1318 문고 61
지크프리트 렌츠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독일문학은 어렵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독일문학은 어렵다는 선입견을 조금은 해소해 주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을 이렇게 어렵고 고급스럽게 다룰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은 듭니다(대중적인 오락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순수한 버전이라고 할까요?). 『독일어 시간』, 『아르네가 남긴 것』의 노작가(1926년 생. 『침묵의 시간』은 작가가 2008년에 발표한 작품입니다. 노작가의 러브 스토리? 고지식하고 보수적이지는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도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지크프리트 렌츠의 영어교사와 13학년 학생의 짧지만 아름다웠던 순간의 사랑과 이별을 그린 작품입니다.
영어교사 슈텔라와 19살 소년 크리스티안은 첫 눈에 반하여 불꽃같은 사랑을 나눕니다. 물론 키스도 하고 섹스(노골적인 묘사는 당연히 없지만, 암시하는 부분은 많습니다)도 합니다. 처음에는 조금 외설적인 생각도 들었는데(교사와 학생이 육체적으로 사랑을 나누는 내용 때문에 조금 그러했음), 읽어 나갈수록, 그리고 두 연인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수록 순수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더군요. 크리스티안은 슈텔라와의 첫 키스도, 첫 섹스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함께 누웠던 베개의 감촉만을 기억할 뿐. 크리스티안이 영어교사를 기억하는 이유는 그녀가 짧은 생애를 마감했고, 그들이 함께 했던 시간은 그만큼 짧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시작하려는 순간, 사라져 버립니다. 그 만큼 여운을 남기는 작품입니다.
“순간, 나는 깨달았다. 저기 떠가는 꽃들이 내 젊음의 영원한 비극으로 기억되는 동시에, 상실의 아픔을 보듬는 크나큰 위안이 되리라는 것을.” (p.148)
소설은 짧은 생애를 마감한 영어교사 슈텔라의 추모식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짧지만 행복했던 그들의 순간을 담습니다. 그리고 다시 현재의 추모식으로 돌아오고, 그렇게 (행복했던) 과거와 (이제는 불행한) 현재를 오고가면서 이야기는 진행됩니다. 사실 뜯어보면 상투적인 사랑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절제된 문장과 여운을 남기는 듯한 여백의 미는 이 소설을 여타 3류 막장 멜로드라마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마치 황순원의 『소나기』를 읽은 듯한 그런 순수한 사랑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홀로 남은 소년 크리스티안을 생각하면 가슴 아프다가도 그래도 아름답고 행복했던 순간을 추억할 수 있다는 사실에 그의 여름이 부러워지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에로틱하지만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짧지만 강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