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하는 사람
텐도 아라타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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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어느 강박증 환자의 자기 합리과 과정이라고 평한다면 지나친 걸까? 성격적 취약성을 가진 주인공이 청년기에 친구의 죽음이라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하면서 죄책감과 분노를 갖게 되었고 그것을 억압하는 과정에서 강박증이 발현하게 된 것 같다. 죽음과 책임에 대한 반복적인 생각, 그 생각으로 인한 불안감을 해결하기 위해 행하는 반복적인 애도행위는 전형적인 강박증 증상으로 보인다.

 어떤 인물의 행동을 이렇게저렇게 평가하기보다..... 그 사람과의 만남으로 나는 무엇을 얻었나, 무엇을 남겼나 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강박증이니 뭐니 하는 것은 일단 제쳐두고 이 소설과의 만남으로 우리는 무엇을 얻었나? 생각은 해 볼일이다 싶다.

 내가 어떻게 되든 단 한 사람만은 날 이해하려고 애써줄 거라는 믿음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음 직전에서 목숨을 건진 소설 속 기자의 말이다. 마지막 순간에 그가 간절히 원했던 것은 이해받고 싶은 마음, 기억되고 싶은 마음이었나보다. 그 마음을 헤아려주는 주인공에 대한 고마움, 안도감이 자기 중심적이고 공감을 모르는 기자의 마음을 변화시킨다.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 우리를 가장 두렵게 만드는 것을 나는 '외로움'이라고 생각한다. 혼자라는 느낌은 내 존재에 대한 인식마저도 불확실하게 만든다. 우리는 끊임없이 타자에 의해 확인받으면서 자아를 찾곤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 의해 기억되는 것, 이해받는 것은 우리의 '외로움에 대한 깊은 두려움'을 완화시켜주고 우리의 존재를 확인시켜준다.

 지구가 터질 듯 많은 사람들, 시끄럽고 굉장한 함성들, 수많은 이야기들 속에 섞여 지내면서도 우리는 늘 외롭다. 사람들은 나라는 존재보다는 내가 가진 돈, 내가 가진 능력, 내가 가진 외모에만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에 밀려 진짜 나의 존재는 기억되지도 이해되지도 못한다. 그런 우리에게 어쩌면 이 책의 주인공은 진짜 나 자신에게만 집중해준, 혜성처럼 나타난 위로자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 속의 다른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기자나 주인공의 가족들을 제외하고는 다들 그에게 화를 내고 모욕당했다고 말한다. 그것은 아마 그의 애도행위가 그들 자신의 이기적인 게으름과 자기기만을 깨닫게 하고 직면하게 만들어서가 아닐까? 자신이 부정하고 싶은 모습을 맞닥뜨리면서 느끼는 자기에 대한 분노를 주인공에게 투사한 셈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일지 모르겠다. 외로워서 어쩔 줄 모르는 내 모습에 대한 분노, 위로받고 인정받고 싶지만 막상 타인에게 그렇게 해주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분노, 덮어놓은 내 두려움을 들춰내고 있는 이 책의 어두운 그림자는 이 책에 별을 1개 반만 주고 주인공을 강박증 환자로 몰아붙이는 식으로 투사된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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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라이어 - 성공의 기회를 발견한 사람들
말콤 글래드웰 지음, 노정태 옮김, 최인철 감수 / 김영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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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성공의 의미라는 것이 워낙 자본주의적 색채가 강해 나 스스로 동의하지 않은 측면이 많아 성공신화와 관련된 책을 사실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워낙 입소문이 대단한 책이었고, 글래드웰의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를 이미 읽어 작가에 대한 어느 정도의 신뢰가 생긴 후였으므로 충분히 시도해 볼 가치는 있었다. 결과는? 괜찮았다.^^

 우리는 성공을 개인적인 요소에 따른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살펴본 모든 사례는 어떤 것도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꽉 움켜진 후, 그 특별한 노력이 사회 전체로부터 보상받을 수 있는 시대를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들의 성공은 그들만의 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이 자라난 세계의 산물이다. 

 저자는 우리가 가진 성공하는 사람에 대한 편견 - 특별한 재능과 높은 지능지수로 무장한 소수의 천재들-을 지적하고, 성공의 요소를 일정 수준의 재능과 노력 그리고 사회적, 경제적, 역사적 환경이 주는 기회로 설명한다. 

 성공의 첫 번째 요소인 재능에 대해 저자는 '범위효과'를 주장한다. 즉 성공을 위해서는 일정범위의 재능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며 이를 초과하는 뭔가가 더 필요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지능지수 115 까지는 지능지수와 성공이 비례한다고 볼 수 있으나 그 이상의 지능지수는 성공의 정도와는 무관하다. 그러니까 성공하려면 아이큐가 꼭 140이나 180이 아니어도 상관이 없다. 물론 이러한 결론은 여러 심리학자들의 종단 연구로 입증된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줄세우기식 우리 교육이 얼마나 비합리적인 것인지 더욱 절절하게 느끼게 되었다. 쓸데없이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서로 차별하는 습관만 키워주니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성공의 또다른 요소인 노력에 대한 설명에서 그 유명한(?) '일만시간의 법칙'이 나온다.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주력 분야에 적어도 1만시간 이상을 투자하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성취공식은 '재능 더하기 연습'이다. 문제는 심리학자들이 재능있는 이들의 경력을 관찰하면 할 수록 타고난 재능의 역할은 줄어들고 연습이 하는 역할은 커진다는 데 있다... 촤고중의 최고는 그냥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훨씬, 훨씬 더 열심히 한다. 

 더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다. ^^ 

세번째 요소는 앞의 두가지 보다 훨씬 더 복합적이다.  그들을 둘러싼 모든 환경들이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기회를 제공해야 하며 또한 그의 성공이 가치를 인정받는 바로 그때여야한다는 것이다. 어떤 부모밑에서 어떤 교육을 받을 수 있었는지, 어떤 사회적, 문화적 흐름 가운데 그들이 처해 있었는지는 이미 개인적 차원은 훌쩍 뛰어넘는 어떤 것이다. 그러니까 역사적, 세계적 차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아웃라이어들은 탄생한다. 

 성공한 사람들은 늘 일종의 찬탄의 대상이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었을까?' '정말 대단하군, 난 꿈도 못 꾸지.' 그러나 그들은 허공에 떠 있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의 사람들은 아니었다. 최고의 타이밍과 최고의 노력이 만들어낸 우리 자신이었다. ㅋㅋㅋ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은 개인, 그 너머를 보는 습관이다. 사람을 독립된 개체로만 이해하는 것은 지나치게 제한적인 관점으로 그 사람을 보는 것이다. 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를 둘러싼 관계의 거미줄을 이해해야 한다.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시간, 그 사람이 존재하는 공간, 그 사람이 관계를 맺는 사람들. 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 교육, 문화, 사회적 분위기. 결국 우리는 수많은 필연의 산물이다. 그 모든 필연들을 무시하고 그 사람 개인에게만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웠던 나의 무지에 대해 반성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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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가야 할 길
M.스캇 펙 지음, 신승철 외 옮김 / 열음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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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유명해서 오히려 손이 안가는 책들이 있다. 이 책이 그랬다. 지나치게 설교연하는 책일거라 지레 짐작하고 볼 생각도 안하고 있다가 필요에 의해 읽게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좋았다. 어렴풋하게나마 고민하고 있던 몇 가지 문제들에 대해 확인하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자기 성장'의 중요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성장은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자신을 확장해 나가는 것이며, 그것의 원동력은 사랑이다. 우리는 사랑의 힘으로 자신을 훈련시키면서 성장을 이루어 신(神)의 마음에까지 도달하고자 한다. 그러나 훈련을 통한 성장은 한계가 있다. 그 때 우리는 신의 은총을 경험한다.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 그것을 인식하고 받아들임으로써 비로소 완성에의 길로 들어선다. (갑자기 단테가 떠오르네, 스캇 펙은 20세기의  단테인가? ㅋㅋㅋ) 

 훈련은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변화의 과정이다. 우리는 자신이 가진 기존의 세계관을 유연하게 확장하거나 교정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들은 기존에 가진 세계관 즉 지도를 수정하는 과정의 고통과 수고스러움 때문에 기존의 지도를 합리화하는데에만 에너지를 소모한다. 나 또한 그런 것 같다. 처음에 생각했던 방향과 벗어나는 상황에 처했을 때 생각을 수정하고 상황을 받아들이기보다 기존생각을 합리화하고 결국 뭔가 불편한 느낌속에서 힘들어한다. 그 '지도를 수정하는 방법'의 하나로 저자는 정신치료를 이야기한다. 사실 몇 년 전에 나도 정신치료를 한 번 받아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시간이 없다는 핑계, 너무 비싸다는 핑계로 포기했었다. 용기있게 내 주체성을 확장해야 누구 말대로 내 삶의 주인공이 될텐데, 용기내기가 쉽지 않다.^^

 스캇 펙은 사랑을 '자기 자신이나 또는 타인의 정신적 성장을 도와줄 목적으로 자기 자신을 확대시켜 나가려는 의지'로 정의한다. 그렇다면 나에 대한 사랑은 나의 성장을 위해 나 자신을 확대시켜나가는 의지이다. 나는 나 자신을 확장시켜나가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가? 나 자신을 기만하지 않고 끊임없이 사고하고 성찰하는 노력을 기꺼이 하고 있는가?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가? 자신있는 대답은 안나온다. ㅜㅜ 
 

타인에 대한 사랑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성장을 돕기 위해 나 자신을 확대시켜 나가는 것이다. 나는 내 이웃의 성장을 돕기 위해 겸손한 마음으로 기꺼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그를 이해하고자 하고 있는가? 나는 책임감을 가지고 그를 대하고 있는가? 다만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 뿐이다. 나 자신에게도 그리고 내 이웃에게도. 그가 나와 가까운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내 지나친 의존과 감정의 과잉을 합리화해왔을 뿐이다. 내 감정이 어떻든간에 규칙적으로 일정하게 그리고 예측이 가능하게 보조를 맞춰야한다는 말에 공감이 되었다. 그랬어야만 했다. 그게 같이하는 내 이웃에 대한 사랑이었던 것이다. 

자기훈련과 사랑, 그 다음 단계는 은총이다. 은총은 내 노력과 무관하게 주어진 축복이다. 우리는 은총이 내게 오도록 만들 수는 없다. 다만 그 은총이 왔을 때 예민하게 그것을 인식할 수 있는 눈을 가질 수는 있다. 그리고 그 은총의 의미를 이해하고 내 마음 속의 신(神)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은총에의 부름은 사랑으로 세상을 돌보고 수고하는 삶에의 부름이며 봉사와 희생이 요구되는 삶에의 부름이다. 그것은 영적으로 어린이 상태에서 어른의 상태로 나아가라는 부름이며, 인류의 부모가 되라는 부름이다. 

 내게 그 은총이 허락된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주는 책임을 기꺼이 짊어질 용기를 가질 떄 우리는 다른 차원의 성장을 하게 된다. 개인적인 나를 넘어선 역사속의 나로? 어쩌면 역사 그 이상일 수도^^ 

 고전적 느낌의 책이었다. 넘치는 재기는 없었지만 진지한 통찰이 있는 책이었던 것 같다. 겸손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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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 - 참을 수 없이 궁금한 마음의 미스터리
말콤 글래드웰 지음, 김태훈 옮김 / 김영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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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또 다른 관점' 을 보여준다. 우리가 믿었던 사실들이 과연 믿을 만한 것인지, 우리가 비난해 마지 않았던 대상들이 과연 그렇게 큰 잘못을 했는지, 합리적이라 생각하고 밀어붙인 일들이 과연 그만큼의 결과물을 가져다 주는지, 혹시 우리 모두 뒷북을 치거나 소용없는 곳에 에너지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특히 사회복지정책에 대한 내용이나 이미지 사진의 함정 등의 이야기는 매우 와닿았다.   

복지정책에 대한 현재의 철학은 수혜자가 의존하지 못하도록 한도를 정해 일시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물일곱 살의 젊은 나이에 몸을 망칠 정도로 술을 마시는 사람에게는 일반적인 채찍이나 당근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포스트의 말에 따르면 가장 어려운 사례는 거리 생활에 익숙해져 버린 사람들이다. 그들은 거리에서 지내도 크게 힘들지 않은 여름이 오면 규칙을 따르지 않으려 한다.

멱함수분포를 보이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면 정규분포를 보이는 사회문제와 완전히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 즉 극단적인 사례에 속하는 대상자는 정부지원에 의존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체제 밖에서 떠돌던 사람들을 끌어들여 삶을 재건하도록 감독할 수 있다. 사회문제에 대한 정책을 수립하는 일이 까다로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이러한 정책은 매우 합리적이다. 그러나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면 형평성에 어긋나 보인다.

 사회복지정책이 지나치게 형평성과 도덕성을 추구하다 보니 오히려 효율적으로 대상자들을 관리하지 못하고 그 결과 막대한 사회자금의 소모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복지 예산의 대부분을 갉아먹는 사람들은 '거리에 익숙해진' 극단적인 소수의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일반적인 복지 정책을 들이밀어도 그들은 우리가 의도하는 것처럼 따라와주지 않는다. 그들은 계속해서 거리에 남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다른 기준과 방침을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도덕적 형평성 때문이다. 열심히 일해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은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다. 아무런 의욕도 없이 하루 종일 거리에서 술을 마시고 잠들어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는 사람들은? 그런 그들에게 차라리 무상으로 아파트를 줘서 살게 만들어주자고?  그게 오히려 복지비를 줄일 수 있다고? 그렇다면 죽어라 일해서 입에 겨우 풀칠하는 우리는? 결국 그들을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납득할 수 있을까? 그래프를 보여주면서 결국은 우리 모두가 세금을 아낄 수 있는 효율적인 제도라고 말을 해줘도 모두 주저할 것이다. 우리의 억울한 감정은 늘 이성을 앞지르니까
 한가지 인상깊은 것은 이미지의 해석문제였다. 우리가 보는 사진이 진실이 아닐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전에 어떤 책에서 우리가 절대적으로 믿는 의학적 사진들 - 엑스레이 사진이나 혈관촬영사진-이 사실은 병의 그림자에 불과하므로 그것을 맹신해서는 안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사진에 안나와도 병이 있을 수 있고 사진에 나와도 그게 허상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늘 사진을 맹신한다. '엑스레이나 CT에서 이상 없네요. 괜찮습니다." 그런 얘기를 우린 병원에서 얼마나 많이 듣는지. 과연 괜찮은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런 검사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절대적이진 않지만 안하는것보다 더 나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기술의 한계를 인정해야 합니다. 제 일은 유방 엑스선 사진으로 찾을 수 없는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찾을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입니다."

살아갈 수록 기본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진단 검사장비가 발달했지만 기본적인 시진이나, 촉진, 청진은 여전히 중요하며 첨단 기기들이 발달하면서 우리가 할 일들을 많이 대신해주지만 절대로 완전하지는 않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내포한 함정들에 대해 꽤 많이 생각할 수 있었다. 지금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에 대한 정보와 그 해석에 대해 전혀 다른 차원-다른 주체의 입장, 해석의 정당성에 대한 재인식 등-이 가능하며 그 과정에서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억울한 피해자를 줄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천안함 사건은 어떻게 될까? 그 안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보여지는 정보 너머의 이야기들을 생각해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참하게 희생된 사람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과연 그럴까?'에서 시작해서 정보를 모으고 반론을 이해하고 결과를 통합해가는 과정이 이 책에는 상당히 흥미롭게 묘사되어 있었다.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아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생각하고 조사해서 주변과 의견을 나누는 삶이 꽤 재밌을 것 같다. 작가 프로필의 사진속 남자가 정신없는 머리를 하고 웃고 있는게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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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책읽기, 다독술이 답이다
마쓰오카 세이고 지음, 김경균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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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법에 대한 책은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이후 처음이다. 책을 좋아하지만 나는 사실 독서법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이 싫다. 독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누가 나서서 방법에 대해 왈가왈부한다는 것 자체가 불편했었다. 도대체 '제대로 읽는다'는게 어떤 거란 말인가? 

 이 책은 워낙 서평들이 많아 왠지 관심의 초점이 되는 책인 듯 보였고 책 표지가 훌륭했으므로 - 이유에 대해 뭐라고 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표지를 보는 순간 내 속에서 설레임과 동시에 뿌듯한 감정이 밀려왔다- 읽어보기로 했다. 

가볍게 읽을만한 책이었다. 몇 가지 참고가 될만한 독서의 팁도 있었고 '책을 읽는다는 것'에 대한 마쓰오카씨의 개인적 견해가 흥미로웠다. 그리고 '편집 공학' 이야기도 새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 동안 내가 독서를 하면서 막연하게 느꼈던 것에 대한 구체화를 도왔다는 면에서 좋았다.

독서는 저자가 만들어 놓은 글쓰기 모델을 향해 독자가 지금 가지고 있는 자신의 편집 모델을 올가미처럼 던져 놓고 그 곳에서 읽기 모델을 걸어 자기 쪽으로 당겨서 무엇인가를 발견해 나가는 행위입니다. 한권의 책을 만나고 독서를 하는 행위는 거대한 역사가 지속해 오며 전해준 '의미의 시장'에서 이러한 체험을 재현하고 재생하고 또다시 창조해 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은 이를 위한 패키지 미디어입니다.

독서는 나만의 자폐적 행위가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독서는 작가와 나의 역동적 관계에 기반하고 있으며 그 관계는 독립된 관계가 아닌 세계 속의 관계, 역사속의 관계인 것이다. 내가 책을 읽는 순간 세상이 가진 의미의 흐름이 나를 관통해서 살아움직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추상적인가? 그래도 왠지 그런 것 같다. 그 과정이 흥미롭고 두근거린다.

독서를 할 때 차례를 꼼꼼히 살펴본다든지, 책은 2번 읽는다든지, 전집 독서가 유익하다든지, 다양한방법과 취향을 적용해서 책을 읽는게 좋다든지 하는 여러 가지 독서 팁이 있었지만 나는 인용노트를 통해 관통하는 흐름을 발견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책을 읽으면서 몇몇 소주제 별로 인용문들을 묶어서 파일을 만들다보면 다른 시대, 다른 작가의 다른 글들이 놀랄 만큼 유사한 흐름을 반영한다는 것을 알수 있다는 것이다. 공감이 갔다. 전혀 달라보이는 것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통하는 면이 있다. 표면 아래에 있는 그 흐름을 파악하다보면 다른 차원에서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 세상은 여러가지 면면이 있다.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이다.

책이 디지털시대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해서는 나 스스로도 고민을 했던 부분이라 저자의 견해가 궁금했다. 저자는 맥락이 결여된 디지털 지식의 단편성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듯 했다. 흐름이 결여된 의미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취사 선택된 필요에 의한 일부의 정보만 가지고는 작가와의 역동적 관계도 흐름도 역사도 사라진다. 

마지막으로 '다시 읽기'에 대한 저자의 견해 또한  마음에 와닿았다. 같은 책이라도 중학교 때 읽었을 때랑 대학에 가서 읽었을 때 느끼는 것은 전혀 다르다.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이다. 성장하면서 다시 읽기. 실천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전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는 것에 도전할 예정이다. 흥미로울 것 같다. 그때 써둔 감상문이 있으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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