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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코르뷔지에의 동방여행
르 코르뷔지에 지음, 최정수 옮김, 한명식 감수 / 안그라픽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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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건축가로 유명한 르 코르뷔지에가 젊은 시절 동방여행을 하면서 기록한 글을 모아  엮은 책이다. 나는 늘 개인적으로 동유럽에 대한 환상같은게 있었다. 동유럽은 좀 을씨년스럽고 뭐랄까 애잔한 느낌이 든다. 과거의 영광을 먹고 사는 사람들, 나른한 눈빛 속에 자부심과 열정이 살아 숨쉴 것 같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늘 상상했었다. 한 번도 가보지는 못했지만.. 따라서 작가에 대한 정보는 없었지만 동방여행기라는 것 만으로 호기심이 가는 책이었다. 

사실 건축에 문외한인 나에게 르 코르뷔지에는 낯선 인물이다. 작가에 대한 사전 지식이나 애정 없이 읽는 책은 그에 대한 선입관이나 명성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책이 몹시 매력적이지 않은 한 몰입도가 떨어진다는 단점은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집중에 큰 어려움을 느꼈다. 글은 몹시 단편적이었고 ,특별한 흐름을 찾기도 어려웠으며, 자신의 기분과 의식의 흐름에 따라 자유분방하게 씌여진 듯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동유럽 나라들에 대한 지식을 얻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만을 적은 글들이었고, 독자의 입장을 염두해두었다기 보다는 자신의 개인적 감정을 쏟아낸 것에 더 가까웠다. 이기적인 작가라고 생각했다.  

공감하기 어려운 책은 애정이 가지 않는다. 타인의 감정을 그냥 읽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함께 이해하고 뭔가를 공유하면서 예정에 없던 교류를 만들어내는 것이 독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아무 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안타깝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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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장인 - 현대문명이 잃어버린 생각하는 손
리차드 세넷 지음, 김홍식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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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노동)이 우리 삶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일과 삶을 분리하고자 한다.그래서 종종 직장에서의 노동시간은 단지 생계를 위해 참아내는 시간으로 치부된다. 그런데 그러한 분리가 우리를 얼마나 무기력하고 공허하게 만드는지. 우리는 삶의 가치를 찾아 헤매지만 결국 삶의 가치는 일과 삶을 일치시킴으로써 의외로 손쉽게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하는 일은 우리 자신을 규정한다. 사회 속에서의 내 역할을 알려주고 존재를 확인시킨다. 혹자는 인간을 너무 도구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고 할지도 모른다. 노동으로 사회에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사람은 그러면 존재가치가 떨어지는가? 가치를 확인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순수한 나 자신의 가치를 찾기 위해 우리는 신앙에 길을 물을 수도 있고, 철학에 길을 물을 수도 있다. 그리고 생활인으로써 우리는 노동에 길을 묻기도 한다.

자신이 행하는 노동에 몰입하는 사람을 우리는 장인이라고 한다. 그들은 복잡하게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일에만 집중한다. 그러나 우리는 '따지지 않고 그저 일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에 대해 늘 우려를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집중하는 일이 인류에게 해를 미치는 일이라면? 원자폭탄을 만든 사람들, 인간복제를 꿈꾸는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폭주하는 고집쟁이 기관차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을 멈추게 해야 한다는 절박감에 사로잡히곤 한다. 

이 책은 '장인'은 우리가 걱정하듯 생각없이 폭주하는 기관차가 아니라고 한다. 진정한 장인의 일에는 그 과정 내부에 철학과 의식이 갇혀있다고 본다. 문제는 우리가 장인이 일하는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오해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오해를 풀기 위해 씌여졌다고 말한다.

나는 나이가 들면서 일하는 동물로서의 인간에 희망을 거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 판도라 상자 속의 공포는 줄일 수 있으며, 물질적 삶을 좀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 우리가 물건을 만드는 과정을 더 잘 알게 되기만 한다면 말이다.

이 책의 저자인 리처드 세넷은 사회학 전공자로 노동 및 도시화 연구의 최고 권위자라고 한다. 스피노자상, 게르다 헨켈상, 헤겔상 등 나에겐 생소한 상들을 많이 수상했다. 그의 다른 저서를 읽은 기억도 없고 그의 짧은 인터뷰 조차도 읽지 못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인문학 책 치고는 꽤 쉽고 재미있게 씌여져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적어도 난해한 말로 독자들을 혼란에 빠트리는 악취미는 없는 작가인 것 같다. 놀랍다고 생각될 정도로 공감이 돼어 밑줄을 그은 부분이 많지는 않았지만 몰랐던 사실을 꽤 알았고 성실하게 자신의 논거를 전개하는 학자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주로 장인의 역사에 대해서 - 그들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성장했으며 어떤 대우를 받아왔는지, 그들의 지위를 위협했던 것들은 무엇이었는지 등- 2부는 실기편으로 장인이 일하는 방식에 대해 그리고 3부는 일하는 과정에 깃든 진정한 장인의식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장인은 무언가에 확고하게 몰입하는 특수한 '인간의 조건'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 책의 목표 중 하나는 실제적인 일에 몰입하면서도 일을 수단으로 보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설명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한 부류는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우리가 가야 할 곳을 숙고해서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자 노력한다. 또 한 부류는 그 방향을 따라가는 사람이다. 기능인 즉 장인은 주로 두 번째 사람으로 묘사되곤 했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아니말 라보란스. 그러나 저자는 평가 절하된 아니말 라보란스의 철학과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자고 말한다. 그들의 공감적 상상력, 아집에 휘말리지 않은 유연성, 저항마저 포용하는 관용.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러한 덕목은 '진정한' 장인의 덕목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간혹 자신만의 방법을 고집하며 타협을 허용하지 않고 묵묵하게 일하는 사람들을 장인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매스컴에서 비추는 모습이 그들의 고집에만 집중되어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간혹 그들의 작업과정을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그 안에 상상력과 유연성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은 자신만 믿고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아니며 저항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변화를 목적에 맞게 이용하고 조정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진정한 장인은 우발적인 일과 제약 조건에 긍정적인 가치를 둔다. ... 한 번에 완벽한 일반형을 만들려고 할 게 아니라 먼저 스케치 하듯이 하나의 구조를 만들어 두고 차차로 진화해 가도록 한다. 

장인은 강박적으로 완벽을 추구하는 일의 노예가 아니다. 완벽에 도달하지 못할 가능성을 인정하고, 겸손하며 고집 부리지 않고 자신의 부족함을 안다. 성긴 형태의 아름다움을 높이 평가하며 자신의 노동이 낳은 작품 자체의 자연스러운 진화 과정을 즐긴다. 우리 시대에 진정한 장인은 얼마나 남아있으며 그들의 가치는 얼마나 올바르게 평가되어왔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사실 장인은 수공업자에만 국한된 개념은 아니다. 작가, 예술가, 의료인, 학자도 결국 넓은 의미의 장인이 될 수 있다. 작가의 한 줄, 예술가의 한 획, 의료인의 행위, 학자의 연구 속에 그들의 철학이 녹아있고 그들의 삶의 가치가 쌓여 나간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식으로 일을 하고 있을까? 나는 일을 통해 삶의 가치를 찾고 있는가. 그 일을 위해 충분히 반복해서 연습하는가. 충분히 몰두하는가. 저항에 부딪쳤을때 어떻게 대처하는가.여유를 가지고 유연성을 발휘하는가 아니면 내 고집을 고수하는데 지나치게 에너지를 낭비하는가. 앞으로 내가 가야할 방향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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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깊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파리는 깊다 - 한 컬처홀릭의 파리 문화예술 발굴기 깊은 여행 시리즈 1
고형욱 지음 / 사월의책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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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훑어보는 대부분의 여행서들은 몇 장의 아기자기한 거리 사진과 화려한 음식 사진이 빼곡하게 들어차고, 거기에 간단한 부연설명, 그리고 나같은 길치는 알아보기 어려운 간략한 지도 정도가 내용의 전부인 경우가 많았다. 사서 읽기에는 왠지 좀 아까운.. 물론 그렇지 않은 여행서도 꽤 있겠지만 지나갈 때 눈에 띄는 화려한(?) 여행서들은 대체로 그랬다. 

이 책은 영화기획자, 와인평론가, 음식비평가, 여행 칼럼니스트 등 다채로운 이력의 소유자인 고형욱씨가 쓴 파리 여행서이다. 여행 칼럼니스트답게 가볍고 현장감 있는 문장과 예술에 대한 저자의 광범위한 상식이 돋보이는 책이었다.

총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파리의 예술에 대한 내용으로 근대 미술을 주름잡은 파리의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가난하지만 열정적인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영화처럼 묘사되어 전시장이나 화집에서 보았던 그들의 그림이 한층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1부의 후반부에는 영화에 대해서도 언급되었는데, 고등학교 때 뜻도 모르고 친구들과 지껄였던 누벨 바그, 누벨 이마주에 대한 - 그 땐 그 뜻모를 언어 자체가 엄청나게 멋지다고만 생각했었다- 이야기가 함께 있었다. 2부는 파리의 전체적인 도시 구조를 언급한 후 서점과 정원, 다리, 식당, 카페에 대한 내용이 각각 섹션 별로 나열되어 있었다. 1부보다 더 실용적인(?)내용이 많았고, 그 동안 에펠탑과 루브르에만 국한되었던 파리에 대한 단편적 인상들이 더 확장되어 사람사는 도시인 파리의 여러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길잡이로써의 역할보다는 파리라는 도시를 말 그대로 '느끼게 해주는' 여행서였다. 예술이 과거의 거장들에 의해 삶 속에 녹아들어간 도시. 

삶과 예술.

나에게 예술은 늘 가난과 광기를 수반하는 어떤 것이었다. 어릴 때 읽은 몇몇 화가들의 위인전 때문인지 -이를 테면 고흐 같은- 보수적인 어른들의 영향으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극도로 현실적인 내 개인적 성향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예술이란 늘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후 누리는 여유나 사치로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 예술이 누군가에게는 먹고 사는 문제를 뛰어넘는 것이 될 수도 있겠다는 것을 이해를 하는 정도는 되었고,  곧이어 예술이냐 생활이냐를 놓고 우선순위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 하며 예술이 곧 우리의 삶 자체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추상적이나마 어느정도 인정하게 되었다. 그것은 곧 예술이라는 것이 단순히 회화나 조각, 음악의 영역에만 한정된 의미가 아닐 거라는 일종의 개념의 전환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내 몸, 내가 입는 옷, 내 목소리, 내가 하는 말, 나의 일, 내가 먹는 음식들이 다 예술이라는 생각. 나를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표현에 공감하는 것. 그것이 예술일지도 모른다고.  

작가가 그리는 파리는 수많은 표현들과 그 표현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함께 하는 공간이었다. 파리만 그런 건 아니겠지. 내가 사는 이곳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것을 인식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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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승자>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사랑의 승자 - 김대중, 빛바랜 사진으로 묻는 오래된 약속
오동명 지음 / 생각비행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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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 사진기자의 '김대중 회고록'이다. 저자인 오동명씨는 중앙일보를, 아니 삼성을 박차고(?)나온 사진 기자로 인터넷 신문기사를 보니 요즘은 주로 글을 쓰고 강연을 하는 일을 하고 있단다. 그가 기자시절 찍은 김대중 전대통령의 일상적 모습이 담긴 사진을 모아 책을 폈다. 

이 사진집은 내 어렸을 때의 장난기처럼 한 위인의 평범한 모습, 그리고 우리와 같은 어수룩한 모습, 이와 함께 내게 감동을 준 남다른 사랑과 자유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광장'이 되도록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했다

그의 의도가 어찌 되었건, 사실 책 자체는 그다지 알차다는 느낌이 없었다. 책으로 엮기보다는 시사잡지에 특별 부록이나 연재기사정도로 나갈 정도의 무게라고 생각했다. 사진 양도 많아 보이지 않았고, 특별히 눈에 띄는 사진도 없었다. 중간 중간 삽입된 이야기도 김대중 대통령의 타 저서에서 인용된 것이 대부분이어서 이 책만으로 얻을 수 있는 뭔가는 없었다. 다만 그냥 그 사진속 인물을 보면서 몇 가지 기억들과 느낌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는 가질 수 있었다.

고교때 학교 근처 선거 유세장에서 김대중 전대통령 - 그땐 대통령이 아니었다. 야당 총재로 지원유세하러 왔던 걸로 기억한다-의 연설을 들었다. 그 때 선거관련 연설이라는 게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걸 알고 꽤 실망했었다. 그의 책 속에서 내가 읽었던 그 소박하고 진정이 담긴 이야기는 전혀 들을 수 없었다. 정치란 저런 건가 보구나. 서로 상대는 나쁘고 나는 잘났다고 떠드는 거구나 했었다. 시간이 지나 그가 얼마나 힘든 시절들을 겪어냈고, 얼마나 많은 억울함 속에 살아왔는가를 알고는 어느 정도 이해는 했지만 그래도.. 좀더 고고해주길 나름 기대했던 모양이다. 이 책의 저자도 나처럼 그가 좀 더 고고해주길 기대했던 것 같다. 그의 인내로 점철된 일상과 잠언 같은 말들에 감탄하고 존경을 보내면서도 '왜 좀더..'라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하지만 그랬다면 그도 부엉이바위에 올라서고야 말았을까?

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 속에 가득 차오른 단어는 '인내'였다. 많이 참으면서도 분노로 자신을 파멸시키지 않고 스스로를 바로세우려고 노력헀던 모습은 그의 다른 모든 것들을 감싸는 핵심이 아닐까 싶다. 끝없이 인내하고 사랑하는 것. 내 모습은 어떠한지.. 작은 일에도 금방 절망해서는 세상이 끝날 것처럼 한숨을 토해내고 남을 원망하면서 울음을 터뜨리는 어린 아이 같은 모습. 그런 모습이 용납되는 날도 이젠 얼마 안남았다. 시간은 흐르고 책임 져야 할 일들이 더 늘어나고 좀 더 어른스럽게 참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시기가 오고 있음을 요즘은 정말이지 피부로 느낀다. 많은 인내가 요구되는 내 앞의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서 그의 인내와 사랑을 배우고 실천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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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사냥꾼>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과일 사냥꾼 - 유쾌한 과일주의자의 달콤한 지식여행
아담 리스 골너 지음, 김선영 옮김 / 살림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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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볼 때면, 그들이 내뿜는 뭔지 모를 에너지에 내가 빨려들어가는 느낌을 받곤 한다. 열정은 전염성이 강하고 매력적인 감정이다. 이 책은 과일에 매료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이 글의 저자인 아담 리스 골너는 세계를 여행하며 글을 기고하는 칼럼리스트로 이 책을 통해 '맥오슬런 최고 저작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그 상이 어떤 의미의 어느 정도의 무게를 가진 상인지는 모르겠으나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정도로 이해했다.

이 책의 구성은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자연의 과일' 편은 저자의 과일 편력기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과일의 인류학적 의미 그리고 그 외 몇 가지 역사적 주제들로 채워졌고, 2부 '모험의 과일'은 새롭고 희귀한 과일을 찾아나서는 이른바 과일 사냥꾼들의 모험 이야기였다. 3부인 '상업의 과일'은 가장 관심 있게 읽었던 부분으로 과일이 상업화 되면서 과일 본연의 맛과 향이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돼었는가에 대한 고찰과  식품영양학의 허실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4부 '열정의 과일'은 사실 자세하게 읽지는 못했지만 과일에 인생을 바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와 과일의 매력에 대한 설명인 듯 했다. 

만약 내 자신이 과일에 대해 관심이 많은 이른바 과일주의자 내지는 과일 매니아였다면 재미있게 읽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과일에 대해 매우 일반적 취향을 가진 나로써는 사실 지루한 책이었다. 이 책의 목적의식이 무언지도 모르겠고 3부 외에 1.2.4부는 상당히 겹쳐지는 이야기가 많아서 과연 챕터를 나누는 게 의미가 있는 건지 이해하지 못할 정도였다. 소수의 매니아들을 위한 책이라고나 할까? 모두가 공감할만한 책은 아니었다. 

그나마 관심을 가지고 읽었던 부분은 3부 였다. 

특정 과일이나 주스가 건강에 대단히 좋다는 새로운 정보는, 대부분 이해관계까 얽힌 생산업체가 자금을 지원한 연구결과들이다.

영양학 분야는 모순된 내용, 그릇된 믿음, 잘못된 환상이 가득하고 온갖 술책이 판치는 분야이다.

언제부턴지 모르겠지만 매일 신문을 읽을 때면 습관적으로 '건강'에 대한 섹션을 읽게 된다. 건강에 대한 기사는 대부분 '뭘 먹으면 뭐에 좋다더라'이다. 그리고 다음 날이면 '그 좋다던 뭐가 이번엔 뭐에 또 안좋다더라'하고 기사가 뜬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소량으로는 결판이 안나고 많이 먹어야 그런다더라' 하고 말한다. 독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결국은 '그냥 그런가 보다'하고 잊어버리게 된다. 영양학이 모순이 많다는 것은 사실이다. 잘못된 환상도 많다. 기사에서 내세운 근거라는 것도 사실 납득할만큼 충분한 것은 없다. 파일럿 스터디를 성급하게 옮겨놓는 경우도 많다. 저자는 이 모든 것이 이해관계로 가득한 '자금줄'들 때문이라고 한다. 살다보면 세상에 완전히 객관적인 진실은 존재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과학법칙에도 그 과학자의 주관적 편향성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수많은 보이지 않은 이익의 그물들이 우리가 읽는 정보에 스며들어 우리를 지배한다. 특히 식품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더욱 의심하지 않고 정보들을 받아들이는 것 같다. 건강문제에 대해서 사람들은 보다 더 자주 감정적인 태도를 취한다. 

3부에는 이 외에도 유전자 조작 식품에 대해서도 잠깐 언급하고 있었다. 물론 식품의 안전성에 대해 논의하는 책은 아니기 때문에 거의 분량은 없었다. 식량문제를 해결하려면 유전자 조작식품을 먹을 수 밖에 없는데, 즉 피할 수 없는 현실인데, 이렇게 다들 유전자 조작식품을 두려워한다면 결국 식품의 소비에서도 유전자 조작이 아닌 고가의 식품을 먹는 상류층과 저가의 유전자 조작 식품을 먹는 하류층의 계층 구분이 일어날 것이라는 내용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난다. 그런데 과연 식량위기가 그들이 주장하는 것 처럼 지금 현재 절체절명의 문제일까? 그렇게 내다보는 근거는 뭘까? 이것도 유전자조작 식품을 판매하는 다국적 기업들의 정보 통제인가?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도 실제로 있다. 

생뚱맞게 최근 읽은 노자강의가 떠올랐다. 노자(老子)선생은 '도'를 따르라고 했다. 자연스럽게 가야할 길을 가야한다고. 어떤 것이 자연스러운 것일까. 어느 길이 진정 '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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