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까지 "남김없이 자신의 전부를 소진"하라고 카뮈는 주문합니다. 실패할 줄 알면서도, 남김없이 다 태워버리는 삶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시도하고 쟁취해서 만들어 가지는 삶입니다.

"진실은 신비롭고 달아나기 쉬운 것이어서 늘 새로이 쟁취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자유는 위험하고 우리를 열광케 하는 것만큼이나 체득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목표를 향해서 힘겹게, 그렇지만 꿋꿋하게 걸어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먼 길을 가다가 도중에 쓰러질지 모른다는 사실을 미리부터 단단히 새겨두고서 말입니다."
(알베르 카뮈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스웨덴 연설, 1957년 12월 10일)(1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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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김없이 소진하라

카뮈는 ‘ 부조리의 인간‘만이 진정한 자유를 느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부조리의 인간‘은 거부는 해도 포기는 하지 않는 인간입니다. 그는 깨달은 자, 자각한 자, 반항하는 자입니다.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안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자입니다.(1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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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는 죽음의 반대편, 즉 삶에서 진리를 찾고자 합니다. 그는일단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없다"라는 것을 수용합니다. 부정하지않아요. 삶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이 세계의 전면적 진실입니다. 인간은 그 누구도 죽음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무(無)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먼저 "인생의 진실이 보잘것없다는 것을 먼저 자각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놓치면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살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에 살만한 가치를만들어 내어야 합니다. 여기서 삶은 그 자체로서 중요해집니다. 그러기에 카뮈는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로 인생을 허비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떠한 삶의 가치를 만들어 낼 것인가‘에대한 진지한 답을 구해보자고 하는 것입니다.(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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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 사고만큼 예술에 이바지하는 것은 없다. 마치 백색을 이해하자면 흑색이필요하듯이 이 별것 아닌 부정적 사고의 겸허한 방식도 위대한 작품의 이해를 위하여 필요한 것이다. ‘부질없이‘ 작업하고 창조하는 것, 진흙으로 조각품을 만드는 것, 자신의 창조에 미래가 없음을 아는 것, 자신이 만든 작품이 하루사이에 부서져버리는 것을 보면서 그것이 근본적으로는 수세기에 걸친 장구한미래를 위하여 건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아무 중요성도 없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 그것은 바로 부조리의 사고가 가능케 해주는 어려운 예지(智)인 것이다. 한편으로는 부정하고 또 한편으로는 찬양하는 이 두 가지 사명을 동시에 실천하는 것, 이것이 바로 부조리한 창조자에게 열려진 길이다. 그는 공허를 자신의 색채로 물들여야 한다."
- 알베르 카뮈(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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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소크라테스이나 현실은 돼지.

배고픈 건 아니나 배가 부른 것도 아닌 어정쩡한 현실.

소크라테스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배고프지는 않은 인간이고 싶다.

카프카는 평생을 아버지에 대항해서 글을 써 왔다고 한다.

자신을 이해해주고 지지해주는 아버지를 만났다면 지금의 카프카는 없었을까?

카프카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순응하며 살았다면 당대엔 풍족하고 편안한 삶을 살았겠지만 사후에 이름을 남기지는 못했으리라.

우월한 유전자에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다고 모두 훌륭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니까 결국 주어진 환경을 어떻게 이용하고 극복해내느냐의 문제겠지.

그런데도 자꾸만 환경 탓을, 부족한 능력 탓을 하고 싶다.

정작 탓해야하는 것은 내 삶의 자세인데도 말이다.

그마저도 끈기 없고, 의지가 부족한 유전자를 탓하고 싶다.

삶이 무의미하고 무가치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자존감은 떨어지고 배부른 돼지가 되어 시간을 수돗물처럼 콸콸 쏟아버리는 때가 있다.

불혹을 지난 나이에 무엇이 되어야겠다는 꿈은 버린지 오래다.

그럼에도 죽는 날까지 어떠한 삶을 살고 싶다는 꿈은 놓을 수가 없다.

그것마저 놓아버리면 삶이 너무 초라해지니까.

삶에서의 작은 성공, 작은 삶의 방식의 변화를 이루는 삶.

'움직이는 인간', 생동하는 인간', '정체되어 있지 않은 인간'이 되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이다.

문제는 실행력이다.

로또에 당첨되게 해달라고 매일 간절히 기도하면서 정작 복권을 사지 않는 것이 문제다.

나이키에서는 Just Do It!, 불가에서는 그저 행(行)할 뿐이라고 말한다.

답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결국 나 자신이다.

카프카는 인간들은 보편적으로 편안하고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고 봤습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안정적인 삶의 기반 아래서 걱정 없이 살기를 바라는 것이죠. 하지만 카프카는 그와 같은 안락한 삶이 인간을 그 안에만 머물게 하고 또 편안한 삶에 길들이게 하여 결국 인간을 우둔한 존재로 만든다고 경고합니다.(70~71쪽)

안락한 삶은 그것이 전부인 삶입니다. 어떠한 생기도 없이 축 늘어지다가 마는 삶입니다. 퇴보나 전진도 없고 그대로 정체된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인간에 대입해 볼 때, 안락한 삶이 가지는 의미는 ‘움직이지 않는 인간‘, ‘생동하지 않는 인간‘, ‘정체되어 있는 인간‘을 말합니다. 인간이 정체되어 움직이지 않으면 비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태어나서 그저 가만히 살다가 죽는다는 것에서 삶의 큰 의미를 찾겠다는 사람이 아니라면, 내가 너무 편안하고 안정적인 삶만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고 카프카는 말하고 있습니다.(7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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