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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ㅣ 문지 스펙트럼
사무엘 베케트 지음, 전승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5월
평점 :
#첫사랑
#사무엘베케트
첫사랑,추방자,진정제,끝 이렇게 네편의 단편이 묶인 소설집이다.
대학 때 처음 #고도를기다리며 를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거지? 뭐지? 싶었고, 제목이 왜 이거지? 싶은 작품도 있었다. 이 작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이 이야기는 첫사랑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추방자는 왜 추방이 된거지? 죽었는데 왜 산 듯이 말하지? 등등 진짜 끝도 없는 질문이 나온다.
그래서 한편을 읽고 나서도 한참을 생각하고 멈추고 계속 생각해보고 그러다보면 짜증도 좀 나고, 생각을 반복하다가 문득 이건가 싶어 맞춰보면 또 조금 신이 났다가 이내 풀이 죽고 그랬다.
나만 이토록 이해가 안되는 것인가 싶었는데 이 책의 160쪽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p.160
베케트가 지향하는 글쓰기는 이해를 어렵게 만드는 글쓰기이다. 즉 무지를 드러낼 수 있는 글쓰기다. 게다가 베케트는 전통적인 소설 작법에서 벗어나기를 원했기 때문에 전통적인 소설 문법에서 시행했던 내용과 형식의 구분, 개연성 있는 사건의 전개, 뚜렷한 정체성을 가진 인물들과 명확한 사건의 장소, 소설을 통해서 전하고자 하는 윤리적 메시지 등을 자신의 글쓰기를 통해서 파괴하고 변형시켰다. 그 결과 베케트의 작품을 접한 독자들의 가장 일반적인 반응은 ‘이해가 안 된다'이다. 베케트의 문학관에 비춰 이 반응을 생각해보면, 역설적이기는 하나 베케트의 작품을 가장 잘 이해한 반응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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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나는 글을 잘 이해한 것이다. 그러면 또 궁금한 것이 잘 이해도 안되는 그의 글을 사람들은 왜 읽느냐는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도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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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62
독자는 텍스트와 싸우면서 텍스트가 던지는 질문과 독자 자신이 던지는 질문 사이에서 일종의 낯선 추락을 맛보게 된다. 편하고 익숙한 것으로부터 벗어나 주변으로 추락하는 일은 고통과 공포다. 베케트의 소설이 불편한 이유들 중 하나는 이러한 고통과 공포를 마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중략> 문법에 어긋난 문장들, 뚜렷한 사건이 없는 이야기,주변으로 추락한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인물들, 일관성 없는 화자의 서술,자아의 분열 등. 이러한 요소들은 힘들일 필요 없는 익숙한 독서를 낯선 행위로 만들어버리고 만다. 베케트 소설을 접하는 순간 독자, 작가와 작중인물은 뒤엉킨다. 독자는 작가와 작중인물들이 느끼는 고통에 비견하는 고통을 느끼며, 읽히지 않는 텍스트를 읽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함으로써 독서라기보다는 창작에 가까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래서 베케트의 텍스트를 경험하는 것은 예술작업에 참여하는 것이고, 인생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며, 자신 안에 있는 자신을 관조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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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책을 읽으면 어쩔 수 없이 끊임없는 질문과 내가 알고 있는 나의 지식, 상황과 견주어서 해석하려고 하다보니 또 나에게 질문을 한다. 이 책은 이렇게 계속 질문을 던지고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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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을 읽으면서는 이상 '날개'가 '추방자'와 '진정제'를 읽으면서는 박태완의 '천변풍경'이 떠올랐다. 사무엘 베케트가 창작하던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도 그렇고 이 두작품이 창작되던 사회적 배경도 음울하던 때라 분위기가 유사한 것도 있고 상황을 회피하기만 하는 주인공, 의식의 흐름이라는 서술 기법도 유사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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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읽어도 계속 수많은 질문을 달고 올 책이다. 술술 읽어내려가는 소설에 흥미를 잃고 권태기가 생길 때 제일 먼저 생각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