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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와 노인 사이에도 사람이 있다 - 인생의 파도를 대하는 마흔의 유연한 시선
제인 수 지음, 임정아 옮김 / 라이프앤페이지 / 2021년 12월
평점 :
제목을 보자마자 한번에 꽂힌 책.
서른이 넘은 여자는 더이상 여성이 아닌 것처럼 취급되던 때가 있었다. 젊지 않은 여성과 늙은 여성 사이에 있는 여성은,'엄마'로만 존재하는 것처럼, 그게 아니면 마치 여성도 남성도 아닌 대상처럼 다뤄지거나 또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지워진 존재로 취급받던 때를 떠올리면 이 책의 제목은 그야말로 제대로다.
30대인 지금의 나는 20대의 나에서 변한 것이 없이 쭉 이어져 온 듯한데, 어느새 조금씩 예전같지 않은 체력과 소화 능력에서 나이 들었음을 느낀다. 나이를 먹어가는 여성에게 세상이 여러가지 방법으로 겁을 준 덕에 나도 내 나이의 앞자리가 2에서 3으로 바뀔 때 다가올 삼십대에 대한 기대보다 두려움이 더 컸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20대보다 30대가 훨씬 좋다. 조금씩 바뀐 사회 분위기 덕에 30대보다 더 좋다는 40대가 기대되기 시작했고, 늙음이나 나이듦에 대해 두려움보다는 유연하게 생각하고, 바뀌어 가고 있는 나의 모습도 내 스스로가 제법 괜찮게 생각할 수 있는데 더 신경을 쓰려고 한다.
이런 내 생각과 딱 맞는 책이라서 정말 페이지가 술술 넘어갔다. 처음엔 작가님이 일본분이란 걸 알고, 일본 여성들에 대한 편견 때문에 조금 우려했던 부분들이 있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작가님의 생각을 풀어내는 스타일이 정말 마음에 쏙 들었다. 나와 굉장히 비슷한 결을 가진 분이란 느낌을 받았고, 완전 친근감이 제대로 느껴졌다. 귀엽기는 또 왜 이렇게 귀여우신지, 다 읽은 뒤엔 마음이 표지처럼 딸기 우유색이 된 기분이 들었다.
인생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당연하다. 그런데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큰일나는 줄 알고 살던 때가 있었다. 대학, 연애, 결혼, 출산, 육아의 길을 순서대로 걸어야만 하는 줄 알았다. 사실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을 나는 너무 늦게 알아서 그게 가끔 아쉬웠고, 나처럼 생각하는 20대를 보면 막 알려주고 싶어진다. 꼰대라고 생각할까봐 속으로만 삼키긴 하지만.
나이는 먹어가는데, 생각대로 되어 있지 않은 자신의 인생이 두렵고 걱정되고 큰일나는 것처럼 생각되는 사람에게 이 책은 정말 큰 위로가 될 것같다. 계획대로, 생각대로 되어 있지 않아도 제법 괜찮은 삶이 있다는 것을 진작에 알았다면 나이 먹는 것을 두려워하진 않았을 것 같다.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위로가 되는 경험을 이 책을 통해 해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