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핑크스의 왼쪽 눈동자
김유진 지음 / 북다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철학적 질문에서 출발한 매혹적인 세계관

북다 출판사에서 2026년 8월 출간한 김유진 작가의 장편소설 <스핑크스의 왼쪽 눈동자>는 제13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최우수상을 받은 화제의 SF 미스터리 스릴러다. 작가는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다 2024년 첫 장편소설 <센트 아일랜드>로 데뷔한 이후 하나의 질문을 파고들어 매력적인 서사로 확장하는 독특한 작품 스타일을 구축해 왔다. 이 책은 기억을 지우려는 자와 복원하려는 자의 팽팽한 대립을 통해 혈연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 진지한 메시지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작가가 해당 공모전에 세 번 연속 도전하여 끝내 대상을 거머쥔 집요함이 작품의 완성도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기승전결 내내 서스펜스를 잃지 않아 촘촘한 복수극을 찾는 독자들에게 적극 권할 만한 소설이다. <살인자의 쇼핑몰>을 집필한 강지영 작가가 "작품을 읽는 내내 제발 지금 멈춰 줘, 라고 외치며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경험이 빈번했다"라고 격찬한 것처럼 미지의 진실을 좇는 지적 쾌감이 상당하다.


조각난 기억을 좇는 자들의 엇갈린 궤적

첨단 의술을 통해 타인의 기억을 임의로 매만질 수 있는 근미래를 무대로 삼은 서사의 짜임새는 도입부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브레인 임상연구센터의 연구원 김수오와 네스트 신경외과 소속 의사 주경재의 시점이 각 장에 걸쳐 번갈아 교차하는 방식은 쉴 새 없는 긴장감을 자아낸다. "산 자들은 기억이라는 형벌을 안고 눈을 뜬다."라는 프롤로그처럼 망각이 인간에게 내린 자비로운 축복인지 진실을 가리는 형벌인지에 대한 딜레마가 이야기 전반을 관통한다.

무엇보다 주경재의 충직한 비서인 차민철이라는 인물이 서사의 판도를 뒤흔드는 변수로 등장하여 극적인 몰입감을 선사한다. 수오는 네스트 신경외과에서 과거 수술을 받았던 어머니의 진료 기록을 캐내기 위해 차민철에게 은밀히 접근한다. 보육원 시절부터 주경재와 질긴 인연을 맺어온 차민철이 과거 화재 사건에 대한 의구심을 품고 결국 수오와 공조하는 장면은 짜릿한 반전을 선사한다. 수오가 징계를 무릅쓰고 석 달간 네스트의 임시 비서로 위장 잠입하여 불법 수술 녹화 파일이 담긴 USB를 찾아내려는 대목은 첩보물 못지않은 박진감을 부여한다.


은폐된 진실과 마주하는 쓰라린 순간

감춰진 과거의 실타래를 역추적하여 마주하는 숨 막히는 진실에 대한 묘사는 이 소설의 백미다. 수오가 앵커 로봇을 통해 어머니의 잃어버린 2년간의 뇌리 속 파편을 복원하는 수술실 대목은 잔상을 남긴다. 동료 의사 신진서가 망각은 필요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기억도 있는 것이라고 건네는 뼈 있는 조언은 소설을 관통하는 거대한 주제 의식을 대변한다. 특히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스핑크스의 왼쪽 눈동자 실체가 드러나는 대목은 충격적이다. 수오가 마침내 손에 넣은 스핑크스의 눈동자 블록 USB 중 오른쪽 눈동자에는 과거의 동거 흔적이 담겨 있었고, "이거 먼저 보여 주세요. 스핑크스의 왼쪽 눈동자."라는 수오의 말과 함께 재생된 영상에는 어머니가 골목에서 괴한에게 습격당하는 참혹한 진실이 녹화되어 있었다.

타인의 기억을 임의로 도려내며 자신만의 기형적인 성곽을 쌓아 올린 주경재의 비틀린 내면 묘사 역시 소름을 돋게 한다. 무정이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기르며 타인과의 좁은 울타리를 고집하는 그는 철저히 통제된 관계만을 원한다. 과거 차민철이 겪은 보육원 화재 사건의 진범이 다름 아닌 주경재였으며 "보육원이 불타면 엄마에게 갈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364쪽)라는 변명이 밝혀지는 순간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그의 오만한 태도가 여실히 드러난다.


인위적 망각을 뛰어넘는 복수의 카타르시스

북다 신간 <스핑크스의 왼쪽 눈동자>가 유독 돋보이는 이유는 기억 조작이라는 공상과학적 상상력을 복수극의 서사 안에 빈틈없이 녹여냈다는 점이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는 남겨진 기억의 유무에 따라 위태롭게 요동치고, 종국에 수면 위로 드러나는 흑막의 진상은 날 선 자극을 안겨준다. 네스트 신경외과 원장 자리에서 밀려나고 수오에게 재산을 뺏긴 채, 병실에 무기력하게 누운 주경재의 말로는 참담하다.

모든 진실을 깨달은 수오가 기억을 상실한 주경재를 향해 "오래오래 사세요! XX."라고 읊조리며 병실을 나서는 마지막 장면은 오직 피를 부르는 일차원적인 징벌을 넘어선다. 고도로 발달한 기술이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오히려 피로 맺어진 혈연의 굴레가 어떻게 변모하는지 날카롭게 통찰한다. 인간의 삶과 존엄을 지탱하는 것은 결국 훼손되지 않은 기억이라는 진실을 밀도 있게 그려내어 다 읽고 난 후에도 오랜 여운을 남긴다.






#스핑크스의왼쪽눈동자 #김유진작가 #북다출판사 #SF소설추천 #장르소설리뷰 #미스터리스릴러 #복수극소설추천 #기억조작소설 #교보문고스토리대상 #신간도서리뷰 #책추천스타그램 #소설책추천 #독서기록장 #베스트셀러추천 #한국장편소설 #서평단리뷰 #책속의한줄 #브레인임상연구센터 #수오와주경재 #기억상실증소설 #정체성탐구 #혈연의의미 #몰입감좋은책 #주말독서추천 #반전소설추천 #서평단 #북다방 #소설추천리뷰 #신간추천리뷰 #도서추천리뷰 #도서제공협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이토록 다정한 대만이라니 - 숨겨진 매력을 찾아 떠난 17번의 대만 여행, 그리고 사람 이야기
이수지 지음 / 푸른향기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푸른향기 신간, 이수지 작가 에세이 <이토록 다정한 대만이라니>는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무려 17번이나 대만을 찾은 자칭 '대친자'이자 여행 콘텐츠 크리에이터인 저자 리슈의 각별한 애정이 듬뿍 담긴 기록물이다. 이 책은 화려한 랜드마크나 유명한 미식 거리를 넘어, 가이드북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현지인들의 소박한 일상과 따스한 온기를 조명한다. 단기 여행에서 시작해 워킹홀리데이와 두 달 살기로 이어진 저자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쓰였다. 저자는 여러 채널을 통해 대만의 진짜 매력은 관광지가 아닌 현지인들이 건네는 넉넉한 미소와 다정함에 있다고 줄곧 강조해 왔다. 특유의 섬세한 관찰력과 포근한 시선으로 여행지에서 마주친 찰나의 인연들을 담백한 문장으로 엮어내며,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관광이 아니라 골목길의 풍경, 낯선 이가 건네는 조건 없는 친절, 느릿하게 흘러가는 시간의 미학을 촘촘히 기록하고 있다. 뻔한 일정에 지친 독자들에게 잔잔한 울림을 선사하며, 출국을 앞두고 있거나 한 달 살기를 꿈꾸는 예비 여행자는 물론, 타인의 진실된 온기가 그리운 모든 이들에게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줄 만한 책이다.


낯선 골목에서 마주친 다정함, 대만의 진짜 얼굴을 만나다

여정의 묘미는 유명한 명소 앞에서 인증 사진을 남기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길을 잃고 헤매던 낯선 골목, 예기치 않게 쏟아지는 비를 피하려 들어간 작은 상점, 그리고 말은 통하지 않아도 기꺼이 손을 내밀어 주는 현지인의 미소 속에 진짜 얼굴이 숨어 있다. 이수지의 <이토록 다정한 대만이라니>는 바로 그 숨겨진 얼굴을 집요하면서도 다정하게 찾아낸 17번의 발자취다. 이 책은 타이베이 101타워나 화려한 야시장을 단순히 나열하는 정보서가 아니다. 신베이의 단수이, 핑둥의 컨딩, 타이둥의 뤼다오 등 구석구석을 누비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도를 측정해 나가는 온화한 관찰기에 가깝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저자가 겪은 흥미롭고 다채로운 에피소드들에 자연스레 시선이 머문다. 직장 상사에게 휴가를 반려당한 뒤 홧김에 떠난 비밀 여행에서 저자는 단수이 워런마터우의 붉은 노을을 바라본다. 강변을 산책하며 버스킹 공연을 감상하고, 온통 붉은빛으로 물든 풍경 앞에서 마음 한구석을 짓누르던 불편함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경험을 털어놓는다. 일상의 무게에 짓눌려 충동적으로 떠난 발걸음이 어떻게 개인을 치유하는지 보여주는 솔직하고 매력적인 장면이다. 꾸밈없는 다정함을 엿볼 수 있는 일화들도 다수 포진해 있다.

가족 여행 중 현금만 받는 가게에 카드 한 장만 달랑 들고 75위안짜리 버블티를 사러 간 형부에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음료를 그저 선물로 건넨 점원의 일화는 이윤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넉넉한 인심을 보여준다. 핑둥의 컨딩으로 향하는 길에서는 가오슝역 앞에서 홍콩인 세 명과 인당 350위안을 내고 택시를 쉐어하며 합승한 기억, 얼떨결에 일행이 되어 바다로 뛰어든 스노클링 에피소드가 무계획이 주는 짜릿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타이둥의 부속 섬 뤼다오에서의 경험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섬 전체가 자연보호구역처럼 조용한 그곳에서 저자는 낯선 전동 오토바이에 의지해 때 묻지 않은 해안 도로를 달리며 마주한 날것의 자연을 통해 독자에게도 탁 트인 해방감을 전달한다.


소도시의 낭만과 예기치 못한 온기

페이지를 넘기면 저자가 현지인들의 일상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간 흥미로운 순간들이 펼쳐진다. 핑둥 컨딩에서 즐긴 실내 새우 낚시는 해양 액티비티와는 전혀 다른 이색적인 문화를 보여준다. 1인당 2시간에 450위안을 지불하고 어설프게 낚싯줄을 드리운 장면은 혼자였다면 시도조차 어려웠을 로컬 문화 체험의 백미다. 또한 난터우에서의 반딧불이 에피소드는 이 책이 지닌 진정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반딧불이 명소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해 헤매던 저자 일행에게 식당 사장님은 저녁 장사를 마치고 흔쾌히 자신의 차로 불빛 하나 없는 산길을 운전해 반딧불이를 보여준다. 환상적인 풍경보다 낯선 이방인에게 기꺼이 시간을 내어준 사장님의 배려가 짙은 여운을 남긴다.

타이베이 지역의 색다른 시선도 돋보인다. 


넷플릭스 드라마 <투 시티 투 걸스 A Taiwanese Tale of Two Cities>를 통해 알게 된 디화제와 다다오청 일대는 붉은 실로 인연을 이어준다는 월하노인을 모신 사원과 독특한 건축물들이 어우러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화려한 도심 속에서 옛 정취를 간직한 이 거리를 거니는 발걸음은 독자들을 새로운 시간 여행으로 안내한다. 자이시의 아리산 국가 삼림 공원에서는 비 오는 날의 싱그러운 숲 내음과 함께 아리산빈관에 위치한 50년대 카페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여유를 만끽하는 운치 있는 장면이 묘사된다. 고풍스러운 인테리어 속에서 따뜻한 디저트를 맛보며 흘려보낸 조용한 시간은 비 오는 날의 휴식이 주는 특유의 차분한 매력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미각의 호기심부터 자유로운 연대의 현장까지

현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기상천외한 미식 경험과 사회적 연대에 관한 성찰은 이 책을 한층 더 풍성하게 만든다. 미각을 자극하는 다양한 야시장 음식 외에도 대만 피자헛에서 선보인 과감한 메뉴 도전기는 시선을 사로잡는다. 취두부, 두리안, 고수, 그리고 돼지피떡을 토핑으로 올린 피자나 타피오카 펄 피자 같은 기상천외한 메뉴를 직접 맛보는 장면은 현지 트렌드를 온몸으로 흡수하려는 저자의 유쾌한 호기심을 증명한다.

이란 지역에 위치한 카발란 증류소 방문기 역시 흥미롭다. 고온 다습한 기후를 역이용해 짧은 숙성 기간에도 특유의 진한 풍미를 만들어낸 3년산 싱글몰트 위스키의 탄생 과정을 지켜보며, 한 잔의 술에서 시작된 취향이 어떻게 뚜렷한 목적지가 되는지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단순한 유희를 넘어 사회의 개방성과 포용력을 다룬 부분은 상당한 시사점을 던진다. 아시아 최초로 동성혼을 합법화한 국가답게.. 아시아 최대 규모로 열리는 대만 LGBT 프라이드 행사에 직접 참여한 저자의 기록은 무척 인상적이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축제처럼 즐기는 현지인들의 평화로운 연대는 고정관념을 깨고 열린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자이시 팸투어 중 만난 크리에이터와의 우정 여행 에피소드 역시 공통의 관심사가 어떻게 국경을 넘어 사람을 연결하는지 잘 보여준다.


기존 여행 가이드북과 차별화되는 매력 포인트

시중에 출간된 수많은 대만 안내서들은 대체로 최적의 이동 동선, 꼭 가봐야 할 랜드마크, 반드시 먹어야 할 맛집 리스트를 나열하는 데 집중한다. 반면 이수지의 에세이는 효율성과 판에 박힌 목적 달성을 과감히 내려놓았다는 점에서 기존 도서들과 명확히 궤를 달리한다. 책의 뒤표지에 적혀 있듯 특유의 눅눅한 날씨와 회색빛 건물, 어수선한 오토바이 행렬 속에서 저자가 발견한 것은 무심한 듯 정겨운 눈인사를 건네는 상인들과 느긋한 길고양이의 평화로운 일상이다.

에필로그에 담긴 글은 이러한 차별점을 선명히 드러낸다. 저자는 현지인 친구가 운전하는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아 이름 모를 골목길의 빛줄기를 감상하고, 단돈 200위안을 내고 들어간 조그마한 구관 노천탕에서 일행들과 웃음꽃을 피운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무리와 서슴없이 어울리며 101타워 새해 불꽃놀이를 함께 보거나, 일회성 언어 교환 모임에서 만난 인연을 오래도록 이어가는 서사는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선다. 쫓기듯 유명 관광지를 소비하는 대신 사람과 교감하며, 자칭 대만민국인으로서 일상처럼 오가며 자신을 반겨줄 또 다른 세상을 개척해 나가는 진솔한 과정이 돋보인다.


속도를 늦추고 마음을 채우는 여유의 미학

<이토록 다정한 대만이라니>가 전하는 메시지는 속도에 반기를 든다는 것이다. 남들보다 많은 곳을 서둘러 찍고 돌아오는 쫓기는 여정을 권유하지 않는다. 대신 지우펀에서 하룻밤을 머물며 인적이 끊긴 고요한 골목을 천천히 걸어보고,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르웨탄의 탁 트인 풍광을 오래도록 눈에 담으라고 속삭인다.

무려 10년 동안 하나의 나라를 열일곱 번이나 반복해서 찾아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결코 화려한 볼거리 때문만이 아니다. 서툴게 길을 잃고 헤매도 어떻게든 너그럽게 감싸안아주는 특유의 포근한 공기가 저자를 끊임없이 불러들였기 때문이다.


과장된 찬사 없이 담담하게 써 내려간 문장들은 다정다감한 진정성을 띤다. 대만이라는 나라를 다채롭게 이해하고 싶거나 차가운 일상에 지쳐 조건 없는 친절함이 고픈 사람이라면 이 책을 펼쳐 보기를 권한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즈음이면 언젠가 나를 반겨줄 사람들이 존재하는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며 어느새 당장 항공권을 검색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토록다정한대만이라니 #대만여행가이드북 #대만여행에세이 #이수지작가 #리슈 #푸른향기 #대만로컬여행 #대만소도시여행 #타이베이여행 #컨딩새우낚시 #단수이워런마터우 #난터우반딧불이 #가오슝여행 #뤼다오여행 #디화제명소 #아리산국가삼림공원 #카발란위스키증류소 #대만피자헛 #대만한달살기 #워킹홀리데이 #해외여행지추천 #대만자유여행 #가오슝택시투어 #여행에세이추천 #책스타그램 #서평단 #서포터즈 #신간추천리뷰 #도서제공협찬 #에세이추천리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예쁜 것은 다 너를 닮았다 - 개정판
김지영 지음 / 푸른향기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지영 작가의 <예쁜 것은 다 너를 닮았다> 개정증보판은 2018년 첫 출간 이후 독자들의 자발적인 입소문을 타고 중쇄를 거듭하며 해외로 번역 출간된 화제의 도서다. 이 책은 재활병원에서 하루 평균 열다섯 명의 환자를 돌보며 고된 일상을 버텨내던 평범한 작업치료사의 40개국 유랑기를 담았다. 매일 반복되는 팍팍한 업무와 이별의 아픔 속에서 스스로 행복해지기로 결심한 저자는 사표를 던지고 1년 7개월 동안 긴 여행에 오른다. 그녀의 글은 화려한 수사 대신 진솔하고 담백한 문체로 여행지에서 마주한 날것의 감정을 투명하게 그려내는 것이 강점이다. 치열한 현실에 치여 온전한 휴식이 필요한 청춘들과 일상에서 벗어나 세계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가장 추천하고 싶은 책으로 손꼽힌다.


낯선 길 위에서 마주한 청춘의 맨얼굴

안락한 일상을 뒤로하고 떠난 저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다채로운 이국의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프롤로그 "나는 행복해지기로 했다"에서 저자는 치매 환자 P 님에게 뺨을 맞고 아프고 힘들어야만 하는 청춘은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자각한다. 어리고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희생을 강요당하던 삶에 회의를 느낀 후 홀연히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어린 시절 영화 <나 홀로 집에>, <어거스트 러쉬>의 배경이 된 도시를 꿈꾸며 첫 목적지로 삼은 뉴욕에서는 초보 여행자의 엉성한 민낯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인천을 떠나 베이징을 거쳐 뉴욕에 도착한 그녀는 당당하게 7일권 교통카드를 내밀었지만 지하철 검표원에게 단호한 거절을 당한다. 하지만 그런 서투름조차 풋풋한 낭만으로 치환된다.


이후 이집트 다합으로 넘어간 저자는 그곳에서 평생의 반려자가 된 진우를 만난다. 까만 피부에 비쩍 마른 몸, 마치 보따리장수 같은 첫인상을 지녔던 그와 나란히 다이빙을 배우고 다합의 붉은 노을을 공유하며 사랑을 키워가는 과정은 한 편의 청춘 영화처럼 잔잔한 울림을 선사한다. 또한 네팔 포카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를 오르며 만난 맨발의 여성 포터 에피소드는 커다란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제멋대로 갈라진 발뒤꿈치로 무거운 짐을 지고도 수줍게 "나마스떼"라는 평화의 인사를 건네는 포터의 모습은 삶의 숭고함과 여행이 주는 성찰을 넌지시 건넨다.


타인의 잣대를 벗어나 온전한 나를 마주하는 여정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기록한 '서른 즈음' 대목에서 저자는 노후를 대비하라는 지인의 참견에 분명한 선을 긋는다. 타인의 걱정을 가장한 우월감에 흔들리지 않고, 삐뚤삐뚤할지라도 자신만의 궤적을 긍정하는 태도는 동세대의 커다란 공감을 자아낸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마주한 '여행에서 무엇을 얻었나요?'라는 질문에는 여행이야말로 가성비가 떨어지는 행위지만, 무언가를 잘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 자체가 커다란 위안임을 깨닫는다. 치열한 경쟁과 비교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여유로운 시선은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시원한 해방감을 선물한다.


길 위에서 건져 올린 다채로운 인연과 애틋한 가족애

아프리카부터 남미, 유럽을 관통하는 여정은 단순히 장소의 이동을 넘어 타인과의 진정한 연대를 보여준다. 모로코 페즈의 미로 같은 골목에서 만난 현지인 무하메드는 낯선 이방인에게 묵묵히 친절을 베풀고, 떠나는 날 "김, 이제 찻값을 지불할 시간이야"라는 농담 섞인 포옹으로 따스한 온기를 전한다. 파라과이 아순시온에서는 폭우로 전기가 끊긴 호스텔에서 프랑스인 조엘 부부와 촛불에 의지해 빗소리를 듣는 낭만을 누린다. 리투아니아 빌뉴스에 자리한, 만우절 단 하루만 존재하는 '우주피스 공화국' 에피소드는 일상에 유쾌한 반전을 선사한다. 또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낯선 거리에서 성을 매매하는 인간의 본성과 사회적 통념에 대해 고찰하는 장면은 여행이 지닌 사유의 확장을 증명한다.

타지에서 겪는 생경한 경험뿐만 아니라, 내밀한 관계에 대한 솔직한 고백도 눈길을 끈다. '어쩌면 가장 맛있었을 엄마의 라면' 편에서는 시간의 굴레에 갇힌 어머니를 향해 "나는 여전히, 영원히, 엄마가 필요해요"라며 속마음을 털어놓아 뭉클한 감동을 자아낸다. 태국 방콕에서 189일을 함께한 평생 인연 진우를 먼저 한국으로 떠나보내며 느끼는 막막함과 두려움은 씩씩해 보이던 여행자의 여린 이면을 꾸밈없이 드러낸다.


늦은 여름의 단꿈, 시간의 흐름이 빚어낸 일상의 단단함

에필로그 '늦은 여름의 단꿈'에서 기나긴 유랑을 마치고 돌아온 서울의 풍경은 낯설게 다가온다. 비가 무섭게 내리고 동네 치킨집이 인형 뽑기방으로 변해버린 일상은 평범하고 지루한 우물 속 같다. 하지만 이국의 낯선 세계에서 하늘을 날고 열렬히 사랑했던 기억은 한낱 꿈이 아니라 현재를 버텨내는 자양분으로 작용한다. 이번 개정증보판이 지니는 가장 돋보이는 매력은 이렇듯 시간의 흐름이 빚어낸 성숙한 시선이 더해졌다는 점이다. 방황을 마치고 현실에 적응하지 못해 앓아누웠던 20대의 저자는 어느덧 30대가 되어 글을 쓰는 전업 작가로 안착했다. 책 속에 빈번하게 등장하던 진우와 부부의 연을 맺었고, 남몰래 오답에 동그라미를 쳐주는 다정한 사람 곁에서 좋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음을 고백한다. 초판이 길 위에서 느끼는 역동적인 생존기였다면.. 개정판은 폭풍우를 무사히 통과한 후 다다른 평온한 항구에서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독자를 동시에 다독이는 편지와 같다.


푸른향기 개정판 <예쁜 것은 다 너를 닮았다>는 단순히 이름난 명소를 나열하거나 소비적인 관광을 과시하는 흔한 유람기가 아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생전 처음 무거운 책임감을 체감하고, 이집트 다합에서 한국의 내 방으로 돌아가는 것을 '따뜻한 악몽'이라 부를 만큼 도전적인 자기 고백록이다. 과장된 수식어나 억지스러운 교훈 없이 툭툭 던지는 문장 속에는 세상을 향한 애정이 다분히 배어 있다. 팍팍한 현실 속에서 길을 잃고 서성이는 이들에게 이 책은 든든한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무엇보다 타인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고 행복해지는 길을 따라 여행하며 글을 쓰는 김지영 작가의 단단한 삶을 진심으로 응원하게 된다.






#예쁜것은다너를닮았다 #김지영작가 #푸른향기 #여행에세이추천 #퇴사후세계여행 #세계여행에세이 #베스트셀러도서 #도서리뷰 #서평블로그 #20대책추천 #30대책추천 #위로가되는책 #마음이편안해지는책 #인생책추천 #독서기록 #감성에세이 #힐링도서추천 #배낭여행기 #에세이베스트셀러 #에세이추천도서 #자기계발도서 #동기부여책 #책추천해주는곳 #예스24추천도서 #책읽기습관 #서평단 #서포터즈 #도서제공협찬 #신간추천리뷰 #에세이추천리뷰 #책추천리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펀치 드렁크 픽션 ㅣ 위픽
서장원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장원 작가의 <펀치 드렁크 픽션>은 2026년 9월 2일 출간된 위즈덤하우스의 단편소설 시리즈 위픽 신작이다. 위픽은 단 한 편의 이야기를 천천히 호흡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며, 독자의 가슴에 진하게 새겨질 한 조각의 문학을 지향하는 매력적인 기획 시리즈다. 1990년생인 서장원 소설가는 202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2021년 첫 소설집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를 펴냈다. 이후 단편소설 <리틀 프라이드>로 2024년 이효석문학상 우수작품상, 2025년 이상문학상 우수상, 그리고 젊은작가상을 잇달아 수상하며 한국 문학을 이끌어갈 주요 작가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약 5년 만에 발표하는 이번 신작 단행본은 112쪽 분량의 한 손에 들어오는 민트색 커버 양장본으로 제작되었다. 작가 본인의 현실을 소설 속 화자 '정원'의 일상에 투영한 메타픽션 성격을 띠며,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사회 속에서 억압받는 이들이 품는 정당한 분노라는 화두를 예리하게 벼려낸다. 부조리한 세상에서 상처받으면서도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타인을 향한 무분별한 적의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갈등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일독을 권할 만한 소설이다.


혐오에 맞서는 초현실적 상상력과 서사

이 소설은 경남 진주로 이주해 1년 반째 거주하며 글을 쓰는 소설가 정원과 전직 유도, 격투기 선수 조성의 우연한 만남으로 전개된다. 정원은 자신의 소설 속 인물들이 지나치게 심약하다는 생각에 빠져 기나긴 슬럼프를 겪는 중이다. 조성을 처음 대면한 장소는 어느 도서 행사장이며 그는 정원이 쓴 단편소설 <리틀 프라이드>가 수록된 이전 해의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들고 와 사인을 청한다. 이개혈종으로 부풀어 오른 귀를 가진 그는 동성애를 정신병 취급하는 전 UFC 챔피언 션 스트릭랜드 같은 이들이 벌을 받는 이야기를 원한다고 털어놓는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강인해 보이는 조성을 보며 정원은 그가 자신의 소설을 앞으로 나아가게 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품는다. 놀랍게도 조성에게는 자신이 미워하고 원하지 않는 인물이나 사물을 흔적 없이 소멸시키는 비현실적인 초능력이 존재했다. 삼영빌딩 4층 공유 오피스에 나란히 앉아 정원은 극우주의자 정치인, 혐오를 조장하는 유튜버, 유명 인사들의 명단을 불러주고 조성은 그들을 세상에서 하나씩 지워나간다.


사라지는 자들과 남겨진 자들의 딜레마

강렬한 대목은 육각형 체육관 경기장 안에서 벌어지는 시합 장면이다. 정원은 그곳에서 극우 커뮤니티 유머를 거리낌 없이 뿜어내는 '반칙왕'을 마주하며 종합격투기 세계의 적나라한 민낯을 목격한다. 체격 차이가 현격한 반칙왕에게 짓눌리던 조성이 찰나의 순간에 그를 껴안자, 반칙왕은 흔적도 없이 허공으로 증발해 버린다. 사건 직후 친구 호경이 운영하는 카페로 피신한 두 사람은 현실 속 보수 운동가 찰리 커크, 피살된 브라이언 톰슨 사건을 은연중에 언급하며 폭력을 향한 폭력이라는 윤리적 문제에 직면한다. 윤리적인 주제의 글을 쓰면서도 내심 반칙왕의 물리적 접근을 견디지 못하는 정원의 모순적인 태도는 비윤리적 사고와 행동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현대인의 초상을 대변한다. 작가 인터뷰에 따르면 이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영화 <큐어>처럼 미워하는 마음이 기이한 힘을 갖는 호러 장르의 상상력과 맞닿아 있으며, 이를 통해 타자를 향한 증오가 어떻게 파괴적인 물리력으로 치환되는지 묻는다.


미움의 시대에 띄우는 다정한 편지

서장원의 소설이 지닌 가장 매력적인 요소는 혐오의 대상을 향해서도 끝내 인간적인 온기를 잃지 않으려는 진중한 태도에 있다. 책의 말미 작가의 말에서 서장원은 이 소설에 담긴 고민들이 머릿속에서 이미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던 물음들이며, 그저 이 뭉툭한 질문의 면면을 살펴보고 싶었다고 담담히 고백한다. 가해자를 섣불리 단죄하기보다 복잡하게 얽힌 원망의 그물망을 조심스럽게 풀어낸다. 조성이 남몰래 자신을 조롱하는 남성들을 미워하면서도 어떻게 20년 넘게 같은 업계에 머물렀는지에 대한 화자의 짐작은, 폭력적인 세계 안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결연한 투지를 보여준다.


책 앞쪽에 적힌 작가의 친필 서명 "걱정 말아요. 저는 안전하니까."라는 문구는 상처투성이 세상에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겠다는 굳건한 선언처럼 다가온다. 폭력, 차별이 범람하는 오늘날 자신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서늘한 상상력이 필요함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 소설이다.






#펀치드렁크픽션 #서장원 #서장원소설 #위즈덤하우스 #위픽 #단편소설 #리틀프라이드 #한국소설추천 #소설리뷰 #책리뷰 #신간도서 #독후감 #젊은작가상 #메타픽션 #퀴어소설 #혐오와차별 #책추천 #독서기록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도서추천 #베스트셀러추천 #소수자문학 #위픽시리즈 #이상문학상 #서평단 #도서제공협찬 #신간추천리뷰 #책추천리뷰 #도서추천리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파랑을 잇는 바다
이요하라 신 지음, 김다미 옮김 / 비채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베대학 이학부 지구과학과를 졸업하고 도쿄대학 대학원 이학계 연구과에서 지구행성물리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이요하라 신의 신작 소설집 <파랑을 잇는 바다>를 펼쳤다. 비채에서 출간된 이 책은 제172회 나오키상을 거머쥐며 미야베 미유키, 미우라 시온, 교고쿠 나쓰히코 등 저명한 작가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이끌어낸 화제작이다. <루카의 방주>, <달까지 3킬로미터>, <하늘을 건너는 교실> 등의 전작에서 엿볼 수 있듯, 저자는 자칫 차갑게 느껴질 수 있는 과학적 지식에 인간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엮어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 최근 인터뷰에서 자연의 섭리를 통해 인간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밝힌 작가의 말처럼, 이번 작품 역시 인구가 줄어드는 소도시, 문을 닫는 우체국, 은둔 과학자의 폐가 등 세상의 중심에서 비껴난 곳에 남겨진 사람들의 삶을 다룬다. 잊히고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애틋한 연민을 과학적 상상력으로 풀어낸 이 단편집은 삶의 방향성을 잃고 방황하는 이들에게 넌지시 권하고 싶은 총 다섯 편의 서사로 구성되어 있다.


지질학과 도예의 만남 & 잃어버린 야성

첫 번째 이야기 <꿈빛깔 섬>은 대학에서 과연비 지원 문제로 고군분투하는 지질학 조교 아유미와 전설적인 도공 도로헤이의 환상의 흙 '미시마토'를 찾는 도예가 고헤이의 조우를 그린다. 두 사람이 에도시대 가마터로 추정되는 산기슭을 파헤쳐 비파색보다 진한 붉은빛의 베니하기데 파편을 찾아내는 장면은 흙이라는 무기물적인 지질학적 요소가 인간의 끈질긴 집념과 만나 예술로 승화되는 경이로운 순간을 포착한다.

두 번째 수록작 <늑대개 다이어리>는 사회에서 겉돌다 산골로 숨어든 화자가 돌봄 노동을 하며 겪는 기이한 체험을 다룬다. 일본늑대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개 긴타, 소년 다쿠미, 다쿠미의 엄마 가나에 씨와 함께 다이코의 산 이나리 신사 부근에서 미지의 짐승과 마주치는 에피소드는 서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스스로 무리에서 밀려난 늑대 혼혈이라 칭하며 와타누키 선생의 조언을 구하는 주인공이 모리타 씨 가족의 온기에 기대어 상처 입은 내면을 서서히 치유해 나가는 과정은 자연의 원초적인 힘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역사적 상처와 우주의 섭리, 남겨진 자들의 시간

세 번째 <기도의 파편>은 인적이 끊긴 폐가를 정리하는 인물 히카루와 가가야 씨의 시선을 따라간다. 원자폭탄 연구에 매진했던 은둔 과학자 가가야 쇼이치의 비밀을 추적하며, 남겨진 필드 노트 속, 북동 방향의 그림자와 국화(mum?)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어낸다. 피카동(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이라는 일본 현대사의 뼈아픈 상처를 과학자의 양심이라는 진지한 시선으로 어루만지는 솜씨가 매끄럽다.

이어지는 <별 지는 역체>에서는 조용한 마을에 떨어진 엔가루 운석을 둘러싼 소동을 다룬다. 료코와 신고 부부, 에노키다 씨가 호로소농장의 밀짚 롤 부근에서 발견한 별의 파편은 장인어른의 조부 오바 다다오가 지켰던 야치나이 역체 터의 역사와 맞물린다. 아이누어로 별을 뜻하는 노치우라는 단어처럼 우주의 거대한 섭리와 평범한 일상의 교차점을 절묘하게 짚어낸다.


마지막 표제작 <파랑을 잇는 바다>는 인구가 급감하는 히메가우라 마을을 배경으로, 붉은바다거북의 산란과 부화 과정을 통해 상실감을 극복하는 십 대 소녀 사쓰키의 내밀한 성장을 그린다.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어부 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사쓰키는, 자신을 유일하게 돌봐주던 여덟 살 터울의 언니 미쓰키마저 도쿄로 떠나버리자 커다란 버림받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고립감 속에서 웅크려 있던 사쓰키가 해변에서 거북의 알을 발견하고 이를 남몰래 부화시키려 고군분투하는 에피소드는 묘한 긴장감과 애틋함을 동시에 자아낸다. 이 과정에서 사와 할머니와 해양 동물 구조 전문가 팀, 다카시마 과장 등 주변 인물들과 교류하며 헤드 스타팅과 쿠로시오 해류로 이어지는 생태계의 거대한 순환을 배운다. 새끼 거북들이 달빛을 나침반 삼아 무사히 바다로 나아가는 밤, 사와 할머니가 사쓰키에게 좋아하는 곳에서 살면 될 뿐, 태어난 곳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다독이는 장면은 긴 여운을 남긴다. 언젠가 고향을 떠나더라도 이곳에서 자란 기억은 남색 바닷물을 타고 다시 돌아올 것이라 믿으며, 침묵하던 언니에게 먼저 안부 메시지를 보내려 결심하는 사쓰키의 변화는 거침없이 파도로 뛰어드는 바다거북의 모습과 겹쳐지며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사라지는 것들을 향한 다정한 시선

이요하라 신 소설의 가장 돋보이는 매력은 섣불리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든 것은 변하고 영원한 것은 없다는 냉정한 인식 체계를 근간에 두면서도, 그 거대한 흐름에 무기력하게 순응하기보다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 비합리적인 선택을 기꺼이 감내하는 사람들의 온기를 결코 놓치지 않는다.

단조로운 위로나 작위적인 희망 대신, 흙, 늑대, 운석, 바다거북 등 자연의 조각들을 매개로 단절된 인간관계와 기억을 서서히 복원해 나가는 서사 구조가 치밀하다. 요란한 수식어나 자극적인 사건 없이도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난 후 오랫동안 시선이 허공에 머무는.. 누구에게나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매력적인 소설집이다.





#이요하라신 #파랑을잇는바다 #비채 #나오키상수상작 #일본소설추천 #과학소설 #단편소설집 #꿈빛깔섬 #늑대개다이어리 #기도의파편 #별지는역체 #신간도서리뷰 #베스트셀러추천 #문학상수상작 #책리뷰 #독서기록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지구과학소설 #위로가되는책 #여운이남는소설 #인생책추천 #가을독서 #독서모임도서 #소설추천 #서평 #도서추천 #서평단 #도서제공협찬 #신간추천리뷰 #소설추천리뷰 #책추천리뷰 #도서추천리뷰 #김다미옮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