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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핑크스의 왼쪽 눈동자
김유진 지음 / 북다 / 2026년 8월
평점 :
철학적 질문에서 출발한 매혹적인 세계관
북다 출판사에서 2026년 8월 출간한 김유진 작가의 장편소설 <스핑크스의 왼쪽 눈동자>는 제13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최우수상을 받은 화제의 SF 미스터리 스릴러다. 작가는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다 2024년 첫 장편소설 <센트 아일랜드>로 데뷔한 이후 하나의 질문을 파고들어 매력적인 서사로 확장하는 독특한 작품 스타일을 구축해 왔다. 이 책은 기억을 지우려는 자와 복원하려는 자의 팽팽한 대립을 통해 혈연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 진지한 메시지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작가가 해당 공모전에 세 번 연속 도전하여 끝내 대상을 거머쥔 집요함이 작품의 완성도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기승전결 내내 서스펜스를 잃지 않아 촘촘한 복수극을 찾는 독자들에게 적극 권할 만한 소설이다. <살인자의 쇼핑몰>을 집필한 강지영 작가가 "작품을 읽는 내내 제발 지금 멈춰 줘, 라고 외치며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경험이 빈번했다"라고 격찬한 것처럼 미지의 진실을 좇는 지적 쾌감이 상당하다.
조각난 기억을 좇는 자들의 엇갈린 궤적
첨단 의술을 통해 타인의 기억을 임의로 매만질 수 있는 근미래를 무대로 삼은 서사의 짜임새는 도입부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브레인 임상연구센터의 연구원 김수오와 네스트 신경외과 소속 의사 주경재의 시점이 각 장에 걸쳐 번갈아 교차하는 방식은 쉴 새 없는 긴장감을 자아낸다. "산 자들은 기억이라는 형벌을 안고 눈을 뜬다."라는 프롤로그처럼 망각이 인간에게 내린 자비로운 축복인지 진실을 가리는 형벌인지에 대한 딜레마가 이야기 전반을 관통한다.
무엇보다 주경재의 충직한 비서인 차민철이라는 인물이 서사의 판도를 뒤흔드는 변수로 등장하여 극적인 몰입감을 선사한다. 수오는 네스트 신경외과에서 과거 수술을 받았던 어머니의 진료 기록을 캐내기 위해 차민철에게 은밀히 접근한다. 보육원 시절부터 주경재와 질긴 인연을 맺어온 차민철이 과거 화재 사건에 대한 의구심을 품고 결국 수오와 공조하는 장면은 짜릿한 반전을 선사한다. 수오가 징계를 무릅쓰고 석 달간 네스트의 임시 비서로 위장 잠입하여 불법 수술 녹화 파일이 담긴 USB를 찾아내려는 대목은 첩보물 못지않은 박진감을 부여한다.
은폐된 진실과 마주하는 쓰라린 순간
감춰진 과거의 실타래를 역추적하여 마주하는 숨 막히는 진실에 대한 묘사는 이 소설의 백미다. 수오가 앵커 로봇을 통해 어머니의 잃어버린 2년간의 뇌리 속 파편을 복원하는 수술실 대목은 잔상을 남긴다. 동료 의사 신진서가 망각은 필요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기억도 있는 것이라고 건네는 뼈 있는 조언은 소설을 관통하는 거대한 주제 의식을 대변한다. 특히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스핑크스의 왼쪽 눈동자 실체가 드러나는 대목은 충격적이다. 수오가 마침내 손에 넣은 스핑크스의 눈동자 블록 USB 중 오른쪽 눈동자에는 과거의 동거 흔적이 담겨 있었고, "이거 먼저 보여 주세요. 스핑크스의 왼쪽 눈동자."라는 수오의 말과 함께 재생된 영상에는 어머니가 골목에서 괴한에게 습격당하는 참혹한 진실이 녹화되어 있었다.
타인의 기억을 임의로 도려내며 자신만의 기형적인 성곽을 쌓아 올린 주경재의 비틀린 내면 묘사 역시 소름을 돋게 한다. 무정이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기르며 타인과의 좁은 울타리를 고집하는 그는 철저히 통제된 관계만을 원한다. 과거 차민철이 겪은 보육원 화재 사건의 진범이 다름 아닌 주경재였으며 "보육원이 불타면 엄마에게 갈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364쪽)라는 변명이 밝혀지는 순간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그의 오만한 태도가 여실히 드러난다.
인위적 망각을 뛰어넘는 복수의 카타르시스
북다 신간 <스핑크스의 왼쪽 눈동자>가 유독 돋보이는 이유는 기억 조작이라는 공상과학적 상상력을 복수극의 서사 안에 빈틈없이 녹여냈다는 점이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는 남겨진 기억의 유무에 따라 위태롭게 요동치고, 종국에 수면 위로 드러나는 흑막의 진상은 날 선 자극을 안겨준다. 네스트 신경외과 원장 자리에서 밀려나고 수오에게 재산을 뺏긴 채, 병실에 무기력하게 누운 주경재의 말로는 참담하다.
모든 진실을 깨달은 수오가 기억을 상실한 주경재를 향해 "오래오래 사세요! XX."라고 읊조리며 병실을 나서는 마지막 장면은 오직 피를 부르는 일차원적인 징벌을 넘어선다. 고도로 발달한 기술이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오히려 피로 맺어진 혈연의 굴레가 어떻게 변모하는지 날카롭게 통찰한다. 인간의 삶과 존엄을 지탱하는 것은 결국 훼손되지 않은 기억이라는 진실을 밀도 있게 그려내어 다 읽고 난 후에도 오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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