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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을 잇는 바다
이요하라 신 지음, 김다미 옮김 / 비채 / 2026년 9월
평점 :
고베대학 이학부 지구과학과를 졸업하고 도쿄대학 대학원 이학계 연구과에서 지구행성물리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이요하라 신의 신작 소설집 <파랑을 잇는 바다>를 펼쳤다. 비채에서 출간된 이 책은 제172회 나오키상을 거머쥐며 미야베 미유키, 미우라 시온, 교고쿠 나쓰히코 등 저명한 작가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이끌어낸 화제작이다. <루카의 방주>, <달까지 3킬로미터>, <하늘을 건너는 교실> 등의 전작에서 엿볼 수 있듯, 저자는 자칫 차갑게 느껴질 수 있는 과학적 지식에 인간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엮어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 최근 인터뷰에서 자연의 섭리를 통해 인간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밝힌 작가의 말처럼, 이번 작품 역시 인구가 줄어드는 소도시, 문을 닫는 우체국, 은둔 과학자의 폐가 등 세상의 중심에서 비껴난 곳에 남겨진 사람들의 삶을 다룬다. 잊히고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애틋한 연민을 과학적 상상력으로 풀어낸 이 단편집은 삶의 방향성을 잃고 방황하는 이들에게 넌지시 권하고 싶은 총 다섯 편의 서사로 구성되어 있다.
지질학과 도예의 만남 & 잃어버린 야성
첫 번째 이야기 <꿈빛깔 섬>은 대학에서 과연비 지원 문제로 고군분투하는 지질학 조교 아유미와 전설적인 도공 도로헤이의 환상의 흙 '미시마토'를 찾는 도예가 고헤이의 조우를 그린다. 두 사람이 에도시대 가마터로 추정되는 산기슭을 파헤쳐 비파색보다 진한 붉은빛의 베니하기데 파편을 찾아내는 장면은 흙이라는 무기물적인 지질학적 요소가 인간의 끈질긴 집념과 만나 예술로 승화되는 경이로운 순간을 포착한다.
두 번째 수록작 <늑대개 다이어리>는 사회에서 겉돌다 산골로 숨어든 화자가 돌봄 노동을 하며 겪는 기이한 체험을 다룬다. 일본늑대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개 긴타, 소년 다쿠미, 다쿠미의 엄마 가나에 씨와 함께 다이코의 산 이나리 신사 부근에서 미지의 짐승과 마주치는 에피소드는 서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스스로 무리에서 밀려난 늑대 혼혈이라 칭하며 와타누키 선생의 조언을 구하는 주인공이 모리타 씨 가족의 온기에 기대어 상처 입은 내면을 서서히 치유해 나가는 과정은 자연의 원초적인 힘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역사적 상처와 우주의 섭리, 남겨진 자들의 시간
세 번째 <기도의 파편>은 인적이 끊긴 폐가를 정리하는 인물 히카루와 가가야 씨의 시선을 따라간다. 원자폭탄 연구에 매진했던 은둔 과학자 가가야 쇼이치의 비밀을 추적하며, 남겨진 필드 노트 속, 북동 방향의 그림자와 국화(mum?)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어낸다. 피카동(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이라는 일본 현대사의 뼈아픈 상처를 과학자의 양심이라는 진지한 시선으로 어루만지는 솜씨가 매끄럽다.
이어지는 <별 지는 역체>에서는 조용한 마을에 떨어진 엔가루 운석을 둘러싼 소동을 다룬다. 료코와 신고 부부, 에노키다 씨가 호로소농장의 밀짚 롤 부근에서 발견한 별의 파편은 장인어른의 조부 오바 다다오가 지켰던 야치나이 역체 터의 역사와 맞물린다. 아이누어로 별을 뜻하는 노치우라는 단어처럼 우주의 거대한 섭리와 평범한 일상의 교차점을 절묘하게 짚어낸다.
마지막 표제작 <파랑을 잇는 바다>는 인구가 급감하는 히메가우라 마을을 배경으로, 붉은바다거북의 산란과 부화 과정을 통해 상실감을 극복하는 십 대 소녀 사쓰키의 내밀한 성장을 그린다.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어부 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사쓰키는, 자신을 유일하게 돌봐주던 여덟 살 터울의 언니 미쓰키마저 도쿄로 떠나버리자 커다란 버림받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고립감 속에서 웅크려 있던 사쓰키가 해변에서 거북의 알을 발견하고 이를 남몰래 부화시키려 고군분투하는 에피소드는 묘한 긴장감과 애틋함을 동시에 자아낸다. 이 과정에서 사와 할머니와 해양 동물 구조 전문가 팀, 다카시마 과장 등 주변 인물들과 교류하며 헤드 스타팅과 쿠로시오 해류로 이어지는 생태계의 거대한 순환을 배운다. 새끼 거북들이 달빛을 나침반 삼아 무사히 바다로 나아가는 밤, 사와 할머니가 사쓰키에게 좋아하는 곳에서 살면 될 뿐, 태어난 곳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다독이는 장면은 긴 여운을 남긴다. 언젠가 고향을 떠나더라도 이곳에서 자란 기억은 남색 바닷물을 타고 다시 돌아올 것이라 믿으며, 침묵하던 언니에게 먼저 안부 메시지를 보내려 결심하는 사쓰키의 변화는 거침없이 파도로 뛰어드는 바다거북의 모습과 겹쳐지며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사라지는 것들을 향한 다정한 시선
이요하라 신 소설의 가장 돋보이는 매력은 섣불리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든 것은 변하고 영원한 것은 없다는 냉정한 인식 체계를 근간에 두면서도, 그 거대한 흐름에 무기력하게 순응하기보다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 비합리적인 선택을 기꺼이 감내하는 사람들의 온기를 결코 놓치지 않는다.
단조로운 위로나 작위적인 희망 대신, 흙, 늑대, 운석, 바다거북 등 자연의 조각들을 매개로 단절된 인간관계와 기억을 서서히 복원해 나가는 서사 구조가 치밀하다. 요란한 수식어나 자극적인 사건 없이도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난 후 오랫동안 시선이 허공에 머무는.. 누구에게나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매력적인 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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