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날레 - 끝까지 강하고 자유로운 나
수전 구바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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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강하고 자유로운 나를 증명해 낸 노년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북하우스 신간 <피날레>는 창조적 장수의 경이로운 기록을 남긴 명작이다. 저자 수전 구바는 샌드라 길버트와 함께 <다락방의 미친 여자>, <남자 없는 나라> 3부작, <말들의 전쟁> 등을 집필하며 19세기와 20세기를 아우르는 페미니즘 비평의 이론적 기틀을 완성한 저명한 영문학자다. 방대한 학술 작업을 이어간 공헌을 인정받아 2012년 전미도서비평가협회 평생공로상을, 2020년에는 미국현대언어학회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2008년 예순넷의 나이에 말기 난소암으로 3년에서 5년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그녀는 절망 대신 뉴욕 타임스에 칼럼을 연재하고 2012년 실험적인 신약 임상시험에 참여하며 삶의 의지를 다졌다. 바늘과 튜브가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암담한 투병 속에서도 저자는 창의력을 유지한 장수 여성들의 전기적 정보를 탐구하며 노년기의 예술적 가능성을 집요하게 추적했다.


목차를 따라 주요 내용을 짚어 보면..


1부 연인들, 관습을 타파한 파격의 사랑

빅토리아 시대의 조지 엘리엇은 예순 살에 스무 살 연하의 존 크로스와 파격적인 결혼을 감행하며 사회적 비난에 맞섰다. 소설가 콜레트는 마흔일곱에 열여섯 살 의붓아들과 연애를 시작했고, 노년에 관절염으로 극심한 통증을 겪으면서도 휠체어에 의지한 채 감각적인 쾌락과 창작의 열의를 놓지 않았다. 화가 조지아 오키프는 황반변성으로 시력을 잃어가는 시련 속에서도 젊은 조수 후안 해밀턴과 교감하며 흙을 빚어 찬란한 캔버스 작업을 이어갔다.


2부 이단아들, 독창적 예술로 승화된 노년

덴마크의 작가 이자크 디네센은 매독 후유증과 위궤양으로 체중이 40kg 아래로 떨어지는 쇠약함 속에서도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고딕풍의 매혹적인 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구연했다. 시인 메리앤 무어는 특유의 삼각모자와 검은 망토를 두르고 예순이 넘어 양키 스타디움에서 시구를 하는 등 괴짜 같은 행보로 노년의 자유를 만끽했다.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는 80대와 90대에 오히려 전성기를 맞이하며 거미 조각상 <마망> 등 웅장한 조각품들을 창조해 냈다.


3부 현자들, 영성과 정의를 향한 거침없는 연대

재즈 피아니스트 메리 루 윌리엄스는 흑인 영가와 재즈를 결합한 신성한 미사곡을 작곡하며 영적 예술의 지평을 넓혔다. 시인 궨덜린 브룩스는 투쟁적 정치 운동의 옹호자로서 흑인 커뮤니티의 결속을 다졌다. 특히 무용계의 선구자 캐서린 더넘은 여든 살이 넘은 나이에 아이티 난민 강제 송환에 항의하며 47일간의 단식 투쟁을 감행해 굳건한 신념을 행동으로 증명했다.



노년의 여성들이 창조한 강렬하고 웅장한 예술 세계와 우리가 배워야 할 점

책장을 넘길수록 이 노년의 여성들이 이토록 강렬하고 웅장한 예술 세계를 창조해 냈다는 사실에 벅찬 경외감이 밀려온다. 이사벨 아옌데의 통찰처럼.. 이들의 몸은 비록 쇠퇴했을지언정 영혼은 오히려 젊음을 되찾고 폭발적인 영감을 뿜어냈다.


우리가 그녀들에게서 배워야 할 가장 큰 가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영속성을 발견하는 태도'다. 이들은 노화를 상실이나 축소로 여기지 않았다. 질병, 쇠락, 사랑하는 이의 죽음 등 거대한 타격 앞에서도 타협하거나 위축되지 않고, 자신의 육체적 한계를 새로운 예술적 자원으로 승화시키는 경이로운 열정, 유연함을 보여주었다. 10번가의 마녀 여왕이라 불렸던 캐서린 더넘이 제자들에게 남긴 "매일 내면으로 들어가 네 내면의 힘을 찾아라. 세상이 네 내면의 촛불을 꺼뜨리지 않도록."이라는 말은 나이 듦의 공포에 휩싸인 우리에게 가장 강력한 삶의 나침반이 되어 준다.


끝까지 강하고 자유로운 나를 위해 30~40대부터 해야 할 노력들..

그렇다면 우리 역시 생의 마지막 무대에서 이토록 찬란한 '그랜드 피날레'를 맞이하기 위해, 인생의 중반부인 40대부터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1.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내면의 촛불' 지키기: 3~40대는 사회적 역할(부모, 직장인 등)에 매몰되어 자기 자신을 잃기 쉬운 시기다. 캐서린 더넘의 조언처럼 매일 조용히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고, 세상의 평가와 무관하게 내 심장을 뛰게 하는 고유한 자아, 열정을 발견하고 지켜내야 한다.

  2. 한계와 상실을 자원으로 유연함 기르기: 노화는 필연적으로 상실, 고통을 동반한다. 콜레트나 오키프처럼 육체적 제약이 찾아왔을 때 좌절하는 대신.. 붓 대신 흙을 만지고, 걷는 대신 수영을 하듯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다른 방식'을 찾는 심리적 탄력성을 젊어서부터 훈련해야 한다.

  3. 세상과 연대하며 기개와 호기심 유지하기: 나이가 들수록 세계관이 좁아지는 것, 편협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80대의 나이에도 난민을 위해 단식 투쟁을 한 더넘처럼.. 나보다 더 큰 가치나 공동체에 관심을 두고 연대할 때 우리의 영혼은 늙지 않고 번뜩이는 총기를 유지할 수 있다.

  4. 나만의 고유한 리듬과 취향에 당당해지기: 조지 엘리엇과 이자크 디네센이 세간의 시선에 굴하지 않고 파격적인 사랑과 괴짜다운 삶을 선택했듯.. 3~40대부터는 타인이 정해놓은 '나이다움'의 굴레를 벗어던져야 한다. 내가 입고 싶은 옷,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 내가 추구하는 쾌락에 온전히 집중하며 독립적인 삶의 태도를 구축해야 한다.


수전 구바의 선구적인 통찰력이 빛나는 <피날레>는 늙은 육신이라는 껍데기 아래에서 여전히 맹렬하게 박동하는 삶에 대한 열정, 에너지, 창조성을 일깨운다. 질병과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삶의 방식을 스스로 결정하고 전진한 그녀들의 피날레는 두려움 없이 나이 들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가장 완벽한 인생의 참고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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랠리
박민경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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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신간, 박민경 작가의 첫 소설집 <랠리>를 펼쳐 보았다. 작가는 2022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살아 있는 당신의 밤>이 당선되며 "유려한 문장과 세밀한 묘사로 꿈과 현실의 괴리를 적절하게 짚어냈다"라는 평단의 극찬과 함께 등단했다. 책머리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소설을 쓴다는 건 결국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일"이라며 "그러니까 나는 여러분과 만나기 위해 썼다. 닿았다 드디어"라고 뭉클한 진심을 건넸듯.. 작가는 벼랑 끝에 몰린 인간 군상의 스펙트럼을 신인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관록과 신묘한 활기로 직조했다. 띠지에 적힌.. 소설가 김기태가 "이렇게나 기꺼이 랠리-하기. 삶을 살고 사람을 아끼는 작가만이 그럴 수 있다"라고 상찬했듯, 이 책은 생존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기쁨을 잃어버린 우리에게 타인과 감각을 주고받으며 다시금 '살아볼 만한 삶'을 쟁취하게 만드는 경이로운 에너지를 선사한다.


<랠리>에 수록된 9편의 단편을 읽어 내려가며, 각 인물들이 발산하는 맹렬하고도 아름다운 생명력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처음 문을 여는 <괴력문정과 다마고치>는 정체불명의 괴력을 가진 소녀 '문정'과 10년 만에 불쑥 찾아와 기를 갈고닦으면 만물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 아버지 '장원'의 이야기다. 문정은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의 힘을 봉인하려 하지만, 결국 파괴적인 세계 속에서 자기만의 꿋꿋한 강함을 지향하게 된다. 이어지는 <즐거운 나라>는 비대하게 자라나는 몸을 가진 '신나라'를 통해 여성의 몸이 세상의 편향되고 억압적인 시선에 의해 어떻게 오독되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사랑하던 시 쓰기마저 접어야 했던 신나라의 서사와 도심에 풀려난 거대한 코끼리와 마주하는 장면, 거친 초원 위를 내달리는 질주 장면은 억압을 뚫고 나오는 묵직한 카타르시스를 남긴다.


표제작 <랠리>는 고단한 세계 속에서 마찰하는 우리가 어떻게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감정과 기억을 주고받는지 그린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신체가 파괴되는 듯한 '입자성 해리' 증상을 겪는 '희원'과 '나미'가 교감하는 과정은 타자와 교류하며 생의 감각을 일깨우는 '랠리'의 기적을 뭉클하게 보여준다. 자신이 마모되고 스러져 감에도 밥벌이를 계속해야 하는 현대인의 비애에 우리는 동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개울에 처박힌 바람 빠진 인형을 구하기 위해 희원과 나미가 함께 나아가는 장면은 뭉클하면서 극적이다. 등단작 <살아 있는 당신의 밤>은 세상을 등진 전 연인의 GPS 신호가 당도하는 먹먹한 에피소드를 통해 누군가와 나누었던 시간이 결코 사라지지 않고 현재에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지를 아름답게 증명한다.


한편 소설집은 노년의 삶에도 따뜻하고 예리한 시선을 던진다. <긴 하루>의 '병철'은 고령의 요양원 송영 차량 운전사로 해고 압박에 시달리면서도 주변의 안부를 부지런히 살피고, <수색기>의 '애영' 역시 미화팀으로 출근하며 세상에 뒤처지지 않으려 분투한다. 먼저 떠나보낸 반려견 '뭉이' 대신 '로봇 청소기'를 끌어안고 교감하는 애영의 모습은 노년의 공허함, 낭패감 속에서도 끈질기게 생을 감각하려는 눈물겨운 투쟁이다.


누군가의 생존 투쟁은 때로 삶을 지키기 위한 처절하고 섬뜩한 방어 기제로 나타난다. <별개의 문제>의 '병주'와 극 중 화자는 배달 피자가게를 오픈한 부부다. 별점 1개를 테러하는 무례한 개진상 손님을 병주가 직접 찾아가기로 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없이 비극으로 치닫는데.. 불길한 예감에 빗속을 운전하며 '음식물 처리기'를 극단적인 마무리가 서늘하다. <스위트 홈>의 '주원'은 평화로운 자신의 공간에 찾아온 불청객, 친동생을 결국 제거하려 한다. 거실 곳곳에 온갖 '시럽'을 뿌려 달콤하고도 끈적한 거대한 디저트 같은 덫을 만드는데.. 이는 '살아볼 만한 삶'을 지키기 위한 필사적인 발악으로 읽혀 가슴을 저미게 한다.


마지막으로 <자라는 자라서>는 유전적인 심근경색으로 에크모 시술을 받은 '윤하나'를 시작으로 남편과 의사, 레지던트, 약혼자 등이 꼬리를 물고 끝없는 랠리처럼 화두를 이어간다. 등장인물의 엄지발가락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자라'의 생존을 위한 맹렬함과 달력에 적힌 '부화'라는 단어를 짚어내는 '오정규'의 에피소드를 통해 순환하는 생명력을 은유하며 짙은 위로로 결론 맺는다. 남편 오정규는 '부화'라는 단어를 '부활'로 오인하면서까지 생을 갈구한 아내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허나 힘겨운 삶을 버티고 견딜수록 죽음의 늪으로 끌고 들어가는 운명의 아이러니는 우리를 고개 숙이고 눈물짓게 한다.


성현아 평론가의 해설 <무덤덤이라는 무덤에서 끌어올린 관>을 읽으며 이 소설집이 일종의 거대한 '구원'의 기록임을 깨달았다. 박민경의 인물들은 늙음, 다름, 가난 등으로 인해 가장자리로 밀려난다. 허나 작가는 이들을 불행의 전시품으로 두지 않고, 상실 속에서도 기어이 핑퐁처럼 삶의 공을 맞받아치는 생명력을 부여한다. "내가 보내면 저쪽에서 반드시 받아낼 거라는 믿음", 우리는 각자 외롭게 버티는 것 같지만 실은 누군가와 보이지 않는 랠리를 이어가고 있음을 이 단단한 소설이 증명하고 있다.


문학동네 신간, 박민경 작가 소설집 <랠리>..

삶이 그저 견뎌내는 것이 아니라.. 다시금 뜨겁게 살아가는 일이 될 수 있음을 믿게 하는 경이롭고 유일무이한 독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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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쇼크 - 금리가 재편하는 새로운 부의 질서
제이미 러시 외 엮음, 임경은 옮김, 박정호 감수 / 교보문고(단행본)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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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전환의 시작, 자연이자율이라는 북극성을 주시한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의 최고 석학들인 제이미 러시, 톰 올릭, 스테파니 플랜더스가 공저한 <머니 쇼크>는 장기 저금리 시대의 종언과 고금리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예리하게 분석한 경제 전망서다. 영란은행, 국제통화기금, JP 모건 등에서 실물 경제와 정책을 다뤄온 저자들은 치밀한 데이터 분석력을 바탕으로 인공지능, 기후 변화, 지정학적 갈등이 촉발할 '돈의 가격' 상승을 강력히 경고한다. 웬디 칼린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경제학 교수, 크리스 자일스 파이낸셜 타임스 칼럼니스트, 빌 더들리 전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 등 거시경제 대가들의 극찬을 받은 이 책은 자연이자율을 경제의 북극성으로 삼아 다가올 위기에 대비하려는 모든 이에게 필독서로 다가온다.


무너지는 제로 금리의 환상, 2012년 저점을 지나 상승장으로 향한다

이 책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저금리 시대가 특수한 역사적 예외였음을 데이터로 증명한다. 저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2012년 1.7%로 저점을 찍은 실질 자연이자율은 2030년경 2.8%까지 구조적으로 상승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10년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 역시 약 4.5%에서 4.8%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하며 장기 실질금리 하락 시대가 끝났음을 선언한다. 인상적인 대목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불러올 파장이다. 평생 돈을 모으며 전 세계적인 저축 과잉을 주도했던 이들이 이제 은퇴 자금을 소비하는 주체로 돌아서면서 자본의 가격 즉 금리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통찰은 섬세하면서도 서늘하다.


또한 1990년대 이후 누렸던 평화 배당금이 사라진 현실을 구체적인 수치로 짚어낸다. 일본이 국방비를 GDP의 2%로 늘리고 영국이 2.5%로 상향하며, 32개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 중 23개국이 국방비 지출 2%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는 전망은 신냉전의 도래를 실감케 한다. 방대한 경제 데이터를 논리적으로 분석하면서도 스토리텔링을 놓치지 않은 점이 돋보인다.


금리 패러다임을 바꾸는 8가지 요인과 우리의 생존 전략

저자들이 책을 통해 제시한 금리 상승의 핵심 동력은 다음과 같다.

  •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생산 가능인구 감소에 따른 저축액 축소

  • 인공지능 쇼크로 인한 막대한 인프라 및 자본 투자 수요 급증

  • 한계에 다다른 미국 등 주요국의 국가 부채와 재정 압박

  • 기후 변화 대응과 탄소 중립 전환을 위한 수십조 달러의 청구서

  • 지정학적 긴장 고조와 역사적 냉전의 귀환으로 인한 국방비 폭증

  • 저축 과잉의 진원지였던 중국의 경제 구조 변화와 성장 둔화

  • 무기화된 달러에 반발하는 지정학적 갈등과 기축통화의 흔들림

  • 부익부 빈익빈의 심화가 실물 경제와 자본 배분에 미치는 왜곡

이러한 요인들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인 변화다. 미 의회예산처 전망에 따르면 2020년대 후반 미국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은 105% 이상으로 치솟는다. 정부 부채가 쌓일수록 금리는 오를 수밖에 없으므로 우리는 과거의 레버리지 투자 방식에서 벗어나 포트폴리오를 재점검해야 한다.


기축통화의 균열과 페트로 달러의 변심, 대안 자산의 부상

미국이 달러를 무기화하여 금융 제재를 가하면서 지정학적 갈등의 중심에 있는 국가들은 달러 중심 체제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친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산유국들이 석유 수출로 벌어들인 페트로 달러를 더 이상 미국 국채에 쌓아두지 않고 자국 내 첨단 인프라나 주식 등 생산적 자산에 투자한다는 점은 경제 지형을 뒤흔드는 결정적인 변화다. 미 국채 수요가 감소하면서 금리는 더욱 구조적인 상승 압력을 받게 된다.

책에 요약된 제재 대상국들의 달러 대체 전략을 살펴보면, 이들은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 금융 자산 수요를 줄이고 금과 같은 실물 안전자산 수요를 대폭 확대한다. 디지털 암호화폐 기술을 기반으로 한 비트 코인 역시 특정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는 강점 덕분에 가상 자산 진영의 피난처로 떠오른다. 중국은 양자 무역 결제와 국가 결제 시스템을 통해 위안화의 영향력을 확대하려 애쓰고 있다. 결국 세계 경제는 단일 기축통화의 지배력에서 벗어나 실물 금, 가상 자산, 다극화된 주요국 통화가 혼재하는 다원화 체제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더 비싼 세상, 장기 고금리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파장

저자들은 세계가 분열하고 탄소 가격이 상승하면서 향후 10년 동안 매년 미국의 물가 상승률이 약 0.5% 포인트 끌어올려질 것으로 추정한다. 이에 대응해 중앙은행들은 정책 금리를 0.75에서 1.25% 포인트 더 높게 유지해야 할 수도 있다. 금리가 장기적으로 높은 수준에 머문다면 수출 중심이자 가계 부채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한국 경제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 한계 상황에 놓인 기업들은 이자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도산 위험에 처하고, 늘어난 대출 이자로 실질 소득이 급감한 개인과 자영업자는 내수 침체의 직격탄을 맞는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은 외형 확장보다 재무 건전성 확보에 사활을 걸고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사업을 재편해야 한다. 개인과 자영업자는 무리한 빚내서 투자하는 행위를 경계하고 고정 지출을 줄이며 현금 유동성을 적극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중동 전쟁의 장기화 & 멈추지 않는 인플레이션 압력

이스라엘과 하마스 그리고 이란을 둘러싼 중동 전쟁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비록 오늘 트럼프가 협상 타결을 발표했다고 하지만, 이스라엘이 이에 협조하지 않는다면 다시 분쟁 상황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글로벌 원유 공급망을 위협하고 해운 물류에 차질을 빚어 원자재 가격을 밀어 올리는 강력한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한다. 물가를 잡기 위해 각국 중앙은행은 금리 인하 시점을 계속 뒤로 미룰 수밖에 없다. 글로벌 자금이 생산적인 투자가 아닌 안보와 비용 방어에 소모되면서 장기적으로 '저성장 고물가'라는 스태그플레이션 그림자를 드리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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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부터 허리까지 철심 박고 배낭여행 - 스물여섯, 취업 대신 약해 빠진 몸으로 세계여행
김은지 지음 / 푸른향기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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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만을 강요하는 세상과 고장 난 톱니바퀴

1999년 토끼의 해에 태어난 저자 김은지는 평생을 달려야만 하는 줄 알고 살아온 전형적인 한국의 MZ 청춘이다. 살아남기 위해 좋아하는 국어 대신 이과를 선택했고, 인서울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대기업 취업이라는 획일화된 결승선을 향해 스펙을 쌓으며 쉬지 않고 뛰었다. 허나 그녀의 몸은 세상의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는 상태.. 고등학교 시절, 엑스레이 화면에 나타난 그녀의 척추는 S자로 휘어져 있었다. 결국 1년을 휴학하고 어깨부터 허리까지 철심을 박는 대수술을 받아야 했다.


열여덟의 어린 나이에 그런 엄청난 수술을 겪고, 자신의 몸이 남들보다 한참 허약하다는 사실을 세상에 당당히 밝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아픔과 한계를 숨기지 않고 담담하게 글로 풀어낸 저자의 용기에 뜨거운 찬사를 보내게 된다. 끊임없는 성취, 남보다 빠른 적응/변화 만을 요구하는 잔인한 전쟁터 같은 한국 사회에서.. 허약한 피지컬을 원망하며 불안감에 시달리던 그녀는 마침내 궤도를 이탈하기로 결심한다. 취업 대신, 약해 빠진 몸으로 과감히 세계 배낭여행을 떠난 것이다!


배낭의 무게를 줄이며 발견한 위로, 깨달음..

그녀의 여행은 화려한 명소를 도는 과시용 여행이 아니다. 그것은 느리고 약해도 괜찮다는 믿음을 스스로 확인하기 위한 치열한 생존 기록이다. 여행의 과정에서 저자는 6kg이라는 가벼운 배낭 하나만으로도 살아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깨닫는다. 더 가지는 것보다 덜어내는 것이 자신을 더욱 자유롭게 만든다는 사실, 즉 삶에서 더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줄이는 연습이라는 예리한 통찰을 얻게 된다.


낯선 세계는 그녀가 한국에서 겪었던 불안과 강박을 서서히 허물어뜨린다. 이집트 다합의 작은 카페에서 언니와 대화를 나누며 타인의 시선에 맞춘 이력서 대신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일기를 쓰기로 다짐하는 장면이나, 좁은 골목길에서 언어, 문화가 다른 사람들과 어깨를 맞잡고 춤을 추며 마음을 나누는 순간들은 긴 여운을 남긴다. 강자만 살아남는 전쟁터가 아니라 서로 돕고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라는 현지인의 따뜻한 연대는 늘 긴장 상태로 살아온 그녀의 내면을 다독인다.


우만타이 호수의 포기 & 마추픽추의 성취

인상적인 장면은 페루 여행 중 맞닥뜨린 고산병 에피소드다. 여행자라면 누구나 욕심낼 법한 페루 우만타이 호수 등반을 앞두고, 그녀는 악화된 컨디션을 인정하며 과감히 발걸음을 돌린다. 무리해서 목표를 달성하기보다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받아들이고 상황에 맞추어 유연하게 판단하는 지혜를 발휘한 것이다.

반면 이어진 마추픽추 여정에서는 상식을 벗어난 고된 길임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하며 짜릿한 성취감을 안겨준다. 우만타이 호수가 포기해서 다행인 여행이었다면 마추픽추는 포기하지 않아서 다행인 여행이었다는 그녀의 고백은.. 우리에게 삶의 선택에 대한 중요한 깨달음을 전한다. 무조건적인 인내나 포기가 아닌, 스스로의 상태를 면밀히 관찰하고 방향을 조율할 줄 아는 지혜롭고 건강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바다를 만난 거북이, 스스로 삶의 방향 키를 쥐다

저자의 발걸음은 멕시코 옆 섬나라 벨리즈의 키코커섬으로 이어진다. 세상에는 빠르게 살라고 말하는 곳만 있는 게 아니라, 천천히 가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곳도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나무 표지판에 투박하게 적힌 "Go slow, but keep moving"이라는 문장은 그녀의 삶을 관통하는 든든한 나침반이 된다. 또한 이집트 다합에서 한 달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한국의 엄마에게 돈을 빌리면서도, 양귀자의 소설 <모순>의 구절을 인용하며 자신의 삶을 유심히 관찰하고 탐구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모습은 청춘의 현실적인 고뇌와 성장을 동시에 보여준다.


각자의 갈증을 해소하는 상큼달콤 레몬에이드를 건넨다!

이 책은 척추에 철심을 품고 낯선 길을 걸어간 한 청춘의 좌충우돌 투쟁기이자 성장담이다. 한국 사회의 일률적인 기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가치를 찾아가는 그녀의 여정은 거북이처럼 느리더라도 멈추지 않고 걷는다면 충분히 자신이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음을 생생히 증명한다. 세상이 정해놓은 속도에 맞추지 않아도, 가끔은 넘어지고 쉬어가도 괜찮다는 사실은 경쟁에 지친 우리에게 커다란 위안이 된다.

멕시코의 강인한 예술가, 프리다 칼로처럼.. 철심을 박은 꼿꼿한 척추로 세상의 편견에 맞서며 단단하게 걸어가는 김은지 작가의 앞길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녀가 보여준 멈추지 않는 거북이의 발걸음은 각박한 현대 사회를 버텨내며 목말라하는 우리 모두에게 각자의 숨겨진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하는 상큼달콤 레몬에이드 같은 존재가 되어줄 것이다.


푸른향기 & 김은지 <어깨부터 허리까지 철심 박고 배낭여행>..

남들과 다른 속도로 살아가는 법을 치열하게 고민하는 이들에게 주저 없이 추천하고 싶은

여행 & 힐링 에세이다. 김은지 작가의 다음 행보, 다음 출간작을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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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두고 간 세계 - 돌봄과 상실 너머, 다시 시작된 사랑의 모험
천희란 지음 / 김영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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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자리에서 길어 올린 다정한 애도의 모험담

201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하여 2017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하며 치밀한 문장력을 인정받은 소설가 천희란이 11년 만에 첫 에세이 <고양이가 두고 간 세계>를 펴냈다. 작가는 그간 <영의 기원>, <자동 피아노> 등의 소설을 통해 인간 내면의 불안과 진실을 짚어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여왔다. 이번 신간은 한 번도 반려동물과 살아본 적 없는 초보 보호자가 열다섯 살의 노령묘 세 마리를 맞이하며 겪은 돌봄과 이별, 다시 시작된 사랑의 기록을 담아냈다. 출간 직후 ‘슬픔을 직시하며 사랑을 창조하는 경이로운 기록’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작가는 "고양이를 사랑한 경험은 내 눈을 멀게 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하는 새로운 눈을 주었다"라고 고백했으며, 대상화된 귀여움으로 소비되는 것을 경계하고자 책에 단 한 장의 고양이 사진도 싣지 않는 단호한 기획을 선보였다. 타인의 고통과 상실을 건강하게 마주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주저 없이 권할 만한 진솔한 에세이다.


우울과 절망의 벼랑 끝에서 마주한 다정한 온기

고양이의 보드라운 털 하나하나 만져지고 곤두서고 허공에 날릴 듯한 책 표지에 절로 손이 간다. 눈을 감고 살며시 쓰담쓰담하면 책 안에서 "아웅, 우끼끼~" 하는 특유의 갸릉거림이 들릴 것만 같다!

저자는 지독한 우울증과 자살 행동이라는 위태로운 삶의 벼랑 끝에 서 있던 순간들을 책 속에서 담담히 고백한다. 언제든 생을 놓아버릴 수 있다는 아득한 어둠 속에서도 한 인간을 현실로 단단히 붙잡아 둔 것은 다름 아닌 고양이들이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밥을 챙기고 화장실을 치우며 예민하게 상태를 살펴야 하는 돌봄의 과정은 역설적으로 무너지려는 저자의 일상을 지탱하는 강력한 동인이 되었다. 무해하고 연약한 이 작은 존재들이 내뿜는 온기, 생명력 앞에서는 기꺼이 무장 해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는 반려동물을 돌보며 치유를 경험한 수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극심한 우울감, 무력감, 공황에 빠져 스스로를 보살필 기력조차 잃었을 때, 나만 바라보면서 자신의 감정 상태에 무심한 생명체에 대한 책임감은 삶을 지속하게 만드는 가장 원초적이고 확실한 구원이다. 작가 역시 삶의 가장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고양이들이 건넨 묵묵한 위로, 아무 이해관계없는 머무름 덕분에 다시금 내일을 상상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었다고 털어놓는다. 타인의 고통에는 거리를 두는 법을 배웠던 인간이 한낱 작은 동물의 체온에 기대어 상처를 꿰매고 살아갈 의지를 다지는 과정은 뭉클한 여운을 남긴다.


고양이가 두고 간 세계, 그 안에 남겨진 이름들

책의 서사는 고양이 나이 열다섯, 사람 나이로 팔십 대에 이른 세 노령묘 루이, 아라, 꼼(줄여서 ‘루아꼼’)을 입양하며 시작된다. 소멸이 예정된 세계로 스스로 걸어 들어간 초보 집사는 투병과 죽음이라는 무거운 현실을 고스란히 통과한다.

  • 루아꼼과의 만남과 이별 한 몸집을 가졌으나 다정했던 루이, 다섯 마리 중 가장 머리가 컸지만 언제나 만만한 대우를 받았던 아라, 꼼꼼한 그루밍으로 보살핌을 받았던 소심한 꼼의 이야기는 각자의 고유한 성격만큼이나 생생히 다가온다. 급성 폐수종으로 먼저 떠난 꼼, 기나긴 투병을 견딘 아라, 마지막까지 곁을 지킨 루이와의 이별 과정은 처절한 돌봄,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만일 다시 산소방이 필요한 날이 온다면 가장 빠르게 산소방을 대여하겠다는 작가의 다짐은 타인의 고통에 막연히 동화되기보다 유연하게 대처하는 법을 배운 자의 성숙한 태도를 보여준다.

  • 새로운 세계, 테오와 디오 고민을 거듭한 끝에.. 루아꼼이 떠난 빈자리에는 어린 고양이 테오와 디오가 들어온다. 낮잠 루틴을 철저히 지키며 작가의 야근을 허락하지 않는 테오, 쇼핑백 손잡이에 머리가 걸리는 트라우마를 겪고도 금세 잊어버리는 디오의 천진난만한 에너자이저 일상은 무너진 세계를 다시 세우는 동력이 된다.


보편적 인간의 세계와 고유한 고양이의 세계

작가는 책을 통해 인간과 인간, 인간과 고양이의 관계가 맺어지는 방식의 차이를 예리하게 조명한다. 인간은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보편적인 인간성을 기대하거나 특정 그룹을 유형화하여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복잡한 사회적 궤도 안에서 인간은 잦은 갈등과 화해를 반복하며 ‘나’를 확장해 나간다. 반면 인간과 고양이의 관계는 결코 유형화될 수 없다. 고양이에 관한 행동학적 지식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는 있으나 관계의 본질은 각 개체의 고유한 성격과 경험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언어적 소통이 불가능한 고양이와의 관계 속에서 오히려 인간의 흠결을 직시하게 된다. 완벽하고 헌신적인 보호자라는 도덕적 신화는 애초에 불가능하며 인간은 죽음에 닿는 순간까지 결함투성이 존재임을 역설적으로 깨닫는다. 서로의 결함을 이해하고 조정하며 함께 살아가는 찰나의 경험 자체가 인간과 고양이가 나누는 유일무이한 구원의 방식이다.


상실을 안고 다시 품을 내어줄 용기

반려동물을 잃고 펫로스 증후군을 겪는 이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다시 들이는 일은 극도의 두려움과 죄책감을 동반한다. <고양이가 두고 간 세계>는 그 막막한 망설임 앞에 서 있는 이들에게 다정한 이정표가 되어 준다. 작가는 세상을 떠난 고양이가 영영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혼이 때로는 산 자들의 보금자리에 들르곤 한다고 고백한다. 생전 아끼던 캣휠, 수직 가구들, 스크래처 등에 어렴풋한 숨결, 그림자를 남길 때면 저자는 그들이 은연중 사라질까 봐 숨을 죽이고 자는 척한다고 말한다.

한 번의 사랑을 소진했다고 해서 마음이 닫히는 것이 아니다. 루아꼼이 남기고 간 슬픔의 공간은 사실 테오 & 디오가 뛰어놀 수 있도록 숨겨져 있던 작은 문을 열어둔 거대한 유산이었다. 상실에 압도당해 과거에 갇히는 대신 떠난 아이들이 가르쳐 준 사랑의 방식을 새로운 생명에게 실천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곁을 떠난 고양이가 우리에게 남겨둔 진정한 세계임을 이 책은 애틋하고 단단한 문장으로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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