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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부터 허리까지 철심 박고 배낭여행 - 스물여섯, 취업 대신 약해 빠진 몸으로 세계여행
김은지 지음 / 푸른향기 / 2026년 6월
평점 :
달리기만을 강요하는 세상과 고장 난 톱니바퀴
1999년 토끼의 해에 태어난 저자 김은지는 평생을 달려야만 하는 줄 알고 살아온 전형적인 한국의 MZ 청춘이다. 살아남기 위해 좋아하는 국어 대신 이과를 선택했고, 인서울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대기업 취업이라는 획일화된 결승선을 향해 스펙을 쌓으며 쉬지 않고 뛰었다. 허나 그녀의 몸은 세상의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는 상태.. 고등학교 시절, 엑스레이 화면에 나타난 그녀의 척추는 S자로 휘어져 있었다. 결국 1년을 휴학하고 어깨부터 허리까지 철심을 박는 대수술을 받아야 했다.
열여덟의 어린 나이에 그런 엄청난 수술을 겪고, 자신의 몸이 남들보다 한참 허약하다는 사실을 세상에 당당히 밝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아픔과 한계를 숨기지 않고 담담하게 글로 풀어낸 저자의 용기에 뜨거운 찬사를 보내게 된다. 끊임없는 성취, 남보다 빠른 적응/변화 만을 요구하는 잔인한 전쟁터 같은 한국 사회에서.. 허약한 피지컬을 원망하며 불안감에 시달리던 그녀는 마침내 궤도를 이탈하기로 결심한다. 취업 대신, 약해 빠진 몸으로 과감히 세계 배낭여행을 떠난 것이다!
배낭의 무게를 줄이며 발견한 위로, 깨달음..
그녀의 여행은 화려한 명소를 도는 과시용 여행이 아니다. 그것은 느리고 약해도 괜찮다는 믿음을 스스로 확인하기 위한 치열한 생존 기록이다. 여행의 과정에서 저자는 6kg이라는 가벼운 배낭 하나만으로도 살아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깨닫는다. 더 가지는 것보다 덜어내는 것이 자신을 더욱 자유롭게 만든다는 사실, 즉 삶에서 더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줄이는 연습이라는 예리한 통찰을 얻게 된다.
낯선 세계는 그녀가 한국에서 겪었던 불안과 강박을 서서히 허물어뜨린다. 이집트 다합의 작은 카페에서 언니와 대화를 나누며 타인의 시선에 맞춘 이력서 대신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일기를 쓰기로 다짐하는 장면이나, 좁은 골목길에서 언어, 문화가 다른 사람들과 어깨를 맞잡고 춤을 추며 마음을 나누는 순간들은 긴 여운을 남긴다. 강자만 살아남는 전쟁터가 아니라 서로 돕고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라는 현지인의 따뜻한 연대는 늘 긴장 상태로 살아온 그녀의 내면을 다독인다.
우만타이 호수의 포기 & 마추픽추의 성취
인상적인 장면은 페루 여행 중 맞닥뜨린 고산병 에피소드다. 여행자라면 누구나 욕심낼 법한 페루 우만타이 호수 등반을 앞두고, 그녀는 악화된 컨디션을 인정하며 과감히 발걸음을 돌린다. 무리해서 목표를 달성하기보다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받아들이고 상황에 맞추어 유연하게 판단하는 지혜를 발휘한 것이다.
반면 이어진 마추픽추 여정에서는 상식을 벗어난 고된 길임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하며 짜릿한 성취감을 안겨준다. 우만타이 호수가 포기해서 다행인 여행이었다면 마추픽추는 포기하지 않아서 다행인 여행이었다는 그녀의 고백은.. 우리에게 삶의 선택에 대한 중요한 깨달음을 전한다. 무조건적인 인내나 포기가 아닌, 스스로의 상태를 면밀히 관찰하고 방향을 조율할 줄 아는 지혜롭고 건강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바다를 만난 거북이, 스스로 삶의 방향 키를 쥐다
저자의 발걸음은 멕시코 옆 섬나라 벨리즈의 키코커섬으로 이어진다. 세상에는 빠르게 살라고 말하는 곳만 있는 게 아니라, 천천히 가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곳도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나무 표지판에 투박하게 적힌 "Go slow, but keep moving"이라는 문장은 그녀의 삶을 관통하는 든든한 나침반이 된다. 또한 이집트 다합에서 한 달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한국의 엄마에게 돈을 빌리면서도, 양귀자의 소설 <모순>의 구절을 인용하며 자신의 삶을 유심히 관찰하고 탐구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모습은 청춘의 현실적인 고뇌와 성장을 동시에 보여준다.
각자의 갈증을 해소하는 상큼달콤 레몬에이드를 건넨다!
이 책은 척추에 철심을 품고 낯선 길을 걸어간 한 청춘의 좌충우돌 투쟁기이자 성장담이다. 한국 사회의 일률적인 기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가치를 찾아가는 그녀의 여정은 거북이처럼 느리더라도 멈추지 않고 걷는다면 충분히 자신이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음을 생생히 증명한다. 세상이 정해놓은 속도에 맞추지 않아도, 가끔은 넘어지고 쉬어가도 괜찮다는 사실은 경쟁에 지친 우리에게 커다란 위안이 된다.
멕시코의 강인한 예술가, 프리다 칼로처럼.. 철심을 박은 꼿꼿한 척추로 세상의 편견에 맞서며 단단하게 걸어가는 김은지 작가의 앞길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녀가 보여준 멈추지 않는 거북이의 발걸음은 각박한 현대 사회를 버텨내며 목말라하는 우리 모두에게 각자의 숨겨진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하는 상큼달콤 레몬에이드 같은 존재가 되어줄 것이다.
푸른향기 & 김은지 <어깨부터 허리까지 철심 박고 배낭여행>..
남들과 다른 속도로 살아가는 법을 치열하게 고민하는 이들에게 주저 없이 추천하고 싶은
여행 & 힐링 에세이다. 김은지 작가의 다음 행보, 다음 출간작을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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