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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걸음치다 술독에 퐁당
한지혜 지음 / 톰캣 / 2026년 5월
평점 :
톰캣 신간, 한지혜 지음 <뒷걸음치다 술독에 퐁당>은 번아웃으로 퇴사한 마케터 출신 저자가 서울 신림동에 수제 막걸리 양조장 '해일막걸리'를 창업하며 겪은 좌충우돌 생존기를 담은 책이다. 저자는 막걸리 학교, 국세청 주류제조아카데미 등을 수료하며 전통주 전문가로 성장한 이력을 지녔다. 홀로 소규모 주류제조 면허를 따고, 자신만의 속도로 술을 빚어가는 삶의 철학을 유쾌한 문체로 풀어낸다. 무조건 살아남아야 다시 취업하지 않을 수 있다며 짠 내 나는 웃음을 보인 저자는 특유의 긍정적인 에너지로 4년 차 자영업자의 고군분투를 생생히 증언한다.
번듯한 직장을 석 달 만에 퇴사하고 막연한 불안감 속에서 홀로 양조장을 차린 저자는 앞길이 막막하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라는 아버지, 쉬엄쉬엄해보라는 어머니의 현실적인 우려 속에서 저자는 오롯이 자신만의 브랜드를 구축하기 위해 뛰어든다. 책은 막걸리 빚기에 처음 매력을 느낀 순간부터 나 홀로 주류 제조 면허를 취득하고 골목에 술 빚는 공방을 꾸리기까지의 과정을 따라간다. 인상적인 에피소드는 처음 내 손으로 빚었던 창포 막걸리와 평화미 술덧에 얽힌 일화다. 단양주를 빚다 실패를 맛보고 벌레 먹은 쌀 때문에 좌절하던 저자는 망한 줄 알았던 첫 술이 제멋대로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깊은 깨달음을 얻는다.
내가 멈춰 있고 방황하는 순간에도 술독 안의 미생물들은 부지런히 발효를 이어간다는 사실은 방향을 잃고 조급해하는 이들에게 뭉클한 위안으로 다가온다.
책의 목차를 따라가면 일반인이 자신만의 술을 빚고 양조장을 오픈하기까지 거쳐야 하는 현실적인 과정이 상세히 드러난다. 무작정 뛰어들기보다 막걸리 학교 같은 전문 교육 기관에 등록해 전통주의 기초 이론과 양조 기술을 배우는 것이 첫걸음이다. 이후 국세청 주류제조아카데미 등 심화 과정을 수료하며 까다로운 법적 기준과 주류 제조 면허 취득에 필요한 실무 요건을 숙지해야 한다. 끝없는 술 빚기 & 레시피 연구로 자신만의 시그니처 주종을 찾았다면 위생과 제조 시설 기준에 엄격히 부합하는 상가 공간을 찾아 임대하고 본격적인 양조 공방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해야 한다. 이 모든 험난한 준비를 마치고 관할 세무서와 식약처의 허가 문턱을 넘어야만 비로소 정식 양조장의 문을 열고 직접 빚은 술을 세상에 선보일 수 있다.
저자는 스스로를 수렁에 빠진 얼렁뚱땅 창업가로 낮춰 부르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그 이면에 자리한 치열한 열정, 인내를 마주하게 된다. 인테리어부터 레시피 개발, 브랜딩, 마케팅까지 홀로 감당해 낸 흔적들은 단순히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았다는 낭만적인 포장을 훌쩍 뛰어넘는다.
<뒷걸음치다 술독에 퐁당>은 성공한 사업가의 영웅담이 아니라 오늘을 꿋꿋하게 버텨내는 생활인의 진솔한 일기장이다.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며 발효되는 수제 막걸리처럼 저자는 세상의 획일적인 기준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농도와 향기를 찾아간다. 막걸리라는 전통적인 소재를 2030 세대의 팍팍한 현실과 접목해 풀어낸 시선이 신선하다. 섣불리 실패를 단정 짓기보다 기다림의 미학을 배우고 앞서 길을 걸어간 선배들의 다정을 잊지 않고 순환시키겠다는 다짐은 독자들의 마음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킨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속도에 지친 이들이라면 미지근한 온도로 뭉근하게 익어가는 이 유쾌한 저자의 술독에 기꺼이 빠져볼 만하다.
한국인들 만큼 술 좋아하는 이들을 찾기 힘들 것이다. 과거 15만 개에 달했던 전국의 술도가들은 일제 강점기의 식량 수탈과 탄압, 1965년 양곡 관리법 시행을 통한 개인들의 술 빚기 금지, 주류 대기업들의 로비 등으로 인해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최근 흑백요리사 2에 '술 빚는 윤주모' 등이 실력을 인정받고 인기를 끌면서 다양한 누룩과 곡물 등을 활용한 양조 공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에세이 <뒷걸음치다 술독에 퐁당>과 저자가 운영하는 '해일막걸리' 양조 공방을 통해 많은 이들이 자신만의 시그니처 주종을 빚고 즐길 수 있는 기쁨을 누렸으면 한다!
찾아보니 '해일 막걸리'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난곡 터널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오프라인 강의를 듣고 직접 술을 빚는 체험 수업에 참여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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