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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기 전에
한봄 지음 / 미다스북스 / 2026년 1월
평점 :
미다스북스 신간, 한봄 작가 첫 장편소설 <봄이 오기 전에>는 전생의 얽힘과 현생의 인연을 계절이라는 은유로 풀어낸 판타지 로맨스다. 작가 한봄은 자신의 필명처럼.. 글을 쓰는 동안 늘 봄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청춘의 불안과 상처 회복을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작가는 처음엔 역경을 이겨내는 눈부신 봄을 그리려 했으나, 서사 속으로 깊이 들어가며 역설적으로 가장 따뜻한 겨울을 독자에게 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불의의 사고로 인한 저체온증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주인공 이봄을 비롯해 첫사랑 도영, 언니 이설, 차율 등 네 청춘이 서로의 상처를 깊이 이해하고 보듬는 과정이 서사의 중심을 이룬다. 어둑한 터널 같은 팍팍한 일상을 견뎌내는 이들에게 다정한 온기와 진정한 위로를 건네는 책이다.
누구에게나 견디기 벅찬 시린 계절이 찾아온다. <봄이 오기 전에>는 차가운 현실을 버텨내는 네 사람의 상처와 치유 과정을 전생과 현생이라는 독특한 궤적으로 엮어낸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이들에게 사소하지만 진심 어린 온기가 얼마나 큰 구원이 될 수 있는지 잔잔히 증명하는 이야기다. 소설의 중심에는 11년 전 불의의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홀로 살아남은 주인공 봄이 있다. 교도소에 가지 않으려 타인의 차에 몸을 던진 이모부 탓에 발생한 이 비극적인 사고는 남은 이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그날 이후 봄은 겨울마다 극심한 저체온증, 통증에 시달리며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트라우마를 동시에 겪는다.
봄의 언니 설은 부모님의 죽음이 누군가의 탓이라 여기며 헤어 나올 수 없는 깊은 죄책감과 원망을 안고 살아간다. 고통스러운 기억 속에 갇힌 자매 앞에 봄의 첫사랑 도영과 미스터리한 인물 율이 등장하며 오랜 인연의 실타래가 서서히 풀리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단순한 남녀의 사랑을 넘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전생의 업보를 조명하며 깊이를 더한다. 봄이 개화산 사고 이후 반복해서 꾸는 꿈은 서사를 관통하는 핵심 미스터리다. 꿈속에서 한 남자는 자신을 찔러 피를 흘리며 "꽃이 피고 져도 우리의 이야기를 꼭 기억해 줘..."라고 애원한다. 이 강렬한 꿈의 파편들은 '개화 찻집'이라는 신비로운 공간을 매개로 현재의 인물들을 단단하게 잇는다. 설과 율이 산신의 허락을 받아 운영하는 개화 찻집은 단순히 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다. 계절의 변화와 인물 간 관계의 시간을 넘어선 결속을 상징하며 다친 마음을 달래는 치유의 공간으로 작용한다. 찻집에 감도는 기운은 등장인물들이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 현재를 직시하도록 돕는다.
두드러지는 대목은 인물들이 각자의 상처를 마주하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껴안는 순간들이다. 도영은 과거의 아픔 때문에 끊임없이 불안해하는 봄의 곁을 묵묵히 지킨다. 억지로 괜찮은 척할 필요가 없다고 다독이는 도영의 존재는 봄에게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명장면으로 꼽히는 율의 고백 역시 짙은 여운을 남긴다. 율은 크리스마스가 생일인 설에게 동백꽃을 건네며 진심을 전한다.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꼭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말해줄게요. 설이 씨도 내게 그렇게 말해줘요."_312p
이 문장은 누군가의 존재 자체를 긍정하고 축복하는 마음이 얼어붙은 영혼을 어떻게 구원하는지 보여준다.
작가는 혹독한 겨울을 억지로 지워내는 대신 곁에 머무는 이의 체온으로 그 계절을 오롯이 견디게 만든다.
삶은 때때로 겨울이기도 때때로 봄이기도 하다는 책 속의 통찰처럼 영원히 지속되는 고통은 없다. 시공간을 초월해 서로의 어둠을 밝혀주는 등불이 된 봄, 도영, 설, 율의 로맨스는 읽는 이의 마음까지 서서히 녹인다. 태양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널리 알려진 격언처럼 지금 혹독한 시련 한가운데 놓인 독자라면 <봄이 오기 전에>를 펼쳐보길 권한다.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연대하며 나아가는 주인공들의 발걸음을 통해 다가올 눈부신 봄의 기운을 미리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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