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정치·직업으로서의 학문 현대지성 클래식 57
막스 베버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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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지성 클래식 57번째 시리즈는 막스 베버의 대표작 <직업으로서의 정치, 직업으로서의 학문> 완역 합본입니다.

당대 카를 마르크스와 쌍벽을 이룬 현대 사회과학의 거장이자 시대의 예언자 '막스 베버'.

그의 통찰력이 담긴 대표적인 강연문 2종이 박문재 전문 번역가의 매끄러운 번역과 충실한 각주/해제를 포함해 출간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한 독일 제국, 막스 베버는 혼란에 빠지고 위기에 처한 나라를 일으키기 위해 정치와 학문이 어떤 소명으로 역할을 다해야 하는지를 대중 앞에서 강연했다.

직업으로서 정치에 헌신하는 자는 강력한 열정과 자기 통제를 바탕으로 대중들에게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힘을 지녔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직업적인 정치가란 자신의 주장을 전파하는 연설가로서, 대중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리더로서 또한 타 정당과 이익 집단과 타협하고 네고하는 협상가로서의 자질을 타고나야만 한다. 이러한 선천적 자질뿐만 아니라 후천적으로 자신이 태어나고 속한 나라가 불구덩이에 처박히고 약소국의 지위를 면치 못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 자신의 나라에 복무/헌신하고 자국민을 보호하고 구원할 수 있는 소명을 가진 이어야만 한다.



또한 막스 베버는 같은 연장선 상에서 직업적인 학자/교육자에 대한 견해를 밝힌다. 그는 어떤 학문에 전념하는 이는 오로지 자신의 분야에 평생을 바쳐 몰두하는 사람이라 주장한다. 학자로서 길을 걷는 자는 위대한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다른 업을 엿보거나 겸하기를 포기하고 오직 자신의 우물을 깊게 파고드는 이라 말한다. 자신의 생을 걸고 천착하는 자. 즉 미지의 영역을 헤치고 나아가 태초의 진실에 다다르는 이, 노학자가 개척한 길을 뒤따라 새로이 곁길을 뚫고자 하는 모두가 배움을 청하고 흠모하는 이. 그가 바로 직업으로서 진정한 학자라 칭할 만하다. 베버는 이렇게 강연하면서 무소불위의 힘에 도취한 어느 학자가 롱기누스의 창처럼 휘두르는, 세미나 형식을 배제한 채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강요하고 일방적으로 피력하는 행위는 올바르지 않은, 너무나 쉽고 편리한 월권행위라 주장한다.



그런 학자가 존재한다면 강단에 서서 예언을 퍼뜨리기보다는 차라리 종교에 귀의하여 선지자 역할을 하라고 일갈한다. 어느 학자가 자신의 정치적 이념과 가치를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대중들에게 강의하고,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베버에 따르면 전문적인 정치와 학문의 길은 겹칠 수 없으며, 각각의 업에 헌신하는 자들의 책무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어쩌면 1차 세계 대전의 패전 이후, 독일은 저명한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의 견해를 무시하고 학문이 정치사상에 봉사하고 헌신하는 월권행위를 저지름으로써 나치의 태동과 2차 세계대전의 발발이라는 참극을 다시 겪었는지도 모른다. 


시대를 앞서간 예언가 베버의 정치와 학문이라는, 두 분야를 아우르는 명강연의 완역본과 박문재 번역가의 명쾌한 해석을 탐독하고 싶은 분들은 현대지성 클래식 신간 <직업으로서의 정치, 직업으로서의 학문>을 펼쳐보길 바란다. 지금의 시대에도 통용될 수 있는, 혜안이 번득이는 명저라 할 수 있다.




#협찬 #직업으로서의정치학문 #정치 #학문 #막스베버 #사회학 #직업 #정치가 #윤리 #현대지성클래식 #박문재옮김 #2종완역합본 #신간추천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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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이 왕따 가해자입니다
시로야기 슈고 지음, 정지원 옮김 / 빈페이지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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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야기 슈고 <내 딸이 왕따 가해자입니다>,

학폭 왕따 문제를 피해자와 가해자 쌍방의 시점에서 그린 화제작.

심리 상담가이자 <마음 근육 튼튼한 내가 되는 법>의 저자 박상미 교수가 추천한 신간이다.



첫 페이지 칠판에 새겨진 두 글자를 바라보는 고하루의 뒷모습이 섬뜩하다. 이후 잔인하고 참담한 이야기 전개를 예고하는 듯하다. 전체 형식은 4컷 만화의 연속으로 가벼이 읽을 수 있는 구성이다. 허나 읽다 보면 전염병처럼 번지는 학교 폭력의 확산에 성인이자 학부모로서 책임감을 지울 수 없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타인이 아닌 우리 아이들에게도 능히 벌어질 수 있는 일처럼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고하루와 마나.. 초등 5학년 같은 반 친구인 둘은 학폭 왕따 사건에 휘말리면서 피해자와 가해자 입장으로 나뉘어 갈등을 겪게 된다. 서로의 부모님과 학교 전체로 걷잡을 수 없이 학폭 문제가 확대되고, SNS를 통해 세상 밖으로 일파만파 소문이 퍼지면서 누가 피해자고 가해자인지 특정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만다.



책을 읽으면서 지난날이 떠오른다. 큰 아이가 유치원 다니던 시절, 어느 날부터인가 교실에 바래다주던 내 손을 꼭 붙잡고는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거다. "아빠, 2층까지 같이 올라가 주면 안 돼?" 아이의 떨리는 눈빛을 보고 난 그러마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후에 알고 보니 남들보다 성장이 빨랐던, 조숙한 같은 반 아이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다행히 사건 초기에 전모를 알게 되어, 가해 아동과 학부모로부터 사과를 받고 다시는 그런 괴롭힘 폭력이 발생하지 않도록 약속을 받았다. 분명히 당시 유치원 담당 선생님은 아이들의 제한된 활동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상 징후와 행동을 감지하고 목격했을 것이다. 하지만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일부 교육 담당자들은 책임을 피하기 위해 적극적인 대응을 피하고 학부모에게 이후 대응을 미루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온갖 고통을 겪고 트라우마, 후유증에 시달리는 것은 결국 우리 아이들이다.



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에서, 무릇 아이들처럼 순진무구하게 잔인한 동물이 있을까 싶다. 진화를 거듭한 영장류의 후손답게 무리 안에서 강자와 약자를 본능적으로 가름하고, 어느 무리에 가담해야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판단한다. 미성년자인 아이들의 폭력성을 과소평가하고 무시하면 안 된다. 미숙하고 절제심이 미약한 탓에.. 약자에 대한 육체적, 정신적 보복과 괴롭힘은 성인보다 더하고, 잔인함은 야생의 고릴라나 원숭이처럼 극으로 치달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건, 가능한 빠른 교사/학부모의 개입, 가르침 그리고 따끔한 훈육이다.

만약 사회와 가정의 적극적인 개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아이들의 커뮤니티는 일체의 자비가 없는 약육강식의 정글로 변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탈락하고 도태되는 아이들은 벼랑 끝으로 몰릴 것이다.



한국은 초등 저학년부터 과도한 입시 준비, 선행 사교육으로 인해 공교육이 무너졌고, 이로 인해 교권은 바닥 아래로 추락했다. 가득이나 공부로 인한 압박, 스트레스가 상당한데, 여기에 학폭 왕따 문제까지 더해진다면 피해 아이들이 감당해야 하는 중압감의 무게는 배가 될 것이다. 벼랑 끝에 매달린 채 오래 버티기 힘든 상황에 내몰리는 아이들의 절박함, 위태로움.. 우리는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작금의 위급한 상황을 바로 인식하고, 학폭 사건을 조기에 방지, 차단할 수 있는 학교와 가정, 공권력이 함께 관여하는 대응 시스템을 구축하고 보완해야 한다. 피해자들의 트라우마가 이어지지 않도록 학폭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와 처벌, 격리 등 적극적인 훈육이 뒤따라야 한다.

시로야기 슈고 <내 딸이 왕따 가해자입니다>는 학부모와 아이들이 읽기 쉬운 만화체를 통해, 우리 사회/교육계의 현실을 고발하고 학폭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는 필독서로 삼을 만하다.


더불어 책과 함께 아빠와 엄마, 아이가 궁금한 점을 기록하고, 서로 돌려보며 소통할 수 있는 '소통 노트'를 제공합니다. 서로에 대해 알고 있는 내용을 더 깊고 재미있게, 몰랐던 부분은 새로이 알고 이해하며, 가족끼리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으니 적극 활용해 봅시다!





#서평단 #도서협찬 #내딸이왕따가해자입니다 #시로야기슈고 #빈페이지 #정지원옮김 #학교폭력 #학폭 #따돌림왕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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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일 비비언 고닉 선집 3
비비언 고닉 지음, 김선형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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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대문자 L로 적힌 Life, 삶의 압력을 느끼려고 읽는다._26p

책을 다시 읽고 싶어서 더 오래 살고 싶다는 이 못 말리는 애서가의 당찬 포부에는

유쾌한 전염성이 있다._245p



작가들의 작가, 이 시대 최고의 저널리스트이자 에세이스트 '비비언 고닉'의 최근작 <끝나지 않은 일>. 글항아리에서 출간한 비비언 고닉 선집 마지막 책이다.

정식 출간본에 앞서 티저 북을 읽어 보았다. 20여 페이지의 발췌록과 옮긴이의 말 전문.

책의 일부를 들춰보았을 뿐인데도, 저자의 집필 의도와 방향, 관통하는 주제를 짚기에는 무리가 없다.


유한한 인간의 삶, 그와 함께 명멸하는 수많은 책들. 극히 일부는 세대를 넘어 빛을 발하는 클래식한 고전으로 남아 우리 곁을 지킨다. 과거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대단한 의미가 아닐 수 없다. 현재는 화려하고 자극적인 영상과 웹툰, 게임이 넘쳐나는,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기 어려운 요지경 세상. 혼란하고 번잡한 세상 살이 중에 어느 책을 재독한다는 것은 책과의 범상치 않은 인연에 의미를 둘 수도 있지만, 독서에의 열망과 의지를 다짐하고 정연한 삶을 향한 긴장을 늦추지 않아야만 달성할 수 있는 거사임에 틀림없다.



희수를 훌쩍 넘은, 적지 않은 나이의 비비언 고닉은 밖으로 거동하여 급변하는 세상을 체험하기가 어렵다. 그녀는 노회한 몸을 움직이는 대신, 곁을 지키는 문학 작품을 '다시 읽는다'라는 행위를 통해 자신이 살아 있음을, 여전히 진화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처럼 보인다.

<흰옷을 입은 여인>, <작은 아씨들> 등 유년기를 통과하는 의식처럼 머물렀던 다수의 문학 작품을 통해 아직 영글지 않았어도 찬란한 젊음을 과시하던 시절을 추억한다. <사나운 애착>을 다시 읽으면서 증오에 가까운 어머니에 대한 감정을 다독이고, 여성 운동의 이론과 실천이 동떨어진 시대의 딜레마를 돌아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서술 방법, 즉 자기중심적인 일인칭 시점으로 진행하는 문학 평론에 대해 독자들이 자신의 곁에 바짝 다가서서 바라보고 사유하는 모든 것에 공감하기를 바라는 바람을 드러낸다. 어느 문학 작품을 재독하면서 처음 읽었을 때의 시공간으로 되돌아가 당시를 되돌아 보고, 과거와 현재에 비친 각각의 뉘앙스를 비교하고 음미하는 것. 시간의 흐름에 따른 두 자아가 거듭된 읽기를 통해 어떻게 분열하고 충돌하는지, 이러한 시행착오를 통해 균열되고 상처 입은 자아의 응어리들이 심사숙고 끝에 합일하고 화해하는 구체적 과정을 보여준다. 비비언 고닉은 통합되고 실천 가능한 자아라는 생의 위업에 다가서기 위한, 몸부림치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새겨진 분투의 기록을 여기에 남겼다.



난 <끝나지 않은 일> 일부를 읽으면서 지난날 읽었던 몇몇 책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생전 아버지가 곁에 어린 날 누이고 외우다시피 읊어주셨던 현진건 작가 <운수 좋은 날>의 마지막 장면.. 연중 손꼽을 정도로 돈벌이가 좋았던 운수 넘치는 하루의 마지막에, 싸늘히 식은 처의 시신을 붙들고 오열하는 어느 사내의 울부짖음을 복기하며 시대를 초월하는 삶의 예측불가함, 처절함에 경악한다. 언제든 방심하고 행복에 겨워하는 뒤통수를 냅다 후려갈기고, 뜨끈한 설렁탕 뚝배기를 뒤집을 수 있는 인간 운명의 얄팍함, 배신에 대해 깨닫는다.

또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석양을 바라보는 스칼렛 오하라의 그 유명한 마지막 외침보다..

"한 나라가 흥할 때는 물론 돈이 굴러들어 오지. 하지만 어느 나라가 망할 때도 부를 움켜쥘 수 있는 법이야."라는 작가의 글귀가 '각자도생'이 메인 키워드로 등장한 현시점에 더 마음에 와닿는다. 그 밖에 무수한 작품들의 복잡다단한 문장, 각양각색 이미지와 꼬리를 무는 대사들이 기억과 망각 경계선에서 떠돌고 있다.


처음 읽기도 쉽지 않은 시대에 '다시 읽기'라는 흔치 않는 행위가 깊이 없이 겉돌고 방황하는 현 세태의 우울과 공허함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제시되길 바라며.. 비비언 고닉의 <끝나지 않은 일> 전체를 완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이 글에 남긴다.





#서평단 #티저북 #끝나지않은일 #비비언고닉 #김선형옮김 #글항아리 #신간추천리뷰 #다시읽기 #성장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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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 사는 코끼리
미코와이 파신스키 지음, 고시아 헤르바 그림, 정주영 옮김 / 마리앤미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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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코와이 파신스키/고시아 헤르바_<달에 사는 코끼리>는 달을 바라보는 각자의 마음을 그리고 있어요.

망원경으로 달을 바라보는 어느 천문학자의 눈이 푸르스름하게 빛나요.

달에 마음을 빼앗긴 그녀의 눈에 색다른 무언가가 보였나 봐요.

커다란 덩치에 코가 기다란 달 코끼리가 달 표면에 비친 거예요.

처음엔 천문학자 자신도 믿지 못했어요. 다른 사람들 또한 코웃음 치며 그녀를 비웃었어요.

그림책을 읽는 저 또한 믿을 수가 없었지요.



결국 그녀는 달 코끼리를 만나기 위해 머나먼 여행을 떠나요.

달 코끼리는 그녀를 위해 여행 가이드를 하고, 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고

자신의 비밀 임무를 설명하기도 해요.

그녀는 달에 오래 머물면서 미처 깨닫지 못한 달의 숨은 풍경과 생물들을 기록했답니다.

지구 사람들은 그녀의 말과 글에 공감하고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17세기 천문학자였던 '폴 닐' 경은 달에 있는 코끼리를 관찰했다고 해요.

아이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달을 바라보면서 각기 다른 그림을 떠올려요.

누군가는 달을 보면서 커다란 토끼들이 살고 있다고, 한가위 추석이면 인절미를 빚기 위해

절구질을 빻는다고 말하기도 해요.


저희 아이들은 둥그런 보름달을 볼 때마다 달님이 기분이 좋은지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고

말하곤 했답니다. 저 또한 마음을 열고 휘영청한 달을 바라보면 칙칙폭폭 질주하는 은하 철도와

거대한 우주 전함의 그림자가 어른대기도 해요.

각자의 어릴 적으로 돌아가, 때묻지 않은 마음으로 저 달을 바라보면..

저마다 원하고 바라는 숨겨진 무언가가 떠오를 겁니다.

여러분의 눈에는 어떤 달 풍경이 그려지는지요? 무척 궁금합니다.



#서평단 #달에사는코끼리 #미코와이파신스키 #고시아헤르바 #정주영옮김 #마리앤미 #그림책추천리뷰

#각자의달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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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는 것들은 어떻게든 진화한다 - 변화 가득한 오늘을 살아내는 자연 생태의 힘
마들렌 치게 지음, 배명자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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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 자신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_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어릴 적 외가에서 고슴도치를 발견한 적이 있다. 연탄 풍로 안 깊숙이, 몸을 웅크리고 벌벌 떨고 있던 녀석은 근처 야산에서 인가로 내려온 듯했다. 미동도 하지 않던 그 고슴도치는 이후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낯선 도시는 녀석에게 생경하고 충격적인 곳으로 남았으리라.



마들렌 치게_<숨 쉬는 것들은 어떻게든 진화한다>는 진화 생물학자의 눈으로 지켜본, 낯선 곳에서 생존하고 투쟁하는 생물들에 대한 탐구서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이 거주하는 도시 프랑크푸르트에 나타난 야생 토끼들을 관찰한다. 자신은 고층 빌딩이 즐비한 대도시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음을 토로하면서, 시골보다 도시에 토끼 무리가 많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추적하기 시작한다. 토끼들은 수대에 걸쳐 서식지를 옮기면서 생활을 하면서, 어디서 적응이 용이하고 자신의 유전자를 널리 퍼뜨릴 수 있는지에 대해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토끼들이 천적에게 쫓겨 희생 당하고, 개체 수가 감소하는 위기에 처했겠는가. 결국 토끼들은 인간들이 이룩한 문명에 가깝게 생활하는 것이 진화론적 관점에서 타당한 최선의 선택임을 동물적으로 터득했다.



저자는 도시 토끼들이 최선의 서식지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그들을 생존하게 하고, 환경에 적합한 유전자를 구축하는 동력을 제공했다고 설명한다. 가뭄을 기억하고 전파하는 개나래새, 기생충을 물리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절단하는 민달팽이, 늪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호흡뿌리를 발달시키는 맹그로브숲 등.. 자연의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스트레스에 대응하고, 환경에 적응하다가 끝내 진화하는 과정을 거듭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인간 또한 스트레스를 무작정 회피하기보다는, 자신에게 맞는 최적의 서식지를 찾는 과정 속에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적응 반응임을 인식하고 인생의 동반자처럼 대할 것을 조언한다. "날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 자신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라는 니체의 말처럼 적절한 스트레스는 다양한 환경에서 자신을 생존케 하고,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영유하기 위한 필수 요소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평안을 누리고 날개를 펼칠 수 있는 처소는 본능적으로 파악 가능하다. 각자의 DNA, 유전자에 적합한 환경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각자가 외진 곳에서 고독을 감당하는 살쾡이나 독수리인지, 문명 가까이 무리 생활을 즐기는 토끼, 비둘기인지 등을 판단하여 그에 적합한 환경을 찾아야 할 것이다. 누군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뜻을 따라 복잡한 인간관계를 피해 산골 오지에 은둔한다 해도, 그는 사무치는 외로움과 공포, 나날이 영역을 침범하는 자연에 대항해야 하는 난관에 처할 수도 있다.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스트레스가 없는 무해 청정 구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숨을 쉬는 한 스트레스는 모습을 달리해 자신을 덮칠 것이고, 이를 친구로 삼을지 적으로 대할지는 각자의 생각에 달린 것이다. 분명한 것은 온갖 압박을 견디고 자신의 일부로 체화한 자만이 낙원에 들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마들렌 치게는 <숨 쉬는 것들은 어떻게든 진화한다>를 통해 자연에 속한 모든 생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다양한 스트레스를 친구 삼아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고 친절히 설명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메가 도시 서울을 비롯한 한국 각지에서 일상을 지속하는 자신이 대견스러워질 것이고, 어디서든 적응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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